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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집 살림을 하는 중입니다만-114화 (114/120)
  • 114화. 깨달음

    벨데메르와 샤피로는 간신히 남자를 찾아냈다. 이름도 성도 모른 채, 오로지 얼굴로만 남자를 찾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남자가 행한 주술이 남긴 흔적으로 그를 찾을 수 있었다.

    벨데메르는 허름한 집을 잠시 쳐다보았다. 죽음의 냄새가 물씬 났다. 불이 나 새까맣게 그을린 벽을 쳐다보던 벨데메르는 바닥에서 들리는 신음에 그쪽으로 향했다.

    “의원이 오고 있으니 조금만 참아라.”

    남자는 실패했다. 그리고 크게 다쳤다. 마력으로 인한 내상은 아니었다. 누가 보아도 둔탁한 물건에 머리를 얻어맞은, 외상이었다.

    이웃의 증언에 따르면 집 안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그 말을 증명하듯 집 안은 온통 그을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남자는 화상 하나 없이 타박상 때문에 쓰러져 있었다.

    “운이 좋았다.”

    이런 상황에도 남자는 기적적으로 살았다. 아이는, 당연히 살아나지 못했다.

    “의원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샤피로가 의원과 집 안으로 들이닥쳤다. 의원에게 남자를 맡긴 벨데메르는 조금 뒤로 물러났다.

    “주인님, 여기는 의원에게 맡기시고 이만 나가시는 게 어떠십니까.”

    “잠깐만, 샤피로.”

    아직 의문이 다 풀리지 않았다. 아무리 순간이라고는 하나, 남자의 마력으로는 이만한 불을 낼 수가 없었다.

    그 주술을 하는 동안 마력 소모가 심했을 텐데, 남은 마력을 쥐어짜 불을 낸 건가?

    그런 것도 같은 게, 지금 남자에게서는 아주 미미한 마력만 느껴졌다.

    “하지만 왜 불을 냈지?”

    죽으려고? 아니, 그랬다면 다른 방법을 썼을 것이다. 마법으로 지핀 불은, 마력의 주인을 해하지 못한다.

    아마 불이 폭풍처럼 번지면서 뭐가 터지거나 날아왔고, 남자는 그에 맞아 쓰러졌을 가능성이 컸다.

    “이상해.”

    하나부터 열까지 이상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아들을 살리려고 했는데 살리지 못해 화가 나 마법을 썼다?

    아니, 말도 안 된다. 남자는 그 주술에 자신이 가진 마력은 전부 쏟아부었을 것이다.

    그러고도 남은 마력이 이 정도였다면, 그는 대마법사는 아니어도 최소한 이름을 날리는 마법사 정도는 되었겠지.

    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마력을 증폭시키는 약물이나 마력석을 잘못 썼을 때 그 부작용으로 마력이 튕겨 나오는 현상에 가까웠다.

    “……부작용.”

    실패에도 대가가 있다. 왜 지금까지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샤피로.”

    “예, 주인님,”

    “지금부터 금지된 주술에 관련된 책은 전부 찾아서 가져와라.”

    * * *

    “사람은 대충 뽑았으니 이번에 들어오는 무역선은 어찌어찌 될 것 같네.”

    “다음 것도 문제예요. 상단 부지도 너무 넓고요. 관리가 안 되는 것투성이예요.”

    르니예와 에니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돌아가던 상단은 삐거덕거리며 간신히 나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고리대금업이 생각보다 큰 축을 차지했더라고요. 그게 빠지면 앞으로 매출에 큰 타격이 있을 거예요.”

    에니는 카밀과 콜론이 숨겨둔 장부를 찾아, 제대로 작성하느라 며칠 밤을 새웠다. 그리고 낸 결론은, 돈놀이만큼 수익성이 좋은 건 없다는 것이었다.

    “내 생각보다 사업이 컸네.”

    예상 못 한 일이었다. 다른 사업으로 그만큼 매출을 메꾸려면, 아마도 한참 걸릴 것이다. 어쩌면 영영 메꾸지 못할 수도 있고.

    하지만 그래도 해 보는 거다. 해 보기로 했으니까.

    “수도에 갔을 때 괜찮은 아이템을 발견했는데, 들어 볼래?”

    “뭔데요?”

    “경매장인데, 회원권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경매장이야. 회원권은 작위 높은 귀족들 위주로 팔고.”

    옆 왕국에서부터 인기를 끌며 퍼진 경매장이었다. 그 경매장 자체가 부와 명예, 권력을 상징했으므로 귀족들은 기를 쓰고 회원권을 사려고 했다.

    “경매장을 여시게요?”

    “일단은 거기에 물건을 납품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이 근방 왕국에는 전부 거래처가 있잖아. 다른 상단보다 쉽게 시작할 수 있어.”

    무역은 물품을 정해두고 했지만 간혹 진귀한 물건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다.

    콜론은 그걸 따로 창고에 모아두거나, 비싼 값을 받고 중개상에게 넘기곤 했다.

    “지금까지 들어오던 물품은 양이 너무 많아. 그건 우리가 처리할 수 없어.”

    “그러니까 비싼 걸로 소량만 들여오자, 그런 말씀이시군요.”

    안 그래도 인력은 부족하다. 인력이 부족한데, 그렇다고 사람을 마구 늘리기에는 인건비가 부담이었다.

    “물건 확보가 안정적으로 되면, 우리도 경매장 하나 열 수 있겠지.”

    “그 전에 남아도는 창고랑 부지는 어떻게 할까요?”

    “팔아버리기에는 조금 아깝고, 임대로 주자.”

    지금은 쓸모가 없지만, 언젠가 사업을 확장해 그 공간을 전부 쓰는 날을 만들 것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웨딩드레스는 어떻게 할까요? 설마 그 드레스를 또 입으실 건 아니시겠죠.”

    “당연하지.”

    에드윈과 결혼식 때 입었던 드레스를 입고 벨데메르랑 결혼을 했다. 그런데 그걸 또 입고 결혼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까 되게 쓰레기 같았네, 나. 웨딩드레스를 재탕하다니.

    “벨데메르 님도 턱시도를 장만하셔야 하잖아요? 그런데 턱시도랑 드레스가 또 너무 따로 놀면 안 되잖아요.”

    이쯤 하면 르니예도 알아들었겠지? 에니는 할 만큼 했다.

    “그럼 같은 디자이너에게 맡겨야겠다.”

    “그거 아니라고요!”

    에니는 답답함에 책상을 쿵 주먹으로 두드렸다.

    “같이 가서 고르셔야죠. 그 참에 가서 얼굴도 보고 오세요. 불쌍한 꿀벌은 그만 괴롭히시고요.”

    “내가 언제 꿀벌을 괴롭혔어?”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서 듣는 것도 고문이에요. 걔가 말도 못 하고 얼마나 힘들겠어요.”

    르니예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꿀벌이 또 안 보이는 거로군.

    르니예도 마음 같아서는 벨데메르에게 가고 싶었다. 가서 내 소원은 아직 유효하니까 남편 노릇 하라며 뻔뻔하게 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이기적이잖아. 그렇게 살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마음 같아서는 벨데메르의 조각상을 상단에 가져다 두고, 소원이 이뤄지고 난 다음에도 그를 소유하고 싶었다.

    “이 망할 소유욕. 어떻게 시간이 지나도 이 욕심은 사라지지 않지?”

    벨데메르가 싫다고 울고불고 빌어도, 어디에 가두고서 저만 보고 싶기도 했다.

    키스하는 걸 좋아하니까 키스 몇 번 해 주면 넘어올지도 몰라.

    아니야, 벨데메르가 그렇게 쉬운 남자는 또 아니잖아. 하지만 시도해 볼 가치가 또 있을지도……?

    “하지만 충분히 시간 가지라고 내 입으로 말해 놓고 어떻게 가냐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할 때 그냥 알겠다고 할걸. 왜 괜히 기다릴게요, 이딴 말을 해서는.

    “아, 벨데메르 보고 싶다.”

    ……살짝 얼굴만 보고 올까?

    르니예가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꿀벌은 상단을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일종의 순찰이라고나 할까.

    꿀벌은 텅 빈 사용인 숙소 이곳저곳을 제집인 양 돌아다녔다.

    “저하, 상단주가 있는 방을 알아냈습니다.”

    그러다 난데없이 비장한 목소리에 홀리듯 날아갔다.

    “거동은 불가능하지만, 대화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 잘됐군. 하늘이 우리를 돕는 모양이다.”

    그들은 이불 속에 숨겨둔 검을 꺼냈다. 검날을 확인하는 모양새가 능숙했다.

    그들은 옷 안에 무기를 숨기고 숙소 밖으로 향했다.

    이거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일단 칼을 가지고 이동한다는 건, 여차하면 저걸 쓰겠다는 뜻이 아닌가.

    르니예에게 경고를 해 주어야 한다. 르니예가 아니라면 에니에게라도!

    이 대화를 샤피로가 들었을까? 꿀벌은 다급했다.

    한편, 샤피로는 매우 바빴다. 샤피로는 책방이란 책방은 다 돌아다니며 금지된 주술에 관련된 책을 가져다 모으는 중이었다.

    그리고 벨데메르는 식사도 거르고 책을 읽었다. 벨데메르가 금지된 주술을 행했을 때는 정보가 많지 않았다.

    그땐 누구도 신의 뜻을 거스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벨데메르가 봉인되었던 동안, 그 주술을 행한 이들이 꽤 많았다.

    물론 성공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지만.

    “죽거나 광인이 된다.”

    주술을 실패한 이들은 하나같이 대가를 치렀다. 바로 죽지 않으면 미쳐서 날뛰다가 죽었다.

    “마력을 모두 소진한 채로 죽었다.”

    남자 또한 그랬다. 그런데 어째서 주술에 마력을 소진하지 않고, 불을 지르는 데 마력을 썼을까?

    “말이 안 되잖아.”

    분명 주술을 행하는 데 자신이 가진 마력을 썼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그렇지 않은가.

    죽은 아들을 살리기 위한 간절함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마력을 총동원했을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 마력이 불로 발현이 되었다.

    “통제력을 잃은 건가?”

    실패하는 순간 마력의 통제력을 잃게 된다는 가정이 맞다면, 여러 가지가 설명되었다.

    마력이 여기저기 날뛰다가 엉뚱하게 발현되거나, 내상을 입혀 마법사 본인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 혹은 이성을 잃게 만든다.

    마력을 통제하지 못한 마법사들에게 나타나는 흔한 부작용이었다. 그래, 그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금지된 주술이라고 해서 너무 어렵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도 그랬단 건가?”

    벨데메르 역시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죽지도, 광인이 되지도 않았다. 마력 통제에 실패해 엉뚱한 마법을 부리지도 않았다.

    대신 조각상에 봉인되었다.

    “아.”

    번개가 치듯 뇌리를 밝히는 깨달음에 벨데메르는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를 쓸어 올리는 손에서 허탈함마저 느껴졌다.

    그는 샤피로를 부르지도 않고, 로브를 걸치지도 않은 채 뭐에 홀린 사람처럼 신전으로 향했다.

    신전에 온다고 해서 모두가 신을 만나지는 못하지만,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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