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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생지연多生之緣 (61)화 (6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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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호에게 물어볼 것이 무얼까.

    사람을 홀리는 방법이라도 물으려는 걸까. 제가 생각해도 황당한 생각을 하며 운전하는 사이 차가 강북에 도착했다.

    “이한 님, 혹시 구미호 님에게 특징이 있어요?”

    이제부터 직접 발로 뛰어 찾아야 했다. 차에서 내리기 전 특징을 묻자 이한이 미간을 와락 좁혔다.

    “……여성형이든, 남성형이든. 네가 지금까지 봐 온 그 누구보다도 예쁘고, 잘생겼을 거다.”

    기대했는데 어쩐지 밑도 끝도 없이 막연하다. 하람이 황당함이 담긴 눈으로 이한을 보다 비상등을 켰다. 다녀오겠다는 인사 후 차에서 내려 바에 들어갔다.

    그저 사람인 척하는 구미호를 찾는 것뿐이다. 엄청난 외모를 가진 사람을 찾아 내부를 휘 둘러보았다가 특별한 점이 없어 바로 나왔다. 시선을 맞추는 이한에게 고개를 가로젓고는 휴대폰을 꺼냈다.

    다시 한번 더 강북에 있는 바를 모두 검색했다. 바가 아닌 곳을 제외한 후 근처에 있는 바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다.

    “정확한 위치가 없으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 둘러봐야겠어요.”

    그렇게 강북에 있는 수십 개의 바 투어가 시작됐다.

    그렇지 않아도 이한을 돕고 싶었는데. 넘치는 기운을 한계까지 억눌러야 사람들 속에 있을 수 있는 이한을 대신해서, 그리고 구미호가 떠날까, 하람 홀로 바쁘게 움직였다.

    수유동에 한 곳, 인수동에 한 곳. 송천동 두 곳. 다리가 후들거릴 만큼 열심히 움직이던 중 한 골목길에서 BAR 글자를 보게 됐다.

    인터넷에 주소가 등록되어 있지 않은 작은 바는 마치 서점처럼 입구에 책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하마터면 서점인 줄 알고 그대로 지나칠 뻔했다.

    은은하게 반짝이는 BAR 글씨를 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외부에서 봤을 때는 그리 넓어 보이지 않았는데 가로 폭이 좁은 대신 세로로 길었다. 하람이 바텐더에게 사람을 찾고 있다고 양해를 구하고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무슨 일인지 지하로 내려가는 것처럼 점점 산산해졌다.

    반쯤 본능적으로 셔츠에 감싸인 팔을 쓸어내리며 훑던 중 일행 있다는 미성이 귀에 꽂혔다. 소리를 쫓아 고개 돌렸다가 드러내 놓고 귀찮다는 낯을 하고 있는 여자와 시선이 딱 부딪쳤다.

    “아.”

    지금까지 봐 온 그 누구보다도 예쁘다고 했던가.

    언젠가 회사 직원 중 누군가가 백화점에 갔다가 여배우를 봤는데 무슨 마네킹이 걸어오는 것 같았다고 말했었다. 그 말에 마네킹이라니, 너무 비현실적이잖아요. 하고 우스갯소리를 했었는데, 정말 마네킹이 앉아 있는 것 같다.

    홀린 듯이 멀거니 보고 있는데 여자가 미간을 약하게 좁혔다. 하람을 빤히 보다 앞에 서 있는 남자들을 보았다.

    “일행 왔으니 그만 가 주시겠어요?”

    남자들이 여자를 따라 가만 서 있는 하람을 보았다. 이내 무어라고 하더니 그들은 바 테이블로 가 앉았다.

    바 체어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에 하람이 정신 차렸다. 뒤늦게 여자가 앉아 있는 테이블 앞으로 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혹시, 구…….”

    “아니,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당신도, 그래, 그런 건가.”

    “네?”

    구미호냐고 소리 죽여 묻는데 여자가 한 번에 알아듣기 어려운 말로 말을 자른다. 하람이 눈매를 구겼다가 핸드폰을 테이블에 두었다.

    “일단, 잠시만요. 제가 차를 길가에 세워 놓고 와서 다시 올게요.”

    구미호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러다 차가 견인 당할 것 같다. 하람이 여자에게 제발 기다려달라고 짧고 간절하게 말한 뒤 빠르게 바에서 나갔다. 바보처럼 혼자 빨간 등을 깜빡거리고 있는 차 운전석에 탔다. 

    “찾았어요.”

    “구미호를 찾았다고?”

    조수석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이한이 놀랐다. 핸들을 돌려 차를 움직이던 하람이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뜬 이한을 힐끔 보았다.

    “확실한지는 모르겠는데 구미호 같은 여자를 찾았어요. 이 차만 세우고 바로 한 님 부를게요.”

    주차장이 멀면 어떡하지 했는데. 다행히 근처에 한산한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으로 가 파킹을 부탁한 뒤 뭐에 쫓기는 사람처럼 다급하게 바로 갔다.

    “……하.”

    “내가 매정하게 갈 줄 알았나 봐요.”

    여자가 떠날까 봐 서둘렀더니 진이 다 빠졌다. 의자에 풀썩 주저앉자 잔을 입가로 가까이하던 여자가 웃었다. 한숨을 푹 내쉰 하람이 여자를 마주 보았다.

    “구, 미호. 맞으시죠?”

    혹시나 아닐까. 다시 한번 더 묻자 여자가 입꼬리 끝을 느슨하게 당겨 웃었다.

    “지금은 아니죠.”

    분명 지금은, 이라고 했다. 하람이 테이블 위로 축 늘어졌다.

    이한을 바로 부르지 않고 잠시 늘어져 있는데 직원이 다가와 메뉴판을 내밀었다. 메뉴판을 받지 않고 바로 논 알콜에 가벼운 것으로 추천을 부탁했다. 직원이 인사 후 떠났다.

    여상하게 칵테일을 마시는 구미호를 보는 사이 셜리 템플이라는 칵테일이 앞에 놓였다. 하람이 감사 인사 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이내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눈을 감았다.

    “이한 님.”

    차에 홀로 있을 이한을 생각하며 그의 이름을 부르고, 눈을 떴다.

    산소가 훅 빠진 것처럼 압박감이 느껴지더니 허공에서 손이 불쑥 나타났다. 곧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하람의 옆자리 의자 등받이를 잡아 뒤로 뺐다. 후욱 번지는 검은 연기 사이로 나타난 이한이 의자에 앉았다.

    “드디어 만나는군.”

    애타게 찾아 헤맸던 구미호를 마침내 만났다.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는데 구미호의 눈이 점점 크게 뜨였다.

    “……어떻게.”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듣지 못할 만큼 작은 탄식과 함께 구미호가 손으로 제 입가를 가렸다.

    어쩐지 구미호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다.

    시원한 칵테일을 마시며 주변 사람들을 살피던 하람이 조심스레 잔을 내려놓고 이한을 보았다. 이한이 하람을 힐끔 본 뒤 구미호를 보았다.

    “날 알고 있나?”

    이한의 물음에 구미호가 한 박자 늦게 눈매를 구겼다.

    “……어찌, 어찌하여 이승에 붙어 있는 겁니까?”

    입가를 가리는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동시에 이한의 미간이 좁혀졌다.

    “날 꽤 잘 아는 것 같군.”

    구미호가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앞에 놓인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기억을 잃은 모양이군요.”

    유려한 잔이 코스터 위에 놓였다. 구미호가 이한과 하람을 차례대로 본 뒤 다시 이한을 보았다.

    “그리고 당신은 또 나에게 알아낼 것이 있어서 찾았겠죠.”

    안 그러냐는 듯 직시해 오는 시선에 이한이 한쪽 눈썹을 위로 들었다. 눈치를 살피던 하람이 슬그머니 이한의 팔을 지그시 내리눌렸다.

    “……여전하시군요.”

    욱 성질을 참지 못하고 검을 꺼낼까. 이한의 팔을 잡고 지켜보는데 구미호가 여리게 웃었다. 계속 입을 다물고 있던 하람이 네? 소리를 냈다. 이한이 눈을 감았다 떴다.

    “듣자 하니 천 년 가까이 살았다고 들었다.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말해 줬으면 좋겠군.”

    여우의 꼬리 하나당 백 년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구미호는 구백 년을 산 요괴라고 했는데, 천 년?

    하람이 깜짝 놀라 구미호를 보던 눈을 크게 뜨자 구미호가 피식 웃었다. 곧 그녀의 뒤로 하얀 빛이 어룽거리더니 꼬리가 하나, 둘 나타났다.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무뎌지셨네요.』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구미호가 위로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다섯 손가락을 사르르 움직였다. 손끝에서 별 가루 같은 것이 나와 사방으로 흩어지고, 사라졌다.

    『사방에 귀가 있다고 몇 번이고 확인하셨던 분이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다니요.』

    구미호의 뒤에서부터 비눗방울 같은 막이 생기더니 이한과 하람을 감쌌다. 하람이 점차 옅어지는 막을 신기한 눈으로 훑었다가 구미호를 보았다.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이한을 보던 구미호가 희게 웃었다.

    『정보란 본디 귀한 것. 그냥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하람의 미간이 약하게 좁아지고, 이한은 그럴 거라고 예상했다는 듯 가만히 있었다. 지켜보던 구미호가 잔을 들어 한 모금 짧게 마시고 내려놓았다.

    『이전부터 저승의 것들과 가까이 지내며 불쾌한 것들을 처리하는 영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한 님이 그 영가인 것 같은데, 맞습니까?』

    연륜은 무시할 수 없다고, 구미호가 이한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저승과 관련된 조건을 걸려는 걸까. 하람이 슬쩍 이한을 보았다. 구미호를 보던 이한이 얼굴에 걱정이 가득한 하람을 보았다가 다시 앞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오랫동안 기다리고, 찾는 자가 있습니다. 그이가 환생을 했는지 알아봐 주시면 제가 아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잔뜩 긴장해 구미호의 말을 듣던 하람이 헉, 하고 이한을 보았다.

    환생은 오도전륜대왕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한은 오도전륜대왕과 친밀했다. 일이 쉽게 풀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왜인지 이한의 표정이 좋지 않다.

    쉽게 풀리는 게 아닌 걸까. 아, 오도전륜대왕님을 생각하는 걸까.

    초조하게 바라보는데 이한이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환생이란 저승의 소관. 내가 아무리 저승 시왕과 가깝게 지낸다고 해도 쉽지 않고, 위험하다. 내가 그 부담을 감당해야 할 만큼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나?”

    과연, 하고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에 구미호가 미소 지었다.

    『지금 있는 이 강북 땅은 과거, 조선의 한성부였지요. 귀한 이 땅에 제 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한 님과.』

    구미호가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하람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당신도 이 땅에 있었습니다.』

    “……네?”

    한성부가 조선 왕조 수도의 행정구역명이었던가,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지목됐다. 하람이 의아함에 눈매를 찌푸리자 구미호가 손을 내렸다.

    『두 분은 제가 감히 어울릴 수 없을 만큼 지체가 높았죠.』

    단순한 관직자가 아니라 고위급 관직자였다는 걸까.

    예상하지 못한 전생에 당황스러워졌다. 국사 시간에 배웠던 몇몇 유명한 관직자를 떠올리는데 구미호가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두 분은, 특히 이한 님은 역사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고위 관직자라면 기록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조선시대라면 왕이 똥을 얼마나 싸고, 무슨 말을 했는지 같은 사사로운 것도 기록하던 시대인데 역사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다고 한다.

    관직자를 기록하지 않다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믿을 수도 없어 묻자 구미호가 이한을 응시했다.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조작했거나, 아예 기록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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