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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집 살림을 하는 중입니다만-11화 (11/120)
  • 11화. 찬양하라

    광장 한가운데 서 있는 벨데메르의 조각상을 보며 르니예는 잠시 정신을 놓을 뻔했다.

    분명 반으로 갈라지면서 바닥에 부딪혀 여러 조각이 났는데, 어쩜 말끔하게도 붙어 있었다.

    누가 그랬을까? 왜? 어떤 목적으로?

    르니예는 황급히 벨데메르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너무 급하게 가느라 길을 빙 둘러 가는 것도 잊은 르니예는, 들어가자마자 비질을 하는 샤피로를 붙들었다.

    “샤피로, 큰일 났어.”

    “무슨 일입니까, 르니예 님?”

    “광장에, 광장에……!”

    르니예는 광장 쪽으로 손가락질을 하며 흥분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샤피로는 그 손가락을 가만히 보다가, 르니예의 손가락을 옆으로 밀어 반대편을 향하게 한 다음 말했다.

    “이쪽이 광장입니다.”

    “지금 방향이 중요한 게 아니야. 광장에,”

    “광장에 있는 주인님의 조각상을 보셨군요.”

    “그래, 주인님의 조각상을……, 너도 봤어?”

    샤피로는 당연한 걸 뭘 묻느냐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제가 가져다 놓은 것인데요.”

    “……네가? 왜?”

    “결혼 선물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결혼 선물이라고? 그때 말한 결혼 선물이, 설마 저거야?

    “아니, 조각상을 저렇게 다른 사람들 다 보는 곳에 세워 둬도 괜찮아?”

    “물론입니다. 주인님께서 그 안에 잠들어 계실 때야 시끄러우니 밖에 세워 두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니까요. 인간들이 그 주위에 몰려 있던가요?”

    “응.”

    르니예의 대답에 샤피로는 내심 뿌듯한 얼굴이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주인님께서는 찬양받으실 줄 알았어요. 찬양받아 마땅하시니까요.”

    아, 여기랑은 대화가 안 되겠구나, 하고 르니예는 깨달았다. 하긴 사역마와 무슨 진지한 대화를 나누겠는가.

    르니예는 혼자 실실 웃으며 인간들이여, 찬양하라 따위의 말을 중얼거리는 샤피로를 등지고 이 층으로 올라갔다.

    “벨데메르.”

    르니예는 벨데메르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광장에 당신 조각상이 있는 거 알아요?”

    벨데메르라면, 다른 사람의 손끝이 닿는 것도 싫어하는 그라면 분명 조각상을 치우라고 할 거야.

    “알고 있다.”

    “그, 다른 사람들이 막 조각상 구경하는데 괜찮아요?”

    “그런 시선은 익숙하지.”

    벨데메르는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책 속에 쓰여 있기를, 자고로 좋은 남편이란 아내가 일하고 돌아오면 다정하게 맞아 주어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 다정하게 맞아 주지? 가벼운 포옹 정도가 괜찮겠군. 벨데메르는 잠시 고민하고 결론을 내렸다.

    “내 조각상을 다른 이들이 보는 게 싫은가?”

    벨데메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전히 황당해하는 르니예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나를 소유하는 것은 그대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도록.”

    벨데메르는 여전히 문고리를 잡고 있는 르니예를 두 팔로 감싸 안았다. 르니예는 갑작스러운 포옹에 놀라 눈동자만 또르르 굴렸다.

    “오늘도 수고했다.”

    “……네? 아, 예.”

    뭘까. 이 포옹은 뭘까.

    르니예는 도저히 벨데메르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 조각상에 봉인된 마법사의 머릿속을 이해하려 했던 것이 잘못이다.

    “…….”

    조각상은 밤에 몰래 치워야겠다. 그걸 어디에 놔둬야 할까, 창고에? 아니면 방에? 르니예의 머릿속은 조각상을 어디에 숨길지 그 고민으로 가득 찼다.

    “…….”

    그에 비해 벨데메르의 머릿속은 책에서 읽은 내용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단 일하고 돌아온 르니예를 포옹으로 따듯하게 맞아 주었다. 이다음은 아침에 가벼운 입맞춤으로 르니예를 깨워 주는 것이다.

    이건 절대 르니예와 입을 맞추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어서 르니예의 소원을 이뤄 주고 다음 소원으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일 뿐이다.

    “그런데 르니예, 그대는 언제까지 상단에서 지낼 거지?”

    아침에 르니예를 깨워 주려면, 일단 르니예와 같이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그런데 르니예는 결혼식이 끝난 이후에도 내내 밤만 되면 상단으로 돌아갔다.

    “결혼식이 끝났으니 이제 여기서 지내도 좋다. 오늘부터, 같이 자지.”

    “네?”

    지금 같이, 뭘 하자고 한 거지? 자자고? 침대도 하나뿐인데, 그럼 한 침대에서 자는 거야?

    물론 결혼식까지 올렸으니 한 침대에서 자는 게 이상한 건 아니지만, 그렇지만……!

    아니다. 언젠간 올 일이었다. 예상 못 한 건 아니었잖아. 르니예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잠옷이나 필요한 게 있으면 상단으로 샤피로를 보내서 가져오게 시키지.”

    “아뇨, 아니요!”

    르니예는 고개를 저으면서 손사래까지 쳤다. 샤피로를 상단에 보내는 순간, 르니예의 정체부터 에드윈의 존재까지 들키고 말 것이다.

    “그, 여자 숙소에는 남자가 못 들어가요.”

    “아, 그런가.”

    거짓말도 자꾸 하면 는다고 했던가. 급히 생각해 낸 거짓말치고 상당히 괜찮았다.

    “그 옷을 입고 자기에는 불편할 텐데.”

    “속치마만 입고 자면 돼요.”

    “그게 편하다면 그러도록.”

    르니예는 어색하게 웃고서 옷방으로 향했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상도 하고 있었고, 마음의 준비도 어느 정도 했지만 이상하게 떨렸다.

    남편이 하나 있는 걸 숨기고 결혼해서 그런가?

    “혼자 하려니까 잘 안 되네.”

    문제는 또 있었다. 오늘 르니예가 입은 원피스는 하필이면 뒤에 단추가 달린 것이었다.

    상단에 있을 때는 에니가 항상 곁에서 도와주니 단추가 달렸든 리본이 달렸든 신경 쓰지 않고 입었다.

    벨데메르한테 가서 풀어 달라고 해야 할까? 아니야, 그건 너무 유혹하는 거 같잖아.

    “르니예 님.”

    르니예가 혼자서 낑낑거리고 있는 때, 샤피로가 옷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너, 여기, 너…….”

    여자가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함부로 막 들어오다니. 어디서 배운 매너지? 벨데메르가 너를 그렇게 가르치더냐.

    르니예는 하고픈 말이 많았지만, 막상 말을 하려니 기가 차 말문이 턱 막혔다.

    “제가 사역마란 사실을 잊으신 건 아니시겠죠, 르니예 님. 저는 외형만 남성일 뿐입니다.”

    그렇기는 했다. 샤피로는 외형만 남자일 뿐, 그 안은 나무 인형이었다. 인형에 무슨 성별이 있겠나.

    어차피 혼자 옷 갈아입기는 글렀으므로, 르니예는 별말 없이 샤피로를 향해 등을 돌렸다.

    “단추 푸는 것만 도와줘.”

    “그러죠.”

    샤피로는 르니예의 등 뒤에 서서 능숙한 손길로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르니예 님.”

    그가 빠른 속도로 단추를 풀며 물었다.

    “이 옷은 어떻게 입으신 겁니까? 혼자서는 입을 수도 없을 것 같은데.”

    인형 주제에 쓸데없이 날카롭잖아? 르니예는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적시며 대답했다.

    “같은 방 쓰는 친구한테 부탁했지.”

    “아, 그렇습니까?”

    잘 넘겼다. 르니예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다가 도로 삼켰다.

    “다 되었습니다.”

    가슴과 등허리를 조이던 원피스가 느슨해졌다.

    “속치마가 매우 풍성하군요. 상단에서 일하는 점원이 이런 속치마를 입습니까?”

    탐정이야, 뭐야? 오늘따라 날카로운 질문을 많이 하는 샤피로를 향해, 르니예가 말했다.

    “샤피로.”

    “예, 르니예 님.”

    “나가.”

    부스럭.

    “…….”

    “…….”

    벨데메르의 방. 고요와 정적 속에 가끔가다 르니예의 속치마가 이불과 비벼지는 소리만이 울렸다.

    벨데메르와 르니예는 침대의 이 끝과 저 끝에 누워서 눈만 감고 있었다. 르니예는 누군가와 같은 침대를 쓴다는 것이 낯설었다.

    르니예는 결혼을 한 번 했지만, 그 후로도 내내 방을 혼자 썼다. 에드윈은 딱 첫날밤에만 르니예와 함께 자고 그 뒤로는 내내 자기 방에서 잠을 청했다.

    결혼했다고 같은 침대에 나란히 자는 생경한 경험에 르니예는 심장이 뛰어 쉬이 잠들 수가 없었다.

    벨데메르는 단 한 번도 누군가와 같은 침대에서 자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벨데메르가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자나?”

    “아뇨, 아직……. 혹시 불편하세요?”

    “아니, 아니다. 그저 잘 자라고 말하고 싶었을 뿐.”

    “아…….”

    벨데메르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아침에 르니예보다 먼저 일어나 달콤한 입맞춤으로 그녀의 잠을 깨우기.

    그러려면 르니예보다 먼저 일어나서 적당한 시간에 르니예를 깨워야 했다. 그는 완벽주의적 성향으로 작은 계획도 철저하게 세웠다.

    벨데메르는 르니예의 깨워야 할 완벽한 타이밍을 생각하다가, 르니예보다 늦게 잠들었다. 그래도 그는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아, 잘 잤다.”

    “……?”

    그런데 르니예도 거의 동시에 눈을 떴다. 잠자리가 불편해 선잠이 들었던 르니예는 햇살이 방 안으로 비치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벨데메르, 일어났어요?”

    “……그래. 일찍 일어났군.”

    “준비하고 나가려면 이 시간에는 일어나야죠.”

    준비하고 나가는 시간을 계산하지 못했다. 실수다. 천하의 벨데메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벨데메르는 스스로에게 아주 완벽히 실망했다. 조각상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더니 감을 잃은 모양이다.

    “그럼 다녀올게요.”

    “르니예, 잠깐.”

    아침에 입맞춤으로 깨우는 건 실패했지만, 그것 말고도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서 할 일이 많았다.

    벨데메르는 문 앞에서 르니예를 살포시 끌어안았다.

    “조심해서 다녀오고, 일찍 들어와.”

    “……그럴게요.”

    귓가로 내려앉는 낮은 목소리에 르니예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신혼이란 이런 건가?

    르니예는 달아오른 얼굴을 들킬까 얼른 뒤돌아 나갔다.

    “샤피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벨데메르는 서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샤피로를 불렀다.

    “어제 계획은 실패했다. 다음 계획으로 넘어간다.”

    좋은 남편이 되는 것, 생각보다 쉽지 않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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