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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집 살림을 하는 중입니다만-6화 (6/120)
  • 6화. 나를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것인가

    “저기 벨데메르,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뭐지?”

    “그게.”

    르니예는 저를 쳐다보는 벨데메르의 시선에 흠칫했다. 그의 눈동자는 매번 르니예의 숨을 턱 막히게 했다.

    긴장을 놓았다가는 자칫 그의 눈 속에 도사리는 어둠에 잡아먹힐 것만 같았다.

    “궁금한 게 뭔데 그리 뜸을 들이지?“

    막상 입을 열었더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지간한 짓을 해서는 조각상에 갇히지 않을 텐데. 엄청 무시무시한 일을 했겠지?

    혹시 그 이유를 듣고 나면 듣기 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건 아닐까?

    “왜 벨데메르의 몸에 손을 대면 안 돼요?”

    르니예는 진짜 물어보고 싶은 것 말고 다른 질문을 해 버렸다. 사실, 이것도 좀 궁금하기는 했다.

    “내 몸에 손을 대고 싶은 모양이군.”

    벨데메르는 마치 올 것이 왔다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나를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건가?”

    아니, 뭐, 소원을 빌 때 이런 생각을 하고 빈 건 아니었지만, 이왕 남편이 되었으면 손도 잡아 주고 안아 주고 하면 좋지 않겠나.

    “그건 아니고요, 그냥 좀 궁금해서요.”

    “이유 정도는 알려 달라?”

    벨데메르는 르니예의 속을 읽은 것처럼 물었다. 속내를 간파당한 르니예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래. 넌 내 부인이니, 이유 정도는 알 권리가 있겠지.”

    르니예는 귀가 솔깃했다. 그를 만지면 안 되는 이유가 뭘까. 위대한 마법사라고 했으니 아마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기분이 나쁘기 때문이다.”

    “예?”

    “누가 날 만지면 기분이 상하더군. 기분이 상하면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없어.”

    겨우 그런 이유인가? 기분이 나빠서?

    “연구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주의라서.”

    그런 이유로 벨데메르는 지금까지 누구와 손 한 번 제대로 잡아 본 일이 없었다.

    “아…….”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였지만, 이해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던 르니예가 멈칫했다.

    “그런데요.”

    “또 뭐지?”

    “지금은 연구 안 하시잖아요. 그런데도 만지면 안 돼요?”

    르니예의 질문에 벨데메르는 마른 한숨을 쉬었다.

    그래, 만지고 싶겠지. 안고 싶겠지.

    남편이 되어 달라 소원을 빌었을 때, 그 소원 안에 든 욕망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만지게 해 줄 수는 없지만 마음껏 보게 해 줄 수는 있다.”

    “예?”

    “이 정도로 만족해 주면 좋겠군.”

    벨데메르가 셔츠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눈빛으로 만진다고 생각해라.”

    가세는 자꾸만 기울고, 어머니의 병은 날로 깊어졌다. 에드윈은 죽어가는 어머니를 지켜보지 못해 기사 작위를 버리고 용병이 되려고 했다.

    그 사실을 안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아 덕분에 병은 더욱 나빠졌다. 이도 저도 못 하게 된 에드윈에게 콜론이 손을 내민 건 그때였다.

    그가 요구한 것은 딱 하나,

    ‘내 딸과 결혼해 주시오, 에드윈 경.’

    그의 딸과 에드윈이 혼인하는 것이었다.

    급한 마음에 한 결혼이었다. 그러나 결혼하고 나서 보니 콜론이 하는 일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추악했다.

    그 추악함을 바탕으로 쌓인 부 위에서 에드윈은 안락했다.

    하여 그는 르니예를 사랑할 수 없었다. 르니예에게서 콜론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 자신도 사랑할 수 없었다. 저 역시도 콜론이 주는 돈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에드윈은 상단의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마음을 준 이는 프리야였다.

    “이혼은 조금만 기다려 줘, 프리야.”

    프리야는, 에드윈과 비슷했다. 빚을 갚기 위해 스스로 노예가 되어 들어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프리야는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보다 강했다.

    “지금 당장 이혼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 이유를 말해 주고 싶지만…….”

    그래서 에드윈은 프리야를 지키고 싶었다. 프리야가 꺾이지 않고 계속해서 밝게 살아갈 수 있도록.

    “에밀리 아가씨가 결혼할 사람을 데려와서 그런 게 아닌가요?”

    “그건 그냥 둘러댄 말이다. 실은 다른 이유가 있어. 하지만 지금은 말해 줄 수 없구나.”

    이혼을 할 수 없는 사정을 프리야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이유도 프리야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위험한 일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말해 주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프리야는 언제나 그를 이해해 주었다. 이 상단에서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므로.

    “저, 그리고, 이혼을 꼭 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혼하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이혼은 할 거야, 조만간. 그래서 바딜에게 집을 알아보라고 시켰다.”

    바딜은 그가 라포어 가문에서 데려온 하인이었다.

    “집이요? 무슨 집이요?”

    “네가 살 집. 이제 여기서 계속 살 필요가 없으니.”

    이혼하자는 르니예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결국 이혼은 하게 될 것이다.

    에드윈은 그동안 프리야가 상단을 벗어나 편히 지내기를 바랐다.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하면 좋겠지만, 거긴 너무 멀어.”

    너무 멀면 프리야를 지켜 줄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동생들을 이쪽으로 오라고 하는 건 어떤가?”

    “저기, 작은 주인님, 잠시만요.”

    프리야는 에드윈이 한 말을 이해하려는 듯 잠깐 그의 말을 멈추었다.

    “저는 계속 상단에 있고 싶어요.”

    “여기서 지내면 힘들 거야. 눈치도 보이고. 게다가 이제 빚도 없으니 굳이 여기서 일할 필요도 없지.”

    에드윈의 걱정스러운 말에 프리야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여기 있을래요.”

    프리야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며 에드윈에게만 들리도록 낮게 속삭였다.

    “같이 나가고 싶어서 그래요. 저만 나가 살면 왠지 헤어지는 거 같아서 싫어요.”

    “프리야…….”

    저와 떨어지기 싫다는 프리야의 말에 에드윈은 흔들렸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내보내기 어려울 텐데.

    에드윈은 프리야를 더 설득해 보려고 했지만, 결국 설득당한 것은 에드윈이었다.

    아찔했어.

    샤피로가 오지 않았다면 르니예는 정말 눈빛으로 그의 몸을 만질 뻔했다.

    “정말이지 인간의 욕망이란.”

    샤피로는 벨데메르의 셔츠를 다시 잠그며 르니예를 향해 세모눈을 떴다. 누가 보면 샤피로의 남편을 르니예가 빼앗아 가는 것처럼 오해할지도 몰랐다.

    “결혼식 전까지는 안 됩니다.”

    “하지만.”

    “주인님을 남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사시죠.”

    샤피로가 뱀처럼 눈을 흘겼다. 시어머니가 따로 없다.

    “결혼식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혼자 입술을 삐죽거리는 르니예에게 샤피로가 물었다. 벨데메르도 결혼식 진행 상황이 궁금한지 르니예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뭐, 잘되고 있어.”

    가장 인적이 드문 바닷가를 찾았고, 돈만 주면 가짜 주례도 서 주는 신관도 섭외했다.

    “이제 가서 식만 올리면 돼.”

    “웨딩드레스는 어떻게 됐지?”

    가만히 듣고 있던 벨데메르가 물었다.

    “입고 싶은 웨딩드레스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웨딩드레스는 원하는 것으로 구한 건가?”

    “네? 아, 네.”

    내 웨딩드레스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을 줄 알았는데.

    죄책감이 르니예를 쿡쿡 찌르는 듯했다. 왜냐면 웨딩드레스는, 에드윈과 결혼할 때 입었던 걸 재탕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르니예는 어쩐지 굉장히 나쁜 짓을 하는 기분이었다.

    “제가 아주 멋진 결혼 선물도 준비했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르니예 님.”

    “어? 어어, 고마워.”

    거기에 르니예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줄 알았던 샤피로까지 보태니, 르니예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졌다.

    * * *

    급하게 준비한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작은 마님, 아니, 아가씨, 아니지, 르니예.”

    에니는 가짜 결혼식 준비보다 호칭을 바꾸는 게 더 어려웠다. 벨데메르는 르니예가 상단에서 일하는 줄로만 알았다.

    상단의 일개 직원이 아가씨라고 불리는 건, 오랫동안 조각상에 있던 벨데메르에게도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해서 르니예는 에니를 친한 동료로 소개했다. 평생 아가씨라 부른 사람을 갑자기 이름으로 부르려니, 에니는 헷갈려 미칠 지경이었다.

    “바람이 많이 부네요. 면사포가 날아가지 않게 조심해야겠어요.”

    “난 결혼이랑 인연이 없나 봐.”

    첫 번째 결혼식에서는 남편이 죽상이더니, 이번에는 날씨가 죽상이다. 곧 비라도 쏟아질 것처럼 우중충한 하늘에 바람도 세게 불었다.

    하지만 겨우 이 정도에 결혼을 미룰 순 없지.

    르니예는 호기롭게 밖으로 나섰다.

    “…….”

    따귀를 때리듯 불어오는 바람에 면사포가 얼굴에 막 들러붙었다.

    에니는 날아가는 드레스 자락을 잡아 내리고, 뒤집어지는 면사포를 원상태로 돌려놓느라 바빴다.

    “역시 멋있으십니다, 주인님.”

    하지만 샤피로는 손뼉이나 칠 정도로 한가했다. 이 거친 바람에도 벨데메르는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바람이 마치 그를 피해서 부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멋있네요, 아가, 아니 르니예.”

    에니가 벨데메르를 보며 귓가에 속삭였다. 르니예도 그렇게 생각했다. 천 쪼가리를 둘러도 멋있는 남자가 작정하고 꾸미니, 기가 질릴 정도였다.

    “그럼 전 하객석에 가 있을게요.”

    이 결혼식의 증인은 샤피로와 에니였다. 그들이 하객석에 서고, 르니예는 두 번째로 걷는 흰 카펫 위에 벨데메르와 나란히 섰다.

    “팔짱을…….”

    무심코 팔짱을 끼고 들어가려던 르니예가 흠칫했다. 벨데메르는 살이 닿는 것은 싫다고 했다.

    “나란히 서서 가요.”

    “좋은 생각이다.”

    르니예는 벨데메르에게 뻗었던 팔을 돌려 두 손으로 부케를 꼭 잡았다. 팔짱도 끼지 않고 행진하는 신랑 신부라니.

    뭐, 의례적으로 하는 결혼식인데 아무렴 어떠랴.

    “신랑과 신부는 입장하십시오.”

    르니예와 벨데메르는 신관의 목소리에 천천히 걸음을 뗐다. 제대로 식이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샤피로는 벌써 눈물을 찍어냈다.

    “우리 주인님이 저런 인간이랑 혼인을 하시다니.”

    기껏해야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정도인 흰 카펫을 마주하고 서 있는 에니에게도 샤피로의 중얼거림이 선명히 들렸다.

    “우리 아가, 아니 르니예가 어디가 어때서 저 난리람.”

    르니예에게는 그저 남편이 하나 더 있을 뿐이었다. 그 정도 흠은 누구나 다 있는 것 아닌가.

    “흠은 흠인가? 뭐, 아무튼 그래도!”

    어쨌든 눈물을 흘릴 정도로 벨데메르에 비해 르니예가 꿀리지는 않는단 뜻이었다.

    “좋은 날 분위기 다 망치네.”

    에니가 들으란 듯 혼잣말을 했고, 샤피로는 실크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다 멈추고서 그대로 에니를 노려보았다.

    “흥, 신부 쪽이나 좋겠지.”

    “뭐야?”

    그들의 말싸움은 신관 바로 앞까지 온 벨데메르와 르니예에 의해 가로막혔다. 그들은 서로 멀뚱멀뚱 서서 신관이 하는 주례를 들었다.

    신관은 어쩐지 서두르게 되었다. 그는 허겁지겁 마무리하며 말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신랑과 신부는 맹세의 키스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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