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집 살림을 하는 중입니다만-60화 (60/120)
  • 60화. 멀미

    르니예는 예정대로 실버리안 영지로 향하는 마차 안이었다. 마차를 타기까지 르니예의 머리는 복잡했다.

    그러나 마차 안에서는 복잡할 일이 없었다.

    “샤, 샤피로!”

    르니예는 창문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애타게 샤피로를 불렀다.

    “왜 그러십니까, 르니예 님.”

    마부석의 샤피로는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으면서도, 뒤를 돌아 르니예와 눈을 맞추는 기술을 발휘했다.

    “길로 가자, 길로, 응?”

    거친 숲길을 달리는 마차 때문에 르니예는 멀미로 죽을 지경이었다.

    “여기도 길입니다.”

    기괴하리만큼 목을 꺾어 돌아보는 샤피로의 입매가 예쁜 곡선을 그렸다.

    “지름길.”

    “아니, 우읍!”

    ‘지름길 말고 그냥 길! 평평한 길!’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차오르는 구역질에 르니예는 입을 다물었다.

    “르니예, 그러다가 나무에 걸리면 목이 잘리는 수가 있다.”

    보다 못한 벨데메르가 르니예의 허리를 잡아서 도로 앉혔다.

    “그렇게 버티기 힘든가?”

    “차라리 목이 잘리고 싶은 심정이에요.”

    같은 마차에 탔지만 벨데메르는 멀쩡했다. 멀쩡해도 너무 멀쩡했다. 르니예는 좀 억울해졌다.

    “좀 자는 건 어때?”

    “그러고 싶은데 잠이 와야 말이죠.”

    멀미가 너무 심해서 온몸의 진이 다 빠지는데, 그렇다고 잠이 오지는 않았다. 메슥거리는 속이 잠잠해지지 않으니 잘 수 없었다.

    “앞으로 이틀은 더 가야 하는데, 큰일이군.”

    “그냥 길로 천천히 가면 안 될까요?”

    지름길로 이틀, 일반 길로는 사흘이 넘게 걸렸다. 이틀을 고생해서 빨리 가느냐, 사흘이란 시간을 허비하며 느긋하게 가느냐, 샤피로는 고르라고 했다.

    르니예는 빨리 가자고 한 자신을 원망했다.

    “이미 숲길로 들어왔으니 오늘 하루는 버텨야 해.”

    파리한 얼굴로 르니예는 절망했다.

    “내려서 걸어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먼 길을 어떻게 걸어가겠어.”

    벨데메르는 식은땀으로 젖은 르니예의 머리카락을 쓸어 주었다. 다른 사람의 땀이었다면 더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겠으나, 르니예를 볼 때는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대는 마법사 남편을 낭비하는 경향이 있어.”

    “네?”

    르니예는 되물으면서 깨달았다. 자신에게는 마법사 남편이 있다는 것을. 그것도 아주 유능한 마법사 말이다.

    “벨데메르, 제발 푹 자게 해 주세요.”

    “그대가 원한다면.”

    르니예는 벨데메르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동시에 잠들었다. 거의 기절과 같은 잠이었다.

    쓰러지는 르니예를 받아 눕히며 벨데메르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표정이었다.

    “……힘 조절을 못 했는데, 르니예가 깨어나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 * *

    다행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다행하게도 르니예는 이틀 만에 깨어났다.

    “으.”

    허리가 뻐근하고, 머리가 무거웠다. 꿈도 꾸지 않고 잔 것 같은데 어째서 몸이 천근만근인지.

    르니예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얼굴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며 르니예는 중얼거렸다.

    “자면서 땀이라도 흘렸나.”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르니예가 흘린 땀이 아니라, 방 안까지 자욱한 안개 때문이었다는 것을.

    “안개가 무슨 방 안까지 들어와?”

    창문이라도 열려 있나? 르니예는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갔다.

    “창문은 잘 닫혀 있는데.”

    그러면서 르니예는 홀린 듯이 창문을 열었다. 밖은 코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가득했다.

    “이런 안개는 처음 봐.”

    안개가 만져질 리 없건만 르니예는 손을 뻗어서 안개를 휘휘 저어 보았다. 당연히 잡히는 건 없었고, 그저 손바닥만 축축해졌다.

    “르니예.”

    “벨데메르.”

    “일어났군.”

    벨데메르는 자연스럽게 다가와 창문 옆에 섰다.

    “일어나지 않아서 걱정하던 참이었다.”

    “내가 오래 잤나 봐요?”

    “무려 이틀을 잠들어 있었다.”

    이틀이나? 어쩐지 몸이 무겁다 했다.

    “그럼 혹시 다 왔나요?”

    “그래, 여기가 실버리안 영지야.”

    벨데메르의 시선이 르니예에게서 안개뿐인 창밖으로 향했다.

    “날이 흐리네요.”

    “아니, 날은 화창해.”

    “화창하다고요?”

    벨데메르가 화창의 뜻을 모르나? 르니예의 눈앞에는 잔뜩 흐린 하늘뿐이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보면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다. 여기 땅 주변만 안개가 자욱해.”

    처음 실버리안 영지를 도착했을 때부터 이 안개는 좀처럼 헤매는 일 없는 샤피로를 헤매게 했다.

    아침이 오면 걷히겠지, 했으나 아침이 와도 안개는 여전했다.

    “주인장의 말로는 거의 보름 넘게 이 상태라는군.”

    “보름 넘게요?”

    어느 날 생긴 안개는 가실 기미는 없고 더욱 짙어지기만 했다. 해를 못 본 작물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사람들은 예민해졌다.

    안개는 자연의 일, 딱히 방도가 있지도 않았으므로 그들은 하루하루 안개가 걷히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태풍이라도 한 번 와야지 걷힐 것 같은데, 큰일이네.”

    안개가 점점 짙어지는 건 기분 탓인가. 르니예는 중얼거리면서 안개를 계속 휘휘 저었다.

    르니예의 손이 지나가는 곳만 살짝 안개가 옅어졌다가 금방 짙어졌다. 이 상황에 철없는 말이지만, 구름 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르니예가 손을 더 크게 휘두르자 안개가 살짝 걷히며,

    “……아?”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노랗게 반짝이는 눈동자. 분명히 시선이 마주쳤다. 다시 짙어진 안개에 그 눈동자는 사라졌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저, 저기 누가 있나 봐요.”

    “이 앞에?”

    “네.”

    르니예는 연신 눈을 깜박이며 벨데메르를 쳐다보았다.

    “이상하군. 여긴 삼 층인데.”

    “아, 여기 삼 층이구나.”

    그런데 나는 밖에 있는 사람이랑 눈이 마주쳤네? 그렇다면 밖에 있는 게, 사람이 아니란 뜻이구나.

    르니예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고는, 그대로 기절했다.

    “르니예? 르니예!”

    * * *

    “주인님, 다녀왔습니다.”

    샤피로는 벨데메르의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 있는 르니예를 발견했다.

    “르니예 님은 아직도 깨어나지 않으신 겁니까?”

    “아니, 깨어났다가 기절했다.”

    “기절이요? 너무 오래 주무셔서 그런 걸까요.”

    벨데메르는 악몽을 꾸는지 으으 앓는 소리를 내는 르니예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창밖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저 앞에 사람이 서 있다고 하더군.”

    너무 오래 자서 정신이 잠시 흐려진 것일지도 모른다.

    “르니예 님도 그러셨단 말씀이죠.”

    샤피로가 심각한 얼굴을 했다.

    “르니예도? 그럼 다른 사람도 그랬단 말이냐?”

    “예, 이 안개가 생기고서 기이한 형상을 보았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노란색 눈동자를 보았다는 이도 있고, 길고 휘어진 발톱이 달린 손을 보았다는 이도 있습니다.”

    벨데메르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노란색 눈동자, 휘어진 발톱.”

    샤피로가 한 말을 복기라도 하듯 중얼거리던 벨데메르는 샤피로를 향해 물었다.

    “그다음에 본 것은 가죽이 벗겨진 듯 불긋한 꼬리겠지.”

    “예, 그렇습니다.”

    벨데메르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래서 이리 악몽을 꾸는 거였군.”

    르니예는 연신 이마를 구기며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중얼거렸다.

    “으응, 아으, 으.”

    르니예는 꿈을 꾸는 중이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제 남편이, 안 돼, 읍, 남편이, 싫어, 죽어서도, 읍!”

    소원을 빌던 그 순간이었다. 르니예는 어떻게든 소원을 빌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르니예의 입은 주인의 의지에 반해 자꾸만 소원을 말했다.

    “죽어서도, 저만, 망할, 사랑하게, 염병, 해주세요, 안 돼!”

    마음의 소리가 뒤섞인 소원이었다.

    “네 소원은 이뤄졌다.”

    “빌어먹을!”

    결국 소원을 말하고 말았다. 르니예는 서둘러 에드윈에게 향했다. 그러나 뒤돌아선 르니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얼굴이 반쯤 부패한 벨데메르였다.

    “베, 벨데메르?”

    르니예는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 발아래 무언가에 걸려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르니예가 넘어지는 반동으로 둔탁한 무언가가 같이 떨어졌다.

    “관?”

    관 뚜껑이 열린 것이었다. 뚜껑이 열린 관에서 뼈만 남은 손이 툭 튀어나왔다.

    “설마, 아니겠지.”

    설마는 언제나 사람을 잡는 법이다. 그게 꿈속일지라도.

    “부인, 나를, 왜, 거부하는, 겁니까.”

    르니예는 실성한 것처럼 허허 웃었다. 남편이 둘이라 그런가, 살아 있는 시체도 둘이네. 이러니 내가 웃지 않을 수 있겠어?

    “흐흐. 내가 결국 이럴 줄 알았지. 아니, 왜 그냥 나도 시체로 만들지 그러셨어요.”

    르니예는 저에게 다가오는 에드윈과 벨데메르를 쳐다보며 낄낄 웃었다.

    “킥, 킥킥.”

    꿈 밖에서도 르니예는 소리 내어 웃었다.

    “……악몽이 아닌가 본데요.”

    샤피로는 자면서 웃는 르니예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깨우려던 벨데메르도 멈칫했다.

    “벨, 메르.”

    르니예는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주인님을 부르는 것 같습니다.”

    “……에으, 윈.”

    꿈속에서 르니예는 히죽히죽 웃으며 벨데메르랑 에드윈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냥 우리 셋, 다 같이 손잡고 갑시다.

    “손, 잡아, 같이, 가…….”

    “주인님과 라포어 경이 손잡고 같이 간다는데요?”

    대체 무슨 꿈을 꾸는 거지, 르니예. 내가 에드윈 그 자식과 손을 잡고 가는 꿈을 꾸면서 이렇게 웃는 건가?

    벨데메르의 표정이 더 구겨질 수 없을 정도로 구겨졌다.

    “악몽을 꾸는군.”

    벨데메르는 르니예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런데 어깨를 잡은 손에서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