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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집 살림을 하는 중입니다만-12화 (12/120)

12화. 좋은 남편과 입맞춤의 상관관계

포옹은 뭐였을까.

하긴 포옹 정도는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결혼식 이후로 벨데메르는 달라졌다. 그날 맹세의 키스를 한 이후로 벨데메르는 뭐랄까, 스킨십에 굉장히 관대해졌다.

나서서 포옹까지 해 줄 정도이니 말은 다 한 것이다.

“나랑 키스한 게 그렇게 좋았나?”

르니예는 괜히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뭐, 좋기는 했다. 아무래도 벨데메르에게는 첫 키스이다 보니 처음에는 어설펐다. 그 어설픈 것도 어떤 매력이 있었다고나 할까.

벨데메르는 학습력도 빨랐다. 어느 순간부터 르니예는 그의 리드에 완전히 넘어갔다.

그런 건 정말 처음…….

“아니지, 이럴 때가 아니야.”

르니예는 할 일이 많았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광장에 떡하니 세워져 있는 벨데메르의 동상을 치우는 일이었다.

“광장에 동상이 하나 있을 거예요. 그거 상단으로 옮겨 줘요.”

“예, 작은 마님.”

벨데메르의 존재를 숨기려고 이 애를 쓰는데, 샤피로는 대뜸 그의 동상을 광장에 가져다 놓다니.

“작은 마님.”

“어쩐 일이야, 프리야?”

르니예와 프리야는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그들이 이토록 화기애애했던 적은 없었다.

“아직도 우리 상단에 있는 줄 몰랐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아버지의 금고에 그 보석이 들어 있었던 것을.

르니예는 벌레 한 마리 죽이지 못할 것 같은 프리야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내 방에 있는 보석을 확인만 하고 훔쳐 가지 않은 걸 보면, 가품인 걸 알아차린 거니 아니면 아직 필요하지 않은 거니.

“저 계속 상단에서 일하고 싶어요.”

프리야는 싱긋 미소 지었다. 넌 소원을 빌었을까, 르니예? 아니면 너도 소원을 빌러 갔다가 허탕을 쳤을까?

“우리 상단에서, 계속?”

아직 우리 상단에 볼일이 남았다, 이건가? 그게 뭘까, 프리야. 정말 궁금하네. 르니예는 입매를 끌어올리며 되물었다.

“네, 가능하다면 작은 마님 곁에서요.”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두라고 했다. 프리야는 멀리서 지켜보는 건 그만두기로 했다. 그래 봤자 얻는 것도 없이 시간만 흐릴 테니.

“어머, 내 곁에서?”

“네, 작은 마님이 좋아서요.”

“그건 몰랐네. 네가 작은 주인님을 좋아하는 건 알았는데.”

르니예의 뼈 있는 농담에 프리야와 르니예는 소리 내 하하 웃었다.

“작은 주인님을 존경하지만, 좋아하는 건 작은 마님이라구요.”

“미안하지만 마음만 받을게. 에니가 서운해하니까.”

내 옆에 붙어서 감시를 해 보겠다? 그렇게는 안 되지. 벨데메르의 정체는 르니예의 약점이나 마찬가지였다. 프리야가 그걸 알고 신고한다고 협박이라도 한다면?

으, 최악이었다.

“그럼 가서 할 일 하도록 해, 프리야.”

“언제든 생각이 바뀌면 말씀해 주세요, 작은 마님.”

프리야는 눈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사라졌다. 에드윈과의 관계를 떠나서 착하고 순진한 애인 줄 알았는데 속이 아주 시꺼멨다.

에드윈은 저걸 알까? 알고도 좋아하는 걸까?

“한패일지도 모르는데, 뭐.”

르니예는 입술을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어쨌든 진품은 벨데메르에게 있으니, 그들이 백번 훔쳐 가 봐야 소용없다.

얼른 이혼이나 하면 그걸로 그만이다.

“작은 마님.”

광장에 조각상을 철거하러 갔던 하인들이 예상보다 빠르게 돌아왔다.

“조각상은요?”

“그게 영주님 소유의 기물이라는 표식이 있던데요.”

“예?”

“함부로 가져와도 되는 거 맞습니까?”

그럴 리가 없는데. 그게 영주님 것일 리가 없는데.

르니예는 다급히 광장으로 달려갔다. 숨을 몰아쉬며 벨데메르의 조각상 앞에 선 르니예는 어제는 없던 영주의 소유물이란 표지판을 발견했다.

욕심 많은 영주가 조각상을 자신의 것으로 명명해 버린 것이다.

소유권을 주장하려고 영주에게 따지러 가도, 아마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런 망할.”

망했다. 진짜로.

이 모든 사달의 원인은 샤피로였다. 신전에 잘 있는 조각상은 왜 가지고 와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지. 게다가 산산조각 난 것을 어쩜 저리 말끔하게도 이어 붙였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얼기설기 붙여 놨더라면 영주가 탐내지는 않았을 텐데. 무슨 사역마가 이렇게 재주가 많아?

“오셨습니까, 르니예 님.”

“응.”

르니예는 잠옷이 든 가방을 샤피로의 품에 던지듯 안겼다. 그들은 서로 영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나한테 할 말 있어?”

“주방에 들어가 보세요. 주인님이 기다리십니다.”

샤피로는 르니예에게 들리지 않게, 하지만 르니예가 들었으면 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중얼거렸다.

“우리 주인님이 너무 과분해.”

샤피로는 르니예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르니예 때문에 벨데메르는 다음 소원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중이었다.

얼른 다음 소원으로 넘어가야 저 길고 긴 봉인이 깨질 텐데, 누구 덕에 시간만 헛되이 흘려보내는 중이었다.

“……?”

내가 마음에 안 든다 이건가? 언제 날 잡아서 버릇을 좀 잡아 놔야지, 안 되겠군.

르니예는 눈에 힘을 주고 샤피로를 한번 노려봐 주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꺅!”

무심코 들어간 주방에서 르니예는 짧은 비명을 질렀다. 벨데메르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앞치마만 달랑 걸친 그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넓은 어깨와 단단하게 벌어져 잔뜩 성이 난 등에 레이스가 달린 앞치마 끈이 묘하게 잘 어울렸다. 보기 좋게 균형 잡힌 근육질 몸매에 하얀 앞치마라니.

르니예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일찍 왔군, 르니예.”

“네, 그런데 벨데메르 왜 옷을 벗고…….”

“아, 요리하는데 뭐가 자꾸 묻어서 말이야.”

“그래도 바지는 입고서……, 입었네, 바지.”

벨데메르가 조리대 바깥으로 나오자 보이지 않던 그의 하반신이 드러났다. 바지를 잘 챙겨입은 그의 하반신이.

“아쉬우십니까?”

언제 왔는지 샤피로가 귓가에서 속삭였다. 르니예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아니거든?”

그사이 벨데메르는 인생 처음으로 만든 스튜를 접시에 조금 담아 가지고 왔다.

“맛을 보겠나?”

좋은 남편이 되는 세 번째 방법, 아내를 위해 요리하기였다. 벨데메르는 단 한 번도 스스로 요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완벽하게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했다.

“맛있어요.”

진심이었다. 르니예가 웃으며 칭찬하자 벨데메르의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다행이군. 요리는 처음이라 긴장했었는데 말이야.”

긴장하지 않았다. 처음이기는 했지만 벨데메르는 무엇이든 빠르게 배웠고, 남들보다 뛰어났으니. 요리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었다.

“정말요? 이런 건 샤피로 시키셔도 되는데.”

“그대에게 내 손으로 음식을 해 주고 싶었다.”

벨데메르의 말에 르니예는 조금 감동했다. 늘 마법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던 사람이, 저를 위해 손수 요리책을 봐 가며 요리를 하다니.

“좋은 남편이 되어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

“그렇긴 하지만…….”

이게 다 소원 때문이라는 것은 알지만, 르니예의 마음에 파도가 일었다. 르니예가 에드윈에게 원했던 것도 거창하고 대단한 게 아니었다. 이런 작은 마음을 원했을 뿐인데.

“그럼 한 입 더 하겠나?”

“네.”

벨데메르가 직접 스튜를 떠, 뜨겁지 않게 호 불어서 르니예의 입술에 가까이 대주었다. 이 모든 것이 소원 때문이면 어떤가. 르니예는 제 소원이 이뤄지고 나면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한 마리 흑표범 같은 남자가, 앞치마를 하고 직접 한 요리를 먹여 주는 이 순간이 다시 올 것 같지 않아서.

그러나 그때였다.

“역시 주인님께서는 못하시는 게 없으십니다.”

샤피로가 손뼉을 치며 끼어들었다.

“하다 하다 요리까지 잘하시다니요. 주인님께서는 찬양받아 마땅하십니다.”

“겨우 요리 하나 했다고 그럴 것 없다, 샤피로.”

“아닙니다, 주인님. 주인님께서 요리사가 되셨다면 이 대륙을 평정한 최고의 요리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어디서 딸랑딸랑 종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아부도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인데, 샤피로는 그런 게 없었다.

르니예는 와장창 깨진 감동에, 열불 터지는 속을 숨기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침실.

르니예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앉았다. 그들은 어제처럼 침대의 끝과 끝에 자리를 잡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눕지 않고 침대 헤드에 기대 대화를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오늘 상단에서 무슨 일 없었나.”

“무슨 일이요?”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르니예는 상단 이야기가 나오자 바짝 긴장했다.

“괴롭히는 사람은 없는지, 일은 힘들지 않은지 궁금하군.”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한 네 번째 방법, 대화하기다. 대화를 많이 나누되, 아내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준다.

“실은, 하녀 하나가 상단 물건을 도둑질하려고 했어요.”

르니예는 이참에 벨데메르를 깨웠던 붉은 보석에 대해 물어볼 셈이었다.

“당신을 깨울 때 쓰던 그 붉은 보석요. 원래 상단의 소유물이었거든요. 물론 지금은 당신이 가져가서 없지만, 그게 아직도 있는 줄 알고 훔치려고 했나 봐요.”

르니예는 벨데메르가 이 이야기를 딱히 불쾌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물었다.

“아, 블러디 사파이어를 말하는군.”

“블러디 사파이어가 보석 이름이에요?”

“그건 내 피로 만들어진 보석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지. 그것을 흡수해야 몸에 피가 돌고 심장이 뛰게 되는 것이다.”

벨데메르가 조각상 밖에 나와 있는 동안, 누구도 그 보석을 훔치지 못한다 그거지.

“그 보석이 마음에 들었나?”

“네, 예뻤어요.”

“확실히, 그대 목에 걸면 잘 어울리겠군.”

벨데메르는 목걸이를 금방이라도 걸어 줄 것처럼 르니예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주었다.

부드러운 머리칼이 그의 손가락을 매끄럽게 빠져나가고, 벨데메르와 르니예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어색한 기류가 흘렀지만, 누구 하나 눈을 피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눈을 맞추고 천천히 서로에게로 향하는데…….

별안간 노크 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노크의 주인은 누구인지 고민할 것도 없이 당연히,

“주인님, 잠자리를 봐 드리러 왔습니다.”

망할 샤피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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