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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집 살림을 하는 중입니다만-117화 (117/120)
  • 117화. 초야

    사역마의 머릿속은 이랬다. 초야를 치러야 소원이 이뤄진다. 초야를 치르려면 옷을 벗어야 한다.

    그런데 벨데메르는 이미 옷을 벗고 있다. 그럼 어차피 벗은 김에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게다가 저 둘은 이미 초야의 직전까지 갔다 왔다. 망설일 필요가 있는가?

    해서 샤피로는 잠시 어찌할 줄 모르는 두 인간이 있는 방으로 두툼한 담요와 와인 한 병을 가져왔다.

    그의 모든 행동은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저기, 샤피로, 있잖아.”

    “없습니다.”

    제대로 말을 꺼내지도 않았지만, 샤피로는 거절했다.

    “날 잡고 초야를 치르시면 더 부끄럽기만 하실 겁니다.”

    허점을 찔린 르니예와 벨데메르는 괜히 헛기침을 하고 손부채질이나 해댔다.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주인님 그리고 르니예 님.”

    샤피로는 마지막으로,

    “다 끝나면 부르십시오.”

    라는 말을 남기고 문을 닫았다. 닫힌 방, 르니예와 벨데메르 사이로 묘하게 들뜬 정적이 흘렀다.

    “……괜찮은가?”

    “뭐가요?”

    “나랑 해도 괜찮은지 물었다. 소원 때문에 억지로 하는 거라면, 이러지 않아도 돼.”

    기다릴 수 있었다. 르니예의 마음이 제 것이 될 때, 그때 초야를 치러도 늦지 않았다.

    그는 저를 올려다보는 르니예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살며시 입을 맞췄다.

    아까 레브론이 했을 땐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싶었는데, 벨데메르가 하니 머리칼에 감각이라도 있는 듯 간지러웠다. 르니예는 그대로 그의 어깨를 잡고 올라가, 그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췄다.

    “내가, 억지로 하는 것처럼 보여요?”

    보고 싶었다.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다. 소원이 이뤄지고 난 다음이 어떻게 되든, 르니예는 그를 가지고 싶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그가 온전히 제 것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보이진 않는군.”

    옅게 웃은 벨데메르는 그대로 고개를 비틀어 르니예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르니예가 싫지 않다면 그에게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르니예가 그 품에 안겼던 순간부터, 그는 조금씩 이성을 잃고 있었다.

    기다리겠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몸이 달아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으응.”

    집요하게 밀려드는 벨데메르에 르니예의 입에서 새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타액이 넘나드는 질척한 소리에, 르니예의 나른한 목소리까지 더해지자 벨데메르는 그나마 남아 있던 이성도 놓치기 직전이었다.

    “수, 숨이, 하아.”

    먹이를 쫓는 맹수처럼 집요하고 거친 키스에 르니예가 먼저 고개를 틀었다. 아쉬웠지만 벨데메르는 순순히 르니예의 입술을 놓아주었다.

    거기가 아니라도 입을 맞출 곳은 많으니까.

    “흣, 벨데메르.”

    그의 손이 등 뒤로 돌아가 원피스의 리본을 풀었다. 헐렁해지는 원피스를 끌어 내리자 드러난 하얀 목덜미에, 벨데메르는 그대로 이를 박아넣었다.

    “흐으…….”

    달았다. 사람 살이 달 수가 있나? 그는 믿을 수가 없어서 몇 번이고 르니예의 목덜미를 핥고 빨아들였다.

    달콤한 향은 들이마시면 마실수록 연해지기는커녕 진해졌다. 그는 취한 것처럼 혼미해지면서도, 르니예의 뽀얀 살 위에 제 흔적을 차곡차곡 쌓았다.

    “벨데메르…….”

    어느새 샤피로가 깔아둔 담요 위에 등을 대고 누운 르니예는 저를 내려다보는 벨데메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자신이 낸 흔적을 만족스럽게 쳐다보던 벨데메르는 저를 향해 뻗어오는 르니예의 손을 잡아 자잘하게 입을 맞췄다.

    맥이 뛰는 곳에서는 달콤한 향기가 더 짙게 났다.

    어디 한 군데 달지 않은 곳이 없었다. 르니예의 안에 피가 아니라 꿀이 흐르는 게 아닐까.

    “르니예.”

    입 안에서 굴리는 이름조차 달았다. 혀가 아리도록 단 것에 중독되지 않을 리 없었다.

    아마도 밤이 지나고 나면, 그는 르니예의 곁에서 떨어지지 못하리라.

    “하아…….”

    르니예는 제 손목을 탐하는 벨데메르를 올려다보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날이 서 있는 눈동자가 풀어진 채 나른하게 저를 내려다보자, 르니예는 괜히 아랫배가 간질거렸다.

    어서 가까이 와 줬으면, 손목이 아니라 입술에 키스를 해 줬으면, 빨리 뭐든 해 줬으면.

    “벨데메르, 얼른…….”

    르니예는 참지 못하고 벨데메르를 끌어당겼다. 그는 못 이기는 척 끌려왔다.

    벨데메르는 르니예의 살에서 입술을 떼면 죽는 사람처럼 르니예의 살갗에서 입술을 떼지 않았다.

    그는 르니예의 여린 살을 깨물고, 르니예가 아파하면 미안하다는 듯 혀로 핥아 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벨데메르는 자신의 흔적으로 르니예를 뒤덮어 버릴 것처럼 또 다른 곳을 깨물고 빨아당기고 핥았다.

    마음 같아서는 르니예를 씹어 삼키고 싶기도 했다. 그러면 르니예를 탐하고 있어도, 자꾸만 그녀를 원하는 이 욕망이 사라질까 싶어서.

    그러나 벨데메르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이제 평생을 이런 욕망 속에서, 르니예의 노예로 살게 될 거라는 걸.

    “하아, 흐…….”

    벨데메르는 여린 살을 살짝 깨물고, 또 빨아당겼다. 그사이 르니예의 다리를 훑으며 내려간 손은 르니예의 가느다란 발목을 움켜쥐었다.

    무얼 하려나 싶은 순간, 그가 르니예의 다리를 제 어깨 위로 올렸다.

    근육질의 어깨 위에 제 다리가 올라간 그림이 꽤 선정적이어서 르니예는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 깨물지 마.”

    그는 손을 뻗어 르니예의 입술을 매만졌다. 잠시 그 손길에 긴장을 푼 찰나, 그가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벨데메르, 아……!”

    아랫배에서 퍼지는 야릇한 열기에 르니예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벨데메르는 그 연약한 몸을 끌어안으며 더 깊게 파고들었다.

    “흣, 벨데메르, 조금만, 천천히…….”

    그는 파도처럼 밀려들었고, 르니예는 몰아치는 움직임에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천천히? 이것보다 천천히?”

    벨데메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르니예는 그가 이걸 천천히라고 생각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노력은, 해 보지.”

    처음으로 벨데메르의 입에서 모호한 답변이 나왔다. 그게 하필이면 이때라는 것이, 르니예는 매우 곤란했다.

    왜냐면 잠시 늦춰진 듯했던 그의 움직임이 또다시 거칠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벨데메르, 너무, 흑, 너무…….”

    르니예는 살살 해 달란 뜻으로 그를 끌어안으며, 그의 어깨에 입을 맞추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역효과만 날 뿐이었다.

    감질나게 붙었다가 떨어지는 르니예의 입술에 벨데메르는 그나마 붙들고 있던 이성의 끈마저 놓았다.

    르니예는 그의 아래에서 속절없이 흔들렸다. 그러고는 이내, 노도처럼 그녀를 덮치는 열락에 함락되고 말았다.

    “많이, 힘든가?”

    벨데메르는 행위의 끝에 축 늘어진 르니예를 편하게 눕히며 물었다. 르니예는 가물가물 감기는 눈꺼풀을 간신히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벨데메르는 대답을 알아듣지 못한 것처럼 되물었다. 옆으로 누워 르니예의 손을 가지고 와 입을 맞추는 그의 눈에서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열이 들끓고 있었다.

    르니예는 여기서 더 했다가는 허리가 남아나지 않을 것을 예감하며, 애써 그의 눈빛을 외면했다.

    “소원이 이뤄진 것 같아요?”

    르니예는 일부러 주제를 바꾸었다. 그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함이었다.

    “글쎄, 모르겠는데. 한 번 더 해 봐야 확실할 것 같군.”

    그런 얕은수는 턱도 없었나 보다.

    “그대 소원이니 그대가 책임을 져야지.”

    아니, 이렇게 책임을 전가하기야?

    르니예는 너무 어이가 없고 황당한 나머지, 그 책임을 한번 져 보고 싶어졌다.

    “딱 한 번만 더 해 보는……, 벨데메르? 벨데메르, 왜 그래요?”

    몸을 돌려 그에게 안기려던 르니예는, 누군가에게 잡힌 것처럼 강제로 일으켜지는 벨데메르를 보고 놀랐다.

    “갑자기 어지러운 게…….”

    그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조각상이 깨진 그 자리였다.

    그는 조각상 안으로 들어갈 때의 그 현기증을 느끼며 마지막까지 르니예를 쳐다보았다.

    “르니예.”

    부디 이 조각상 밖으로 나왔을 때도 그대가 있는 세상이길.

    첫날밤에 신랑을 빼앗긴 기분을 아는가.

    르니예가 딱 그랬다. 르니예는 동이 틀 때까지 벨데메르의 조각상만 멍하니 쳐다보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벨데메르를 다시 만나려면 얼른 그의 봉인을 푸는 수밖에 없었다.

    낮에는 상단을 재정비하고, 밤에는 소원을 이뤄 주는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아가씨, 이번에 수도로 올라가시면 금방 내려오진 않으시겠죠?”

    르니예는 반란을 막은 공을 인정받았다. 1왕자는 그녀에게 명분뿐인 낮은 작위를 내리기로 했다.

    작위를 받고 나면 르니예는 라포어도, 라인허트도 아닌 저만의 성을 가지고 귀족이 되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콜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말 말 그대로 벌떡 일어나 그날부터 걷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건강해진 건 좋지만, 그가 상단 여기저기 참견하고 다니는 건 별로 좋지 않았다.

    “가서 거래처를 뚫고 올게.”

    수도에 올라간 김에 고급 경매장 관계자를 만나고 올 계획이었다.

    “그 사람들을 혹하게 할 물건을 가지고 가야 하는데, 뭐 마땅한 거 없나?”

    “그래서 말인데요, 아가씨.”

    에니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번에 제 소원도 하나 들어준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제 소원도 들어주시고, 물건도 구할 방법이 있어요.”

    에니의 소원도 들어주고, 물건도 구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했다.

    “물건을 구해 달란 소원을 빌 건 아니지?”

    하지만 에니의 소원을 겨우 그런 곳에 쓰게 두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에요. 그런 물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세요. 그게 제 소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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