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과거 왕이 하사했다는 한옥은 몇 번을 봐도 참 대단했다.
풍수지리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위치도 위치지만 재료 또한 허투루 정한 것이 없었다.
몇백 년이라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휘지 않는 고목부터 바람이 잘 통하도록 뚫린 창, 썩지 않는 벽까지. 얼마나 신경 써서 지은 것인지 궁궐처럼 넓은 집은 흔한 상처나 상한 곳 하나 없었다.
서울에 가득 들어찬 생기 없는 콘크리트 건물과 달리 고아한 생기가 흐르는 한옥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돋았다. 하람은 본가에 온 김에 언제 한번 날 잡아서 제대로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일정을 생각했다. 그사이 익숙한 안채 입구에 발걸음이 닿았다.
“들어가시지요. 오시는 중이라고 하시어 다과상을 미리 차려 두었습니다.”
“네. 나중에 뵐게요.”
옆에서 따라 걷던 강원댁이 하람에게 허리 숙여 인사한 후 떠났다. 하람이 떠나는 강원댁의 뒷모습을 보다 신고 있던 신발을 벗고 윤기 나는 툇마루에 올라갔다.
“하람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작게 말한 뒤 굳게 닫혀 있는 안채 안방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경상과 커다란 파란색 보료 그리고 방석이 전부인 공간. 방을 몇 개나 튼 것 같은 넓은 공간 속에 하얀 머리칼의 여자가 보료 위로 홀로 앉아 있었다.
하람이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앉아 있는 순영의 모습에 숨을 길게 쉬고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집을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곱고, 진하던 검은 머리가 어느새 하얗게 바랬다. 백발을 곱게 틀어 올린 순영을 향해 소리 죽여 다가갔다.
눈을 감은 채로 편하게 앉아 있던 순영이 감은 눈을 천천히 떴다. 이내 다가온 하람을 보며 미소 지었다. 하람이 따라 웃었다.
“어서 오세요. 앉으시지요.”
팔순이 넘은 순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말을 낮추지 않았다. 모든 것을 통달한 선인(仙人)처럼, 연꽃처럼 늘 관대하면서도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또 말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쁜 말 한번 하지 않고 사람을 한결같이 대했다. 하람이 변하지 않은 한옥처럼 제 어릴 때와 다를 것 없이 고운 순영을 보다 그녀의 맞은편에 있는 방석에 앉았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본가를 오지 않은 사이 순영의 얼굴 위로 세월을 이기지 못한 주름이 조금 늘었다.
우리 할머니도 나이를 먹으셨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불현듯 어떤 이상함이 느껴졌다. 이상함에 차를 준비하는 순영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다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아도 고요한 분위기가 더 짙어지고, 얼굴에서 생기가 보이지 않는다.
몸 어디가 안 좋으신 걸까. 누나에게 할머니가 아프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하람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순영이 경상 위로 둔 제 몫의 찻잔을 감싸들었다.
하얀 민들레가 떠 있는 차의 향을 맡은 뒤 한 모금 짧게 마시고, 찻잔을 소리 없이 천천히 내려놓았다.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무슨 일 있는 건가요?”
순영에게 어디 아프냐고 물어도 답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강원댁이나 누나에게 물어봐야겠다 싶어 안부를 묻는 대신 본론을 바로 꺼냈다.
아무리 바빠도 다급해하지 않고 고요하기만 한 하람이 답지 않게 급하게 본론을 꺼내자 순영이 눈을 조금 크게 떴다. 그러다 늘 짓는 미소를 지었다.
초조한 하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순영이 아무런 말 없이 앞에 놓여 있는 그윽한 민들레 향이 나는 찻잔을 느리게 매만지며 말을 아꼈다. 하람이 마른침을 삼켰다.
갑작스레 찾은 것과 달리 찻잔을 매만지기만 하고 말을 하지 않는다.
“할머니.”
조용히 기다리던 하람이 결국 재촉했다. 순영이 손에 쥔 찻잔 속 민들레를 보던 시선을 들어 하람을 향해 옅게 웃었다.
“하람 님.”
“네.”
“이제 슬슬 집으로 돌아오시는 것이 어떠하십니까?”
하람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본가에서 나가 독립했다.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했다.
본가에서 잘 지내는 누나 영진과 다르게 하람은 일하는 사람이 많은 이 집의 어디를 가도 이상하게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집안을 대대로 지켜준다는 신이라는 존재가 달갑지 않았다.
독립하려는 이유를 묻는 순영에게 사실을 숨기고 독립을 허락해 달라고 했다.
가끔 말썽을 일으켜도 착하게 지내던 하람의 갑작스러운 독립 통보에 영진이 난리를 부렸으나 순영이 허락했다. 하람이 원하는 게 독립이라면 그리하라고, 괜한 말을 할 아이가 아니라고 말하며 잡지 않았다. 그러면서 꼭 돌아오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람은 지금껏 저에게 돌아오라고 하지 않던 순영이 저를 찾는 것에 당황했다. 순영을 가만 보던 하람의 굳게 다물린 입술이 조금 벌어지고 아, 소리가 나왔다.
열아홉에 집을 나가서 서른이 된 지금까지 돌아오라고 하지 않던 순영이 왜 갑자기 돌아오라고 하는 걸까. 당황스러우면서도 걱정되고 또 한편으로는 의심스러웠다.
“무슨 일, 있습니까?”
왜 갑자기, 왜 이제 와서 저를 찾는 걸까.
하람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순영이 늘 그렇듯이 웃고는 잡고 있는 찻잔을 차탁 위로 두었다.
찻잔이 차탁과 만나는 짧은 소음을 끝으로 적막이 흘렀다. 그 적막을 참지 못한 하람이 다시 입을 열려는데 순영이 고요한 웃음과 함께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살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덤덤한, 무게 하나 느껴지지 않은 고요한 순영의 말에 하람이 미간을 좁혔다가 곧 두 눈을 크게 떴다.
살날이라니? 제가 알고 있는 그 살날을 말하는 걸까?
하람은 저도 모르게 웃고 있는 순영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순영이 여상하게 찻잔을 다시 들어 조용히 한 모금 마신 뒤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 놀라실 것 없습니다. 본래 사람 가는 날이 다 정해져 있다 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뿐입니다.”
순영이 놀란 하람에게 덤덤하게 말을 덧붙이고는 하람이 유독 좋아하는 마음 편안한 연꽃 같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가는 날? 얼마 남지 않아? 죽음이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기 짝이 없다. 태연자약한 순영의 모습에 하람의 입술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짧게 나왔다.
순영이 아무리 평범한 사람과 다른 사람이고, 세상을 달관한 사람이라도 그렇지 너무 초연하다. 당황스러운 나머지 벌어진 입술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말도 안 돼.”
넋을 놓고 있던 하람의 입에서 탄식 같은 말이 작게 나왔다.
“그래도 가는 길 쓸쓸하지 않게 하시려는 것인지 신께서 미리 알려주셔서 이렇게 하람 님을 모시게 됐습니다.”
신(神). 순영의 입에서 나온 신이라는 단어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람이 한 손으로 신음이 나오려는 입을 다급하게 덮었다.
“이제 그만 귀한 몸, 귀한 곳에서 지내시는 게 어떠십니까?”
하람은 언제 들어도 적응되지 않는 ‘귀한 몸’이라는 단어에 크게 뜬 두 눈을 찌푸렸다. 동시에 정신이 다시 나가 버린 듯 머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어지러웠다.
어지러움 때문인지 아니면 당황스러움 때문인지 들린 손끝이 잘게 떨렸다.
“아, 아니…….”
하람이 말을 더듬거리며 입가를 덮은 손을 아래로 천천히 내렸다.
어딘가 붕 떠 있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느낌에 바보처럼 정좌하고 있는 방석 위를 더듬었다. 메마르다 못해 텁텁한 손바닥에 방석에 수놓아진 까슬까슬한 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꿈이라면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겠지. 그래. 붕 떠 있다면 만져지지 않겠지.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라는 사실이 머리에 새겨지는 것과 함께 시야에 더없이 평온한 순영의 얼굴이 보였다.
앞에 앉아 있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순영은 저를 낳으면서 죽은 어머니 대신 키워 주었다. 흔한 잔소리나 짜증 한번 내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정말 분에 넘칠 만큼 사랑해 주며 더없이 편하게 길러주었다. 그런데 그런 순영이 죽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말도, 안 돼……. 아니, 잠깐, 잠깐만요.”
하람이 저도 모르게 순영을 향해 말을 다급하게 쏟아내고는 생각을 정리하겠다는 듯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지켜보던 순영이 웃었다.
“하람 님. 그리 당황하실 것 없습니다. 그저 하늘이 정해 준 그 날이 가까워진 것뿐입니다.”
“아, 아니. 하, 할머니. 너무 갑작스럽지 않습니까?”
그래. 너무 갑작스럽다. 하람이 제가 꺼낸 말에 스스로 인정하며 눈에 띄게 덜덜 떠는 두 손을 강하게 맞잡았다. 순영이 소녀처럼 입을 가리고 수줍게 웃었다.
“그래도 저는 신 덕분에 갈 날을 알고 좋지 않습니까?”
수줍음 가득한 순영의 목소리와 웃음소리에 하람이 저도 모르게 하, 헛웃음을 터트렸다.
“할머니, 웃지만 마시고…….”
죽음을 이야기하는 사람답지 않게 너무 덤덤하다. 아니, 덤덤하다 못해 해맑다. 하람이 자꾸만 찌푸려지는 미간을 손으로 짚었다. 미간을 짚은 하람의 손이 무섭게 떨고 있었다.
“하람 님을 뵙지도 못하고 떠나는 것보다는 좋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복 받은 게 아닙니까. 마지막 살날을 이리 알 수 있는 것이.”
“할머니!”
순영을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너무 어이없다. 하람이 제 놀란 마음도 모르고 계속해서 웃는 순영에게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고는 미간을 짚고 있는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 신이라는 사람 아니, 사람이 맞나? 아무튼. 할머니가 죽는 날 외에는 모른다고 합니까?”
죽는 날을 늦추는 방법이나 어떤 사유로 죽는다거나 하는 등. 죽는 날 외에는 알 수 없는 것인지 묻자 순영이 고개를 느리게 저었다.
“저는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합니다. 정 궁금하시다면 직접 만나서 여쭤보시는 것은 어떠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