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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집 살림을 하는 중입니다만-108화 (108/120)
  • 108화. 사건의 전말

    콜론은 어린 르니예를 카밀에게 맡기고 아내 올리비아의 복수를 하기 위해 그 별장으로 향했다.

    카밀은 헛된 짓이라며 반대했다. 그의 복수는 승산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늑대에게 뜯겨 형체를 알 수 없는 올리비아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 콜론은 이미 이성을 상실했다.

    ‘살려 주세요, 도련님. 제발.’

    복수심이었는지 운이 좋았는지 몰라도 콜론은 들키지 않고 별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올리비아가 말해 준 방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살려 달라는 애원을 들었다.

    그 고귀하신 도련님은 새로운 장난감에 푹 빠져 있었다. 그를 죽이려면 지금이었다.

    시간을 조금만 더 지체한다면 호위병이 몰려올 것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콜론은 검술 같은 건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직 어리다고는 해도 날 때부터 검술 훈련을 받은 에카도르와 대결하면 금방 질 게 눈에 선했다.

    그러니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에카도르가 한눈을 팔고 있을 때.

    ‘저희 어머니는, 제가 없으면, 큭!’

    하지만 콜론은 마코야데스의 간절한 외침을 외면하지 못했다.

    ‘미안해, 올리비아.’

    결국 그는 올리비아의 복수를 포기하고 마코야데스를 살리기로 했다. 별장에 불을 지르고, 에카도르가 나온 틈을 타 그는 기절한 마코야데스를 옮겼다.

    그를 업고 나오면서 이미 죽은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마코야데스는 결국 죽지 않고 살아났다.

    하지만 살아났다고 해도 구출 당시의 마코야데스는 거의 목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다. 콜론이 의원을 불러와 치료를 받게 해 주었지만, 마코야데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많은 날이 흐른 뒤였다.

    ‘어머니!’

    그는 일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찾았다. 그러나 그의 병든 노모는 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다 쇠약해져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눈도 감지 못하고 죽은 노모의 시신을 묻을 때, 마코야데스 옆에 있어 준 사람이 바로 콜론이었다.

    ‘제가, 형수님 시체를 옮겼습니다.’

    ‘……그래.’

    ‘그런데도 제 목숨 살린 걸 후회하지 않으십니까?’

    콜론의 시선이 마코야데스를 지나 저 뒤를 쳐다보았다. 어린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내 딸일세.’

    마코야데스가 어머니를 부르짖을 때 콜론은 르니예를 생각했다. 부모 없이 남겨질 르니예가 떠올라 차마 죽을 용기를 내지 못했다.

    ‘난 올리비아의 복수를 할 거야. 하지만 내 딸은 그 복수를 평생 몰라야 해.’

    르니예는 분노와 고통 속에 살지 않을 것이다. 르니예는 늘 저리 해맑게 웃으며 살게 해 줄 것이었다.

    그러니 콜론은 복수만을 위해서 살 수 없었다. 마코는 그를 이해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마코는 복수만을 위해 살 수 있었다.

    ‘그러려면 도움이 필요하네.’

    ‘제가 돕겠습니다.’

    ‘내 복수는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몰라.’

    ‘제가 죽기 전에, 그놈이 죽는 꼴만 보면 됩니다.’

    그렇게 그들의 기나긴 복수가 시작되었다. 마코는 흉측한 얼굴을 가리기 위해 어둠으로 스며들었다.

    처음엔 암살자가 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쪽으론 재능이 없었다.

    대신 그는 기척을 잘 숨겼다. 그 능력을 발판 삼아 도둑이 되었다. 이왕 도둑이 되었으니 수도에까지 소문이 날 만한 도둑이 되어야 했다.

    그는 길드를 만들었다.

    ‘형님은 뭘 할 거요?’

    ‘돈을 벌어야지.’

    마코가 암흑세계에 적응하는 동안 콜론은 돈을 모았다. 돈은 훌륭한 무기라는 걸 상인인 그는 아주 잘 알았다.

    그는 무슨 짓이든 했다. 상단은 날이 갈수록 크기를 키웠다. 수도까지 이름을 날리는 마코와 달리 그는 수도 근처는 절대로 가지도 않았다.

    펠레포네 영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자금을 모았다. 콜론은 철저하게 자신의 존재를 지웠다.

    그는 그저 먼 바닷가 영지의 부자 상인쯤으로 취급되었다.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다.

    * * *

    “샤피로.”

    벨데메르는 조용히 샤피로를 불렀다.

    “꿀벌.”

    그는 정원을 노니는 꿀벌도 불렀다. 그들을 불러들이는 벨데메르의 목소리에 노기가 가득했다.

    “주인님.”

    꿀벌보다 먼저 샤피로가 도착했다. 샤피로는 이채가 일렁이는 그의 눈동자에서 자신의 주인이 매우 심기가 불편하단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샤피로는 제 주인의 심기를 거스른 것을 금방 찾아냈다.

    그가 이리 예민하게 굴 이유는 르니예 하나뿐이고, 르니예는 현재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르니예 님이 없어지신 거로군.

    “저, 주인님.”

    “네 녀석.”

    샤피로의 말은 노기 어린 벨데메르의 목소리에 서걱 잘려 나갔다. 벨데메르의 분노는 저의 부름에 정원에서 날아온 꿀벌에게로 향했다.

    “르니예가 오냐오냐해 주니, 네 본분을 잊은 것이냐.”

    꿀벌은 르니예의 호신용 사역마였다. 재롱이나 부리는 애완동물로 만들어 준 것이 아니란 말이었다. 주눅이 든 꿀벌은 날갯짓까지도 시무룩해졌다.

    “지금 당장 르니예를 찾아라.”

    르니예를 혼자 두는 게 아니었다. 후작의 정체가 의심되기는 했지만, 이리 사람이 많은 곳에서 움직일 거라 예상치 못한 것이 실수였다.

    “정원 근처 모든 방을 다 뒤져라. 분명 갇혀 있을 거야.”

    르니예가 발코니로 나가고 곧 벨데메르도 따라 나갔다. 짧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르니예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건, 정원 근처 어딘가 갇혀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주인님.”

    벨데메르의 말 사이에 끼어들 틈만 보던 샤피로는 당장이라도 벨데메르를 붙잡았다. 그의 마력이 요동치고 있었다.

    “진정하십시오.”

    분출하지 못하는 마력이 더 요동을 쳤다가 벨데메르가 잘못될까 걱정이 되었다. 어쩌면 조각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일이 또 생길지도 모른다.

    문제는 조각상이 이곳 수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르니예 님이 어디 계시는지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셰론 후작에게 물어보기로 할 셈이냐?”

    “아닙니다.”

    샤피로는 벨데메르를 사람들의 눈이 없는 곳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기다란 복도를 돌자 나이 지긋한 하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사람이 르니예 님의 행방을 안다고 했습니다.”

    세자르와 후작의 방을 뒤지던 샤피로에게 그 하인은 먼저 다가왔다. 그러고는 르니예가 곤란한 상황인데, 그 일행께서 구하러 오실 수 있느냐 물었다.

    “왜 바로 따라가지 않고, 내게 왔느냐?”

    “함정인 줄 알고, 르니예 님을 확인하러 갔었습니다.”

    벨데메르는 더 캐묻지 않았다. 르니예를 구하러 가는 것이 시급한 일이었으므로.

    “르니예가 위험한 것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그저, 조금 곤란하실 겁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하인은 여유로웠다. 그는 주변을 한 번 살펴보고, 벽과 거의 구별이 되지 않는 문을 찾아 조심스레 열었다.

    “저 아래에 계십니다.”

    안으로 통하는 계단이 보였고, 실제로 안쪽에서 르니예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벨데메르는 앞뒤 재지 않고 그대로 뛰어 들어갔다.

    “르니예!”

    “벨데메르!”

    르니예는 벨데메르를 보자마자 뛰어가 안겼다.

    “어디 다친 데는 없나?”

    르니예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상했다면 가만두지 않을 셈이었다. 그러나 르니예는 멀쩡했다.

    “네, 괜찮아요.”

    괜찮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독에 당한 줄 알았던 에드윈이 갑자기 일어나 후작의 검을 빼앗아 들었을 때, 유혈 사태가 일어나겠거니 했다.

    그 안에는 후작의 수하들이 여럿 있었다. ‘에드윈 혼자 이길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포박당한 쪽은 후작이었다.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잠깐 바람 좀 쐬고 있겠다더니.”

    그는 르니예의 손을 단단하게 붙들었다. 정말 잠깐이었다. 잔에 남아 있던 술을 비우고, 르니예를 따라 나가는 시간까지 채 오 분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틈에 르니예는 사라져서, 웬 지하실에 갇혀 있지를 않나.

    “이젠 잠깐도 안 되겠군. 적어도 이 수도를 벗어나는 날까지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마. 아니, 아예 묶어둘까?”

    그래, 손목을 묶어두는 것이다. 저에게서 일정 반경 이상 떨어질 수 없게.

    벨데메르는 사람이 많아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던 자기 자신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난 정말 괜찮아요, 벨데메르.”

    “내가 안 괜찮다면?”

    “……어, 그러면, 음.”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 르니예는 그에게 손목을 내밀었다.

    “며칠은 묶여 있어 볼게요.”

    르니예의 농담에 아무도 웃지 않았다. 벨데메르도 웃지 않았다. 묶겠다는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리하여 르니예만 머쓱해졌다.

    “크윽, 읍!”

    다행히 그 찰나에 포박당한 후작이 몸부림을 쳤다. 입에 물린 재갈 사이로, 아마도 욕설일 말이 짓눌려 흘렀다.

    그런 후작의 뒷덜미를 에드윈이 고쳐 잡았다.

    “이분들이 도와주셨어요.”

    르니예는 후작저의 사용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애초에 에드윈이 마신 잔에도 독은 들어 있지 않았다.

    에드윈은 그저 포도주에서 나는 고약한 맛을 조금 과장되게 표현했을 뿐이었다.

    “나를 그대에게 데려온 것도 이들이었다.”

    “제게 르니예 님의 위치를 알려 준 사람도 그렇습니다.”

    르니예는 사용인들 중 가장 나이가 지긋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희를 왜 도와주신 거예요?”

    그는 르니예를 보며 지그시 웃었다.

    “가서 아버지에게 물어보렴, 르니예.”

    당장이라도 아버지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르니예는 그럴 수가 없었다.

    세사르와 샤피로가 후작의 방을 뒤지다가 발견한 것은, 후작이 2왕자의 반란에 가담했었다는 증거였다.

    소공작은 그대로 아버지에게 달려갔고, 후작은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조사는 잘 받고 왔어, 샤피로?”

    덕분에 샤피로는 수도에 남아서 조사에 협조하는 중이었다.

    후작의 밑에서 일하던 펙은 후작의 꿍꿍이와 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증명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 벨데메르가 필요했다. 벨데메르는 펙이 어떻게 셰론 후작의 밑에서 일하게 되었는지 증언하러 다녔다.

    “소공작께서 내내 옆에 붙어 있으신 것만 빼면, 조사는 수월했습니다.”

    샤피로는 지쳐 보였다. 조사 때문이 아니라 세사르 때문에.

    “르니예 님께서는 오늘도 내내 주인님과 함께 계셨습니까?”

    “응, 나 정말 묶여 있었잖아.”

    벨데메르는 진짜로 르니예와 제 손목을 묶었다. 르니예는 꼼짝없이 그와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벨데메르가 씻는 이 잠깐의 시간이 르니예가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밖에 에드윈 라포어 경이 와 있습니다.”

    “에드윈이?”

    “할 말이 있다고 하더군요.”

    “들어오라고 해.”

    그날 이후 에드윈도 바빴다. 그 역시 후작과 한패가 아니었다는 걸 증명해야 했다.

    그날 그 지하실에서 본 후로 에드윈을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에드윈.”

    그는 생각보다 안색이 좋아 보였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부인?”

    “난 괜찮죠. 독을 마신 건 내가 아니라 에드윈이잖아요.”

    르니예의 농담에 에드윈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인사를 하려면 지금밖에 없을 것 같아서 들렀습니다.”

    “나도 인사를 하고 싶었어요.”

    그는 르니예를 대신해서 독배를 마셨다. 르니예가 고를 필요도 없이 두 잔을 전부 다.

    “고마워요, 에드윈.”

    “아닙니다. 레이디를 지키는 게 기사의 일이죠.”

    “난 이제 레이디가 아닌데요.”

    “제 눈에는 여전히 레이디처럼 보여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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