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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생지연多生之緣 (47)화 (4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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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왔네요.”

    부행신에게 홀려 있는 동안 빠르게 달린 차가 예상보다 이르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보이는 풍경이 황량하다.

    공사 중인 흔적만 있고 거리에 흔해 빠진 편의점 하나 없다.

    하람이 개발이 아직 제대로 되지 않아 다소 으슥한 풍경을 보다 벗어 두었던 백팩을 챙겼다. 시동을 끈 뒤 한 손에는 손전등, 한 손에는 핸드폰을 꽉 쥐고 차에서 내렸다.

    “왜 이렇게 어둡지?”

    주변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고, 어둑하다.

    폴리스 라인은커녕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풍경에 눈매가 찌푸려졌다.

    빛을 찾아 주변을 휘 둘러본 하람이 손에 쥔 핸드폰을 들었다. 112를 눌러놓고 위로 들었다.

    “일단 이 주변인 거 같은데, 이한 님 옆에 계시죠?”

    “이상하군.”

    분명 목소리가 들리는데 이한이 보이지 않는다.

    불안함에 핸드폰을 이리저리 옮기다 검을 잡고 있는 이한을 발견했다. 안도하며 한 걸음씩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숨죽인 채로 포장되지 않은 길을 걸으며 주변을 훑는데 문득 웃음이 터졌다.

    “……어쩐지 너튜버가 된 기분인데.”

    “뭐?”

    “아, 아니요.”

    인기와 수익을 위해 엄한 곳을 돌아다니는 철없는 너튜버가 된 것 같다. 그것도 공포물 전문 너튜버.

    이러다 살인자나 귀신을 만나면 정말 대박이겠다. 라고 생각한 순간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지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요?”

    얼마나 놀랐는지 하마터면 이한을 옆에 두고 쌍욕할 뻔했다. 하람이 핸드폰을 꽉 쥐며 멈춰 섰다. 옆에서 흠, 침음이 들렸다.

    “들린 것도 같고, 아닌 것…….”

    무심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분명 들렸다고 말하려는데 흑흑, 어디에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

    흑흑, 흑, 흑흑.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듣지 못할 만큼 작은 울음소리에 긴장이 슬쩍 풀렸다. 하람이 한숨 쉬며 울음소리를 쫓아 다가갔다.

    한 걸음, 두 걸음.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천천히 걷던 중 시야에 운동화를 신은 작은 발이 보였다. 곧 다섯 살 남짓한 소년이 보였다.

    소년이 주먹 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었다. 깜짝 놀라 다가가려는데 팔이 덥석 잡혔다. 하람이 이한을 보았다.

    “의심이라는 게 없나?”

    “네? 여기서 왜 의심…….”

    어린 애가 울고 있었다. 길을 잃기라도 한 건가 싶어 다가가려는데 이한이 이상한 말을 한다. 의아해하다 별안간 오싹해졌다.

    생각해 보니 지금 여기까지 오는데 빛 한 점 없었다. 흔한 날벌레 소리도,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풀냄새가 맡아지지도 않았다. 오직 어둠뿐이었다.

    주춤. 하람이 한 걸음 나섰던 발을 뒤로 물렸다. 동시에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흑흑! 흑! 흑흑!

    당장 다가오라는 듯 커진 울음소리가 어딘가 기묘했다.

    생각해 보니 울음소리가 조금 전에 들었던 것과 똑같다. 똑같이 흑흑, 흑, 흑흑 반복해서 들렸다.

    그러니까 울음소리로 사람을 꾀는 귀신이라는 건가.

    이한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거라는 생각에 몸이 빳빳하게 긴장됐다.

    마른침을 삼키며 한 걸음 더 물러나는데 소년이 얼굴을 가리는 손을 아래로 내렸다. 뽀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쾌한 기색이 스민 얼굴이 드러났다.

    『흑흑, 흑…….』

    소년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우는 소리를 내더니 몸을 점점 키웠다.

    불쑥불쑥 커지던 소년이 순식간에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 더 커졌다.

    가랑이를 쩍 벌리고 선 소년이었던 존재를 고개를 젖혀 올려다보던 하람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이한 님. 이거, 잘못된 거 같은데요.”

    아주 많이, 라고 말하려는데 이한에게 팔이 잡혀 뒤로 밀려났다. 한숨 소리가 들렸다.

    “……최대한 불을 밝혀라.”

    하람이 아까부터 잡고 있던 손전등을 밝히는 것과 동시에 시커먼 존재가 빠르게 다가왔다.

    “얼굴을 비춰.”

    별안간 금빛이 번쩍했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점멸됐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는 손전등으로 위를 비췄다.

    “……어, 얼굴이 없는데?”

    기껏 들었는데 얼굴은 없고 웬 시커먼 것만 있다.

    하람이 울고 싶은 얼굴로 소리치는데 갑자기 검은 것이 물러났다. 깜짝 놀랐다가 재빨리 등에 메고 있는 가방을 앞으로 가져왔다. 그동안 이한이 검에서 나오는 금빛에 의존해 검은 것의 주변을 확인했다.

    “불을 더 밝혀라!”

    무슨 일인지 이한이 검을 휘두르지 않고 지시만 내린다. 하람이 욕이 나오려는 입을 꽉 다물고 눈치로 가방에 있는 손전등을 다 꺼냈다. 손전등을 모두 밝히다 못해 핸드폰 플래시까지 더해 최대한으로 검은 것을 비췄다.

    『아아악!』

    검은 것이 환한 불빛에 까무러칠 듯이 놀라 하더니 소년 같기도 하면서 노인 같기도 한 기묘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그러면서 다급하게 빛이 없는 곳까지 물러났다.

    비명이 어찌나 큰지 귀가 찢어질 것 같다. 천둥소리만큼 큰 소리에 전신이 쪼그라들었다. 하람이 얼굴을 와락 구기며 움츠렸다.

    “뭐 하세요?”

    무슨 일인지 이한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답답함에 참지 못하고 소리를 높이자 웅크리고 있는 어깨에 서늘함이 닿았다.

    “빛이 부족해. 차로 돌아가. 어서!”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한이 답지 않게 재촉한다. 하람이 황급히 차를 향해 달렸다.

    몇 걸음 걷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무슨 일인지 차가 보이지 않는다. 급한 대로 차 키를 꺼내 버튼을 눌러도 소리가 들리지도, 불빛이 보이지도 않았다.

    “뭐, 뭐지?”

    의아했으나 본능이 뒤를 보면 안 된다고 외쳤다. 그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저 달리는데 별안간 허리가 안겼다.

    “왜 이리 느린 거냐.”

    “네? 무, 악!”

    길쭉한 몸이 훌쩍 들렸다. 어? 하는데 그대로 앞으로 내던져졌다.

    마치 테디베어처럼 맥없이 던져진 하람이 충격에 크게 놀랐다가 서둘러 차 키 버튼을 눌렀다.

    삐빅! 소리와 함께 바로 앞에서 빛이 번쩍했다.

    드디어 차에 왔다!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지도 않고 손전등을 챙겨 일어나 차에 타고, 시동을 걸었다. 잊지 않고 헤드라이트를 밝혔다.

    정면이 확 밝아지는 그때 보닛 위에 있던 이한이 도약했다. 그가 방금까지 서 있던 보닛이 쿵! 하고 움푹 파였다.

    보닛이 우그러지는 소리에 하람이 기겁하며 차 밖으로 나갔다가 재빨리 손전등을 밝혔다. 때마침 이한이 휘두른 검에 잘린 검은 무언가가 바닥에 투두둑, 떨어졌다.

    “이게 다 무슨…….”

    쏟아지는 검은 것을 피해 물러났다가 떨어진 것들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위를 비춰!”

    기이한 풍경을 홀린 듯이 보는데 이한이 바로 옆에 서서 소리쳤다. 하람이 어깨를 파드득 떨었다가 뒤늦게 손전등을 일제히 위를 비췄다.

    형태가 명확하지 않아 더 무서운 기괴한 것이 조금 전보다 작아져 있었다.

    이한의 검이 통한 건가 싶어 보는데 검은 것이 모습을 기괴하게 비틀었다.

    비명을 지르며 액체처럼 이리저리 몸체를 비틀었다가, 줄었다가 커지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하람이 사라진 검은 것을 찾아 손전등을 빠르게 움직였다. 이한이 검에 붙은 검은 것을 털어내며 옆에 섰다.

    “보이나?”

    “……아니요. 안 보여요. 그보다 도대체 뭔가요?”

    본체도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 보이지 않는다.

    캄캄한 어둠을 훑던 하람이 곁에 선 이한을 보았다. 미간을 좁히고 선 이한이 손전등이 비추는 정면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슨대다.”

    뭔가 했더니. 캄캄한 밤에 소년의 모습으로 사람을 꾀어내 해치거나 잡아먹는다는 귀신이었다.

    “……어째서 시신에 상처가 없나 했더니. 이유가 다 있었네요.”

    “그슨대를 알고 있나?”

    “네. 배웠어요.”

    다행히 구렁덩덩신선비에게 그슨대를 배웠다.

    그러니까 물리적인 공격에는 무적에 가까울 정도로 강하지만 어둠이 없으면 약하다고 했던가.

    “가랑이와 어둠을 조심해라.”

    그러고 보니 그슨대의 가랑이 밑을 지난 자는 병석에 누워 앓다 죽는다고도 했다.

    잘생긴 이한의 가랑이도 싫은데 형태 없는 그슨대의 가랑이라니. 하람이 질색 어린 얼굴을 끄덕이며 손전등 세 개와 플래시가 밝혀진 핸드폰을 꽉 잡았다.

    사라진 그슨대 본체를 찾아 손전등을 계속해서 움직이던 중 작게 부글부글 끓고 있는 곳이 보였다.

    “저기!”

    손끝으로 가리키자 부글거리던 부분이 놀란 듯 뾰족하게 섰다가 꺼졌다. 그러다 하람의 키와 비슷한 크기로 쭈욱 늘어났다. 이한이 검을 들었다.

    “본체를 찾아야 한다.”

    그슨대는 물리적으로 자극할수록 강해진다고 했었다. 본체를 찾거나 약점을 단번에 제거해야 했다. 하람이 네, 짧게 답하며 손전등 하나를 내밀었다.

    “됐다.”

    이한이 아무렇지도 않게 거절하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그슨대가 좋아하는 인간이자 미끼인 하람이 한발 나섰다. 나 잡아달라는 듯 성큼성큼 나서 어둠 속에 숨어 있을 본체를 찾아 손전등을 바삐 움직였다.

    그슨대가 이동하는지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바다에서 들을 법한 물소리가 들렸다.

    바람 소리와 물소리를 쫓아 손전등을 움직이는데 불현듯 왼발이 푹 꺼졌다. 어? 하고 고개 숙이는 것과 동시에 다리가 맥없이 굽혀졌다.

    생각해 보니 손전등으로 앞만 계속 비췄다. 아래가 칠흑처럼 어둑했다.

    사각지대! 뒤늦게 깨달은 사실에 하람이 헉, 숨을 삼켰다가 재빨리 아래를 비췄다.

    『흑흑!』

    그슨대가 노인이 낼 법한 쇳소리로 거짓 울음소리를 내며 또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벌겋게 달아오른 왼쪽 발과 정강이가 보였다.

    “……이게 무슨?”

    그저 어둠에 삼켜졌을 뿐인데 신발과 바지가 녹아 사라지고, 피부가 뎄다.

    분명 구렁덩덩신선비에게 그슨대에 대해 배울 때. 인간을 삼켜 죽이거나, 집어 던져 죽이거나, 병으로 죽게 한다고만 배웠다. 화상은 맹세코 없었다!

    꼭 아주 차가운 것에 덴 것처럼 벌겋고, 화끈화끈한 다리를 멀거니 보다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 이한 님!”

    이한이 아직 어둠 속에 있었다!

    하람이 앞을 보며 다급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거대한 그슨대가 파도처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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