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차 키? 차 키는 왜? 나 나중에 택배 가지러 아래에 가야 하는데.”
본가 집은 주소가 산으로 되어 있고 또 내비게이션에 나오지 않았다. 택배와 우편은 본가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가면 있는 편의점에서 받았다.
또 매형 몰래 인터넷에서 많이 샀는지 영진이 차 키를 바로 안 주고 주저한다. 하람이 손을 내밀었다.
“집에 갔다 오려고. 내가 오기 전에 택배 오면 나한테 전화 줘. 가지고 올게.”
“……그래?”
직접 가져다준다는 말에 혹한 듯 영진이 바지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냈다. 하람이 차 키를 받아 주머니에 넣으며 고추장 더 필요하냐고 물었다.
“아니. 그보다 까치집도 아니고. 머리 엉망이다. 머리 정리 좀 해.”
“일어난 지 얼마 안 됐어.”
“삼촌 나 안아 줘!”
영진이 이리저리 뻗친 하람의 머리를 매만지고는 대접을 가져갔다. 하람이 다움을 안아 들었다.
뒷마당과 가까운 곳에 있는 부엌까지 다움을 안아 주고 다시 사랑채로 가자 왼손에 불길한 검을 들고 서 있는 이한이 보였다. 곁으로 다가갔다.
“다녀왔습니다.”
“영진이 아쉬워하던데.”
“네?”
꼭 영진을 같이 만난 것처럼 말한다.
뭔가 싶어 보자 이한이 어깨를 으쓱했다.
“떡볶이를 같이 먹고 싶어 하는 눈치야.”
“아. 나중에 말해 보겠습니다.”
“곧 전화도 오겠군.”
무슨 전화? 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핸드폰이 떨었다. 하람이 핸드폰에 떠 있는 영진의 이름에 허, 숨을 토해내고 전화를 받았다.
“어, 누나.”
- 올 때 오렌지랑 과자 좀 사 와.
“……어.”
거보라는 듯 입꼬리를 당겨 웃고 있는 이한을 보는 사이 통화가 짧게 끝났다.
“그럼 갈까요.”
“잠깐.”
이제 그만 집으로 가려는데 별안간 이한이 잡고 있는 검을 하람에게 내밀었다. 하람이 이한을 보았다.
“이것도 가져가야 한다. 짧게 잡고 놓아라.”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잡으라는 말에 내밀어진 검의 검집 부분을 가볍게 잡았다.
손에 닿은 검집의 느낌이 생경하면서 생각보다 단단하고, 차갑다고 느끼는 순간 정전기라도 통한 듯 찌릿했다. 하람이 윽 소리 내며 검을 놓았다. 동시에 이한이 검을 뒤로 훅 물렸다.
“왜 그러지?”
검을 잡은 오른손이 화끈거렸다.
뭔가 하고 손바닥을 확인했다가 검집 모양 그대로 벌겋게 달아올라 있는 손에 미간이 좁혀졌다. 하람이 신음하며 오른손을 약하게 털었다.
“보자.”
“괜찮습…….”
“어서.”
드라이아이스를 맨손으로 잡은 것처럼 얼얼한데 이한이 굳은 얼굴로 손을 보자고 했다. 짧은 고민 끝에 오른손을 조금 내밀자 손바닥 상태를 본 이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내 하람의 손을 그러잡았다.
“머, 뭐 하…….”
“가만히 있어라.”
말도 없이 손을 잡는다. 하람이 깜짝 놀라 잡힌 손을 빼내려고 하는데 이한이 낮은 목소리로 경고하며 손을 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왜 이러는 건가 싶어 이한을 가만 보는데 오른손에서 느껴지는 홧홧함이 서서히 줄었다. 얼마 있지 않아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한이 손을 놓았다.
“뭐, 주술 같은 걸 거신 건가요?”
“주술은 무슨. 내 손으로 열기를 식힌 것뿐이다.”
뭐 병을 낫게 하는 능력 같은 것이라도 있는 건가 했는데 아니라고 한다.
과거와 미래를 보고, 옷을 바꾸는 것 말고 특별한 능력이 없는 걸까. 어쩐지 김이 샜는데 엄마 손은 약손 같은 느낌에 웃음이 나왔다.
하람이 열기가 가신 손을 슬쩍 등 뒤로 숨기며 이제 가자고 했다.
“먼저 가라. 뒤따르지.”
“예? 같이 가는 거 아닌가요?”
“내가 안채에 가면 외인들이 버티지 못할 거다.”
주차장을 가려면 안채를 지나야 했는데 안채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하람이 어릴 때 들었던 말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뒤따라오신…….”
뒤따른다고 했는데 어떻게 뒤따라온다는 건지 못 들었다. 그래서 묻는데 이한의 몸이 점점 사라졌다. 그가 태우는 담배 연기 같은 희부연 연기로 변하더니 안개 같은 흐린 잔상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이한은 어디로 간 거지? 하람이 방금까지 이한이 서 있던 곳을 멀거니 보았다.
“……특별한 능력 없다는 거 취소.”
연기라니. 몸을 지우다니. 미래를 보는 능력만큼이나 놀랍다. 한참 멀뚱히 서 있던 하람이 눈을 몇 번이고 깜빡이고는 몸을 돌려 사랑중문을 지났다.
“어쩐지 공기가 다른 것 같네.”
사랑중문을 지나 안채로 가는 길을 걷는데 문득 뺨을 스치는 바람이 사랑채에서 느꼈던 바람과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사랑채에서 느꼈던 바람은 날카로운 느낌의 싸늘함이라면 안채는 부드럽고, 차분한 느낌이었다. 자리에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던 하람이 고개를 기울였다가 다시 걸었다.
야외 주차장으로 가자 영진의 커다랗고 투박한 SUV가 바로 보였다.
운전석에 타 안전벨트를 맸다. 차를 느릿하게 빼냈다.
“……그나저나 이한 님은 어떻게 뒤따라오는 거지?”
사거리 신호에 걸렸다. 신호등을 보며 팔짱을 끼고 이한에게 들었던 말을 생각하는데 불현듯 공기가 확 서늘해졌다.
“넌 궁금한 것도 많군.”
에어컨이라도 켜진 건가 싶어 센터패시아를 보는데 별안간 혼자 있는 차에 이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몸을 파드득 떠는데 조수석에 꼬고 있는 다리가 나타나더니 안개와 함께 이한의 모습이 나타났다.
“신호 바뀌었다.”
난데없이, 어떤 신호도 없이 불쑥 나타났다. 너무 놀라 숨도 제대로 쉬지 않고 이한을 보는데 이한이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동시에 뒤에서 빵빵! 클랙슨 소리가 들렸다. 하람이 황급히 차를 출발했다.
“아, 아니. 어떻게 된 겁니까?”
“뭐긴. 뒤따라온 거지.”
이한이 별거 아니라는 듯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잡고 있는 검을 꼬고 있는 다리 위로 두었다. 운전하며 힐끔힐끔 이한을 보던 하람이 그도 모르게 허, 바람 빠지는 소리를 계속해서 냈다.
“그, 차에 있어도 괜찮은 건가요? 외부에 피해 있는 거 아니죠?”
외인에게 이한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혹여 옆 차선에 있는 차에 이한의 기운이 닿으면 사고가 날 수 있었다.
사고가 나면 문제가 커졌다. 걱정을 담아 넌지시 묻자 이한이 조수석 창 위를 손끝으로 툭툭 쳤다.
“가로막고 있는 게 있으니 괜찮다.”
진짜인지 더없이 여상한 답에 안도했다. 하람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렇게 사라지고, 나타나는 거 말고 또 능력 있나요?”
“능력?”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능력이 또 있을까 싶어 묻는데 무슨 일인지 이한이 피식 웃는다. 뭔가 싶어 옆을 보자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실수한 걸까. 하람이 마른침을 삼키는데 이한이 꼬고 있는 다리를 바꿔 꼬았다.
“내가 악업을 줄이고,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것을 그리고 판정받는 것을 네가 도와야 한다고 했던 거, 기억하고 있나?”
“네? 네.”
“나는 주인이 없으면 집을 벗어날 수가 없다.”
“네?”
집을 벗어날 수 없다니. 무슨 말인가 싶어 이한을 보자 이한이 말 그대로다, 하고 운을 뗐다.
“나는 집에 묶여 있는 자로 어디든 갈 수 있으나 주인이 앞장서지 않으면 그 집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앞장서라고 한 거다.”
“그럼, 제가 그 집에서 나가지 않으면 이한 님은 아예 나가지 못한다는 건가요?”
“그래.”
기운이 강해서 사람에게 피해가 갈까 봐, 뒤따라온다는 게 아니라 묶여 있어서 그런 거라니. 예상하지 못한 내용에 입이 벌어졌다.
진짜 알면 알수록 성주신 같다고 생각하다 문득 한 생각이 들었다. 하람이 신호에 차가 잠시 멈춘 틈에 이한을 보았다.
“혹시 주인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 미래를 봐주고, 지켜주는 건가요?”
이한이 분명 악업을 줄여야 하고,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주인이 움직여야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한다. 집안사람들이 이한을 따른다고 해도 어딘가 주인에게 목줄이 잡힌 것 같아 보였다.
“맞나요?”
그렇지 않아도 악업을 줄이고, 기억 찾는 것도 바쁠 텐데 뭐 하러 미래를 봐줄까. 예상이 맞는지 이한을 보는데 이한이 의외라는 눈으로 보았다.
“제법이다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아.”
“집안을 망…….”
이야기를 잘하던 이한이 갑자기 입을 다물더니 미간을 좁혔다.
“왜요, 머리 아프세요?”
설마 또 머리가 아픈 건가. 이한도 저만큼이나 손이 많이 간다고 생각하는데 이한이 좌석에 등을 늘어져 기댔다.
“……나는 왜 집안이 망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
“네?”
이한이 말을 하는데 어딘가 좀 이상했다.
혼잣말 같기도 하고, 질문 같기도 하고. 하람이 무슨 말이냐고 묻는 대신 되묻는데 이한이 아무 말 없이 허벅지에 있는 검집 위를 손으로 툭툭 반복해서 쳤다. 생각에 집중하는 것 같아 답을 기다리기를 그만두었다.
생각에 빠진 이한을 두고 운전에 집중하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며칠 비웠다고 평범한 오피스텔 건물이 다 반갑다.
지하 주차장의 빈자리를 찾던 하람이 한 손으로 굳은 어깨를 툭툭 치며 엘리베이터와 최대한 가까운 자리에 차를 주차했다.
“이제 차에서 내릴 건데 어떻게 하실 건가요?”
또 사라졌다가 나타나려나, 하고 이한을 보는데 이한의 얼굴이 잘빠진 얼굴을 있는 대로 구기고 있었다.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으세요?”
“……네가 왜 액을 달고 다니는지 알겠군. 바로 나가지.”
무슨 일인지 이한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하람이 미간을 구겼다가 이한이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에 별말 하지 않고 차에서 내렸다.
제발 사람을 만나지 않길 바라며 엘리베이터에 탔다. 곧장 층 버튼을 누르려는데 이한이 손을 꽉 잡았다.
“직접 만지지 말고 핸드폰이나 지갑으로 눌러.”
고작해야 버튼을 누르는데 잔소리한다. 뭐지, 하고 이한을 봤다가 구겨진 얼굴에 결국 핸드폰을 꺼냈다. 둥근 모서리로 버튼을 꾹 눌렀다.
“이유를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숫자가 빠르게 바뀌는 LED 창을 보다 이한을 보았다. 이한이 대답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처음 타는 사람처럼 주변을 훑었다.
“혹시 엘리베이터 처음 타세요?”
“여기에서 죽은 사람이 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