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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시신? 어떻게, 장희와 홍희 둘 다 찾을 수 있는 건가? 자네도 우리 아이들이 단순히 물에 빠져 죽은 게 아니라고 믿는 건가?”
배 교수가 정말로 멱살을 부여잡았다. 다만 협박을 위해 잡은 것이 아니라 마지막 동아줄을 잡는 사람처럼 부여잡고 매달렸다. 하람이 놀라 당황한 사이 이한이 감고 있는 눈을 떴다.
“믿고 있다, 별장에 편지가 있으니 말해라.”
“……예, 믿고 있습니다. 별장에 편지가 있으니 위치를 알려 주세요.”
어깨를 잡은 손이 멀어졌다. 그리고 배 교수가 미끄러지듯이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잘 처리된 것 같았다.
“내가, 무심했어. 아비가 돼서 아이들에게 너무…… 너무 무심했어. 다 내 탓이야.”
서럽게 울던 원귀와 같이 배 교수가 한참 끅끅 소리 내어 울며 쌍둥이에게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이한이 별다른 말이 없어 하람도 조용히 배 교수가 울음을 그치길 기다렸다.
“시신만 찾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그러니, 연락해 주게.”
보는 사람도 슬프게 만들 만큼 울던 배 교수가 별장 위치가 적힌 메모와 명함을 주었다.
“하아…….”
연락드리겠다는 말을 끝으로 인사한 후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풀썩 주저앉은 하람이 한숨을 길게 쉬었다.
“거짓말을 잘하던데.”
긴장이 탁 풀렸다. 어서 빨리 집에 가 씻고 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이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람이 굽히고 있는 다리 사이에 기대고 있던 얼굴을 들었다.
“……사회생활 하고부터 저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게 되더라고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와 듣기 좋은 말을 조금씩 하다 보니 거짓말이 늘었다. 하람이 자기가 생각해도 조금 기가 막혀 입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내리자마자 입구 너머로 쑥덕거리고 있는 귀신들이 보였다.
무슨 일인지 아까보다 귀신 수가 늘었다.
거의 두 배 넘게 모여 있는 귀신을 의아하게 보는데 이한이 앞장섰다. 귀신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그런데 편지는 어떻게 할 건가요?”
익숙한 운전석에 앉자 몸이 풀렸다. 시동을 바로 걸지 않고 가만 앉아 있던 하람이 이한을 보았다.
“시신도 시신이지만 아비에게 사실을 말해 주고 싶다는 원이 있었다. 원귀가 하고자 하는 말을 대신 써서 주면 되겠지.”
원귀는 원이 다 풀려야 저승에 간다고 했다. 하람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동을 걸었다.
“시신은, 찾을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못 찾은 거 보면 무슨 문제가 있는 거 같은데.”
“예상가는 게 하나 있다.”
정말 생각해 둔 수가 있는지 이한의 얼굴이 사뭇 진지하다. 그 모습에 하람은 제가 정말 아무런 대책 없이 돕겠다고 나섰다는 것을 깨달았다.
별거 아닌 줄 알았던 주인이라는 게 참 어렵고, 바쁜 것 같다. 할머니는 아닌 거 같은데…….
“내일 바로 가지.”
“네. 네? 내일이요? 저 내일 일하는데요?”
“원귀를 돕겠다고 하지 않았나?”
돕고 싶긴 한데 이렇게 급작스럽게 도울 생각은 절대 아니었다. 주말에 쉬지 않고 도울 생각이었다.
하람이 설마 이제 와서 안 하겠다고 할 생각이냐는 듯 보는 시선에 끙 소리를 냈다.
- 안 그래도 병원 가 보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그래. 푹 쉬어.
“……네, 바쁜데 죄송합니다.”
결국 학생일 때도 하지 않은,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휴가를 썼다.
이게 무슨 짓인지. 하람이 어처구니가 없는 거짓말에 붉어진 얼굴을 손부채질하며 방 밖으로 나갔다.
『거짓말쟁이 나왔다!』
대청 끝에 앉아 다리를 달랑거리던 노앵설이 하람을 보자마자 제 옆에 앉아 있는 이한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하람이 난감한 얼굴로 다가갔다.
“깜빡했어. 오늘은 꼭 사 올게.”
『오늘도 깜빡할 거잖아!』
노앵설에게 과자 사 온다고 하고는 그만 깜빡 잊었다. 빈손으로 왔더니 노앵설이 삐졌다.
“오늘은 정말 사 올게.”
『안 믿어! 흥!』
“아이를 속이면 되나.”
노앵설이 팔을 잡아 흔들든, 말든. 여유롭게 녹차를 마시던 이한이 다 들리게 혀를 찼다. 하람이 이한의 말을 못 들은 척 노앵설의 옆에 앉아 우렁 각시가 준비해 준 커피를 들었다.
“오늘 하루 쉬기로 했어요. 더 못 쉬니 오늘 안으로 끝내야 해요.”
“나는 당분간 일을 쉬라고 했다.”
“어떻게 갑자기 일을 쉬어요…….”
일 쉬는 게 정말 쉬운 줄 안다. 하람이 태연자약하게 차를 마시는 이한을 황당한 눈으로 보았다. 이한이 대꾸하지 않고 차를 마셨다.
“편한 옷과 신발을 신어라.”
커피를 금세 다 마셨다. 커피잔을 내려놓는데 이한이 뜬금없는 말을 한다. 왜, 하고 봤다가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주 큰 일을 앞둔 사람처럼 얼굴이 굳어 있다. 걱정스레 묻자 이한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산과 강에 있을 것들이 생각난 것뿐이다.”
“산과 강에 뭐가, 있는데요?”
“내가 한 손으로 상대하기 어려운 것들.”
이한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왼쪽 손목을 힐끔 보았다. 그를 따라 본 하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지금까지 지켜봤을 때 모든 귀신이 이한을 겁냈다. 두려움을 사는 이한이 걱정할 정도면 산과 강에 있는 것이 정말 엄청난 것 같아 걱정됐다.
“……갑자기 무섭네요.”
제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람이 마른침을 삼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가 맨투맨 티에 청바지를 입고 나왔다.
『꼭 과자 사 와!』
이한이 손을 튕겼다. 머리카락이 휘리릭 하나로 높게 묶이고 도포에서 파란 셔츠와 검은 바지로 차림이 바뀌었다. 그리고 방금까지 찻잔을 잡고 있던 손에 검이 잡혔다.
“앞장서라.”
검은 안개가 스멀스멀 퍼지더니 이한이 사라졌다. 하람이 어느새 품에 노란 강아지를 품에 안고 있는 노앵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 타자마자 배 교수에게 받은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다. 거리를 확인하고는 차를 출발했다.
“이한 님?”
큰 도로로 나가기 전 슬쩍 이한의 이름을 불렀다.
정말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이한이 오는 걸까. 기대 반, 의심 반으로 부르자 아무것도 없는 조수석에 검은 안개가 번졌다. 곧 안개 사이로 긴 다리가 나오더니 이한이 조수석에 앉았다.
“왜 불렀지?”
정말 이름을 부른 것만으로도 이한이 왔다.
하람이 이한을 신기한 눈으로 봤다가 무서워서 불렀다고 더듬더듬 변명했다.
“무서운 것도 많군.”
다시 사라질 줄 알았던 이한이 다리를 꼬고, 팔짱을 꼈다. 하람이 보이지 않는 귀신과 요괴에 안도하며 마음 편하게 정면에 집중했다.
그로부터 두 시간이 조금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확실히 외진 곳에 있네요.”
차에서 내린 하람이 한산한 주변을 훑었다.
“사람이 아닌 것도 없군.”
뒤따라 밖으로 나온 이한이 사람뿐만 아니라 귀신도 보이지 않는 주변에 미간을 좁혔다.
“원귀가 제가 빠진 곳을 기억하지 않았지.”
“네. 그냥 별장에서 걷다가 강에 빠졌다고만 했어요.”
“너는 기억나는 게 있나?”
넓은 땅 위로 덩그러니 지어져 있는 별장을 보던 하람이 이한을 보았다. 빤히 보는 시선을 마주 보다 강과 가까운 곳에 길게 이어진 길 같은 곳을 보았다.
“……음, 아니요. 마을로 가는 길을 걸어 봐야 할 것 같아요.”
원귀가 죽기 직전을 꿈으로 보았으나 그 장소가 보이지 않는다. 하람이 사전에 봐 두었던 길로 가 걸었다. 이한이 그 뒤를 따랐다.
원귀의 말에 의하면 배 교수가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사람을 싫어한다고 했다. 그래서 별장이 동떨어진 곳에 있다고 했는데, 정말 동떨어진 곳에 있었다.
걸어도 걸어도 집 하나 나타나지 않는다. 밭과 하우스, 고라니와 멧돼지를 조심하라는 표지판만 보인다.
“고라니도 먹을 게 없어서 그냥 갈 것 같은데.”
“고라니와 멧돼지를 조심하라는 건 산에서 내려온다는 뜻이다.”
어느새 장죽을 입에 문 이한이 하람의 바로 옆에서 따라 걸었다. 하람이 눈에 보이는 산을 보았다.
“여기까지 올까요?”
“여기까지 오니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있겠지.”
멧돼지라니. 이한의 검은 이승의 것에 관여할 수 없었다. 정말로 고라니와 멧돼지가 나타나면 이한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음먹으면 벨 수 있다고 하긴 했으나 손을 잃어버린 것을 봤을 때 해가 될 것이 분명했다. 조심해야 했다.
하람이 긴장하며 걷는데 불현듯 노랫소리 같은 것이 귀에 작게 들렸다.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바람 소리 같기도 한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멧돼지보다 더 커다란 것과 그 옆으로 인영 비슷한 것이 보였다.
“저게 뭐…….”
노랫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설움이 느껴지는 슬픈 노랫소리에 발이 묶이기라도 한 듯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어어? 소리를 내는데 이한이 혀를 차더니 검을 잡았다.
『아아…… 인간인 줄 알았는데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
“……산군이 여기까지 내려오다니.”
터벅터벅 소리 내어 곧장 다가오던 것들이 몇 걸음 앞에 멈춰 섰다. 하람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구슬픈 노랫가락을 부르던 자는 20대 초반에 허름한 옷가지를 입은 남자였는데 그의 바로 옆으로 커다란 호랑이가 붙어 있었다.
호랑이가 일전에 보았던 검은 호랑이 신령님보다 컸다. 본능적인 두려움에 입술이 바싹 말랐다.
『그러는 저승의 개께서는 예까지 어쩐 일이오?』
창귀. 호식(虎食)을 당해 죽은 사람의 귀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