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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생지연多生之緣 (40)화 (4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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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마지막 차사가 이하란의 영혼을 문으로 이끌었다.

    『저승 구경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그만 보거라.』

    이하란의 영혼과 차사 두 명이 문 너머로 떠났다.

    이하란에게 사인을 말해 준 차사가 멀거니 보는 하람에게 툭, 던지듯 말하고는 문고리를 잡았다. 하람이 놀라 얼른 고개를 돌렸다. 차사가 다 듣게 웃고는 문 너머로 사라졌다. 동시에 문도 사라졌다. 그리고 심전도계 비프음이 소란스럽게 울렸다.

    “이하람 씨? 이하람 씨?”

    “……네? 아, 네?”

    “제가 한 말 다 기억하시죠?”

    무슨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영혼이 저승으로 떠나던 모습과 이하람의 이름을 외쳐대는 소리에 다 잊어버렸다.

    “……예, 조심할게요.”

    멀거니 조심하겠다고 하자 응급의가 의심스러운 눈을 하고는 입원에 관해 말하고 떠났다.

    “하람아, 너 정말 괜찮아?”

    우진의 목소리 사이로 이하란이라는 여자의 사망 소식이 섞여 들렸다. 머리가 몹시 아팠다.

    무겁고 저린 팔을 들어 이마를 짚자 우진이 이름을 작게 불러왔다. 그 소리에 답하지 않고 고통을 참던 중 차사가 갔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점점 늘어나는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 가야 돼요.”

    “뭐?”

    병원에 있으면 안 됐다. 또 귀신에게 꼬일 수 있었다.

    뇌진탕이고 뭐고, 다 잊어버리고 상체를 벌떡 들었다. 헛구역질하며 침대 아래로 깁스하고 있는 다리를 내렸다.

    “하람아, 그렇게 움직이…….”

    “저 좀, 읏!”

    귀신이 그저 발목을 잡아당기기만 한 게 아닌지 전신이 다 아프고,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설 수가 없었다. 우진의 팔을 잡고 힘겹게 섰다. 그 잠깐 사이 얼굴이 식은땀에 젖었다.

    “너 다리에 금…….”

    “개, 괜찮아요. 집에…….”

    병원에 있으면 편하게 못 쉴 것이 분명했다.

    우진에게 집에 가겠다고 하는데 언제 왔는지 사방에 사람이 아닌 것들이 득시글했다. 빤히 보는 시선에 자꾸만 처지려는 몸에 어렵사리 힘을 주고 절뚝이며 걸었다.

    “하람아!”

    교통사고라도 당한 것처럼 몸이 심하게 좋지 않았다.

    계단에서 미끄러지기 전에 보았던 귀신처럼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입구로 가는데 팔이 잡혔다.

    “너 왜 이래? 누가 쫓아와?”

    우진이 당황한 것도 같고, 화난 것 같기도 한 얼굴로 어울리지 않게 쏘아붙였다. 하람이 우진을 멀거니 응시하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병원에, 있으면 안 돼요.”

    “왜 병원에 있으면 안 되는데?”

    답을 듣기 전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우진의 모습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람이 마른침을 크게 삼켰다.

    “……다음에,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제발, 저 좀 그냥 보내 주세요.”

    애타는 간절함이 전해진 듯 우진이 한숨을 길게 쉬었다. 곧 병원에서 벗어나고 싶어 안달 난 하람을 부축하며 밖으로 나갔다.

    “데려다줄게.”

    “……괜찮아요. 누나한테 연락할게요.”

    “너 진짜, 휴우. 알았어.”

    하람이 병원 건물 앞 벤치에 앉아 주머니에 든 핸드폰을 꺼냈다.

    계단에서 구르면서 충격이 갔는지 액정이 흉하게 깨져 있었다. 멀거니 보다 어렵게 영진에게 전화했다.

    - 어, 왜?

    “나 좀 데리러 와줘.”

    - 너 다 늦게 사춘기 왔니? 왜 이리 귀찮게 해. 어휴.

    “……병원이야.”

    - ……뭐? 어딘데!

    병원 이름을 말해 주자마자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하람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앞에 서 있는 우진을 보았다.

    “오늘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보고 이대로 가라고?”

    우진이 더 도와줄 것이 없었다.

    물음에 답하지 않고 가만있자 우진이 흉곽이 들릴 만큼 크게 한숨 쉬었다.

    “누나 오는 거 보고 갈게.”

    우진이 이건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는 듯 단호한 얼굴로 하람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진의 답답함과 섭섭함이 느껴졌으나 지독할 정도로 피곤하고 머리가 아팠다. 하람이 보호대를 하지 않은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죄송해요.”

    “생각 같아선 우리 집에 데리고 가고 싶은데 또 안 된다고 하겠지.”

    예전이었으면 우진의 집에 갔을 테지만 지금은 본가가, 이한이 너무나 간절했다. 하람이 다시 한번 더 죄송하다고 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길 몇 분. 익숙한 차가 앞에 멈춰 서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영진이 다가왔다.

    “이…….”

    상태가 어떤지 못 봤는데 아무래도 심각한지 영진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하람이 우진의 도움을 받아 일어섰다.

    “당분간 회복에 집중해. 절대 출근하지 마.”

    “……죄송합니다.”

    “……너한테는 죄송하다는 말만 듣네.”

    우진이 입술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이내 영진에게 하람이 계단에서 굴렀다고 알려 주며 하람의 가방과 차 키, 약을 넘기고 돌아섰다.

    하람이 영진의 도움을 받아 조수석에 타자마자 눈을 감았다. 얼마 후 차가 출발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영진이 어떻게 된 일인지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편하게 집에 왔다.

    “……도대체 어떤 계단을 어떻게 굴렀길래 이렇게 다쳐.”

    “그러게.”

    저보다 큰 하람을 낑낑대며 사랑채 앞까지 어찌어찌 부축해 준 영진이 결국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하람이 다움처럼 우는 영진에게 희게 웃고는 가방을 가져갔다.

    “할머니가, 내일 사랑채 간다고 했으니 알고 있어.”

    “응. 오늘 고마워.”

    평범한 외인은 사랑채에 있는 이한의 기운을 버티지 못했다. 하람이 중문을 홀로 넘었다.

    『하…… 하람이 아파?』

    사랑채에 들어서자 달려오던 노앵설이 뚝 멈춰 섰다. 돌처럼 굳은 모습에 하람이 먼저 절뚝이며 다가갔다.

    “응. 하람이 아파.”

    『많이 아파?』

    하람이 그제야 제 상태를 보았다.

    계단을 구르면서 어디에 세게 부딪혔는지 머리가 어지러웠는데 어깨에 보호대를 하고 있고, 팔 한 쪽과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조금 아파.”

    『어떡해. 나도 아플 거 같아.』

    노앵설이 곧 울듯 눈가를 일그러뜨렸다. 그 모습에 하람이 어색하게 웃고는 절뚝절뚝 걸었다.

    잠깐 걸었는데 완전히 지쳤다.

    툇마루에 브리프 케이스를 던지듯 두고 끝에 털썩 앉아 한숨 쉬는데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숨을 죽이고 있는 것처럼 스산하고, 고요했다.

    “왜 이렇게 조용…….”

    낯선 적막에 주변을 느릿하게 둘러보는데 별안간 쿵!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빨리 돌리면 안 된다는 것을 또 잊고 고개를 홱 돌렸다. 울컥 올라온 쓴 물을 삼키며 소리가 나온 이한의 방을 보았다.

    창호지가 발린 문 너머가 어둑했다.

    자는 건 아닐 텐데, 하고 생각한 순간 쨍그랑! 거친 파열음이 들렸다.

    거친 소리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화급하게 신발을 벗어 다가가는데 노앵설이 두 팔 벌려 막아섰다.

    『가면 안 돼.』

    “소…….”

    『지금 가면 죽어.』

    노앵설이 답지 않게 심각한 얼굴로 경고하듯 단호하게 막았다. 하람이 미간을 좁혔다.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미간을 좁혔다가 한 걸음 내딛는 것과 동시에 다리가 써늘한 것에 휘감기고 양팔이 덥석 잡혔다.

    『하람 님, 물러나세요.』

    『더는 가시면 안 돼요.』

    구렁덩덩신선비가 굳은 얼굴로 경고하며 하람의 다리를 휘감은 꼬리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계속 모습을 보이지 않던 우렁 각시와 우렁 도령도 하람의 양팔을 꽉 부여잡았다. 하람이 저를 막아서는 네 존재를 당황한 눈으로 차례대로 보았다.

    “다들 왜…….”

    “아아!”

    왜 막아서는 거냐고, 왜 굳은 얼굴을 하고 있냐고 물으려는데 이한의 방에서 늑대의 하울링 같은 소리가 나왔다.

    죽기 직전의 마지막 비명 같기도 하고 오열 같기도 한 소리에 막아서는 네 존재가 몸을 웅크렸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없었는데, 모두가 겁에 질린 것처럼 눈에 띄게 떨고 있었다.

    반쯤 반사적으로 쓰러질 듯이 떠는 노앵설을 안았다. 그러고는 남은 세 존재에게 괜찮으니 가라고 했다.

    『하, 하람아…….』

    이한의 방에서 거친 소리가 계속 나왔다. 그 소리에 겁을 먹었는지 품에 안겨 있는 노앵설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더욱 깊게 파고들어 왔다. 하람이 바닥에 노앵설을 한껏 안은 채로 앉아 이한의 방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한을 처음 만난 날에 방이 어질러져 있었다. 꼭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바닥에 온갖 것들이 엉망으로 떨어져 있었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인 걸까. 이한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걱정과 두려움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소리 내지 않고 가만있는데 진통제 기운이 도는지 정신이 가물가물했다. 방에 들어가 편하게 자고 싶은데 거친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우는 노앵설을 끌어안은 채로 숨을 죽이고 있길 몇 시간.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던 소리가 더 들리지 않았다.

    『……하람아?』

    드디어 끝난 걸까.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긴장이 탁, 풀렸다.

    푹 퍼지자 안겨 있던 노앵설이 올려다보았다. 하람이 맥없이 웃었다.

    “괜찮아…….”

    괜찮지 않았으나 괜찮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읊조리는 것과 동시에 지탱하던 끈이 툭, 잘린 것처럼 상체가 뒤로 넘어갔다. 상체를 따라 눈도 스르륵 감겼다.

    『하람아!』

    꾸역꾸역 버텼던 졸음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멱살을 잡은 것처럼 셔츠를 잡아당기는 노앵설의 손길에도 잠에 깊게 빠졌다.

    잠결에 언뜻 몸이 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곧 포근함이 전신을 덮었다.

    기분 좋은 느낌에 배시시 웃으며 몸을 옆으로 돌리다 어깨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얼굴을 와락 구기자 멀리서 무어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고 머리카락이 살살 쓸어넘겨졌다. 몸이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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