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생지연多生之緣 (28)화 (2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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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 집에 있는 요괴들은 제게 밥을 먹이지 못해서 안달인 것 같다.

『시켜 먹으면 그만인걸. 그리고 요즘 새벽 배송이라고 집 앞까지 알아서 가져다주는데 정말 다들 사서 고생을 하고 있어.』

지네 각시가 소리 내어 한숨 쉬고는 머리카락을 크게 쓸어넘겼다. 케이크를 먹던 하람이 지네 각시를 보았다.

“……지네 각시 님은 정말 요즘 사람 같아요.”

배달에 새벽 배송이라니. 요괴에게서 들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단어에 조금 놀랐다.

하람이 이한과 구렁덩덩신선비, 노앵설과 다르게 현대식 복장에 요즘 사람과 같이 말하는 지네 각시를 신기함을 담아 보았다.

『호호, 제가 인간 남자와 결혼하고, 살아서 그런가 봐요.』

지네 각시가 사랑에 빠진 사람 특유의 얼굴로 웃었다. 그 모습을 보던 하람이 의아함을 담아 이한을 보았다. 담뱃잎을 태우던 이한이 한쪽 눈썹을 들었다가 장죽을 입가에서 떼어 냈다.

“요괴라고 요괴끼리 혼인하진 않는다. 인간과 혼인해서 복을 주기도 하고, 벌을 주기도 하지.”

『저는 마르지 않는 부를 준답니다.』

혼인 이야기에 신이 난 듯 지네 각시가 자신의 러브 스토리를 꺼냈다.

남편이 지네인 저를 피하지 않고 좋아해 주었다, 가난할 때부터 베풀 줄 아는 사람이다, 쥐에게서 저를 지켜 줬다 등. 나이를 먹어도 귀여운 남편을 계속해서 자랑했다.

“남편을 정말 많이 사랑하시는 거 같아요.”

『그럼요. 돈이 많아졌다고 나태해지지도, 다른 여자를 보지도 않는 사람인걸요.』

지네 각시가 정말 멋진 사람과 결혼한 것 같다. 신기함과 부러움을 담아 보는데 이한이 뭘 그렇게 보냐며 끼어들었다.

“부러워서요.”

“네 집안은 지네 각시의 남편 그 이상의 재물을 가지고 있다.”

……부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것이 부러운 건데. 하람이 별걸 다 부러워한다는 듯 보는 이한 대신 지네 각시를 보았다.

“그럼 인간과 지내면서 요괴들과도 지내는 건가요?”

『네. 은퇴한 남편이랑 지내다가 남편한테 말하고 이렇게 바리바리 싸 들고 놀러 오곤 해요.』

지네 각시가 툇마루 한쪽을 보았다. 그녀를 따라 본 툇마루에 온갖 술과 과자, 책 따위가 가득 놓여 있었다.

『잔꾀를 쓸 줄 아는 것 말고는 쓸 곳 없는 구렁덩덩신선비랑은 다르답니다.』

……지네 각시는 구렁덩덩신선비와 사이가 좋지 않은 걸까.

『하람 님은 평소 무슨 일을 하시나요?』

요괴의 관계성에 관해 생각하는데 질문받았다. 하람이 이한을 힐끔 보았다.

“건설 쪽에서 일하고 있어요.”

『건설이요? 혹시 인테리어 쪽이신가요?』

“네? 네.”

『어머! 안 그래도 우리 집 리모델링 하려고 했는데! 혹시 리모델링도 하세요?』

고개를 끄덕이자 지네 각시가 잘됐다고 하며 호들갑스럽게 박수 치며 좋아했다. 하람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이한테 말해서 하람 님께 맡겨야겠어요! 명함 있어요?』

이렇게 열정적인 고객은 오랜만이다. 당황스러워 어버버하는데 별안간 바지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잠시만요, 하고 핸드폰을 꺼냈다가 화면에 떠 있는 [우진 대표님]에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우리 하람이는 내가 먼저 전화하기 전에는 절대 전화 안 하지.

그러고 보니 우진에게 사정을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

깜빡 잊었다고 하며 일어나는데 무슨 일인지 이한과 시선이 딱 마주쳤다.

이상하게 눈치가 보인다. 하람이 저도 모르게 마주한 시선을 돌려 피했다.

- 뭐 해? 통화 가능해?

“잠시 쉬고 있었어요. 대표님은 뭐 하셨어요?”

- 우리 하람이 생각하고 있었지.

며칠 동안 눈치 보며 지냈더니 맘 편한 사람과의 통화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웃으며 툇마루를 내려가는데 뒤에서 노앵설과 지네 각시가 놀리는 소리가 들렸다.

- 하람이 내일 어디로 출근해?

출근해야 한다는 걸 깜빡 잊고 있었다.

하람이 바로 답하지 못하자 우진이 하람의 이름을 불렀다.

“아, 네.”

- ……하람아, 나는 네가 답을 안 하면 또 머리 아픈 건가 싶어서 걱정돼.

“아니에요. 잠깐 생각했어요.”

- 다행이네. 그래, 어디로 출근해?

“사무실에 갈 거 같아요.”

- 그래? 급한 거 없으면 천안 갈까?

“천안이요?”

- 현장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서. 간 김에 짧게 데이트할까?

현장 확인은 자주 있었다. 특별할 것이 없어 질문하지 않고 알겠다고 하자 우진이 웃었다.

- 내가 집으로 데리러 갈 테니 사무실 가지 말고 집에 있어.

우진의 입에서 나온 집이라는 단어에 이한과 구렁덩덩신선비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지금 있는 곳도. 하람이 다급하게 우진의 이름을 불렀다.

“사, 사무실에서 만나요!”

- 왜? 아, 사무실에 네 차 있던데?

“아, 네네.”

차를 사무실에 두고 현장에 다녀왔다. 그래서 차가 사무실에 그대로 있었다. 어떻게 올 거냐는 우진의 말에 어, 하며 말을 끌었다.

“아, 누나 차 타고 가면 돼요.”

- 누나?

“네. 지금 본가 와 있거든요.”

- 그래? 본가 위치 기억 안 나는데 주소 보내줄래? 내가 데리러 갈게.

왜인지 우진이 집에 오면 안 될 것 같다. 하람이 괜찮다고 하며 제가 꼭 사무실에 가겠다고 외치듯이 말했다.

- 알았어. 알았어. 편한 옷 입고 와.

“……네.”

다급함이 웃겼는지 우진이 소리 내서 웃는다. 하람이 부끄러움에 뺨을 슬쩍 붉히고는 통화를 끝냈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몸을 돌리자마자 계속 보고 있었는지 이한과 또 시선이 마주쳤다.

맘에 들지 않는 일이라도 있는 걸까. 장죽 물부리를 물고 있는 얼굴에서 짜증이 보인다. 괜히 눈치를 살피며 다가가 툇마루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애인이랑 통화하셨어요? 엄청 웃으시던데?』

아무것도 모르는 척 조용히 케이크를 먹는데 가까이 다가온 지네 각시가 웃는 낯으로 질문해 왔다. 하람이 다 알고 있다는 듯 은근하게 웃고 있는 지네 각시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애인 없어요.”

『정말요? 아니, 왜?』

남자를 좋아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라고 사실대로 말하면 안 되겠지. 하람이 정말 궁금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지네 각시에게 대답하는 대신 그냥 웃었다.

『이 얼굴로 애인이 없다니. 아니, 부끄러워서 거짓말하는 거죠?』

“아니요. 정말 없어요.”

열심히 먹었더니 치즈케이크 한 조각을 다 먹었다. 남은 케이크를 조금 잘라 접시로 옮긴 뒤 노앵설의 접시에도 옮겨주었다. 노앵설이 고맙다고 하더니 발뒤꿈치를 들어 하람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하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웃으며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하람 님은 요괴들에게 정말 인기가 좋은 것 같아요.』

노앵설이 기다렸다는 듯이 양반다리를 하고 있는 다리 위에 앉았다. 케이크를 열심히 먹는 모습을 보는데 지네 각시가 혼잣말 같은 말을 했다. 하람이 신기한 눈으로 보고 있는 지네 각시를 보았다.

“그런가요?”

『네. 우렁 각시부터 도령, 구렁덩덩신선비에 노앵설까지. 다들 하람 님을 좋아해요.』

사랑채에서 지내는 인간이 처음이라 신기해서 그런 게 아닐까.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 생각하다 문득 구렁덩덩신선비가 한 말이 생각났다.

잡것들이 꼬이기 쉬운 몸.

여전히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생각하다 슬쩍 이한을 보았다. 언제 가져왔는지 술을 마시고 있다.

술을 마셔서 기분 좋을 테니 물어볼까, 하고 보는데 이한이 왜? 하며 한쪽 눈썹을 위로 들었다.

“요괴들이 저를 좋아하는 이유 아세요?”

“약하게 생겨서.”

“……네.”

괜히 물어본 것 같다. 티 나지 않게 입술을 비죽였다.

『약하게 생겼다니요. 아니에요.』

하람을 보던 지네 각시가 전혀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약하게 생긴 거랑은 달라요.』

“그래요?”

『네. 뭔가…….』

“늦었다. 이만 가라.”

지네 각시가 심각한 얼굴로 말을 하는데 별안간 이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늦었다고 하며 지네 각시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지네 각시가 눈을 화등잔만 하게 떴다.

『아니, 벌써요? 아직 아홉 시밖에 안 됐어요!』

이한이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지네 각시가 떠나는 이한을 보며 황당한 눈을 했다가 한숨 쉬며 일어섰다.

『잠도 주무시지 않는 분이. 어휴.』

안 가겠다고 뻗댈 줄 알았는데 지네 각시가 간다고 한다. 하람이 노앵설을 안아 옆에 내려놓고 일어났다. 기다렸다는 듯이 명함을 찾는 지네 각시에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조심히 가세요.”

『다음에 또 봬요!』

지네 각시가 부엌으로 가 인사하고는 지네로 변해 떠났다.

지네 각시가 떠나자 노앵설도 흥미가 다 됐는지 간다고 하며 어디론가 훌쩍 떠났다.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익숙한 적막에 하람이 툇마루 끝에 걸터앉았다. 고요한 풍경을 보며 접시에 덜어 놓았던 케이크를 느긋하게 먹으며 생각을 정리하다 어느 정도 정리되자 주변을 치웠다.

우렁 각시가 치우기 편하도록 한곳으로 모아 놓고 잠옷을 챙겨 욕실로 가 씻고 나왔다. 곧장 이한의 방문을 두 번 노크했다. 안쪽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창턱에 아슬아슬하게 늘어져 앉아 장죽을 입에 물고 있는 이한이 보였다. 하람이 소리 죽여 방석에 앉았다.

“내일부터 출근합니다. 휴가는 조정해 보겠습니다.”

순영과 이한의 말이 걱정되지만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당분간 쉬라고 했던 이한의 눈치를 살피는데 무어라고 말을 하지 않는다.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가족 여행을 가려는데, 이한 님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들었어요.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릴 때도 하지 않은 여행 가는 걸 허락해 달라는 말을 서른이 돼서 하고 있다.

황당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하람이 터져 나오려는 헛웃음을 애써 삼키는데 밖을 보던 이한이 하람을 보았다. 무언가를 가늠하듯 느릿하게 훑었다.

“……당분간은 어렵다. 그래. 다음 달이 좋겠군.”

안 된다는 소리를 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선선히 수락이 떨어졌다.

거기다 다음 달. 여행을 준비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니 조건이 나쁘지도 않았다.

“허락해 주셔서 감사…….”

“단, 귀신과 요괴를 조심했을 때의 이야기다.”

그럼 그렇지. 하람이 예상한 대로 덧붙여진 조건에 찌푸려지려는 얼굴을 애써 바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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