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그러고 보니 키스한 날. 이한의 반응이 조금 격렬했었다.
그때처럼 기억이 돌아오거나, 어떤 반응을 할까. 하람이 올려다보는 이한에게 얼굴을 가까이하는데 양팔이 잡혔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언제 당황했냐는 듯 얼굴이 굳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가까워진 이한의 얼굴을 보던 하람이 눈을 깜빡였다.
“키스하기 직전이죠.”
“넌…… 남자와 입 맞추는 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나?”
화난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혼란스러운 것 같다.
괜찮다고 말했던 것 같고, 행동한 것 같은데. 이제 그만 저는 여자보다 남자와 키스하는 게 더 익숙하다고 사실대로 말할까. 아, 더 당황할지도. 하람이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의 기억을 찾아 주고 싶다. 덤으로 제 전생으로 생각되는 기억도 찾고 싶고.
혼란한 이한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얼마 있지 않아 팔을 잡은 손에서 힘이 빠졌다. 천천히 얼굴을 내렸다.
“넌…….”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내려가던 입술이 무어라고 말하려는 이한의 입술 위로 닿았다. 하람이 눈 한 번 깜빡이지 않는 이한을 보며 입술을 약하게 빨아당겼다.
빨아당기는 힘에 건조한 입술이 슬쩍 딸려왔다. 그 틈에 혀를 밀어 넣자 이한이 하, 짜증 같기도 하고 답답한 것 같기도 한 한숨을 푹 쉬었다. 하람이 눈을 감았다.
이한의 입 안은 타액에 눅눅하지만 여전히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신기해하며 혀 위를 문지르듯 뭉근하게 핥자 이한의 턱이 움찔, 떨렸다. 하람이 움직임을 멈췄다가 입 안을 핥으며 한 손으로 조심스레 이한의 단단한 쇄골 위를 짚었다.
셔츠에 덮인 쇄골을 지그시 내리누르며 딱딱하게 굳어 있는 혀를 휘감는데 별안간 허리가 꽉 잡혔다.
감은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몸이 옆으로 밀쳐지듯 돌려졌다.
“응?”
순식간에 깔렸다.
“……이하람.”
“……네?”
뭐가 어떻게 된 걸까. 왜 이한이 눈을 감고서 무섭게 부르는 걸까.
달라진 위치와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낮은 이한의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긴장하는데 눈이 천천히 뜨였다.
“……저기, 화, 나셨, 엇? 읍!”
화가 단단히 난 것 같은 얼굴에 이한의 셔츠 자락을 슬그머니 잡는데 턱이 턱, 잡혔다. 깜짝 놀라 눈이 화등잔만 하게 뜨인 순간 입술이 부딪쳤다.
열린 입술 속으로 도톰하면서 미끈둥한 혀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꼼짝도 하지 않던 혀가 입 안을 아무렇게나 헤집는다. 거침없는 움직임에 혼이 반쯤 나갔다. 어? 어? 하는 생각만 들었다.
하람이 바보처럼 멍해 있는 사이 잡힌 턱이 훅 들렸다. 턱이 바짝 당겨지면서 헉, 하고 정신이 들었다.
“저, 저기, 자, 잔, 으흣!”
말을 하려는데 들린 턱을 따라 입천장과 치열, 뺨 안쪽을 막무가내로 핥아 대던 혀가 깊게 파고들어 왔다. 목구멍까지 파고들어 올 기세에 숨이 턱 막혔다.
숨을 토해 내자 그대로 뺏겼다. 그도 모자라 혓바닥이 뭉근하게 핥아 올려지면서 타액까지 빼앗겼다. 그렇지 않아도 턱이 들린 탓에 타액을 삼키지 못하던 하람의 미간이 와락 좁혀졌다.
잠깐만, 하고 말하고 싶은데 말할 틈을 주지 않는다. 거기다 입 안에 고인 타액이 이러다 넘칠 것 같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학학 밭은 숨소리만 내다 결국 이한의 등을 급하게 두드렸다. 입술을 빨던 입술이 느지막이 떨어지고, 턱을 든 손이 떠났다. 하람이 한숨 쉬었다.
“……뭐, 뭐예요?”
아니, 키스를 누구랑 해봤나? 왜 이렇게 잘하지? 그리고 귀신도 흥분하는 걸까. 키스가 더없이 진득하고, 급하다.
정신없는 키스에 채 삼키지 못했던 타액을 드디어 삼켰다. 제대로 쉬지 못했던 숨도 쉬었다. 하람이 몸을 늘어뜨리며 미간을 좁히고 있는 이한을 보았다. 이한의 미간이 더 좁혀졌다.
“네가 먼저 시작했다.”
“……그렇긴 한데 너무, 급하잖아요. 혹시, 흥분하셨어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묻자 이한이 미간을 바로 했다.
“궁금하면 직접 확인해 보지 그래.”
“……예?”
제가 지금 제대로 들은 걸까. 생각하지 못한 이한의 대답에 그만 황망해졌다. 하람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그럴까요? 무슨 말씀이세요? 그럼 제가 한번 확인해 볼까요? 미쳤어요? 온갖 물음이 머리에 둥둥 떴다.
“하람아.”
어떻게 말을 해야 지금 이 상황을 잘 넘어갈까, 생각하는데 앞 머리카락이 손에 크게 쓸어 넘겨진다. 하람이 생각에서 깨어나 네? 하고 이한을 보았다.
“버티지도 못할 거, 마음 있는 사람 함부로 자극하지 마라.”
알겠냐는 말과 함께 이한이 숙이고 있던 상체를 천천히 들었다. 그 모습을 가만 지켜보던 하람이 어, 하며 이한의 손목을 부여잡았다.
“……자극하면 어떻게 되죠?”
장난 반, 호기심 반으로 묻자 마주한 이한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오늘 왜 이러지? 점심을 잘못 먹었나?”
늘 그랬듯이 우렁 각시가 차려 준 점심을 먹었고, 몸도 평소와 다를 것 없다. 그보다.
“……그러는 이한 님이야말로 오늘 왜 이러세요?”
마음이 있다는 말이 진짜인 걸까.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평소 감정과 행동에 큰 기복이 없던 이한이 오늘따라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냥 호기심에 물었는데 역으로 물어오자 정말 왜 이러는지 궁금해졌다. 손목을 꽉 부여잡고 바라보자 이한이 한 박자 늦게 눈매를 구겼다.
“자극받았는데 가만있으면 그건 멍청이가 아닌가?”
지금 시야에 보이는 이한이 제가 알던 그 이한과 동일인이 맞을까. 오늘따라 심하게 낯설다.
감탄이 절로 나왔는데 그러면서 입 안이 바짝 말랐다. 하람이 마른침을 삼켰다.
“……혹시, 재수 없다는 말이랑 섹시하다는 말 아세요?”
“그런데?”
뻔뻔한 모습이 재수 없는데 한편으로는 섹시하기도 하다.
조금 짜증 나 불편한 얼굴을 하는데 이한이 구긴 눈매를 바로 하며 입꼬리를 슬쩍 당겨 웃는다.
“왜, 내가 재수 없고, 섹시한가?”
눈치는 또 왜 이렇게 좋은지.
마음에 들지 않아 늘 그랬듯이 단호하게 아니요, 라고 할까 하다 이한이 능글맞게 받아칠 것 같다.
“……네.”
결국 순순히 인정했다.
불퉁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이한이 굳었다. 곧 상체를 다시 숙였다.
“……네가 먼저 자극했다.”
“……네? 제가, 흣!”
제가 뭘 자극했냐고 물으려는데 그보다 먼저 다시 입술이 부딪쳤다. 당연하다는 듯이 혀가 넘어왔다.
이한의 혀가 좁은 입 안을 모두 기억하겠다는 듯 이리저리 더듬고, 핥아댔다. 또다시 혼란스러워졌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키스가 이한의 기억이 아니라 이한 자체를 자극한 것 같다.
“아니, 읏! 자, 아흡!”
키스 못 해서 죽은 귀신처럼 기세가 험악하다.
하람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굳어 있다가 뒤늦게 이한의 어깨를 밀어냈으나 물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들러붙으며 입술을 깨문다. 찌릿함에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진짜 저 모르게 누구랑 키스하고 다니는 걸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너무 잘한다.
당황스러운 와중에 아랫입술과 혀가 잘근잘근 씹힌다. 한눈팔지 말라는 것 같은 자극에 오기가 돋았다.
하람이 어깨를 밀어내던 손으로 이한의 목덜미를 짚고 확 당겼다. 그러면서 남은 한 손을 내려 그의 상체를 감싸고 있는 셔츠를 와락 당겼다.
당기는 힘에 셔츠 자락이 바지에서 빠져나왔다. 하람의 손이 셔츠 아래로 파고 들어가 등을 짚었다. 손바닥에 닿는 써늘한 피부에 주춤, 놀랐다. 동시에 피부에 닿은 온기에 하람의 입 안을 헤집던 이한도 깜짝 놀랐다. 맞물린 입술 사이로 두 사람이 헉, 하고 토해낸 숨이 섞였다.
“후으…….”
끈질기게 이어지던 키스가 멈췄다. 하람이 급하게 숨을 고르는데 피식 소리가 들렸다.
“왜, 웃으세요?”
시선을 내리자 여전히 입술을 맞대고 있던 이한이 고개를 조금 들어 시선을 맞췄다.
“먼저 달려든 것과 어울리지 않게 힘들어 보여서 웃었다.”
“……저는 누구와 다르게 숨을 쉬어야 합니다.”
“많이 쉬어라.”
영혼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말을 끝으로 키스가 다시 시작됐다. 입 안으로 깊게 파고들어 오는 혀에 하람이 끄응 소리 내며 이한의 목덜미를 쓸었다.
혀와 타액이 뒤섞일 때마다 호흡이 끊겼다. 코로 하는 호흡만으로는 부족해 힘겨운 숨소리를 내다 차가운 등을 손끝으로 힘없이 긁었다.
잠깐 숨 쉴 틈을 달라는 의미로 긁었는데 맞물린 입술이 아래로 내려갔다.
“아…….”
건조한 입술이 아래턱에서부터 점점이 내려가 미끈한 목, 작게 도드라진 목울대 위로 닿았다. 곧 약하게 깨물렸다. 하람이 목을 울리며 이한의 어깨를 부여잡고, 고개를 틀었다.
고작해야 목울대인데 꼭 사탕처럼 깨물고, 빤다. 간지러움에 고개를 이리저리 비틀며 어깨를 쥐락펴락하는데 별안간 이한의 움직임이 멈췄다. 하람이 고개를 앞으로 당겨 아래를 보았다.
기억이 돌아오는 중인 걸까. 이한이 제 허리를 두 손으로 부여잡은 채로 굳었다.
혹시나 문제가 생길까 봐. 이한을 건들지도, 부르지도 않고 가만 기다리길 몇 분. 이한이 숙이고 있는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시선이 부딪쳤다.
“괜찮아요?”
마주한 시선이 이제 막 잠에서 깬 사람처럼 어딘가 멍하다.
초점이 불분명한 눈으로 뚫어져라 응시하기만 하는 모습이 영 불안했다. 상체를 슬쩍 일으켜 세우며 걱정스레 묻자 허리를 잡은 손에 힘이 실렸다.
“……하람아.”
“네.”
“……내, 내 이름을 불러 봐.”
무슨 기억을 찾았길래 이렇게 멍한 걸까. 하람이 눈매를 찌푸렸다가 이한 님, 하고 말했다.
“한 번 더.”
“이한 님.”
이름을 부르라고 해서 불렀는데 무슨 일인지 혼란스러운 기색을 비친다. 결국 상체를 완전히 일으켜 세우고는 얼굴을 두 손으로 크게 감쌌다.
“이한 님. 괜찮아요?”
걱정되게 왜 이러는 걸까. 시선을 맞추며 묻자 이한의 입이 주춤주춤 열렸다.
“네가…… 아니, 하람이라는 자가…… 숨을, 쉬지 않았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듣지 못할 만큼 목소리가 작고, 마주한 얼굴이 작게 일그러졌다.
“네가, 숨을 쉬지 않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재수 없고, 섹시했었는데. 당장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얼굴이 안타깝다.
커다란 덩치와 남자다운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불쌍한 모습에 그만 마음이 약해졌다. 하람이 이한을 두 팔로 크게 끌어안았다. 맥없이 늘어진 이한의 귀에 입술을 댔다.
“제 목소리 들리죠? 저 살아 있어요.”
왜 이렇게 불쌍하고 난리일까. 아이 달래듯 너른 등을 토닥였다.
티 나지 않게 떠는 등을 토닥였다가, 쓸기를 몇 번. 가만 안겨 있던 이한이 하람을 꽉 끌어안았다. 하람이 음, 목을 울렸다가 제 어깨에 기대고 있는 이한의 얼굴을 들었다.
“키스할까요?”
기다렸다는 듯이 기울어지는 몸을 끌어안으며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