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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집 살림을 하는 중입니다만-5화 (5/120)
  • 5화. 식은 수프 먹기보다 쉬운 이혼?

    에니는 서둘러 상단으로 돌아왔다. 르니예에게 어서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한발 늦었다.

    에니가 도착했을 때, 집을 나갔던 프리야가 돌아와 있었다.

    “정말 죄송해요, 작은 마님.”

    프리야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프리야의 옆에 서 있는 에드윈은 그 눈물을 닦아 주지 못해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괜찮아, 프리야.”

    르니예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돌아와서 다행이야.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거든.”

    프리야가 혼자 있었다면 그녀의 침대 밑에서 발견한 물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에드윈이 있어 그 말은 나중으로 미뤘다.

    “무슨 말인지 몰라도, 조금 이따가,”

    “에드윈.”

    르니예가 에드윈의 말 허리를 잘랐다.

    “에드윈한테도 하고 싶은 말이에요. 그러니까 두 사람이 같이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에드윈의 잘생긴 이마가 찌푸려졌다. 르니예가 프리야와 자신을 두고 할 말이야 뻔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그동안 너무 심하게 굴었지? 미안해, 프리야. 늦었지만 사과할게.”

    그다지 진심은 아니었다. 곧 이어지는 말에 개연성을 덧붙이기 위해서라고나 할까.

    “작은 마님……?”

    “내가 너한테 못되게 굴었잖아. 그래서 사과의 의미로 네 빚은 모두 없던 걸로 하기로 했어.”

    프리야는 너무 놀라서 울던 것도 까먹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한 것 또한 봉급으로 쳐서 줄 거야.”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해가 잘…….”

    프리야가 황당해 말끝을 흐렸다. 프리야의 반응은 이해할 법했다.

    어제까지 저를 잡아 죽일 듯하던 사람이 오늘 갑자기 사과하면 좀 무섭겠지.

    “넌 이제 자유의 몸이라는 거야.”

    하지만 이 과정은 꼭 필요했다. 르니예는 이혼을 좋게 좋게, 물 흐르듯, 큰 잡음 없이 해결하고 싶었다.

    왜냐면 이제 르니예도 당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에드윈에게도 프리야가 있었지만, 그는 귀족이었다.

    귀족끼리 결혼해도 정부를 두고 사는 마당에, 평민과 결혼한 귀족이 정부 한 명 두는 거? 그건 애초에 흠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귀족과 결혼한 평민이 정부를 두면 어떨까? 잘못하면 르니예는 전 재산을 에드윈에게 빼앗길 수도 있었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신분이란 그랬다.

    콜론이 기를 쓰고 르니예를 귀족으로 만든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부인,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그야, 당신이랑 이혼하고 싶은데 당신은 프리야만 두고 나가지 않을 테니까 그렇지.

    “사과하는 거예요. 프리야와 당신한테. 나 때문에 괴로웠으니까. 하지만 이제 그럴 일 없을 거예요.”

    르니예는 한숨 같은 심호흡을 흘리고 어렵사리 입을 뗐다. 몇 번이나 속으로 연습했어도 그 말을 막상 하려니 쉽지 않았다.

    그래도 말해야만 했다.

    “이혼해요, 우리.”

    르니예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어서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와 버렸다. 그 뒤를 에니가 재빨리 따라가려고 했지만, 에드윈이 한발 빨랐다.

    “이혼을 하자는 겁니까, 지금?”

    “네.”

    에드윈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거칠게 머리를 쓸어 올렸다.

    “상당히 당황스러운 제안이군요, 부인.”

    “당신도 원하는 거 아니었어요?”

    르니예는 마치 저에게 미련이라도 보이는 듯한 에드윈의 반응이 낯설었다.

    “이제 당신도 당신이 원하는 사람이랑 살아요.”

    “프리야와는 그런 사이 아니라고 말했을 텐데요.”

    “그럼 나를 사랑해요?”

    르니예의 물음에 지금까지 잘만 대답하던 에드윈의 말문이 막혔다. 그럴 줄 알았다. 예상했던 반응이지만 직접 보니 마음은 조금 아팠다.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데 왜 이혼을 안 한다는 거죠?”

    “……당장은, 이혼할 수 없습니다.”

    에드윈은 복잡한 얼굴이었다.

    “에밀리가 곧 결혼할 사람을 데려온다고 하더군요. 약혼할 동안만이라도 이혼을 미뤘으면 합니다.”

    에밀리는 에드윈의 동생이었다. 르니예는 잠깐 고민하는 듯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결혼하는 데 이것저것 비용이 많이 들지.

    르니예는 이것이 에드윈의 마지막 부탁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주기로 했다.

    “알았어요. 그럴게요.”

    잠시 말없이 서 있던 에드윈이 나가고, 르니예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말 끝이구나.

    남은 미련이 없는 줄 알았는데, 괜히 입이 썼다.

    “작은 마님!”

    막 울음이 터지려는 찰나에 에니가 방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지금 울고 계실 때가 아니에요.”

    “나 안 울었는데…….”

    “제가 지금 뭘 보고 왔는지 아세요?”

    에니는 르니예의 손에 손수건을 쥐여 주고서, 자신은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그런 다음 프리야의 집에 갔다 온 이야기를 빠르고 간결하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던 프리야의 사연이 다 가짜다?”

    “그렇다니까요.”

    막 터지려던 눈물이 언제 그랬냐는 듯 쏙 들어갔다.

    “왜 그런 거짓말을 꾸몄지? 의도적으로 에드윈에게 접근하려고?”

    “아니면 의도적으로 이 저택에 들어오려고 그랬을 수도 있죠.”

    콜론은 자린고비 같은 면이 있어서, 저택에서 잡일을 하는 고용인들을 따로 두지 않았다.

    그는 대신, 저에게 빚을 지고 갚지 못하는 이들을 잡아 와 하인으로 부렸다.

    반대로 말하자면 저택에서 잡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콜론에게 빚을 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저번에 말씀하셨던 그 보석이요. 조각상을 깨우는 열쇠라고 했던 거 말이에요.”

    “응, 그거 왜?”

    “프리야는 그게 없어졌는데 왜 안 찾는 거죠?”

    순간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없어진 줄 모르거나, 아니면 가져간 사람을 알고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게 없어진 날 프리야도 없어졌다는 게 수상하지 않으세요?”

    “하지만 내가 가져간 건 모를 텐데.”

    “다른 사람이 가져갔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요?”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만약 프리야가 소원을 빌기 전이었다면, 보석을 다시 가져가려고 하겠지.”

    하지만 그 보석은 이미 르니예 수중에 없다.

    소원을 빌 때 벨데메르의 입에 물려 주었더니, 그가 흡수해 버렸다.

    “사실 그것보다 급한 일이 있어.”

    “불안하네요, 작은 마님.”

    에니는 다가올 재앙에 대비하듯 심호흡을 했다.

    “결혼식을 올려야 될 것 같아.”

    “……아가씨.”

    말을 이룰 수 없는 황당함에 에니의 입에서 오래전부터 입에 붙은 호칭이 튀어나왔다.

    에니는 진심으로 진지하게 물었다.

    “정말 감옥에 가려고 그러시는 거예요?”

    * * *

    저녁 시간. 어스름이 앉을 무렵이면 르니예는 시꺼먼 로브를 뒤집어쓰고 일부러 먼 길을 돌아서 벨데메르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식도 올리기 전에 합방은 무슨 합방이냐는 샤피로의 시어머니 뺨치는 잔소리에, 르니예는 상단에서 벨데메르의 집을 매일같이 오고 가는 중이었다.

    편히 잠을 잘 수 있는 건 다행이었지만, 저택을 자주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게 문제였다.

    행여나 누가 르니예를 알아보기라도 할까 봐 르니예는 매번 골목을 빙글빙글 돌아서 벨데메르에게 향했다.

    “……?”

    오늘도 언제나처럼 뒷문을 통해 들어가려는데 담벼락의 그림자가 눈에 걸렸다. 고르게 일자로 나 있는 그림자 가운데에 무언가가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그림자가 있으니 유령은 아니겠군.

    “저기요, 거기 담 위에 올라가 계신 분.”

    유령이 아니라면 무섭지 않았다.

    “헉!”

    누군가 높다란 담장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르니예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떨어뜨리기 전에 내려오는 게 좋을 거야.”

    보자마자 촉이 왔다. 담벼락에 매달려 있는 저 남자는 이 집에 유령이 있도록 꾸민 그 마법사일 것이다.

    도둑이라고 하기에는 매달려 있는 폼이 너무 어설펐으니까. 남자는 멈칫거리면서 르니예의 앞으로 착지했다.

    “남의 집은 왜 훔쳐봐?”

    “남의 집이라니, 저기가 당신 집이야?”

    남자가 뻔뻔하게 말하며 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회색으로 바랜 머리칼이 정전기에 붕붕 떴다.

    머리칼이 희게 셀 정도의 나이로는 보이지 않는데. 르니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여긴 콜론 상단 소유의 집이야.”

    “그럼 당신이 그 콜론이야?”

    남자는 르니예를 콜론 상단에서 나온 직원쯤으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아니, 나 그 집 딸.”

    기세등등한 남자의 기운이 한풀 꺾였다. 르니예는 아버지의 악명을 잘 알았다. 그게 슬프면서도 한편으로는 유용했다. 지금처럼.

    “당신이 이 집에 마법을 걸었지? 유령이 나오는 것처럼 보이게.”

    르니예는 남자의 놀란 반응을 기대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혹은 자신은 절대 아니라는 식의 당황한 모습이 나오리라 생각했다.

    “정말 그분인가?”

    하지만 남자의 반응은 태연했다. 마치 벨데메르가 그걸 몰랐다면 더 이상했을 거라는 듯이.

    “남의 집을 무단 점거한 주제에 굉장히 뻔뻔하시네.”

    마을 사람들은 이 집을 유령의 집이라고 불렀지만, 상단 사람들은 이 집을 ‘콜론의 근심걱정’이라고 불렀다.

    콜론은 거금을 들여 땅을 사고 집을 지었는데, 집값이 떨어지다 못해 바닥을 치니 콜론의 상심이 말이 아니었다.

    “우리 아버지가 당신 가만두지 않을걸.”

    “……실험실이 필요한데, 돈이 없어서 그랬어.”

    남자의 목소리가 아까와 달리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내 말을 잘 들으면, 내가 좀 도와줄 수도 있어. 어때? 내가 시키는 일 하나 할래?”

    “무슨 일인데?”

    “이 집은 당분간 계속 유령이 나오는 집이어야 되거든. 그러니까 어디 가서 마법으로 만든 가짜 유령이니 어쩌니 떠들고 다니지 마.”

    르니예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분을 숨기기 위함인가?”

    그랬다. 르니예는 당분간 벨데메르를 이 집에 숨겨 둘 셈이었다.

    유령의 정체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게 밝혀지면 상단에서는 바로 집을 팔려고 할 것이고, 그러면 벨데메르가 살 곳을 또 구해야 하니까.

    “당신이 이 집에 숨겨 두고 있는 사람, 벨데메르 맞지?”

    유령이 나오는 것처럼 집을 꾸민 마법사의 이름은 체이스.

    그는 마법 실험에 몰두하느라 전 재산을 날리고 남의 집을 무단으로 점거하며 살고 있지만, 마법에 대한 지식은 상당했다.

    그리고 그는 벨데메르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벨데메르, 위대한 마법사지. 그가 만든 마법이 현재 마법의 기본이 되었다고 해도 무방해.’

    체이스의 말에 따르면 이제는 많이 잊혔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은 아는 위대한 마법사라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지. 왜 사라졌는지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아.’

    위대한 마법사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아무도 그의 행방을 모른다. 그러나 벨데메르는 조각상에 봉인이 되어서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었다.

    왤까.

    “샤피로는 어디 갔나 봐요?”

    “갈 곳이 있다는군.”

    “아, 그렇구나. 여분의 옷을 좀 가져왔어요.”

    르니예는 옷 꾸러미를 내려놓으며 힐끗힐끗 벨데메르를 쳐다보았다. 샤피로가 위대한 마법사, 마법사 노래를 부르더니 정말로 유명한 마법사였단 말이지.

    마법 실력이 출중한데 외모까지 저렇게 훌륭한 걸 보면 신의 사랑을 아주 듬뿍 받은 것 같은데.

    “르니예.”

    “네?”

    “그렇게 쳐다봐도 안 돼. 혼인을 올리기 전까지 나와 한 침대를 쓸 수 없다.”

    벨데메르는 단호하게 말했다. 르니예는 도대체 벨데메르가 저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잠깐 궁금해졌다.

    하지만 진짜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그는 왜 조각상에 봉인되었을까? 그런 걸 물어봐도 되는 걸까?

    “저기, 벨데메르, 궁금한 게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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