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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될 때까지 늘 그랬듯이 차사를 피하고 다음에는 동생도 데리고 와라.”
『……예, 알겠습니다.』
이한이 검은 안개가 되어 스르륵 사라졌다. 그리고 아까부터 가만히 있던 신령님이라는 호랑이도 사라졌다. 멀뚱히 서 있던 하람이 지네 각시에게 가 보겠다고 어색하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제 얘기를 들어주시고, 도와준다고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원귀가 허리 숙여 인사하더니 사라졌다. 하람이 대문까지 따라온 지네 각시의 배웅을 받고 운전석에 탔다. 어느새 조수석에 앉아 있는 이한을 보고는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했다.
“그 원귀의 기억이 어딘가 드문드문 틈이 있는 것 같고 정확하지 않은 것도 같은데, 저만 그럴까요?”
원귀의 이야기는 길었다. 문제는 어딘가 부정확했다. 예를 들면 아버지의 별장 위치. 지역명이 없고 두 시간 거리에 별장 주변으로 집 하나 없는 외지면서 옆에는 강이 흐르는 곳, 같이 모호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이한이 몸을 늘어뜨리며 다리를 꼬았다.
“죽으면 기억을 잃기도 한다.”
“……아.”
그러고 보니 이한도 죽기 전의 기억이 없었다.
오도전륜대왕이 지워서 그런 거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말을 잘못 꺼냈다. 하람이 무표정한 이한의 눈치를 보다 마른침을 삼켰다.
“생각해 봤는데 강이라는 거, 금강 같아요.”
“금강?”
“예전에 무주에 일이 있어서 갔었는데 비슷한 내용을 들었어요.”
은퇴 후 귀촌 생활을 하고 싶어 단독주택을 의뢰한 노부부를 위해 부남면이라는 곳에 갔던 적 있었다. 그때 마을 사람들에게 물가를 조심하라 소리를 들었었다.
“강에 사람이 많이 빠져 죽는다고, 조심하라고 하더라고요.”
얘기하는 사이 신호에 걸렸다. 하람이 핸드폰을 꺼내 부남면을 검색해 지도를 펴 이한에게 넘겼다.
“서울에서 자차 기준으로 두 시간 정도 소요되고, 옆으로 강이 흐르고, 나름 외지고.”
장소를 원귀의 아버지에게 찾아가 묻고 싶으나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고민하는 데 핸드폰을 보는 이한의 얼굴이 어쩐지 영 좋지 않았다.
“아, 닌 거 같나요?”
“모르겠군.”
이한이 핸드폰을 넘겼다.
“아버지라는 놈을 확인하는 게 가장 정확하겠지. 집으로 가지 말고 아버지가 있다는 곳으로 가지.”
한남동으로 가는 길인데 갑자기 장안동으로 가자고 한다. 하람이 뭔가 싶어 이한을 보았다가 힘없이 네, 답하며 차를 돌렸다.
원귀의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지낸다는 집은 아파트였다.
아파트 지상 주차장 한쪽에 차를 세우자마자 하람이 아, 소리를 냈다.
“……동이랑 호를 모르는데 어쩌죠?”
아파트에 도착하고 보니 동과 호수를 모른다는 게 뒤늦게 생각났다.
이거 어쩌지? 당황스러워 방법을 애써 생각하던 중 주차장 한쪽에 모여 있는 무리가 보였다.
“……이한 님, 저기 저분들 사람인가요, 귀신인가요?”
호랑이 신령을 부르려던 이한이 하람이 손끝으로 가리키는 자들을 보았다.
“죽은 것들이군.”
“제가 한번 알아볼게요.”
“뭐?”
이한이 무슨 짓을 할 생각이냐고 묻기도 전에 하람이 차에서 내려 죽은 것들에게 웃으며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복슬복슬한 아줌마 펌을 한 중년 여자 둘, 20대로 보이는 여자 하나, 배가 툭 튀어나온 40대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일제히 하람을 보았다.
『뭐, 뭐야. 우리한테 말 건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아닌데, 우리를 보고 있잖아!』
『말도 안…….』
“뭐 좀 여쭤봐도 될까요?”
『히익?』
『엄마야! 우리가 보여?』
“네. 잘 보이세요.”
귀신들이 기겁하며 주춤 물러났다. 하람이 어색하게 굳은 귀신들에게 희미하게 웃고는 주변을 훑었다.
“배유용 씨라는 교수님이 지내는 집을 알고 싶은데 혹시 아세요?”
어쩌다 보니 무속인이 아니라 잡것들이 꼬이기 좋은 몸 상태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년 여자 둘이 어쩐지 아파트의 모든 일을 알고 있는 오지랖이 넓은 자로 보이기도 한다. 혹시나 하고 귀신들에게 접근했다.
『그 교수는 얌전한데 그 집 마누라는 정신 나간 거 같어.』
『맞아. 목청이 어찌나 큰지. 이 아파트에 그 여자 혼자 사는 거 같다니까? 욕은 또 얼마나 한다고?』
『그 집 아들이 더하죠!』
제 몸이 통하지 않고, 모르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건만. 귀신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앞다퉈서 원귀의 집안에 관해 말했다.
“아들이 여기에 오나 봐요?”
『그럼! 맨날 지 엄마한테 돈 달라고 아주 악다구니를 써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
『지 엄마를 쏙 빼닮았는데 성질머리도 아주 똑같아!』
『아줌마, 더하다니까?』
자매를 물에 빠뜨리고 떵떵거리며 산다고 했으니 정상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진짜 정상이 아닌 것 같다. 귀신들이 떠드는 걸 들으며 중간중간 맞장구치던 하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새어머니라는 분은 지금 집에 계실까요?”
새어머니가 집에 있으면 일에 차질이 생길 수 있었다. 티 나지 않게 긴장하는데 가장 나이 든 귀신이 고개를 저었다.
『아까 엄청 꾸미고 나오더니 저기에서 택시 타고 아직 안 왔어.』
“댁에 교수님만 계시겠네요.”
『그럴걸? 근데 그건 왜 물어?』
“아, 배 교수님 따님들 원한을 풀어 주려고요.”
『……정말?』
『아니, 어떻게? 어떻게 풀게?』
원한을 푸는 방법이 여러 개인 걸까.
정말 이 세계는 알아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닌 것 같다. 피곤해지려는데 귀신들이 또다시 일제히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스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차사들이 한심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일거리를 흘리고 다닐 줄이야.”
어느새 한 손에 검집을 쥔 이한이 한심함이 담긴 눈으로 귀신들을 노골적으로 훑었다. 귀신들이 바짝 굳었다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오들오들 떨었다. 지켜보던 하람이 이한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
“이분들이 도와주셨어요.”
그러니 적당히 겁주라고 덧붙이려는데 이한이 팔을 잡은 손을 보더니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101동 1204호라고. 앞장서라.”
이한이 모르는 장소는 먼저 갈 수 없었다. 하람이 기다리는 이한을 보았다가 귀신들에게 허리 숙여 감사 인사했다.
『차, 착한 인간아! 출입구 비밀번호는 753951를 눌러!』
세상에 나쁜 귀신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하람이 중년 남자 귀신에게 웃고는 앞장섰다.
“다음에는 집 너머에 있는 것들에게 먼저 말 걸지 마라.”
은색 엘리베이터 문에 하람만 비쳤다. 그 문을 멀거니 보는데 갑자기 이한이 입을 열었다. 하람이 이한을 보았다.
“죽어서 똑같은 처지의 것들 외에는 대화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네게 들러붙을 수 있고, 빙의할 수도 있다.”
제 몸이 잡것들이 좋아하는 몸이라서 저를 좋아해 주는 게 아니라 사람과 오랜만에 대화를 해서 좋아했던 걸까.
생각하지 못한 내용에 하람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생각 못 했어요. 죄송합니다.”
사과와 함께 맑은 음이 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이한이 하람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잡은 검집 끝으로 열리는 문을 가리켰다. 하람이 소리 죽여 한숨을 푹 쉬고 내렸다.
눈앞에 배 교수가 있는 집이 보이는데 초인종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너무 대책 없이 왔다고 속으로 자책하는데 갑자기 어깨에 서늘한 무언가가 닿았다.
“죽은 쌍둥이 관련으로 왔다고 하고 최대한 시간을 끌어라.”
이게 무슨 말일까. 하람이 의아한 눈으로 제 어깨를 짚고 있는 이한의 손을 짧게 보았다가 얼굴을 보았다.
“잊었나. 내가 미래를 본다는 걸.”
“……아!”
이한이 어떻게 할 건지 알아차렸다. 하람이 짧은 심호흡 후 눈을 지그시 감는 이한을 보다 에라 모르겠다, 싶은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 누구시죠?
“아, 안녕하세요. 배장희, 배홍희 관련으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나이가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렸으나 이한이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건가 싶어 교수님, 하고 배 교수를 불렀다.
“저는 장희와 친구였던 이하람이라고 합니다. 잠시만 대화할 수 있을까요?”
귀신을 보고, 귀신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친구라고 얼른 덧붙이자 친구? 하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네. 장희가 아버지께 남긴 것이 있습니다.”
급해서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왔다고 하고 기다리는데 얼마 후 문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하람이라고?”
작게 열린 문 사이로 많이 지치고, 피곤한 낯을 하고 있는 원귀와 비슷한 느낌의 중년 남자가 보였다. 하람이 저를 뚫어져라 보는 배 교수를 향해 허리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늦은 시간에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장희 친구 이하람이라고 합니다. 배유용, 교수님 맞으시죠?”
했던 말을 또 하며 시간을 끄는데 이한이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제가 생각한 것이 틀린 걸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머리를 굴리려는 순간 어깨가 가볍게 잡혔다.
“……배장희가 죽기 전에 편지를 남겼다고, 별장 위치를 알려주면 주겠다고 해라.”
“장희가, 자네한테 무얼 맡겼지?”
이한이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배 교수가 간절한 얼굴로 물었다.
어쩐지 질문과 그 질문의 답 순서가 바뀐 거 같다고 생각하며 떨리는 손으로 주먹을 그러쥐었다.
“장희가, 죽기 전에 제게 편지를 남겼습니다. 별장 위치를 알려 주시면 드리겠습니다.”
“……뭐?”
배 교수의 얼굴이 사납게 구겨졌다. 당장 멱살이라도 잡아 올릴 것 같아 그러쥔 주먹 사이로 땀이 찼다. 이한 님, 겁나니까 빨리 다음 계시를 주세요…….
애타는 마음을 알아차린 듯 어깨를 잡은 손이 어깨를 한번 잡았다.
“편지는 정말 가지고 있고, 별장 위치를 말해 주면 시신 찾는 걸 도와주겠다.”
“정말 편지를 가지고 있는 건가? 별장 위치를 알려 주면 뭘 할 거지?”
사이비 교주에게 계시를 기다리는 신자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드디어 계시가 내려왔다. 신자처럼 기뻐하며 이한이 한 말을 그대로 읊었다.
“시신을 찾을 것이며 두 사람의 죽음에 관해 제가 꼭 밝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