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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 그림자 (21/21)
  • Chapter 15. 그림자

    룬 님이 정령계에서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을 시종이 전해 주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라키아스의 시체 앞에 앉아 있는 상태였다. 다른 사람들이 시체를 응접실로 옮겨 주었기 때문에 나는 햇빛 아래에서 라키아스를 계속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도 황제라고 마지막 예우를 다해 피를 닦아 냈기 때문인지 붉은 피에 젖었던 푸른 머리카락은 예전의 색을 되찾았고, 상처는 흰옷을 덮어 두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얼굴이 창백하고, 미동도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마치 자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도 왜 내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냥 그러고 싶었을 뿐이다.

    얼마나 그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저벅저벅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무척 익숙했던 것이다. 나는 그의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룬 님.”

    “아이샤.”

    나는 아직 그를 소환할 정도로 마력이 가라앉지 않았다. 역소환이 되면 정령사는 물론, 소환되었던 정령도 후유증을 겪는 게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순히 나를 보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억지로 정령계에서 다시 내려온 듯했다. 아무리 이제 내가 그의 소환자라지만, 그가 나에게 신경 써 주는 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나는 고개를 돌려 룬 님을 바라보았다.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백금발,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금빛 눈동자까지. 그는 걱정 때문인지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마저도 반가웠다.

    그래, 나는 그가 반가웠다. 마음속의 한구석이 크게 술렁이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제야 나는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걸 깨달았다.

    “룬 님!”

    그를 크게 불렀다. 그는 천천히 나의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기다렸어요.”

    스스로도 놀랄 만큼, 나는 명랑하게 말했다.

    “몸은 괜찮으신가요?”

    룬 님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그는 몹시도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의아해하는데, 그가 내 뺨에 손을 올렸다.

    “……룬 님?”

    나는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렸다. 그의 행동의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아이샤.”

    그가 나를 불렀다.

    “네, 룬 님.”

    나는 마치 말을 잘 듣는 착한 학생처럼 얌전히 대답했다. 방 안에는 햇살이 비쳐 들고 있었다. 나는 금색으로 빛나는 룬 님의 눈동자가 몹시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한참 동안 망설이는가 싶던 그가 입을 열었다.

    “……아무리 나라도,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다.”

    처음에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멈칫하고 굳어 버리고 말았다.

    “……죽은 사람이요?”

    룬 님은 여전히 슬픈 얼굴이었다.

    ‘무슨 소리일까?’

    나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 방에는 라키아스가 있었다. 이미 죽어 버린 그가. 동시에 나는 깨달았다. 룬 님을 보아서 내가 왜 그리도 기뻤는지.

    룬 님은 내가 깨닫지 못한 부분까지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나는 허망한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구나.”

    룬 님은 짧게 사과했다. 그가 사과해야 할 일이 아니다. 나는 고개를 내젓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내 눈은 이미 라키아스를 좇고 있었다.

    햇빛 아래의 푸른 머리카락이 눈에 시리도록 박혀 왔다. 자는 듯이 죽어 있는 그의 모습에 문득 가슴이 아파 왔다.

    “……괜찮아요.”

    나는 중얼거렸다. 아무리 룬 님이라도 사람을 살려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당연한 세상의 이치이고, 법이다.

    ‘기대하지 않았어.’

    라키아스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룬 님이 나를 불러왔다.

    “아이샤.”

    “괜찮아요.”

    스스로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니.

    라키아스가 한 잘못은 수도 없었다. 비록 조종당했다곤 하지만 나를 사형해야 한다고 주장했었고, 어린 나와 이시스 오라버니를 독살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기도 했으며, 무리한 전쟁을 일으켜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다.

    첫 단추가 마리안느로 인해 잘못 꿰어졌다 해도 그는 누군가에겐 죽여 마땅한 자이리라.

    “……아이샤.”

    그에게 괜찮아요, 라고 답하고 싶었는데 더이상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에 무언가에 가로막힌 것처럼, 턱 막혀 버렸던 것이다.

    ‘나는 괜찮은 걸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라키아스의 얼굴은 평온했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 다르게 15년이나 지나 버린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옛날 기억을 떠올릴 만큼은 되었다.

    게다가 마리안느와 그의 마족이 죽은 이후로 나는 옛날의 기억들을 훨씬 잘 떠올려 낼 수 있게 되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라키아스는 나와 함께였다.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어린 나는 라키아스의 수업이 빨리 끝나기를 기도하며 그가 교수와 함께 공부하고 있는 방을 몰래몰래 훔쳐봤었다.

    길게만 느껴지던 수업이 끝나면, 라키아스는 나와 함께 황궁 정원으로 놀러 나가곤 했다. 내 손을 잡은 그의 손이 무척 따뜻했고, 그날 하늘이 무척 파랗고 아름다웠던 기억이 난다.

    그가 조금 무뚝뚝하긴 했어도, 그래도 난 그가 나를 무척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아는 법이니까.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말았다. 심장이 유리 조각에 베인 것처럼 심하게 아파 왔다. 알리사의 마지막 기억 속에서 그는 나의 뺨을 때리고, 나의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너무나도 미웠다. 어떻게 그렇게 변해 버릴 수 있는 것이냐고 화내고 따지고 싶었다.

    그토록 미웠는데, 어째서 눈물이 흐르는 걸까.

    어느새 내 눈에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울며 말했다.

    “미웠지만, 그만큼 소중했어요.”

    더 이상은 라키아스를 만날 수 없겠지. 그가 세상 어딘가, 심지어 적국인 이덴베르에서 살아있기라도 했던 때와는 다르다. 룬 님은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 없다고 했다. 나도 라키아스를 살려서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단 1분 1초라도 좋다. 라키아스는 마지막으로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었다. 나도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차라리 그가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더라면, 영영 용서할 수 없었을 텐데. 하지만 세상의 이치는 항상 그런 것이다. 죽은 사람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마리안느는 광장 한가운데에서 사람들에게 돌을 맞으며 화형당했다고 했다. 그녀의 이름은 추악한 악녀로서 역사서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이덴베르 제국은 더이상 제국의 이름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전쟁에서 진데다가 황제가 죽고, 막대한 피해 보상금과 처리까지 남았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이덴베르는 이제 엘미르의 속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셀레나 신의 신전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리안느의 일이 모두 알려지고, 더 이상 그녀의 신전에 찾아가는 사람은 없었다. 신전은 파괴되었으며 신도들은 모두 흩어졌다.

    황족들의 처분은 아직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모두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예전 이덴베르의 혈통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은 들었다.

    이 모든 것을 전해 주는 이시스 오라버니의 말을, 나는 그저 듣고 있었을 뿐이다. 이시스 오라버니는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아마 나의 표정은 무척이나 메말라 있었으리라.

    그는 어렵게 마지막 말을 꺼내었다. 라키아스, 그의 장례식이 진행될 거라고.

    ‘약식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는 덧붙였다. 이시스 오라버니는 어릴 적의 음독 사건으로 라키아스를 매우 증오하고 있었다. 게다가 라키아스는 이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에게 약식이나마 장례식을 치러 주는 것은, 마지막에 나를 대신하여 마리안느의 칼에 몸을 던졌던 그를 향한 이시스 오라버니의 처음이자 마지막 예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장례식 날이었다. 오라버니는 참석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와도 된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곳에 간다면 라키아스의 아내와 아들은 물론이고, 이덴베르 황족들까지 또다시 보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들을 만나기엔 심신이 너무나도 피곤했다.

    그 대신 나는 오래간만에 방을 벗어나 외출을 했다. 향한 곳은 내가 이전에 살았던 4황녀 궁이었다.

    봄이 다가온 하늘은 유독 푸르렀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어 4황녀 궁에 도착한 나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주인을 잃고 십몇 년 동안 분명히 폐허가 되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잘 정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이곳에 내 모든 것이 있었다. ‘알리사’였던 시절, 내 유년 시절의 모든 것이.

    바람이 불자 정원의 큰 나무가 가지의 연둣빛 잎을 흔들었다. 그 나무는 내가 태어났을 때 정원에 심었던 나무라고 했다.

    ‘베어지지 않았구나.’

    나는 가까이 다가가 그 나무의 등걸을 어루만졌다. 겨울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뭇가지에는 어린잎들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여름이 오면 이 나무는 커다란 그늘을 만들며 어린아이의 놀이터가 되어 주리라는 것을.

    나는 멍하니 나무를 바라보다가 뒤를 돌았다. 발자국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다음 순간 나는 놀라고 말았다. 눈앞에 푸른 머리카락이 보였다. 익숙하고 그리운 푸른 눈동자도 보였다.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나도 눈에 익은 빛이었다. 그의 뒤에는 그를 따르는 시녀가 한 명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시선을 내려, 한 아이를 바라보았다. 푸른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를 가진 아이였다. 나는 허리를 숙여 그 아이에게 말했다.

    “안녕?”

    “안녕!”

    그 애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나를 황궁의 손님이나, 그런 종류의 사람으로 아는 것이 틀림없었다. 요사이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황궁에 많이 드나들었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나는 마주 웃으며 그 애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니?”

    “나는 루키아딘이에요.”

    “왜 여기에 있어?”

    “다들 심각한 분위기라서……. 몰래 빠져나왔어요.”

    그 아이는 입술을 쭉 내밀며 대답했다.

    “어머니도 울고 있었고…….”

    “그랬구나.”

    나는 그 아이의 정체를 알 수가 있었다.

    라키아스의 아들인 루키아딘 델 이덴베르.

    그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말이다. 아이는 이내 다시 웃어 보였다.

    “여기는 자주 오거든요. 올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서요!”

    나는 시선을 올려 시녀를 바라보았다. 어린 시녀는 두려운 표정이었다.

    “……어째서 이 궁을 폐쇄하지 않았지?”

    시녀는 내 눈치를 보다가, 떠듬떠듬 대답했다.

    “……모두 폐쇄하려고 했지만, 왜인지 라, 라키아스 전 황제 폐하께서 막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키아딘이 옆에서 덧붙였다.

    “아버지도 가끔 이곳에 오곤 하셨어요.”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 허리에도 닿지 않는 어린아이. 한참 바라보다가 나는 그 아이의 뺨을 손으로 감싸 안았다.

    “……눈이 아버지와 많이 닮았구나.”

    “다들 그렇게 말해요.”

    라키아스 특유의 푸른 머리도 그렇지만, 푸른 눈이 특히나 그와 무척이나 닮았다.

    “……그래. 그렇구나.”

    나는 나도 모르게 아련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말았다. 옛날이 생각났다. 아직 아무런 오해도 없었고, 다가올 슬픈 미래도 몰랐던 때.

    그때 우리 남매는 함께 모여서 이 나무 아래에서 티타임을 가졌었다. 라키아스도, 엘시스도, 아드린느도, 를르스도 나에게 생일 선물로 무엇이 갖고 싶냐고 물었었다. 나는 대답했었지.

    ‘이렇게 모두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나는 정말로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있을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만약 그 행복이 계속될 수만 있었다면,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지켜 냈으리라.

    루키아딘이 문득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새 뺨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왜 울어요?”

    나는 입을 열었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울지 말아요.”

    작은 아이가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아이는 손마저도 무척 작았다. 내가 우는 모습을 보아서인지, 그 아이마저도 울상이었다. 나는 결국 견딜 수 없어서 그 아이를 껴안았다.

    “……나는.”

    그 아이는 나를 토닥거리며 위로해 주었다.

    “울지 말아요…….”

    그 서툰 위로가 가슴속에 사무쳤다. 눈물로 뿌연 시야 너머로 정원의 모습이 보였다. 겨울이 끝난 정원에는 어느새 가지에 어린잎과 꽃망울이 매달려 있었다.

    어느새 봄이 왔고, 나는 열다섯이다. 전생에서 나는 열넷에 죽었기 때문에, 두 번의 삶 속에서 처음으로 가져 보는 숫자였다.

    이미 나는 ‘알리사’가 아니다. 처음으로 가져 보는 열다섯의 나이처럼, 나는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아이샤 드 엘미르. 엘미르 제국의 단 하나뿐인 황녀.

    나는 알리사였던 과거를 마무리 짓는다면, 모든 것이 끝나리라고 믿었다. 복수를 하고, 황족들을 죽이고. 그러면 모든 것을 훨훨 털어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모두 과거의 일이 될 거라고.

    하지만…….

    나는 품에 있는 아이를 향해 눈을 맞추며 물었다.

    “……나를…….”

    아이는 그 큰 눈망울을 깜빡이고 있었다.

    “……리스라고 불러 줄래?”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름이었다. 나는 아이샤니까. 전생의 복수를 끝내면 잊어버려야 하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틀렸다. 과거의 알리사도, 현재의 아이샤도 나였다. 아이는 동그란 눈을 굴리다가, 나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리스!”

    그 웃음은 티 없이 맑았다. 모든 것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새로 움트는 것들이 있었다.

    추운 겨울 뒤에 따라오는 봄처럼, 괴로운 과거로만 생각했던 기억에서도, 새로 만들 수 있는 관계가 분명 있을 것이다.

    “리스도 나를 아딘이라고 불러도 좋아요. 내 애칭이거든요.”

    아이는 이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그에게 말했다.

    “아딘, 혹시 나랑 같이 가 줄 수 있니?”

    아딘은 잠깐 고민하는 듯했다.

    “음……. 원래는 처음 보는 사람이랑 말하는 것도 아니고, 같이 가는 것도 아니라고 했지만. 리스는 왠지 믿을 수 있어요.”

    아딘의 똑 부러진 말에 나는 울다 말고 조금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의 아버지가 한때 어린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는 아딘의 손을 잡고 정원을 천천히 걸었다.

    황궁의 숲으로 가자, 저 멀리에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아드린느가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어떻게…….”

    그녀는 울고 있었다.

    “……어떻게 우리가 그 아이에게 용서해 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겐 아무도 그럴 권리가 없을 것입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데려온 곳이 장례식장임을 알게 된 루키아딘은 입을 조금 내밀었다. 싫다고 도망 온 곳을 다시 데려왔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곳에는 이시스 오라버니나 아르센, 그리고 룬 님마저도 함께 있었다. 예의상 모두 식에 참석한 듯했다. 그들은 이내 나를 보고 흠칫 놀랐다. 특히나 놀랐던 것은 아드린느와 를르스, 그리고 엘시스였다.

    “……아.”

    그들은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나는…….”

    나는 입을 열었다.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 왔다. 그래도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나는 정말 괴로웠어요.”

    그렇게 말하자, 그들의 얼굴이 굳는 것이 보였다.

    “너무 괴로워서 죽어 버리고 싶었어요.”

    이시스 오라버니가 나에게 다가오려고 했다. 나는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요.”

    하늘이 무척 맑았다. 지금은 알리사이던 시절, 내가 사형을 당했을 때와 비슷한 시기였다.

    그때도 나는 지금처럼 아롱지는 초록빛에 손을 내밀어 보았었다. 더 이상 만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 이 계절이 안타까워서, 눈부셔서, 아름다워서.

    하지만 나는 아이샤가 되어서 몇 번이나 봄을 더 맞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 나에게는 몇 번의 봄이 더 남았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라키아스가 죽는 모습을 보았을 때부터,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가 한 잘못을 모두 용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마리안느에게 조종당해서 나를 미워했던 것. 죽음으로 이끌고 갔던 것.

    딱 그만큼은, 받아들여도 괜찮겠지. 나는 옛 가족들을 응시했다. 그들은 앞다투어 입을 열고 있었다.

    “……평생 동안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다.”

    엘시스는 쥐어짜듯이 말하고 있었다.

    “다만…… 다만, 죗값을 치룰 수 있도록 해 주시겠습니까.”

    를르스가 말했다. 아드린느가 입을 열었다가 다물기를 반복했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다.

    과거의 상처는 너무나 아팠다. 결코 아물지 못할 것처럼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랬기에 나는 처절하게 복수하고 싶었다. 똑같은 상처를 내고 보라, 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게 나의 권리임을 안다. 원한다면 그들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내릴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때, 그 발을 내딛을 수가 없었다. 옛 가족들이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눈이 커지는 게 보인다. 만약……, 아주 만약이지만 어쩌면 살아가면서 이만큼 슬픈 일이 또 생길지도 모른다. 절망해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무섭겠지. 아주 괴롭겠지. 그래도 괜찮다. 나는 이미 그것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으니까. 다시 일어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환하게 웃었다. 내 앞에는 둘도 없이 소중한 사람들이 서 있었다. 이 봄처럼 새로운 것들이 시작될 것이다. 아딘처럼 새로운 인연들도 생겨날 테지.

    그것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나아갈 것이다. 어두운 과거의 마지막 그림자에서,

    다시 한 번, 빛 속으로.

    <다시 한 번, 빛 속으로> 완결

    외전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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