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긴 환절기
두꺼운 붕대로 난자된 다리를 매만졌다. 다행히 다시 수술해야 한다거나, 깁스해야 한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된통 혼이 났다. 의사에게 또 가족들에게. 겉으로 봤을 때나 멀쩡하지 속은 아닌 걸 제발 인지하고 살란다.
욕설이 난무하던 누나들의 걱정을 떠올린 은한이 비실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털썩 테이블에 볼을 묻었다. 한쪽 손으론 볼펜을 쥔 채다.
“흐음…….”
은한은 편지를 쓰는 중이었다. 물론 한결에게. 시험 마지막 날, 다급하게 끊은 전화 이후로 그의 목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모든 게 끝나고 나서야 궁금해졌다. 너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런 목소리로 전화를 건 걸까. 하지만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로나마 말을 전하고 있었다. 아니, 말이 아니라 사죄라 해야 하나.
화가 난 거겠지. 실망했을 터다. 서운한 마음이야 당연하고.
첫 편지는 온통 변명뿐이었다.
힘들었어. 바빴어. 일이 많았어. 또…… 아팠어. 다쳤어. 병원도 다녀왔어. 온갖 변명을 붙이고 또 붙였다. 두 번째 편지 역시 그리 적어 내려가다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이건 그냥 내가 존나 힘들었으니 네가 이해하라는 거잖아. 종이를 와드득 구겨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 후로는 사과만 보냈다. 절절한 고백은 덤이었다.
그러나 답장은 오지 않았다. 여름방학이 반절이나 흘렀는데. 한결이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내일 인턴 끝나는데. 주말에 면회나 가 볼까. 지금까지는 진우의 만류로 면회를 가지 않았다. 보는 눈이 두 개면, 입은 네 개인 군대라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폐쇄적이고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소문이 빠르고, 더러운 곳이라 했다. 한결도 저도 그 말에 동의했었는데.
그러나 가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연락이 없으니 한결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픈 건 아닌지, 또 그 날, 전화로 하려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결아,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보고 싶어. 연락 좀 해 줘.>
늘 같은 문장으로 편지가 끝난다. 퇴근하자마자 편지 한 통을 썼다. 최근 일주일 내내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으아…….”
은한이 쭉 기지개를 켰다. 아직 10시도 안 된 초저녁인데 잠이 왔다. 뭐가 문제냐. 자면 되지. 이제 과제도, 시험도 없는데. 거기다 내일은 무려 인턴의 마지막 날이지 않은가. 코를 훌쩍인 은한이 화장실로 향했다.
칫솔을 입에 물고 핸드폰을 켰다. 슥슥, 사진첩을 넘긴다. 일과 관련한 이미지가 한바탕 지나가고 나니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한결이었다.
더는 아침잠이 없다 하더니 10시까지 퍼질러 자는 게 웃겨 사진을 찍었다. 아무렇게나 손 가는 대로 찍었는데도 참 잘생겼다.
다음 사진은 백반집에서 밥을 먹는 한결이었다. 입가에 밥풀을 묻혀 놓고도 제게 소시지 반찬을 밀어 주는 게 바보 같아서 찍었다. 그가 당장 지우라고 엄포를 놨는데 지우는 시늉만 하고 말았다. 그도 알고 있었지만, 굳이 더 언급하지 않아 고이고이 간직 중이다.
또 첫 휴가, 호텔 라운지에서 브런치를 먹는 한결의 모습도 있었다. 와인 잔에 물을 채워 놓고 폼을 잡고 있다. 메뉴도 몰라 검색까지 해 놓고. 호텔 침대에 누워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몇 장 더 넘기니 머리가 긴 한결이 나타났다. 진우, 태준과 함께 떠났던 바다 사진이었다. 추위에 얼어 투박한 미소를 지은 네 사람의 머리카락이 마구잡이로 휩쓸려 있다. 몰아치던 바람이 생각나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다음으로는 네이비색 맨투맨을 입고 요상한 표정을 지은 한결이 나왔다. 제가 잠시 고향에 내려갔을 때, 셀카나 하나 찍어 보내랬더니 한참 있다가 보낸 거였다. 누가 봐도 셀카를 처음 찍는 사람처럼 어색한 모양새에 깔깔 배를 잡고 굴렀었는데.
과거를 회상한 은한이 큭, 웃었다. 입안 가득 차오른 거품을 뱉어내고 다시 사진을 넘겼다.
그것 말고도 사진은 많았다. 첫눈이 오던 날, 고개를 잔뜩 치켜들고 눈을 받아먹는 것도 있었고, 국밥집에서 소주병을 마이크 삼아 노래를 부르는 것도 있었다. 놀이공원에서 각자 머리띠를 하나씩 쓰고 귀여운 척이란 척은 다 하는 사진, 술 마시고 인형 뽑기에 전 재산을 탕진해 울상인 사진도 있다.
마지막은 벽화 앞에서 네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벽화 완성 기념으로 찍었던 건데. 저 멀리 송충이 눈썹을 한 할머니가 보인다. 은한이 두 손가락으로 할머니 얼굴을 확대했다. 지금 벽화보다 훨씬 진한 눈썹에 낄낄거렸다.
그러다 타닥!
핸드폰을 떨어트리고야 말았다. 화들짝 놀라 물고 있던 칫솔도 놓친 채 핸드폰을 주웠는데,
“아씨!”
이미 운명하신 뒤였다. 그저 액정이 깨졌길 바랐거늘, 새까맣게 죽은 화면이 절망적이었다. 괜히 껐다, 켰다. 충전기를 끼웠다 말았다 해 봤지만, 종국에는 새파랗고 하얗고 또 붉고 푸른 선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산란했다.
내일 점심은 물 건너갔구나. 점심시간 동안 AS 센터에 들어앉아 있게 생겼다. 돈은 돈대로 깨지고. 시무룩해진 은한이 힘없이 화장실을 벗어났다.
다음 날 아침, 로퍼를 신던 은한이 멈칫, 굳었다. 신발장 한 귀퉁이에 한결이 줬던 하얀 운동화가 놓여 있다. 그걸 한참이나 바라봤다. 몇 번 신지 않아 반질반질하고 깨끗하다. 아껴 신겠다고 신발장에 두기만 해서기도 했고, 인턴을 하느라 신지 못 해서기도 했다.
“…….”
로퍼를 벗었다. 그리고 운동화에 발을 꿰었다. 팀장님도 후드 입고 다니시던데, 고작 운동화 신었다고 혼나진 않겠지. 거기다 마지막 날인데. 설마 뭐라고 할까.
톡톡 신발코로 바닥을 두드렸다. 로퍼보다 훨씬 가볍고 편안하다. 편지 한 묶음과 고장 난 핸드폰을 쥔 은한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근길에 올랐다.
* * *
은한은 기분이 좋았다. 알딸딸하니 취해서기도 했고, 배운 건 많았지만 힘들던 인턴이 끝나서기도 했다. 인턴 주제에 송별회를 참 크게도 했다. 얼른 졸업하고 정식으로 취직하라는 소리도 들었다.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 좁은 골목길은 밤에 잠겨 고요하기만 하다. 부러 천천히 걸었다. 이 감정을 뭐라고 해야 할까. 아, 그래. 해방감. 모든 업무에서 탈출한 해방감을 조금 더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2학기가 개강할 때까지 놀면 된다. 이제 늦잠도 잘 수 있고, 후드도 입고 다닐 수 있으며, 한결의 전화도 놓치지 않고 꼬박꼬박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전화가 와야 말이지.
이 정도로 연락이 오지 않는 건 단순히 화로 치부하기가 힘들다.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내일 일찍 면회라도 가 볼까.
근데 그렇게 가도, 백한결이 안 만나 주면 어쩌지.
상승 곡선의 최고점을 찍었던 기분이 하향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은한의 발걸음이 점점 더 느릿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뚝 멈췄다.
벽화 앞에서였다.
“…….”
그린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색이 거무튀튀하게 죽었다. 지나가는 비도, 바람도 또 가끔은 초등학생들의 손길까지. 모두 우두커니 서서 감당했기 때문이다. 한결이 신기하다며 웃던 주황색이 제일 퀴퀴하게 바래 있었다.
은한이 무지개의 세 번째 칸에 위치한 주황색을 검지로 문질렀다. 오돌토돌한 벽이 손끝으로 스며든다.
“……보고 싶다.”
그가 처음 입대했을 때도 이렇게나 보고 싶지 않았다. 하루에 한 번씩 꼬박꼬박 목소리라도 들었으니까. 은한이 입술을 말아 물곤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 매달린 작은 봉투가 대롱대롱 흔들린다.
혹여 핸드폰 안에 들어 있는 사진을 복구하지 못할까 봐, AS센터 전에 사진관에 먼저 들렀다. 다행히 안에 있는 데이터는 괜찮은 모양인지 인쇄가 된단다. 어젯밤에 돌려 봤던 사진을 죄다 인쇄했다. 한결과 진우, 그리고 태준에게 하나하나씩 넣어 편지를 부쳐 줄 셈이었다.
은한이 희끄무레한 가로등 빛에 비쳐 사진을 훑었다. 볼 때마다 웃음이 새는 사진들이다. 한결의 독사진과 넷이서 함께 찍은 사진 몇 장을 빼내 가방에 넣었다. 이건 내 거. 내일 침대 맡에다 멋들어지게 붙여야지.
기분이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질질 끌던 발걸음이 산뜻해졌다. 멀지 않은 거리에 백색 가로등이 나타났다. 은한은 여전히 사진에 코를 파묻은 채였다. 그러다 가로등에 다다라서야 익숙한 인영을 발견했다.
“백……한결?”
“…….”
금방까지 벽화를 매만지며 떠올렸던 한결이었다. 까만 볼캡을 푹 눌러쓰고 있긴 했지만 분명 한결이다. 순식간에 알코올이 휘발했다.
은한이 후다닥 사진을 뒤로 숨겼다. 딴에 이벤트라고 준비한 거라서 벌써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반가운 마음과 당혹스러운 마음이 공존했다.
“너…… 여기 어떻게…… 아니, 전화는 왜 안 했…….”
“술 마셨어?”
“어? 아, 어. 조금. 오늘 인턴 끝났거든.”
“……끝났구나.”
한결이 가느다랗게 웃었다. 은한이 한 발자국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다 멈칫했다. 희미한 조명 아래로 언뜻 보이는 그가 볼품없이 말라 있어서. 날카로워진 인상이 낯설었다.
“은한아.”
“……어?”
목소리도 거칠다. 낮지만 한없이 보드랍던 음성과는 사뭇 달랐다. 은한이 버석하니 굳어 있자 한결이 다가왔다. 은한은 이유 모를 압박감에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설 뻔했다.
한결의 탁한 눈동자가 은한을 주시했다. 은한이 멀뚱히 그의 시선을 받아 냈다. 잔뜩 부르튼 그의 입술이 느릿하게 떨어졌다.
“이제 나 안 좋아해?”
“……뭐?”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말이다. 은한이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라고? 귀를 의심했다. 또렷이 들었지만,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아마 아닐 것이다. 대뜸 나타나서 한다는 말이 그따위일 리가. 제가 지금 술에 취해서, 그래서 잘못 들은 거다.
그러나 한결은 은한을 도와주지 않았다. 그가 다시금 비수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은한을 향한 비수인지 혹은 한결 자신을 향한 비수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바쁘니까. 내가 귀찮고, 그래?”
한결은 쾅쾅 쐐기를 은한의 몸뚱이에다 박고 또 박았다. 덕분에 가슴께가 꽉 막혀 숨쉬기가 어려웠다. 은한이 흡, 헛숨을 들이켰다.
“뭐라는 거야. 미쳤냐?”
3주 내내 연락 안 된 건 니 새끼면서. 갑자기 나타나서는 한다는 말이 고작…… 이제 나 안 좋아해? 따위라니. 화가 났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전화를 끊을 때마다 제가 어떤 마음이었는데.
은한이 무어라 말을 이으려 입을 뗐으나 한결이 더 빨랐다. 그는 모든 걸 포기하고 온 것처럼 두려운 것도, 거스를 것도 없어 보였다.
“맞잖아. 아닌데 왜 그렇게 변했어.”
“…….”
은한은 그 찰나, 아주 많은 것들을 돌이켜 봤다. 변했다, 라. 제가 그에게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변했나, 싶어서. 그리고 내린 결론은 긍정이었다.
맞다. 변했다. 모든 상황이 은한을 그리 만들었다. 의도했든 아니든, 변했다는 결과는 같았다.
하지만 정말…… 내 잘못이 아니잖아. 나는 최선을 다했어. 혹여 너에게 전화가 올까 매일 핸드폰을 쥐고 잠들었고, 일하다가도 네게 전화가 오면 온갖 눈치를 다 보며 비상구로 뛰어갔다. 이따금 휴가라도 나오면 전날 사흘은 꼬박 밤을 새워야 했다. 이박 삼일을 혹은 삼박 사일을 오롯이 너에게 할애하려고.
그러니까, 나는 너한테 이런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잘못하지 않았단 말이야.
은한이 뻑뻑한 눈두덩을 꾹꾹 짓눌렀다. 평소라면 손을 막으며 피곤해? 그리 물어 줬을 한결이 오늘은 그저 목도하기만 했다. 그가 나지막한 음성으로 끔찍한 대화를 이어 갔다. 아니, 대화라기보다는 독촉에 가까웠다.
“왜 전화 안 받아 줘.”
“아, 오늘 전화했어? 나 핸드폰이,”
“왜 나를 귀찮아해.”
“야. 너 말 되게 이상하게 한다.”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은한이 까득 어금니를 씹었다. 대화가 자꾸 겉돈다. 한결이 제 말을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안 만나 주냐니. 얘가 이렇게 어린 애였던가. 늘 어른스러웠던 것 같은데. 과거엔 제가 더 어려서 몰랐던 걸까. 아무리 이제 갓 성인의 이름을 가지게 됐다 한들, 그래도 성인이었다.
앞뒤 맥락 없이 만남을 조르면 안 된다는 거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어떻게 있을 줄 알고. 은한이 피곤한 얼굴로 마른세수했다.
“내가 바쁘다고 했잖아.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너 왜 이렇게 어려.”
“…….”
밋밋하던 한결의 얼굴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런 표정은 처음 봤다. 허나 은한은 그를 챙겨 줄 여력이 부족했다. 어그러지는 제 마음을 감당해 내기도 벅찼다.
덥다. 졸리다. 매미 소리가 시끄럽다. 길바닥에 서 있는 무릎도 아프고. 제게 뭘 요구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한결도 미웠다. 감정이 제멋대로 발광했다.
“이제 네가 안 좋냐니……. 귀찮냐니……. 내가 받기 싫어서, 귀찮아서 안 받은 거 아니잖아. 분명히 내가! 다시 전화해 달라고! 제발, 까지 붙여 가면서 말했잖아!”
은한이 주먹을 틀어쥐었다. 막 한결의 옷자락을 잡으려 할 때였다. 한결이 두 걸음이나 뒤로 물러섰다. 무려, 두 걸음이었다. 은한의 손이 볼품없이 허공에 나부꼈다. 심장은 더러운 길바닥 귀퉁이에 처박힌 지 오래였다.
잠시 시간이 멈췄다. 그 순간은 세차게 울던 매미도, 부유하는 공기도 사라지고 진공 상태에 이르렀다.
하얀 가로등 빛이 한결의 위로 떨어진다. 그런데도 그는 아주 새카만 어둠 안에 있었다. 푹 고꾸라진 얼굴에 그림자가 가득해서 어떠한 표정을 하고 있는지, 어떠한 감정을 품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은한은 그의 표정을 보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바닥에 퍼질러 앉아 갓난쟁이처럼 엉엉 울음을 터트릴지도 몰랐다.
한결의 목소리가 희뿌연 빛 사이로 흘러왔다.
“맞아. 나 어려. 나는…… 아직도 스무 살이야. 네 연락 하나가 너무 소중하고, 종일 기다리고, 휴가 하루 받겠다고 남들보다 흙바닥을 몇 번이나 더 뒹굴어.”
은한은 귀를 막고 싶었다.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의 말을 들어 버리면, 아주 잔혹한 미래가 도래할 듯했다.
물론 너도 힘들었겠지. 근데 나도 힘들었잖아. 그러니까 그냥, 좀, 같이 맞춰 가고 넘어가고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조금만 버티면 다 끝날 일인데. 평생 이어질 순간들이 아닌데. 조금만 더 있으면, 우리 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근데 네가…… 날 귀찮아하면, 나는 어떡하니. 은한아.”
“내가 귀찮아한 거 아니라고 방금 말했…….”
“차라리 이럴 거면 그만 만나자고 하지. 꾸역꾸역 왜 쥐고 있어, 나를.”
입을 앙다문 은한이 부릅 눈을 치켜떴다. 설마설마했는데 그 말까지 나올 줄이야. 성큼성큼 그를 향해 다가갔다. 이제 고작 한 뼘 떨어진 거린데 여전히 한결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오는 대로 가감 없이 못된 말을 쏟아낼 수 있었다.
“내가 너를 쥐고 있는 거라고? 그래서 우리가 사귀는 거야? 그럼 너는. 너는 이미 나를 놨어?”
“…….”
“백한결. 너 지금 네가 무슨 말 하고 있는지 자각은 하고 있는 거냐? 술 마셨어? 아니면 돌았냐? 어?”
씩씩, 분노한 숨이 아무렇게나 날뛴다.
“아니라고. 귀찮아 한 거 아니라고. 왜 네 멋대로 결론 내리고 와서 나한테…….”
“네가 무서워.”
“……뭐?”
은한이 퍼석하게 굳었다. 무섭다니. 입술이 벙긋벙긋 아래위로 움직였다. 그게 다였다. 차마 할 말을 찾지 못해서, 헌데 또 무슨 말이든 해야 할 듯싶어서.
“전화 걸 때마다 수십 번씩 고민해. 은한이 네가 뭘 하고 있을까. 바쁘지 않을까. 내가 괜히 시간을 뺏는 게 아닐까. 이러다 나한테 질리면 어쩌지. 그런 걱정으로 수화기를 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
“네가 무서워. 날 버릴까 봐. 날 떠날까 봐. 나를 귀찮은 짐처럼 느낄까 봐.”
“…….”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싫고 비참해.”
은한이 억척스레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지 않고는 눈물을 떨어트릴 것 같아서. 방금 한결에게 어리다, 비난해 놓고 제가 울 순 없었다. 그 순간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멍청하게.
“지금도……, 네 얼굴 보고 있기가 힘들어.”
한결의 말 음절 하나하나가 송곳처럼 온몸을 찌른다. 그래, 결국엔 다 내 잘못이라는 거지. 은한이 죄인처럼 고개를 오그렸다. 하얀 운동화가 흐릿하게 번졌다. 코끝이 찡하고 눈알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호흡이 꺽꺽 이상하게 뒤틀렸다.
언젠가 한결에게 메시지를 보내지 않아 그가 섭섭한 마음을 터놓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분명 그랬었는데.
“내가, 말해 달라고 했잖아……. 처음이라 다 낯설고 서툴다고…… 말해 달라고 했잖아…….”
“…….”
“나한테 무섭다고, 얼굴 보기 힘들다고 하기 전에…… 뭐가 어떻게 틀렸는지 말해 줬어야지……. 그 정도 기회는 줬어야지…….”
은한이 아주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래도 흐린 시야는 거두어지지 않았다. 한결은 대답이 없었다.
그 순간, 은한을 모든 걸 포기했다. 이미 한결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왔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대화의 결론이 뭔데.”
“그만하자, 우리.”
“…….”
끝끝내 한결의 입 밖으로 마지막이 쏟아졌다. 은한은 답하지 않았다. 감히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이런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다. 그러니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시작도 네 멋대로 하더니.”
“…….”
“끝도 이따위야.”
“미안.”
“거짓말. 하나도 안 미안하잖아, 너.”
모든 게 한결이 만들어 낸 파도에 휩쓸려 가고 북받치는 감정만 남았다. 그 감정이 어떠한 감정인지 정의 내리지 못했다. 그만큼, 은한은 엉망이었다.
“…….”
“…….”
잠시 은한을 내려다보던 한결이 발걸음을 뗐다. 그리고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은한을 지나쳤다. 은한은 내리쬐는 가로등 빛을 폭우처럼 맞으며 굳어 있었다.
잘 자. 밥 챙겨 먹어. 내일 봐. 전화할게. 늘 그런 말로 만남의 마침표가 찍혔는데. 오늘은 기이할 만큼 적막하다.
그때 은한은 그러면 안 됐다.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봤어야 했는데. 많이 힘들었냐고. 미안하다고.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라고. 우리 조금만 더 참자고. 그리 말해 줬어야 했는데.
하지만 은한은 힘들었다. 사랑도, 일도. 모든 것이 처음이라. 뭐 하나 익숙하고 능숙한 게 없었다. 하루하루가 힘겹고, 아프고, 밉고. 그래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그중에서 가장 놓고 싶지 않던 게 한결이었는데. 결국엔 한결이 먼저 절 놨다.
한참을 멀뚱히 굳어 있던 은한이 문득 고개를 돌렸다. 금세 작아진 한결의 뒷모습이 보였다.
은한이 씨근덕거리며 그에게 달려갔다. 한결의 팔뚝을 아무렇게나 잡아챘다. 부러 한결의 얼굴은 바라보지 않은 채 커다란 손만 주시했다. 움켜쥐고 있어 마구잡이로 구겨진 사진을 그의 손에 쥐여 줬다.
구겨진 사진이, 구겨진 추억이 되어 버렸다. 곧 악몽으로 이름을 바꾸겠지.
“이거 가지고 가.”
“…….”
“아. 내 얼굴 보기 힘들다 그랬지. 가다가 버리든지, 내 얼굴만 잘라 내든지. 네 좆대로 해.”
“…….”
한결이 미처 대답할 새도 없이 다시 뒤를 돈 은한이 달음박질쳤다. 발목과 무릎이 찌릿찌릿 저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온 얼굴을 물들인 눈물을 들킬까 봐서.
세상 어느 연인보다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지만, 이렇게나 급작스레 이별을 경험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눈물에 흠뻑 젖은 은한은 부지런히 골목을 내달렸고, 사진을 쥔 채 우두커니 선 한결은 멀어지는 그를 고요히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등을 돌렸다.
깊은 자정, 두 사람이 사라진 골목에 제법 찬 바람이 불었다.
가을이 오려나 보다.
* * *
달라진 건 없었다. 해는 여전히 아침에 떴고, 달 역시 밤을 지배했다. 은한도 그랬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달이 뜨면 잤다. 그렇게 살다 보니 살아지더라. 뭐 살지 않으면 어쨌겠느냐마는.
오늘은 수강신청 날이었다. 미현이 선배에게 들었다며 꿀 강의만 쏙쏙 골라다 알려 줬다. 컴퓨터 앞에 앉은 은한이 무표정한 얼굴로 희망 강의 목록을 훑었다.
광고사진기법. 아이덴티티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익숙하면서도 낯선 활자를 몇 번이고 곱씹었다.
그러다 잠깐 호흡이 흐트러지는 틈이 생기면, 후두둑.
“어…….”
발작처럼 눈물이 치솟았다. 운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했다. 코가 시큰해지고 볼이 축축해져야 아, 또 구나. 그렇게 알았다. 두 손에 얼굴을 파묻은 은한이 바르르 어깨를 떨었다.
“흐으……. 큽, 흐…… 으윽.”
한결이 보고 싶었다. 그리워 미칠 것 같았다.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후회가 됐다. 한 번이라도 잡아 볼걸. 사과라도 할 걸.
처음에는 그저 밉기만 했다. 제멋대로 판단하고 마음이 떠났니, 귀찮니 따위의 불만을 토로하던 게 어이가 없어서. 원래부터 그렇게 어린놈이었구나. 차라리 잘 됐다. 그런 생각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느끼고야 만 것이다. 잠잠한 핸드폰을 보는 중이었다. 왜 보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보고 있었다. 한참이나 있다가 알았다. 제가 한결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그때 무시무시한 현실을 온몸으로 느꼈다.
아. 백한결이 나한테 전화할 리가 없구나.
나는 이제 그의 전화를 기다릴 권리조차 없구나.
그걸 깨닫는 순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슬퍼졌다. 멍하니 숨 쉬고 있는 것조차 고역이라 친구들을 만났다. 약속을 만들고 또 만들고. 하루도 빠짐없이 술도 마셨다. 끝은 늘 같았다. 얼큰히 술에 취해 한결의 이름을 울부짖는 것. 꼴사납고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그건 찰나였다.
모든 게 동나고 슬픔과 그리움만이 남았다.
은한이 흐린 시야로 노트북을 닫았다.
학교에 다닐 자신이 없다. 온통 한결이라서. 길거리에도, 학교에도, 하다못해 집에도 한결이 가득했다. 키스를 준비하며 열심히 양치질하던 칫솔도 두 개고, 함께 누워 자던 베개도 두 개다. 협탁 아래에 있는 콘돔도 그대로고, 제 것처럼 입던 한결의 후드도 여전히 옷장에 걸려 있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공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한결이 폐부에 차올랐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사랑이라는 게, 하는 것보다 잊는 게 어렵다고. 그걸 몸소 증명하게 될 줄이야.
은한이 더듬더듬 핸드폰을 찾아들었다. 그리고 익숙한 번호를 꾹 눌렀다. 모든 공간에 존재하는 한결에게서 도망쳐야 했다. 그러지 않고는 곧 질식해 죽을지도 몰랐다.
뚜르르, 뚜르르. 단조로운 신호음이 귓구멍을 괴롭혔다.
-어. 누나 세미나 왔어. 통화 길게 못 한다.
“누……나.”
-……은한아?
은한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한결에 북받친 숨이 쉬이 진정이 안 됐다. 헛숨을 잔뜩 들이킨 채 말을 눌렀다.
“누나. 작은 누나 있는 곳이 뉴욕인가?”
-그렇지?
“나 거기 놀러 가고 싶어.”
-갑자기? 곧 개강 아니야? 얼마나 있게?
백한결 잊을 정도만. 홀라당 까먹을 정도만. 길에서 만나도 걔인지 못 알아볼 정도만.
“오래. 아주, 아주 오래.”
-…….
말 대신 들려오는 침묵에 은한이 다급히 입술을 뗐다. 간절히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안 되면 조금이라도…….”
-어학연수 프로그램 알아볼 테니까, 일단 대구 내려와.
“……진짜?”
-그래. 끊는다.
뚝. 전화가 끊겼다. 허무할 정도로 쉽게 떠날 수 있게 됐다. 잠시 넋을 놓고 있던 은한이 허겁지겁 짐을 싸기 시작했다. 한 시라도 일찍 떠나야 한다. 한시라도 빨리, 한결에게서 벗어나야 했다.
커다란 백팩에 닥치는 대로 옷을 쑤셔 넣었다. 캐리어도 채웠다. 한결의 손이 닿았던 건 하나도 담지 않았다. 그러고 나니 짐이 없었다. 그가 제 삶에 이렇게나 깊숙이 들어와 있었구나. 그걸 또 한 번 깨달았다.
모자를 눌러쓴 은한이 현관 앞에 섰다. 그리고 잠시 신발장에 시선을 허비했다.
가지런히 놓인 흰 운동화가 잊고 싶은 추억을 자꾸만 상기하게 했다. 스물한 살 생일. 그 어떤 생일보다 정성스러운 축하를 받은 그날. 서럽고 또 서럽던 하루를 그의 미소 한 번에 모두 떨쳐 냈던 그날.
간신히 운동화에서 눈을 뗐다. 조금 낡은 검은색 컨버스에 발을 꿰었다. 자주 신었던 것인데, 말도 못 하게 발이 불편했다. 하지만 곧 괜찮이 질 것이다. 곧,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다. 한결이 없던 과거로, 금세, 돌아갈 수 있을 거다.
그래야만 했다.
단단히 입술을 말아 문 은한이 현관문을 열었다.
달칵.
그가 떠난 자리에, 하얀 운동화 하나가 덩그러니 남았다.
은한이 버린 첫 번째 한결이었다.
* * *
-미국? 미이국? 미이구욱? 그것도 1녀언? 미친 거 아니냐, 너?!
“미안…….”
-진짜 존나 너무해! 와 진짜 와…….
“미안. 내가 올 때 화장품 왕창 사 올게. 옷은? 옷도 사 올게. 그리고 어…… 인형도 사 올까? 너 좋아하는 외계인 캐릭터 종류별로 사 올게. 어?”
-닥쳐. 누가 받아 준대? 네가 돌아올 때까지 친구 해 준대? 아니? 우리 오늘부로 절굔데?
“아, 미현아. 미안하다니까.”
공항 한가운데에 선 은한이 동동 발을 굴렀다. 멍한 정신으로 짐도 부치고, 출국 심사도 끝냈다. 게이트 앞에 앉아 탑승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가, 비로소 친구들의 존재를 떠올렸다.
미현은 불같이 화를 냈다. 휴학만으로도 놀랄 노 잔데, 미국이라니. 그럴 만도 했다.
-됐다. 됐어. 끊어, 나쁜 놈아.
“어떻게 끊어. 한 번만 봐주라. 어?”
-꺼져. 끊는다.
“미현…….”
미처 말할 새도 없이 전화가 끊겼다. 은한이 후다닥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신호음만 이어질 뿐, 미현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아씨…….”
은한이 털썩 쓰러지듯 의자에 앉았다. 공항의 전면 창문으로 쏟아지는 화창한 하늘이 야속하다. 비까지는 안 바랄 테니까, 좀 흐려 주기라도 하지.
백한결 하나만 떠나보내려 했는데, 잃는 게 너무 많다.
이마에 손등을 얹은 은한이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학교 다닐 걸 그랬나. 또 과제와 시험에 치이다 보면,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너무 성급했나. 제가 영화 주인공도 아니고, 이별 신파를 너무 거하게 찍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우우웅 핸드폰이 울렸다. 미현이었다.
[미현: 잘 다녀와, 개새야.]
[미현: 진짜 개새끼.]
[미현: 비행기에서 잠 하나도 안 와라. 궁둥이에 쥐 나라. 기내식 맛없어라. 옆자리에 땀 냄새나는 사람 앉아라. 시차 적응 못해라.]
귀여운 협박이 와르르 쏟아진다. 은한이 비실 웃음을 흘렸다. 알았어. 그럴게. 그리 메시지를 쓰고 있는데 사진이 하나 왔다. 검정색 패키지의 립스틱 사진이었다.
[미현: 사진]
[미현: 이거 한국에 안 들어오는 라인이거든? 색별로 전부 사 와라. 그럼 돌아와서도 친구 해 줄게.]
1년이나 있는 거면 한 달에 하나씩만 사도 되겠네. 미현 님한테 속죄한다, 생각하고 사. 은한이 고개까지 끄덕이며 그러겠노라, 답을 보냈다. 때마침 탑승이 시작됐다.
다행히 비행기 옆자리엔 땀 냄새가 나는 사람이 앉지도 않았고, 기내식도 맛있게 먹었다. 그래도 잠은 오지 않았다. 영화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암전된 화면을 풀린 동공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별이라도 보이면 좋으련만, 온통 어두컴컴하기만 하다. 그래도 고집스레 새까만 하늘을 노려봤다.
어렴풋이 보이는 구름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떠올랐다.
“…….”
또. 또 백한결이다.
은한이 질끈 눈을 감으며 짜증스레 얼굴을 문질렀다. 그래도 한결의 얼굴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이 정도면 병 아닌가. 미국 말고, 병원엘 갔어야 했나.
구역질할 것 같다. 속이 메슥거렸다. 코끝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비행기가 멈출 때까지, 14시간의 비행시간 내내 한결은 은한을 바라보기도 했고, 말을 걸기도 했으며, 팔꿈치나 등허리를 함부로 만지기도 했다.
그만 좀 해!
악을 내지르고 싶었다.
* * *
맨해튼은 서울보다 곱절로 복잡하고, 바쁘게 돌아갔다. 전 세계의 사람들, 각양각색의 언어, 다채로운 패션, 낯선 문화. 맛있는 음식, 화려한 관광지. 모든 게 있지만, 그 어디에도, 한결은 없었다.
그래서 좋았다. 가끔, 종종, 이따금 속에서 치솟는 한결만 꽉꽉 눌러 내리면 참을 만했다. 멀미도 하지 않았고, 머리도 아프지 않았으며 밥도 잘 먹었다. 그저 수면만 조금 불규칙할 뿐.
겨울의 뉴욕은 새하얗다. 눈이 어찌나 많이 오는지, 학원에 도착할 때쯤이면 발가락이 꽁꽁 얼어 무뎠다.
넙데데한 백팩을 멘 은한이 교실에 들어섰다. 후끈한 히터에 코끝까지 올리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냈다.
“하니. 안녕?”
“응. 안녕.”
브라질에서 온 파비우가 능글맞게 손을 흔든다. 태닝을 해서 까무잡잡한 피부에 헬스 중독이라 두툼한 팔뚝. 저보다 두 살이나 많은데 하는 행동은 장난기 많고 철없는 고등학생 같았다. 아, 하태준 외국인 버전. 그게 딱 알맞은 묘사겠다.
단조로이 인사한 은한이 자리에 앉아 책을 꺼냈다. 꼬부랑글씨가 가득한 책은 멀미까지 유발했다.
파비우가 돌돌 의자를 굴려 은한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어제 발켜졌어. 범인! 와 존나 소름! 문 고치는 아저씨 범인이었어! 여주가 위험했는데 남주가 구해 줘써!”
“그랬어?”
“어! 근데 다음 편 예고 안 해 줬다. 개빡쳐.”
파비우는 광적일 정도로 한국 드라마를 좋아했다. 뉴욕 어학연수도 한국인들이 많이 온다고 해서 왔단다. 차라리 그냥 한국을 가지. 불행하게도(은한에게만. 파비우에겐 더할 나위 없이 행운이다.) B2 클래스에 한국인은 은한밖에 없었다. 파비우는 수업시간 동안 눈을 반짝이며 선생님이 아니라 은한을 봤다.
와, 한국인이야. 드라마에서만 보던 한국인이야. 한국인은 정말 예쁘고 잘생겼다. 어떻게 피부가 그리 좋아? 찜질방은 일주일에 몇 번이나 가? 양머리 해 봤어? 한국은 땅이 작으니까 연예인 쉽게 봐? 이동욱 봤어? 잘생겼지? 나는 그 사람이 인간이라는 걸 믿을 수 없어.
어색한 한국어로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낸다. 아아, 비속어는 은한만큼이나 능통했다.
“하니. 한국어 좀 해죠. 길게. 존멋. 한국어 so amazing.”
오늘도 어김없이 질길 정도로 들러붙는 파비우다. 은한이 조금 짜증스러운 손길로 금발을 쓸어 넘겼다. 뉴욕에 온 지 일주일쯤 되던 날, 누나가 헤어숍에 간다기에 따라가 한 거였다.
“Fabiu. Why do you speak Korean though you came to learn English?(파비우. 영어를 배우러 와서 대체 왜 한국말을 하는 거야?)”
“그거야 한국어가 더 좋으니까! 브라질에서 못 배워! 한국어! 선생님두 없어!”
“아 싫어! 나는 영어 배우러 왔거든!”
“나는 하니에게 한국어 배우고 싶어. 친구는 이미 했어! 하니 내가 밥 사 줄게. 술도 사 줄게. 참이슬 먹자 우리! 나 짠하고 싶어! 아니면 소맥? 소맥 콜?”
대체 드라마에서 뭘 배운 건지. 물론 틀린 문화는 아니다만, 좀 텐션이 적당히 높으면 안 되는 거냐고. 그리고 소맥이라니. 맨해튼에서 소주가 얼만지 모르는 걸까.
은한은 누나와 코리아타운에서 곱창에 소주를 마셨다가 20만 원 돈이 나가는 걸 보고 소주는 입에도 대지 않게 됐다. 온갖 종류의 맥주와 보드카가 싸게 널려 있는데 굳이 그걸 찾아 마실 필요도 없었다.
은한이 샤프를 쥐었다. 빽빽한 영단어는 어제 새벽까지 열심히 외운 것인데도 낯설다.
“오늘 퀴즈에서 80점 맞으면 소맥 먹어 줄게.”
“오. 하니. 너는 내가 싫구나?”
그건 존나 불가능한 일인데! 파비우가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불평했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니 놀랍다. 눈치도 하태준 급이네. 은한이 비릿하게 웃으며 파비우의 머리칼을 헝클어트렸다. 파비우가 커다란 덩치를 구부정히 굽히며 좋다고 웃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하태준이랑 친구 시켜 주고 싶다.
은한이 생각했다.
수업이 끝나면 무거운 백팩을 이고 8 에비뉴 50 스트리트에 있는 스타벅스에 간다. 타임스퀘어 주변의 스타벅스 중 가장 사람이 없는 곳이었다. 그래도 창밖으로 충분히 뉴욕을 느낄 수 있는 장소라 자주 찾았다.
먼저 숙제를 한다. 한국 교육열이 세계 최고라 생각했는데, 티쳐들이 숙제 내주는 양을 보면 그것도 아닌 듯하다.
뉘엿뉘엿 해가 질 때가 되면 숙제가 끝난다. 그럼 소시지 체다 샌드위치에 초콜릿 머핀, 그리고 콜드 브루를 시킨다.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며 노트북을 켜고, 메일을 확인했다.
<클라이언트가 배경 톤 조절해 달래. 파란색도 별로고 녹색도 별로니까 청록색으로. 조금 더 고급스러운데 감성적이었으면 좋겠대. 지랄도 정도가 있지.>
어김없이 유란의 메일이 와 있었다. 인턴은 끝났지만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근근이 일하게 됐다. 뉴욕에서 학원비는 못 벌더라도 용돈 할 정도는 되니 두 팔 벌리고 환영이었다.
은한이 그러겠다, 답을 보내고 포토샵을 켰다. 프로그램이 켜지는 동안 이어폰을 꽂고 볼륨을 높였다. 듣기 좋은 가수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흔하디흔한 이별 노래였다. 홀로 청승을 떨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노래.
그러다 문득 컴퓨터 모니터가 희뿌예지는 순간이 있다. 골목의 백색 가로등 빛을 맞으며 서 있는 사람이 떠올라서. 상처받은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라서.
손등으로 눈두덩을 벅벅 문질렀다. 이제 이 정도의 눈물 따위는 흐르기도 전에 그칠 수 있게 됐다.
휙휙 노래를 팝 록으로 넘긴 은한이 잠시 창밖을 주시했다. 신기할 정도로 크고 동그란 눈송이가 펑펑 쏟아진다. 어깨를 웅크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리칼에, 어깨에도 눈이 쌓였다. 무거워 보이네. 춥겠다. 감흥 없이 생각했다.
서울도 눈 많이 오겠지.
창밖에 시선을 허비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초콜릿 머핀을 한가득 베어 문 은한이 다시 모니터에 집중했다.
아직은 잘 살고 있다.
낯선 곳에서 평범하고, 바쁘게.
* * *
겨울의 끝자락이다. 더 이상 눈은 오지 않았으나, 길목 그늘에는 여전히 눈이 뭉쳐 있었다. 새까맣게 때가 탄 눈이긴 하지만.
잠깐 열린 문틈 사이로 싸늘한 바람이 온몸을 때렸다. 은한이 으으. 앓는 소리를 내며 이글거리는 버너에 손을 쬈다.
식당 안은 뉴욕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난잡한 한국어만 들렸다. 물론 은한의 테이블도 그랬다. 오랜만에 보는 소주잔에 술을 따르고 잔을 들었다. 곧 똑같이 생긴 잔이 챙, 부딪쳐 온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술이 쓰다. 멀지 않은 과거에는 달았던 것 같은데. 요즘 편히 살고 있나 보다.
“한국이 그렇게 좋아?”
은한이 물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파비우가 젓가락을 휘두른다. 어쩜 버릇도 하태준이랑 판박이다.
“좋아! 영어 공부 끝나면 한국 가서 살 거야! 소맥 맨날 먹고 싶어. 대학교도 다녀 보고 싶고, 고깃집에서 알바도 해 보고 싶어. 어, 편의점 알바도! 그리고 짝은 원룸에서 살 거야.”
“……미친놈.”
네가 소년 가장이냐. 아니면 드라마 주인공이냐. 은한이 한 번 더 쭉 소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보글보글 끓고 있는 안주에 수저를 가져갔다. 무려 부대찌개다. 부대찌개.
미간이 좁고, 코가 높으며 눈이 움푹 패인 브라질 사람이 좋아하는 게 아무래도 신기한 음식. 국물을 한 숟갈 떠먹은 은한이 찬물로 입을 헹궜다. 아까까지만 해도 알딸딸했던 것 같은데 잠깐의 칼바람에 맨 정신이 됐다.
“한국 놀러 오면 내가 친구들 소개해 줄게. 내 친구들 되게 예뻐. 외국인을 만날 생각이 있는진 모르겠는데, 그래도 너 잘생겼으니까.”
“음…….”
파비우가 답지 않게 말을 먹는다. 삐죽이 올라간 그의 눈썹이 아래위로 들썩였다.
“하니.”
“응.”
“한국인이 조금 안 개방적인 거 알아.”
“뭐가?”
친구 소개해 준다는데 개방이 웬 말이야. 요즘 성균관 나오는 드라마 보니? 남녀칠세부동석 뭐 그런 거? 은한이 가느다란 눈으로 파비우를 쳐다봤다. 파비우가 데굴데굴 새까만 동공을 몇 번 굴리더니 께름칙하게 입을 뗐다.
“I'm gay.”
“엉?”
“그러니까, 어…… 뭐더라 동성-외자? 동성외…….”
“동성애자.”
“어! 그거야! 하니가 그거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미안해.”
은한이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놨다. 이 먼 타지에서 동족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니 또 따지고 보면 저도 게이라 정의 내리기 애매한 인간이긴 하다만. 어찌 됐든 반가웠다.
“……그런 거 미안해하는 거 아니야.”
과거에 진우가 했던 말이다. 은한이 초가 꼽힌 크리스마스 치킨을 떠올리며 작게 미소 지었다. 파비우가 짝짝 손뼉을 친다.
“진짜? 하니 존나 머시따.”
한국 드라마에는 게이 하나도 없어. 구글 찾아보니까 육요? 육오? 그거 때문에 다 싫어한대. 그래서 나는 쫌 무서워. 한국 가는 거. 근데 아니 들키면 되겠지?
그가 부지런히 입을 놀렸다. 은한이 대충 고개를 끄덕여 줬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아임 게이! 만 외치지 않으면 나쁜 시선을 받을 리는 없을 거다. 주변에 어르신이 있으면 딱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
은한이 까끌한 혀를 술로 축였다.
“육요 말고 유교. 아니 들키면 되겠지? 말고 안 들키면 되겠지.”
“와. 잠시만. 적을게.”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낸 파비우가 서툰 글씨로 유쿄, 를 쓴다. 은한이 펜을 빼앗아 유교. 똑바로 고쳐 줬다. 그가 호오 입술을 동그랗게 말았다.
그것 말고도 동성애자를 비롯해 그가 자주 틀리는 단어들을 고쳐 줬다. 파비우가 좋아 죽겠다는 듯 웃는다.
은한이 수첩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나도.”
“음?”
“나도 그거야. 동성애자.”
“……진짜? 한국에서도 그거 해?”
“응, 해. 사람 마음이 하지 말라고 해서 그리 되는 것도 아니고.”
“…….”
잠깐 악몽이 떠올랐다. 악몽이라 치부하기엔 잔잔하고 다정하지만, 그냥 제 아집으로 악몽이라 하겠다. 늦은 새벽에 그 사람 주머니에 손을 욱여넣고 길거리를 걸었던, 그때. 그때가 떠올랐다. 좁은 주머니에서 부대끼는 손이 참 따뜻했었는데.
“여기도 남친이랑 헤어지고 도망 온 거다. 존나 멋지지? 신파를 아주 제대로 찍는 중이야.”
수첩을 건네 준 은한이 삐뚜름히 턱을 괬다. 몽롱하게 뜨인 눈이 무언가에 척척하니 젖어있다. 아마 한결에 젖었으리라. 오랜만에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한결과의 추억을 되뇌었다.
같이 걷던 골목. 벽화. 국밥집. 도서관. 칫솔 두 개가 꽂힌 양치 컵. 두 사람이 꼭 끌어안고 자야 했던 슈퍼 싱글 침대.
그러다 보니 당연한 수순처럼 코가 시큰해졌다.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눈꺼풀을 꾹 세게 감았다가 떴다.
그를 물끄러미 주시하던 파비우가 검지로 눈물을 닦아 줬다. 은한이 고개를 뒤틀었다.
“야. 네가 잘생긴 게이고, 나도 존나 잘생긴 게이지만. 우리는 안 된다? 어? 노파심에 이야기하는 거야. 나는 이제 연애 안 해. 개씨-발 좆같아서.”
“하니 탑이야?”
“탑?”
얘가 말하는 탑이 다보탑이나 석가탑은 아닐 거고. 뭐 설마 그 탑? 먼 과거에 커뮤니티에서 배웠던 그 탑? 은한이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눈만 끔벅이고 있자 파비우가 그것도 모르냐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박는 거! 꼬추 넣는 거! 하니 게인데 그것도 몰라?”
“미친놈아!”
은한이 찰싹찰싹 파비우의 입술을 때렸다. 하지만 파비우의 불도저 같은 입은 멈출 줄을 몰랐다. 어쩌면 시뻘겋게 달아오른 은한을 놀리는 걸지도.
“나는 바텀이야. 바텀이 좋아. 하니 탑이면 내가 하니 꼬실게. 근데 하니는 바텀 같아. 아니면 미안. 근데 아니면 좋다. 나 하니 꼬실래.”
“닥쳐. 나 바텀이야, 씹새야. 박히는 거!”
“역시 그렇구나.”
“실망하지 마!”
은한은 테이블을 엎고 싶은 걸 간신히 눌러 내렸다. 의자를 끌어당긴 파비우가 은한의 욕설에도 능글맞게 말을 이었다.
“하니. 우리 같은 바텀이니까 섹스 이야기해도 돼?”
“안 돼!”
씨바. 이 새끼랑 술 마시는 게 아니었는데!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소파에 늘어지게 앉았다. 집에 들어설 때만 해도 취해 있었는데, 그새 깨 버렸다. 잠도 오질 않는다. 두 팔로 무릎을 끌어안았다. 언제부터 왔는지 모를 비가 커다란 창을 난도질한다. 고요한 적막을 어지럽히는 빗소리. 그러잖아도 밤에 물들어 까만 도시가, 비 때문에 더 어두워 보였다.
더할 나위 없이 잠을 자기 좋은 환경인데. 왜 이리 말똥한 걸까.
“하아…….”
백한결을 떠올려 버렸기 때문이겠지. 은한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오늘도 어슴푸레한 동이 뜨고 나서야 선잠이 들리란 걸.
잠을 자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것보다 부슬부슬 쏟아지는 한결을 감당해 내는 게 나았다. 이렇게 있다 보면 언젠간 무뎌지겠지. 언젠가는, 그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겠지. 그러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은 꼭 필요한 것이라 믿었다.
흐리게 빛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청승을 너무 자주 떤다, 너.”
“어…… 누나.”
은한이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듯, 벌떡 일어났다. 네이비 색 파자마 차림의 그녀가 냉장고에서 맥주 두 캔을 꺼내 왔다.
“안 잤어?”
“깼어. 비 오는 소리에.”
“아…….”
은한의 둘째 누나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덕분에 은한이 앞뒤 없이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던 거고.
꿈틀꿈틀 엉덩이를 옮겨 그녀가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털썩 주저앉은 그녀가 시원하게 맥주를 땄다.
“비 존나 오네. 출근하기 싫게.”
“내일 랩실 출근하지 말고 나랑 놀자. 나도 학원 빠지게.”
은한이 히죽이며 말했다. 이 새끼가. 너 학원비 언니가 내는 거 모르냐. 꾸지람과 함께 뒤통수를 맞았지만.
두 사람은 잠시 빗소리를 감상했다. 은한의 핸드폰이 울리지 않았다면, 언제까지고 그리 있었을 테다.
늦은 새벽인데, 이 시간에 누구지. 파비우가 아직도 안 자나. 무심코 핸드폰을 밝혔는데, 들이마신 숨을 다시 뱉어낼 수가 없었다.
[진우: 우리 제대했다.]
[진우: 개강 전까지 열심히 술 마시고, 열심히 놀 거야.]
[진우: 방울이는 어떻게 지내나?]
[진우: 살아있는 티라도 내 줘라.]
은한이 잠금 화면 위로 뜬 메시지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우리, 그리고 제대. 그가 말한 ‘우리’에 누가 포함되어 있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답장을 보내야 하나. 뭐라고 보내지. 축하한다고, 수고했다고. 그런 말 정도는 해야 할 듯싶은데. 엄지가 머뭇머뭇 허공을 맴도는 사이 메시지가 하나 더 왔다.
[진우: 정 없는 새끼.]
[진우: 우리 원래 친구였던 거 알지?]
[진우: 계속 친구 하자, 방울아.]
“…….”
은한은 답장을 포기했다. 마음이 울적해졌다. 무릎 사이에 코를 파묻고 있으니 누나가 흘끔 그를 살폈다. 동그란 금발 아래로 떨어진 목이 참 가느다랗다. 칼로리와 지방이 가득한 미국 음식을 먹으면서도 도통 살이 안 찐다. 그게 몹시, 안쓰러웠다.
“강은한.”
“어?”
“이제 말할 때도 되지 않았냐.”
“……뭘?”
은한은 어렴풋이 그녀의 말을 이해하면서도 시치미를 뗐다. 백한결이라는 거대한 존재를 토해 낼 자신이 없어서.
누나가 조금 짜증스런 손길로 마시던 맥주를 내려놨다. 수개월 동안 모호하게 뒤틀리는 동생을 봐 왔다.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뭔진 알 수 없으나, 이 정도면 됐다. 충분히 시간이 지났다.
“그렇게 있으면 고이는 거야. 고이다 보면 썩어.”
“…….”
“썩기 전에 버리든가, 어디로든 흐르게 둑을 파 주든가. 뭐든 해야지, 은한아.”
나지막이 채근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은한이 쓰게 웃었다. 그녀가 내려놓은 맥주를 훔쳐 벌컥벌컥 단숨에 삼켰다. 목구멍을 간지럽히는 탄산이 섬뜩하다.
“누나.”
“응.”
“나는 둑을 파는 사람이 아니야.”
“…….”
“나는, 그냥…… 고인 물이야.”
걔가 파 놓은 도랑에 고인 물. 버림은 진작 받았어. 그래서 나한테는 아무런 권리도 없어. 내가 바라는 건 하나뿐이야. 내가 얼른 썩어서, 도랑의 주인을 미워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아직은……
그립기만 해.
걔가 사무치게 그리워, 누나.
* * *
은한은 오늘도 어김없이 스타벅스에 앉아 있었다. 웬일로 과제가 적어서 신이 났다. 과제를 일찍 끝낸 기념으로 초콜릿 칩 머핀에 치즈 머핀까지 시켰다.
우물우물. 입안에서 흩어지는 단 밀가루 덩어리가 뭐라고 행복했다. 쭈웁. 콜드 브루까지 삼킨 은한이 분주한 창밖을 살폈다. 비가 오는 탓에 사람보다 우산이 훨씬 많다. 꼭 우산에 다리가 달린 것 같았다.
봄비치고는 비가 차다. 덕분에 한동안 하지 않던 목도리도 두르고 나왔다. 사람들의 입술 틈으로 하얀 연기가 뿜어졌다.
은한이 흥얼흥얼 알 수 없는 멜로디를 읊조렸다. 그에 맞춰 높은 의자 위에 떠 있는 다리가 달랑거린다.
유란 누나한테 메일이 안 왔으니까 일도 없는 것 같고. 오늘 한인 마트에서 장이나 볼까. 누나가 며칠 전에 김치찌개 먹고 싶다고 했었는데. 목살 좀 사다가 넣어서 해 놓으면 좋아하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
그때. 익숙한 실루엣 하나가 우산 숲 사이로 사라졌다. 은한이 쥐고 있던 커피를 뚝, 떨어트리듯 놨다.
분주히 눈동자를 굴렸다. 빽빽한 사람들 사이로 방금의 환영을 증명받으려 했다.
“어어…….”
마치 그런 은한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널따란 등 하나가 다시 우산 속에서 빠져나왔다. 은한은 차마 짐을 챙길 새도 없이 카페 문으로 내달렸다.
고작 얄팍한 문 하나를 열었을 뿐인데, 희미하던 빗소리가 고막을 세차게 두드려 왔다. 시야가 불편할 정도로 쏟아지는 비를 은한은 무서워하지 않았다. 망설임 없이 발을 디뎠다.
찰박찰박. 바짓단이 금세 무거워졌다. 온몸을 때리는 비가 차고 또 아팠다. 어깨와 팔이 치였지만 괜찮았다. 지끈거리는 무릎도 중요하지 않았다. 우산 틈으로 보이는 남자가 모든 신경을 지배해서.
잘못 본 거면 어쩌지.
하지만 여기 와서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혹시, 정말 혹시나 그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나를 보러 온 게 아닐까.
진짜일 거야. 잘못 본 게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내가 걔를 못 알아볼 리가…….
그런 비참한 기대를 했다. 꾸역꾸역 사람들을 헤치고 간격을 좁혀 갔다. 두 걸음 채 남지 않았을 때, 은한이 쑥 팔을 뻗었다.
“백한,”
“…….”
그리고 낯선 녹색 동공과 마주했다.
비가 잠시 멈춘 듯했다. 덩달아 볼품없이 뛰던 심장도 멈췄다.
“Pardon?”
“아…….”
진한 눈썹에 새하얀 피부. 은한이 저도 모르게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비틀거리는 얇은 몸뚱이에 이번에는 낯선 이가 다가왔다.
“Do you need any help?”
“No……, No. I'm okay, don't worry.”
은한이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를 이상한 눈으로 보던 낯선 이가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은한은 멍청하게 서서 멀어지는 남자의 등을 보고 있었다.
정말 전혀, 한결과 닮지 않았다. 대체 무엇을 보고 이 폭우를 뚫으며 여기까지 달려왔는지 이해가 안 됐다.
올곧이 서 있던 은한은 곧 세찬 비에 굴복했다. 그가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그제야 무릎이 아팠다. 쏟아지는 비가 파렴치한의 폭력처럼 느껴졌다. 입술이 새파랗게 얼 만큼 추웠다.
볼로 떨어지는 비만 뜨거웠다. 한참이나 있다가 알았다. 그게 눈물이라는 걸.
“어어엉…… 흐으, 어흑, 흐어-엉…….”
근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한결을 잊지 못했다.
길거리의 낯선 사람을 그로 믿고 싶어 할 만큼, 나약해지기까지 했다.
아아. 저는 언제쯤에야 온전히 썩어 그를 잊을 수 있을까.
어쩌면 평생 썩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비로소 두려워졌다.
* * *
“가지 마, 하니…….”
“어욱……. 한국 온다며.”
파비우가 힘껏 은한을 끌어안았다. 두툼한 팔뚝에 끼인 은한이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안겨 있었다.
오늘은 학원 마지막 날이다. 한국으로 떠나는 건 한참 후였지만, 정든 학원생들과는 이별해야 했다. 나이도, 국적도 제각각인 원생들은 처음엔 말이 통하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 근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지금은 함께 펍에 갈 정도로 친해졌다.
그러니 당연히 이별이 아쉽고 또 슬펐다. 이별이라는 게, 참 무뎌지질 않는다.
“한국 가면 나 만나 줄 거야?”
“내 신상 다 털어 갔잖아. 안 만나 주면 찾아올 거면서.”
파비우는 일주일 전부터 온갖 짓을 다 해 은한의 정보를 캤다. 집 주소, 학교, 과, 한국 핸드폰 번호까지.
“맞아. 하니. 이별 기념으로 키스해도 돼?”
“뒤지고 싶나 보지.”
으르대는 은한의 말에 파비우가 한국 욕은 들어도 들어도 귀엽다며 웃었다.
“잘 지내. 공부 좀 하고. 드라마 그만 보고.”
“싫어. 다 반대로 할 거야.”
“아…… 예. 그렇게 하세요.”
은한이 쯧쯧 혀를 차면서도 파비우의 등을 토닥였다. 파비우는 일 년 동안 영어는 아주 미미하게 늘었지만, 한국어는 능통하다는 수식어가 어울릴 만큼 잘하게 됐다. 다 끈질기게 은한을 쫓아다닌 덕이다. 물론 은한은 괴로웠지만 지나고 나니 썩 괜찮은 추억으로 미화했다.
“Bye, Hani.”
“Bye. Take care. I will miss you.”
“I am going to miss, too.”
다른 사람들과도 차근차근 인사했다. 백발의 노인도 있었고, 붉은 머리칼의 누나도 있었으며, 이제 막 열여덟 살이 된 소년도 있었다. 은한이 소년의 머리칼을 흩트렸다. 파란색 눈동자가 그렁그렁한 걸 보고 있으니 저도 마음이 울적했다.
“내가 공항에 마중 갈게!”
“마중 말고 배웅.”
“아. 내가 공항에 배웅 갈게!”
“됐어. 오지 마.”
가장 울상인 건 파비우였지만. 은한이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왠지 파비우라면 한국 드라마에서 본 장면을 재연하기 위해 플래카드까지 들고 나올 듯해서.
“왜! 안녕, 하니. 보고 싶을 거야, 하니. 플래카드 만들어서 갈래!”
역시나. 은한이 지끈거리는 관자놀이에 미간을 좁혔다. 어서 벗어나는 게 심상에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 번씩 포옹을 마친 은한이 미련 없이 교실을 나섰다. 파비우가 졸졸 따라 나오는 걸 알았지만 굳이 말리지 않았다.
뉴욕의 4월은 아름답다. 높은 빌딩 사이로 소소리 바람이 분다. 센트럴 파크는 푸르게 변모해 산책하지 않곤 못 배기게 만들었다.
건물을 나온 은한이 끙차, 기지개를 켰다. 섭섭한 마음도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감정은 후련함이다. 일 년 내내 파묻혀 있던 영어와도 작별이구나. 한국에 가도 끊임없이 달고 살아야 하는 영어긴 하나, 뭐…… 인턴 해 본 결과 그다지 필요하진 않더라.
“파비우.”
“응.”
“센트럴 파크에서 산책할까. 내가 커피 사 줄게.”
“그래!”
파비우가 펄쩍 뛰며 좋아했다. 시원하게 찢어지는 그의 입매가 누군가를 떠오르게 했지만, 눈코입이 또렷이 생각나기 전에 떨쳐 냈다.
“하니. 커피 마시고 치맥하러 가자.”
“싫어. 여기 치맥 존나 맛없어.”
“헐. 진짜? 맛없어? 여기 게 맛없으면 한국 치맥은 얼마나 맛있다는 거야?”
“궁금하면 와서 먹어 보든가.”
“어. 그럴게!”
파비우가 다짐하듯 당차게 끄덕였다. 픽. 작게 웃은 은한이 느릿하게 거리를 걸었다.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씩 다른 건물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노란 택시. 작은 햄버거 가게. 예쁜 디저트 가게와, 맛없는 피자를 파는 세븐 일레븐. 스트리트와 에비뉴가 적힌 녹색 표지판.
감흥 없이 지나쳤던 것들을 꼼꼼히 눈에 담았다. 쉽게 다시 올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니까. 아마 졸업을 하고, 취직하면 더더욱.
두 사람은 새까만 아이스커피에 조그마한 치즈 타르트까지 사 센트럴 파크에 도착했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람이 많은 공원인데. 어찌나 넓은지 답답하고 분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니. 한국 안 가면 안 돼?”
“왜?”
“뉴욕 좋잖아!”
“나는 여기 싫어. 한국이 좋아. 아무리 일 년이나 살았다 한들, 집처럼 느껴지진 않거든. 부모님이랑 친구들도 보고 싶고. 뉴욕에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니까.”
자박자박. 광활한 잔디밭을 둘러싼 산책로를 걸었다. 작은 모래가 곱게 깔린 게, 걸을 맛이 났다. 이건 아쉬울 것 같네. 서울은 전부 아스팔트니까. 학교 운동장이 아니고서야 모래 밟기가 힘들다.
은한이 쓰레기통에다 타르트 껍질을 버렸다. 파비우는 금세 비운 커피 컵까지 버렸다.
“그래도. 그 사람 있잖아.”
“…….”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은한이 애써 시선을 돌렸다. 상의를 벗고 태양을 즐기는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만개해 있다. 고작 햇볕이 뭐라고 저리 좋을까. 아직 쌀쌀한데.
“나는 하니가 아픈 게 싫어. 그 사람은 하니를 너무 아프게 하니까, 걱정돼.”
거기다 같은 학교라며. 한국은 너무너무 작은 나라야. 매일 마주칠지도 모른다고. 파비우가 끔찍하다는 듯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한결을 본 적도, 만난 적도 없으면서 참 진심으로도 미워한다.
은한이 가느다랗게 웃음을 흘렸다.
“이제 괜찮아.”
“거짓말.”
민망할 정도로 단호한 부정이 돌아온다. 은한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마구잡이로 머리칼을 흩트렸다. 얇은 금발이 아무렇게나 흔들렸다가 곧 제자리로 돌아갔다.
은한이 한 번 더, 꾸역꾸역 입꼬리를 올렸다.
“평생 안 괜찮지는 않을 거야.”
“…….”
“언젠가는 괜찮아지겠지.”
“…….”
“파비우도 전 애인 다 잊었잖아.”
“하지만 첫사랑은 아직 못 잊었는걸.”
은한의 동공이 거칠게 경련했다.
“뭐……?”
“하니. 첫사랑은 잊는 게 아니야. 묻어 두는 거지.”
파비우가 검지로 톡, 은한의 가슴을 두드렸다.
“첫사랑은 사랑을 배웠던 사람이잖아. 그래서 못 잊어. 다음 사람을 만나고 또 만나도, You'll think about him again(다시 그 사람이 생각날 거야).”
숨이 턱 막혔다. 이토록 절망적인 말이 또 있을까. 그를 잊지 못할 거라니. 그저 묻어 두기나 하라니. 만약 폭우라도 쏟아지면? 바람이라도 불면? 그럼 제 의사와 상관없이 또 그를 떠올리게 될 터였다.
“하니가 어서 그 사람을 묻길 바라.”
파비우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은한은 멍청한 낯으로 파비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그의 어깨너머에서 일렁이는 다른 사람을.
훼엥, 선득한 바람이 불었다. 일광욕하고 있던 사람들이 주섬주섬 옷을 찾아 입었다.
봄이 쉽게 오지 않을 모양이다.
* * *
학원이 끝나고, 은한은 두 달 가까이 미국을 여행했다. LA, 워싱턴 DC, 보스턴, 라스베이거스,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마이애미와 같은 큰 도시뿐만 아니라 대중교통이 존재하지 않는 시골 어귀까지 돌았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혼자 사색에 잠길 시간도 많았으며, 셀 수 없는 절경을 봤다.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누나와 일주일 정도를 보낸 후, 본격적으로 한국에 갈 채비를 시작했다.
짐이 많을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많았다. 부모님 선물, 누나 심부름, 친구들 선물, 종종 제가 산 잡다한 것들. 그것만 해도 캐리어 두 개가 그득히 찼다. 루돌프가 없는 말단 산타클로스가 된 기분이었다.
“진짜 혼자 갈 수 있어? 뉴왁 공항 말고, JFK 가야 된다?”
“내가 애야? 우버 타고 가면 돼.”
“그럼 네가 애지. 쪼끄마한 게.”
삐딱하게 벽에 기대어 선 누나가 걱정과 조롱을 동시에 했다. 낑낑거리며 짐을 닫던 은한이 벌떡 일어났다. 쾅쾅 발을 구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코끝에 누나의 이마 언저리가 있다.
“누나도 그러기냐. 내가 누나보다 훨씬 크거든. 누나쯤은 고딩 때 추월했다고.”
“좋겠수?”
씨근덕거리는 은한에 누나가 낄낄, 그를 비웃었다. 애 맞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키 가지고 성질이야. 여전히 애라는 걸 증명시켜 주는 그녀의 말에 은한이 잇새로 짜증을 토해 냈다.
“이씨…….”
“씨?”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5초도 가지 못한 짜증이었지만. 다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인천에 도착해서 이 많은 짐을 이고 대구로 갈 거라 생각하니 헛구역질이 났다. 큰누나한테 데리러 와 달라고 졸라야겠다.
은한이 캐리어에 올라타 지퍼를 잠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누나가 단조로이 그를 불렀다.
“은한아.”
“응.”
“서울에서 살기 싫으면 누나랑 같이 있어도 돼.”
“어……?”
꿈뻑, 꿈뻑. 저의를 알기 힘든 말에 은한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여전히 벽에 기대어 있었다.
“여기서 일 년 동안 잘 살았잖아. 설마 밥도 못 벌어먹고 살겠냐.”
“…….”
“힘들면 언제든지 와. 누나는 밤에 술 마실 사람 생겨서 좋다.”
“……알았어.”
미심쩍은 표정으로 은한을 바라보던 그녀가 우버를 불러 놓겠다며 뒤를 돌았다. 은한은 그녀가 있던 자리를 맹한 얼굴로 주시하다 다시 짐 싸는 것에 집중했다.
개고, 쌓고, 정리하고, 빼고 아쉬워서 다시 넣고. 시간은 흐르는데 정리가 잘 안 됐다.
그래도 짜증은 나지 않았다.
제 마음은 일 년간 정리했음에도 이제 가장자리 정도만 희미해졌을 뿐인데.
이깟 짐이야 우스웠다.
* * *
은한은 최대한 본가에서 머무르고, 버티다가 개강 이틀 전에야 서울로 올라왔다. 올라오긴 했는데,
“와 씨바. 은하니 금발이야?”
“미국물 먹더니 그냥 아메리칸 하기로 했어?”
“쩐다. 새삼 또 잘생겨 보이네. 새내기 OT 이후로는 한 번도 잘생겼다 생각한 적 없는데.”
기차역에서 동기들에게 납치당했다. 그러지 않고는 또 어디로 도망가 버릴 것 같단다. 그래서 은한은 자취방에 발도 못 붙이고, 캐리어까지 끈 채 술집으로 끌려왔다.
그런데도 좋았다. 그리웠던 친구들과, 그에 못지않게 그리웠던 한식을 한 번에 만날 수 있었으니까. 무려 파전에 막걸리다. 잘 익은 김치는 덤이었다. 내 참. 누구 친구들인지 센스 한번 끝장난다.
“금발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했냐?”
“미국 좋아? 나 취직하면 마이너스 통장 뚫어서 유럽 갈랬는데, 미국 갈까?”
“가서 여자친구 안 사귀었어? 일 년이나 있었는데?”
“영어는? 거의 원어민 수준? 한 번 해 봐. 미현이도 회화학원 개 열심히 다녔는데 누가 더 잘하는지 보자. 나는 대한민국 주입식 교육에 한 표 던진다.”
“나도, 대한민국.”
“존나 이상한 데서 애국심 표출하지 마. 근데 나도 대한민국.”
우르르 쾅쾅. 끝없이 쏟아지는 말들에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그래, 늘 이랬었지. 동기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는. 은한이 꿀꺽꿀꺽 금색 사발에 든 막걸리를 단숨에 삼켰다. 목젖을 톡톡 건드리는 시큼한 탄산이 감탄을 자아냈다.
“하나씩 좀 물어봐라. 금발은 누나 따라 미용실 갔다가 그냥 한 번 해 봤어. 한국 미용실이 더 좋더라. 그리고 미국이 더 좋은지, 유럽이 더 좋은지는 유럽을 안 가 봐서 모르겠다. 또 영어는…….”
은한이 주절주절 말을 이었다. 여섯 개의 눈동자가 은한을 집요하게 주시했다. 과거에는 이 시선들이 조금 부담스러웠던 것도 같은데. 오늘은 그저 반갑기만 하다.
그녀들은 별거 아닌 말에도 호오호오, 감탄을 보이거나 자기들끼리 수군덕거리며 은한의 말에서 파생된 짧은 대화를 나눴다.
“그래서 내 사랑스런 립스틱들은 어디 있지, 은한아?”
빈 사발에 막걸리를 돌아가며 따른 미현이 물었다. 은한이 쫙 가슴을 폈다. 산타클로스처럼 캐리어에 쑤셔 넣어 온 선물들이 자신만만했기 때문이다.
아, 물론. 막걸리 집에서 선물 꾸러미를 펼칠 줄은 몰랐지만.
립스틱. 섀도. 향수. BB. 파운데이션, 하다못해 누나가 골라준 빅토리아 시크릿 속옷까지. 온갖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동기들은 꺄악! 비명까지 지르며 선물을 반겼다.
“왁! 너무 좋아! 이거 한국에 안 들어오는 거라고.”
“아 대박. 우리가 강은한을 잘 키웠나 봐. 이런 것도 척척 알아서 사 오고.”
열렬한 환호에 뿌듯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미현이 조용하기에 흘끔, 눈치를 살폈다가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립스틱을 일렬로 정렬시킨 그녀가 얼굴을 한껏 굳힌 채 사진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SNS에 찬탄하는 글이 올라오리라.
술자리는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아직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은한이 졸릴 정도로 오래.
동기들은 두 손 무겁게 택시를 탔고, 은한은 한층 가벼워진 캐리어를 끌고 골목을 걸었다. 익숙하지만 조금 낯설기도 한 길이 묘한 느낌을 들게 했다.
타박타박, 발소리와 드르륵, 드르륵. 듣기 싫은 캐리어 바퀴 소리가 가로등 빛 사이로 스며든다. 예나 지금이나 시끄럽게 울고 있는 매미 소리도 함께.
흐으읍. 그 소리와 공기를 한데 뭉쳐 들이켰다. 고작 공기 한 줌일 뿐인데, 오장육부가 서울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어……?”
그러다 발견했다. 늘 홀로 백색 빛을 발산하던 가로등이 여타 다른 가로등처럼 주홍빛을 뿜고 있는걸. 그 아래에 선 은한이 손을 펼쳤다. 손바닥에 한가득 담긴 빛은, 확실히 주황색이 맞다.
새하얀 빛 아래에서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마주 닿는 담뱃불, 첫 키스 그리고 첫 이별까지. 그 모든 걸 누군가가 훔쳐간 듯했다.
“…….”
제가 잊지 못하는 한결을 어떻게든 잊어 보라, 세상이 도와주는가 보다.
은한이 삐뚜름하게 가로등을 노려봤다.
근데 왜 이렇게 짜증이 날까.
나도 내 속을 모르겠다.
* * *
1년이라는 게, 그리 대단한 시간이 아닌 듯했다. 은한은 딱 이틀 만에, 휴학하기 전 대학생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아직은 OT로 금세 끝나는 강의들이라 학교생활이 재미있기까지 하다.
과방 거울 앞에 선 은한이 개강 맞이, 어제 새로이 탈색한 금발을 부지런히 정리했다.
소파에 퍼질러 있던 미현이 은한의 옆으로 다가왔다.
“은하니. 어디 가?”
“교양 들으러. 타과생은 오랜만에 보는 거라 좀 긴장되네.”
“존나 미팅 나가세요? 근데 무슨 교양? 아 과학 교양 듣는 댔나?”
“어어, 천체와 우주.”
낯설면서도 두려운 단어다. 천체, 그리고 우주. 하다못해 그 두 단어가 붙어 있기까지 했다. 미현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얼굴에 비난이 가득하다.
“뭐야. 천체와 우주? 왜 그런 걸 들어? 은하나. 우리 문과야. 인문과 과학, 감각의 미래, 이런 걸 들어야지. 그건 강의명만 봐도 C+ 예약이네.”
네가 4학년 돼서 재수강을 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미현이 쯧쯧 혀를 찼다. 뒤를 돈 은한이 씨익 눈을 휘며 웃었다.
“지구가 1,609km/h로 자전하는 걸 알아서, 한번 들어 보려고.”
“……미쳤니?”
“어. 좀.”
단단히 처 돌았지. 그딴 것도 기억하고 있고. 그렇게 잊으려고 발악을 했는데, 흘러갔던 한마디 말조차 잊지 못했네. 은한이 크로스백을 주워 멨다.
자연대는 처음 가 봤다. 십오 분 전이면 여유 있게 나왔다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던 모양이다. 따가운 볕을 해치며 부지런히 걸었음에도 강의 시작 2분 전에야 강의실에 들어설 수 있었다.
빵빵하게 틀어놓은 에어컨 바람과 학생들의 왁자지껄한 소음이 동시에 밀려왔다.
“으아…….”
어려운 교양인 줄 알았더니 사람이 미어터진다. 대부분 이과생이겠지. 미현의 말대로 C를 피할 수 없겠구나.
실내를 한 번 훑어본 은한이 가까운 빈자리로 다가갔다. 뒤에서 세 번째 줄. 제법 괜찮은 자리다. 책상 위에 가방이나 필기도구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공석이라 생각했다.
슬그머니 의자를 뺀 은한이 옆 사람에게 물었다. 이미 엉덩이는 반쯤 의자에 걸터앉은 채였다.
“자리 있…….”
“…….”
“나요…….”
고개를 돌리는 남자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쿠당탕 의자에서 볼품없이 넘어졌다. 새까만 머리칼을 시원하게 올린 머리. 반듯한 이마. 단정하지만 높은 콧대. 당혹 어린 시선.
한결이었다. 그가 주먹을 꾹 움켜쥔 채 은한을 내려다봤다. 뒤늦게 알싸한 꼬리뼈의 통증이 느껴졌다. 은한이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추슬렀다. 갈피를 잡지 못한 손이 얇은 의자를 쥐어 다시 콰당, 넘어졌지만.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은한에게로 집중됐다. 애써 입꼬리를 추켜올렸다.
“다, 다른 곳에도 자리가……”
은한이 허겁지겁 요상한 걸음걸이로 강의실 반대편까지 이동했다. 모였던 시선이 금세 흐트러진다. 은한만, 은한만 여전히 엉망이었다.
아. 그냥 나가자. 어차피 오틴데. 정정하면 그만이다. 미현이가 뭐랬더라 인문과 과학, 감각의 미래. 그래, 그걸 들어야겠다. 막 문을 향해 몸을 틀었더니 하필 교수님이 들어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가장 뒷자리에 앉아야 했다.
은한이 후욱, 앞머리를 불어 올렸다. 저 멀리 앉아 있는 한결의 넙데데한 등짝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한국은 너무너무 작은 나라야. 매일 마주칠지도 모른다고.’
파비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마주치게 될 줄이야. 만약 이 강의를 들으면, 매일은 아니더라도 매주 봐야 할 터였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천체와 우주 수업을 맞은 황창식이라고 합니다. 한 학기 동안 넓은 우주에 조금이나마 발을 들여 보시길 바랍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막 시작한 학기에 모든 이들이 반질반질, 기대에 찬 눈을 하고 있다. 은한만 썩은 동태 눈깔이었다.
뺀다. 무조건 뺀다. 과학 교양을 4학년으로 미루더라도, 아니, 필수 교양을 다 채우지 못해 졸업하지 못하더라도, 당장 빼겠다.
“OT니까 일단 실라버스부터 볼게요. 질문은 한 학기 일정을 전부 훑어본 후에 받겠습니다.”
수도 없이 상상했었다. 혹여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해야 할까. 말을 붙여야 할까. 아니면 모른 척, 못 본 척 무시해야 할까. 아마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
어디서 만날까. 일 번, 길거리에서 만난다. 이 번, 술집에서 만난다. 삼 번, 국밥집에서 만난다. 사 번…….
누구와 함께 있을 때 만날까. 일 번, 혼자 있을 때. 이 번, 미현이와 있을 때. 삼 번 유란 누나와 있을 때.
뭐 그런 쓸데없는 상상.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다. 어떤 상황에 만난다 하더라도 못나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 잘 살았어. 잘살고 있어. 너 같은 건 하나도 기억 안 나. 그런 티를 내고 싶었다.
“첫 주는 앞서 말했듯 오티입니다. 물론 실라버스 설명 후, 질의응답이 끝나면 수업 역시 끝납니다.”
하지만 강의실에서 볼 거라곤 전혀, 정말로, 상상치 못했다. 백한결은 공대고, 저는 미대니까. 캠퍼스 내에서도 꽤나 거리가 있는 건물이란 말이다. 오죽하면 학식조차 다른 건물을 쓸 정도였다.
근데! 교양이라니! 무슨 공대생한테 과학 교양을 들으라 해서! 이따위로 볼품없이 만나게 하냔 말이야! 책상에 쿵, 이마를 찧은 은한이 백발의 총장님을 비난했다.
“둘째 주는 여러분들도 익히 들어왔던 개념들을 짚을 겁니다. 앞으로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 필히 알아야 하는 것들이죠. 일단 강의명인 천체와 우주. 두 단어로 시작해서 그에 파생된 단어들을 배울 겁니다.”
교수님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어차피 뺄 수업인데 들어서 뭐하나. 미현이 추천해 준 강의들에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예의상 볼펜 하나는 든 은한이 푸욱,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흘끔. 저도 모르게 한결을 훔쳐보고야 말았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머리 많이 길었네. 하긴 제대한 지가 몇 개월인데. 그래도 아주 먼 과거, 스무 살의 한결보다는 짧았다. 부러 저 길이를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앞머리도 올리고 있었지.
낯설다.
그게 묘하게 섭섭했다.
수업은 40분 만에 끝났다. 누구보다 빨리 나가려 했는데, 타이밍을 놓치고 만 은한은 잠자코 앉아 있었다. 물론 한결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사람들이 대부분 빠졌을 때, 이쯤이면 괜찮으리라 생각하고 일어났다.
잘못된 판단이었지만.
“혹시 번호 알 수 있을까요?”
강의실을 나서자마자 여린 미성이 들려왔다. 은한이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복도 모퉁이에 선 한결과, 이름 모를 여자가 있었다.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췄다.
한결은 뒷모습이라 어떠한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여자만 보였다. 이름 모를 꽃이 패턴화된 원피스에 하얀 스니커즈. 다홍빛으로 물든 볼에, 반짝이는 눈망울이 예쁜 여자였다. 그녀의 손에는 조심스레 내민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
속이 울렁거렸다. 얼른 가야 하는데. 미현이랑 밥 먹기로 했는데. 끝났다고 메시지도 보내놨는데. 기다릴 텐데. 하지만 생각뿐이다. 발바닥은 여전히 쩍 땅에 붙어 있었다.
한결이 부드럽게 그녀의 핸드폰을 가져갔다. 그리고 톡톡 무언가를 누른다. 아마 자신의 핸드폰 번호이리라.
보통 교양에서 번호 교환은 학기 막바지에 이루어진다. 거절당했을 때의 민망함을 한 학기 내내 고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다.
백한결 정도면, 미리 낚아채야지. 누가 또 넘볼 줄 알고.
언젠가 물은 적이 있었다. 너는 얼굴도 멀쩡하게 생긴 게 스무 살까지 연애도 한 번 안 하고 뭐 했냐, 하고. 우리 둘은 쌍방이 첫 연애라 서툰 게 많았다. 연락을 자주 해야 한다는 걸 몰랐던 것처럼.
그날은 사소하게 다투었었는데, 이유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단조로운 대화와 격정적인 섹스로 오해를 풀고 그의 품에 안겨 물었던 것 같다.
한결의 대답은 ‘관심이 없었다.’였다. 남고이기도 했고, 쉬는 시간은 공 차다가, 야자 끝나고는 친구들이랑 피시방 가는 거로도 하루가 모자랐다고. 여하튼 신기한 새끼다.
‘너는? 너는 공학 나왔잖아.’
관자놀이에 쪽, 키스한 그가 되물었다. 내가 그때 뭐라고 대답했더라…….
‘나는 누나들 때문인가? 여자를 봐도 뭐랄까… 손을 잡아야 한다, 뽀뽀하고 싶다, 그런 욕구가 별로 안 들었어. 매점에서 아이스크림 먹고 있는 여자애들 보면 아. 누나가 올 때 메로나 사 오랬는데. 그런 생각만 했었다니까.’
‘누님들한테 감사해야겠다.’
‘이쯤 되면 모태 게이냐, 우리?’
‘그런가 봐.’
그 같잖은 이유로 또 질퍽하게 뒹굴었었지. 은한이 마른세수와 함께 과거에서 빠져나왔다. 상기된 표정의 여자가 꾸벅, 목례하더니 발랄한 걸음걸이로 멀어졌다. 은한 역시 무거운 발을 뗐다.
잘…… 됐으면…… 좋겠네.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씨발. 씨발. 씨발. 기분이 너무 더러웠다. 잘난 새끼지. 백한결, 잘났지. 저런 새끼가 내가 첫 연애였다니, 감사할 정도지.
저 여자에게 다가가 말하고 싶었다. 쟤 여자 안 만나요. 뭐, 지금은 모르겠는데. 일 년 전만 해도 그랬어요. 무슨 말인지 알아듣죠? 속으로 그런 유치하고 치졸한 상상을 했다. 당연히 실천하진 못하겠지만.
저 두 사람에게 저는 행인1도 아니고 행인4에 불과했다. 그걸 잘 알고 있어서, 이렇게 못 본 척하는 거였다.
건물을 나온 은한이 날카로운 햇볕에 눈을 일그러트렸다. 9월의 캠퍼스는 여전히 뜨겁다. 짜증이 날 정도로.
미현이한테 저녁 먹고 후식으로 빙수 먹으러 가잴까. 아주, 아주 많이 단 게 먹고 싶었다. 혀가 저릴 정도로 단 게.
그녀에게 연락하려 막 핸드폰을 들었을 때였다. 문득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졌다. 은한이 고개를 들었다.
한결이었다. 그에게서 낯선 냄새가 났다. 머스크 위로 미미하게 퍼지는 달큰한 냄새. 향수…… 뿌리나. 은한의 눈꺼풀이 분주하게 깜박였다.
한결이 마른 입술을 핥았다.
“나 이 수업 뺄 거니까, 네가 들어.”
“뭐……?”
그러더니 휙 뒤를 돈다. 미처 대답할 새도 없었다. 기다란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가 금세 멀어졌다. 은한은 그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뙤약볕에 멍청히 서 있었다.
그래도 눈물이 나지 않은 걸 보니, 제가 많이 크긴 컸나 보다.
* * *
은한이 푸후- 짜증을 뱉었다. 새벽 3시. 침대에 누운 지가 몇 시간짼데. 선잠은커녕 눈조차 감질 못 했다. 반성한다. 저는 전혀 크지 않았다. 정말 하나도 안 컸다. 낮에는 그냥……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해서, 넋을 잃었을 뿐이었다.
잠이 오질 않았다. 몇 번이나 침대 위를 헤엄쳤는지, 이불이 침대 모서리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대신 한결의 얼굴이 온 침대를 지배했다. 그건 아무리 몸을 뒤틀고 사지를 휘저어도 침대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더듬더듬 베개 아래를 훑었다. 곧 익숙한 사각형이 잡혀 온다. 핸드폰을 밝히자 쨍한 빛이 눈을 괴롭혔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주소록을 뒤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했던, 번호를 찾아냈다. 잠시 머뭇거리다 꾹. 통화버튼을 눌렀다.
뚜르르- 뚜르르- 신호음이 갔다.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건너편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길 기다렸다. 곧 뚝. 신호음이 끊겼다.
“……진우야.”
-…….
답이 없다. 은한이 초조하게 다시 그를 불렀다.
“진우야, 자?”
아, 지금 새벽이었지. 뒤늦게 깨달았다. 손등으로 눈을 마구 비볐다. 그제야 한결이 조금 희미해졌다. 그때, 잡음만 가득하던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방울이?
“어. 설마 방울이.”
-…….
은한은 진우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게 아님에도 멋쩍게 웃었다. 일 년 만에 전화한 게 이 시간에, 이따위 이유다. 욕을 먹어도 상관없었다. 지금 당장 제가 죽을 것 같으니까. 인간이 이렇게 이기적이다.
뒹구르르, 몸을 굴리다가 결국 일어났다. 맨발에 닿는 바닥이 시렸다.
“……우리 내일 만날까?”
-…….
“나 미우면 나중에 만나도 돼.”
많이 미우면…… 안 만나도 어쩔 수 없고. 은한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애꿎은 시트 자락을 쥐어뜯었다.
-그래. 내일 보자.
진우는 생각보다 빨리 답을 내놓았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기다렸다는 것처럼.
“진짜?”
-오랜만에 방울이랑 국밥 먹겠네. 수업 끝나고 연락해.
“어어. 알았어.”
은한이 고개까지 끄덕이며 답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왠지 모르게 개운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진우한테 연락했을까. 뉴욕에서도 간간이 받았던 연락을 여태까지 못 본 채 해놓고. 인제 와서, 왜. 한참이나 있다가 알았다.
‘너만 힘들었던 거 아니야. 백한결도 엉망이었어.’
진우를 만나서 그걸, 확인받고 싶었나 보다. 오늘 본 한결이 너무 멀쩡한 모습이라. 저는 그렇게 힘들고, 악을 내지르고, 그리움을 삼키고, 눈물을 흘리며 살았는데. 한결은 멀쩡해서 얄밉기라도 했나 보다. 졸렬한 패배감이라도 느꼈나 보다.
사랑이라는 게, 이토록 사람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린다.
동이 틀 때까지 잠이 들 수 없었다.
양심이고, 수치고, 염치고. 모두 쥐 죽은 듯 수면 중이라. 정작 은한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 * *
“염색했네.”
“어어. 그냥…… 기분 전환 겸.”
“잘 어울린다.”
“고마워.”
어정쩡하게 웃은 은한이 의자를 빼고 엉덩이를 붙였다. 아직 한창때인데 국밥집엔 사람이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다. 은한이 눈두덩을 마구 비볐다.
진우는 변하지 않았다. 사람 좋은 미소도 그대로고, 단정한 분위기도 여전했다. 마치 엊그제도 봤던 것처럼. 국밥집 앞에서 혹여 어색할까. 잠시 망설였던 제가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비 되게 많이 온다.”
“그러게.”
장마가 끝난 지가 언젠데. 비가 온 세상을 꿉꿉하게 적셔 놨다. 먼 옛날, 한결에게 고백 같지 않은 고백을 받고 진우와 둘이 술을 마셨을 때도 이런 폭우가 쏟아졌었다.
잠시 창밖을 보고 있으니 할머니가 턱턱 물병과 컵 따위를 내려놨다.
“왔냐.”
“네. 저희 국밥 두 개랑 소주 한 병 주세요.”
“그랴.”
가벼이 목을 끄덕이곤 시크하게 돌아서는 그녀다. 푸근한 뒷모습에 은한이 연한 미소를 지었다. 진우가 수저를 놓고, 은한은 물을 따랐다.
“태준이는 안 불렀어.”
“…….”
“그 새끼 울지도 몰라. 또라이긴 해도 존나 여리잖냐.”
안 그래도 술 처먹고 맨날 방울 타령해서 골치 아프다. 진우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덕분에 은한은 쥐구멍에 숨고 싶은 기분이 됐다.
“미안.”
“뭐가.”
“연락 못 한 거.”
“이해해. 그럴 만했잖아.”
그는 예나 지금이나, 놀라울 정도로 어른스럽다. 은한이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 사이 소주와 하얀 연기를 뿜는 뚝배기 두 개가 테이블에 올라왔다. 세찬 에어컨 바람에 손끝이 식어가는 참이었는데. 보글보글 끓는 국밥을 보고 있으니 허기가 졌다.
“짠.”
“짠.”
오랜만에 잔을 부딪쳤다. 목젖을 간지럽히는 알코올 향이 오늘따라 짙다.
두 사람은 간단한 근황을 주고받으며 술을 마셨다. 진우는 벌써 한 학기를 다니고 방학도 한 차례 보냈음에도 사회에 적응이 안 된단다. 부대에 있었을 때가 훨씬 여유로웠기 때문이다. 그때는 빈둥대는 게 다였는데, 지금은 퀴즈 치랴, 시험 보랴, 토익 준비하랴 돌아 버릴 판이란다.
은한은 이따금 고개를 끄덕여 주며 제 일상도 공유했다. 휴학하고 뉴욕에 갔었고, 영어를 공부했고, 가끔 디자인 알바도 했고.
그렇게 한 잔 두 잔 들이키다 보니 빈 병이 세 개나 됐다.
흐음, 콧김을 뿜었다. 진한 술 냄새가 역류한다. 그를 보고 있던 진우가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그리고는 소곤소곤 목소리를 죽인다.
“너희 왜 헤어졌냐.”
은한이 픽, 헛웃음을 흘렸다.
“이야. 돌직구도 정도가 있지.”
“미안. 내가 일 년 내내 궁금증을 참고 참았던 터라.”
“백한결이 이야기 안 해 주던?”
“걔가 이렇다, 저렇다 말할 새끼냐. 뭐 맨날 말은 안 하고 얼굴만 썩어 가, 그 새끼는.”
“하긴 그렇지…….”
은한이 찹찹 마른 입맛을 다시더니 단숨에 잔을 비워 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되짚어 보는데 걸리는 게 없다. 사사건건 이야기하자니 밤이 모자라고, 뭉뚱그려 이야기하자니 참 볼품없고 평범했다.
“그냥…….”
그러다 내놓은 답이 이따위다.
“그냥?”
진우가 가감 없이 미간을 구겼다. 그냥이라니. 두 사람은 절대로 ‘그냥’ 따위의 이유로 헤어질 관계가 못 됐다. 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냥. 모든 사람이 헤어지는 이유로 헤어진 거지.”
“글쎄. 존나 이해가 하나도 안 됩니다만.”
당최 수긍을 못 하겠다는 진우의 표정에 은한이 끌끌 얄궂게 웃었다. 그래. 당사자인 나도 이해가 안 된다. 알코올에 젖어 무뎌진 손으로 쪼르륵, 쪼르륵 소주를 따랐다.
“지쳐서 그래. 둘 다.”
“…….”
“다 그렇지. 하루가 모자랄 만큼 바빠지고, 그러다 보면 소홀해지고. 매일 미안하고, 아쉽고. 또 어떤 날에는 미안한 마음조차 안 들고.”
“…….”
“그런 상황에서 만나지도 못하고. 그래서 사과할 타이밍도 놓치고.”
은한이 잔을 들었다. 진우가 께름칙하게 쨍. 소주잔을 부딪쳤다. 작은 잔에 갇힌 소주가 파도처럼 일렁인다. 맹한 얼굴로 그걸 보고 있었다.
그때. 제가 조금 다르게 행동했으면 한결과 헤어지지 않았을까. 조금 더 다정히 전화를 받고, 조금만 제 일상을 포기하고, 조금만, 조금만. 한결을 중심에 뒀었다면,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했을까. 몇 번이고 했던 질문인데 답을 찾지 못했다. 오늘이라고 찾을 리 없었다.
진우가 벙긋벙긋 몇 번 입을 움직이더니 넌지시 물어 왔다.
“다시 만날 생각은 없냐?”
“하?”
“아. 너무 주제넘었지. 근데 아쉬워서 그래, 아쉬워서.”
삐딱하게 턱을 괸 은한이 진우를 노려봤다. 진우가 씨익, 어색하게 입을 째며 시선을 피했다. 할머니! 저희 만두 한 판만 쪄 주세요! 그런 속 보이는 말로 만회해 보고자 한다.
은한이 머리칼을 흩트렸다. 익숙하지 않은 샴푸 향이 느껴졌다. 한결이 향수를 쓰기에. 저도 하찮은 아집으로 샴푸를 바꿨다. 유치하기 그지없다.
“……자신이 없어.”
“무슨 자신?”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게 만들 자신이, 없어.”
“…….”
진우가 살풋 눈살을 구겼다. 은한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이라니. 한결이 자처해서 재입대하지 않는 이상, 같은 상황이 반복될 리 없지 않은가.
은한이 푸스스 바스러질 듯 얇은 웃음을 흘렸다. 진우가 당연히 이해하지 못할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은한은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아니 못했던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놓기 시작했다.
“나도 백한결이랑 평생 물고 빨 줄 알았다. 근데 걔가 군대 가니까 어쩔 수가 없더라. 감정이 식는 게 아니라, 환경이 다르잖아.”
“…….”
“걔는 내가 바쁜 걸 섭섭해했고, 나는 걔가 부대 안에서 얼마나 외로웠을지 감히 상상도 못 했고. 솔직히 말하면 가끔 한결이 전화가 귀찮을 때도 있었다? 존나 개새끼지 않냐, 나? 종일 나랑 전화할 시간만 기다렸다고 했는데.”
“…….”
“그때 생각하면 되게 미안해. 근데, 아직도 미안하단 말을 못 했어.”
은한이 착잡하게 얼굴을 쓰다듬었다. 붉어지는 그의 눈가를 주시하던 진우가 팔짱을 꼈다. 은한의 말을 반박하기 위한 준비였다.
“그게 다 무슨 상관이야. 지금 백한결 제대했거든?”
“그렇지. 근데 그래 봐야 일 년이니까.”
“뭐가.”
“내가 학교에 있는 시간이. 그 일 년간은 또 행복하겠지. 시험 준비도 같이 할 거고, 밥도 같이 먹을 거고. 근데 내년엔 어쩌냐? 한결이랑 나는 또 다른 환경에서 살 거야. 걔는 학교에서. 나는 직장에서.”
은한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대화에 잠시 공백이 생겼다. 까끌까끌한 목구멍에 찬물 대신 술을 흘려보냈다. 이제는 머리가 띵할 정돈데, 취하진 않았다. 정신이 기이할 정도로 말똥하다. 기분 나쁜 감각이었다.
“한결이를 외롭지 않게 할 자신이 없는 거야.”
“…….”
“걔가…… 상처받았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숨 쉴 틈만 생겨도 그 무너진 얼굴이 자꾸 떠올라. 그게 내가 준 상처라서. 그래서 잊을 수가 없다.”
“…….”
“근데 또 존나 밉기도 해. 조금만 참아 주지. 내가 잘못하고 있다고 언질이라도 해 주지.”
나도 나를 모르겠다. 다 좆같아, 씨발. 은한이 신경질적으로 잔을 내려놨다. 잔 아래에 얕게 깔린 소주가 일렁인다. 애매하게 남은 두 사람의 감정 같았다. 진우가 알 수 없는 눈으로 그것을 내려다봤다.
“방울아. 내가 또 주제넘게 고민을 좀 했는데.”
“아서라. 이미 끝난 사이에 고민은 무슨.”
은한이 습윤하게 미소 지었다. 밖에서 쏟아지는 비보다 훨씬 축축한 미소였다. 진우가 그의 물 잔에다 콸콸 찬물을 따랐다. 거대한 폭탄을 던질 준비를 하는 거였다. 부디 은한이 그것을 품어 주길 바랐다.
“내가 이 말 해줄까, 말까 고민 진짜 많이 했거든? 네가 전화 왔을 땐 옳다구나, 하고 하려고 했고, 오늘 여기 오는 길에는 괜히 들쑤시는 것 같아서 안 하려고 했는데.”
“…….”
“해야겠다. 너희 둘이 삽질하고 있는 꼴 보기가 싫어서.”
“잘 생각해라. 그거 듣는다고 뭐가 변할 거란 기대는 하지 마.”
은한이 부러 장난스레 웃었다. 하지만 진우는 따라 웃어 주지 않았다. 민망한 마음에 찬물을 들이켰다. 관자놀이가 쨍할 만큼 차디찬 냉수였다.
진우가 소주잔 주둥이를 문질렀다.
“군대에서 자살하는 애들 많은 거 아냐? 일 년에 육십 명 가까이가 자살해.”
“어…… 뉴스에서 종종 본 것 같기도 하고……?”
암울하기 그지없는 단어에 은한이 지레 겁을 집어먹었다. 느슨하게 풀려 있던 허리가 꼿꼿이 섰다.
“자살 이유는 엄청 많아. 우울증도 있고, 정신 나간 선임 새끼들이 괴롭혀서 그런 것도 있고, 가정사도 있고.”
“…….”
“그런 일이, 우리 주위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순 없어.”
“어어. 그렇지.”
은한이 손가락을 괴롭혔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이유 모를 긴장감에 뱃속이 간지러웠다. 진우는 신기할 정도로 담담했다.
“백한결 부대에서 한 명이 자살 시도를 했어.”
“뭐……?”
잠시 호흡을 멈췄다. 감히 상상조차 해 보지 않았던 일이라서. 사건 사고가 많은 군대임을 알지만, 그건 은한에게 딴 세상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게 한결 옆에서 일어날 거란 상상 역시, 해 보지 않았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는데, 하필 백한결이 좀…… 돌봐 주던 관심병사였나 봐.”
“…….”
들은 적 있었다. 소시지를 좋아하고, 김치를 싫어한다던. 부대 사람들이 죄다 예뻐한다던. 귀엽다고, 동생이 생긴 것 같다고 말하던 한결의 목소리가 아직 생생했다.
그 관심병사에 대해 들은 건 고작 그 몇 마디가 다다. 그런데도 마음이 무겁고 울적했다.
죽음. 그것은 가까우면서도 먼 말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 죽고 싶다, 가볍게 말하지만 실제로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은 없었다. 저는 물론, 주변 인물조차 없다.
그래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마 한결 역시 그랬으리라.
“근데…….”
진우가 문득 말을 먹었다. 망설이는 기미가 가득했다.
“근데?”
은한이 그를 채근했다. 그냥 그걸로 끝내. 그 이유로 백한결이 힘들었다고. 그거로도 충분히 제 안일함과 무관심을 뉘우칠 수 있었다.
“백한결이 걔를 괴롭혔다는 소문이 돌았어.”
“뭐? 그게 무슨 개소리야?”
괴롭히다니. 백한결은 그럴 성미가 절대로 못 됐다. 덩치만 커다랗지 여리디여린 인간인데. 동생 같다던 관심병사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줄 것처럼 굴었을 게 안 봐도 훤했다.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개소리지. 근데 군대라는 게 그렇다. 한군데 처박혀 있어서 할 거라곤 입 터는 것뿐이야. 말이 존나 많아. 하필 백한결이 안주였던 거고, 그게 부대장 귀까지 흘러갔고. 요즘 그런 거에 엄청 민감하니까.”
“…….”
“그래서 백한결 한동안 온갖 군데에 다 끌려다녔어. 가해자로.”
가해자라니. 숨이 가빴다. 비정상적으로 부푼 심장이 뻥 하고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아끼던 동생의 비보에 많이 힘들었을 텐데. 슬펐을 텐데. 그 무지막지한 감정을 추스르기도 전에 왜 괴롭혔냐. 어떻게 괴롭혔냐. 그딴 추궁을 들었다니.
……그리고 저는 그걸 까맣게 몰랐다니.
헛구역질이 치솟았다.
“그 관심병사가 일어나면서 백한결도 땅땅. 완전히 무죄가 되긴 했지만.”
“…….”
“이미 백한결은 넝마가 된 상탠데, 무죄가 무죄겠냐.”
은한이 흐리멍덩한 눈으로 소주병을 들었다. 한껏 기울였는데 흘러나오는 게 없다. 그새 다 마셨나 보다.
무릎에서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시험을 치기 위해 뛰던 날. 한결에게 전화가 왔었다. 아주 오랜만의 전화였다. 미안하다. 바쁘다. 그 말에 눅눅한 목소리가 돌아왔었는데.
‘그래도 은한아, 조금만 통화하면 안 될까. 나 할 말 있는데…….’
그때 뭐라고 대답했더라.
‘한결아. 나 지금 시험 치러 가는 길이라서 전화 받기가 좀 그래.’
그래. 그렇게 말했다. 한결이 어떠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을지, 어떠한 상황일지. 가늠조차 해 보지 않았다. 분명 평소와 다른 걸 느꼈음에도 그랬다.
그리고 통화는,
‘……그래. 밥 거르지 말고 챙겨 먹어.’
라는 한결의 말로 끝났다. 은한은 목젖에 턱하고 걸린 숨을 내뱉지 못했다. 대신 눈시울이 붉어졌다. 코끝이 찡했다. 감당할 수 없는 자괴감이 폭우처럼 은한을 적셨다.
위로해 주지는 못할망정. 이미 상처투성이인 너한테 또 상처를 줬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그랬어.
“나도 몰랐는데, 아버지가 묻더라고. 너희 부대는 무슨 일 없냐고. 관심병사 중에 자살시도 한 애가 있었다나. 근데 그 부대가 백한결 부대인 거야. 그래서 아버지 라인 타서 좀 캐 봤지.”
“…….”
주절주절 이어지는 진우의 말에도 은한은 죄인처럼 고개를 고꾸라트리고 있었다. 나도 아팠는데. 나도 힘들었는데. 어린애처럼 왜 그래! 그 하찮은 변명으로 얼마나 한결을 비난했던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철없던 스무 살이 지나고, 조금 아팠던 스물한 살, 스물두 살이 지나 그나마 가장 멀쩡한 스물세 살이 되었는데. 이제 좀 어른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아직도 어리다는 걸 증명받게 됐다.
“은한아.”
“…….”
“백한결 좀 불쌍하게 여겨 주라.”
“…….”
“걔가 제정신이었겠냐?”
근심을 잔뜩 들이마신 은한이 벅벅 억세게 얼굴을 닦아 냈다. 온몸이 비에 젖은 것처럼 무거웠다. 진우가 흘끔흘끔 그의 눈치를 보며 고집스레 말을 이었다.
“걔 지금도 정상인인 척하고 있는 거야. 사실은 곪아서 제정신 아닌데. 그러니까…….”
“진우야.”
“어?”
“내가 걔를 불쌍히 여기기엔, 우리가 너무 옛날에 끝났다.”
“…….”
“또 동정으로 다시 붙이기에는, 연인이라는 관계가 버겁지 않겠냐.”
은한이 반쯤 차 일렁이는 진우의 소주잔을 빼앗아 마셨다.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술이 달았다. 속눈썹이 느릿하게 나부꼈다.
“그리고, 걔가 그 힘든 와중에 나를 놓은 건.”
“…….”
“나를 쥐고 있는 게 더 힘들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은한아.”
“그만 가자, 집에.”
나 너무 피곤해.
그날.
은한은 집 가는 길 내내 빗속에 숨어 울었다.
* * *
그 후로는 한결을 보지 못했다. 한두 평의 캠퍼스도 아니고. 너무나 당연한 거였다. 교양에서 만났던 게, 말도 안 될 만큼 우연인 거지.
은한은 과학 교양을 바꾸지 않았다. 혹시나, 한결을 볼 수 있을까 싶어서. 미련인지 치기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결은 말했던 대로 수업을 뺀 모양이다. 아무리 강의실을 훑어도 넙데데한 등짝이 보이질 않았다. 그에게 번호를 물어봤던 여자만 앞줄에 앉아 있었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전자 입자들이 가지는 물리량에 대한 정보의 파동함수를 구할 수 있는 미분 방정식입니다.”
최악은, 이 과학 교양과 끔찍할 정도로 맞지 않다는 거였다. 맞기는 개뿔. 교수님 말의 음절 하나라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앞뒤 좌우 모든 학생이 한 마디가 끝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는데 은한 홀로 맹한 표정을 한 채 교수님의 입술을 보고 있었다.
미분…… 미분이 뭔데, 씨발. 그걸 대체 왜 알아야 하는데. 이걸 왜 배우는 거야. 교양이라며. 이건 교양이 아니라 전공 수준의 개념이잖아.
제가 아는 수식은 인수분해가 다다. 솔직히 그마저도 어렴풋이 x와 y가 있었지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화면에 띄워진 슈뢰딩거의 방정식엔 세모(∇, 델)도 있고, 삼지창(Ψ, 프사이)도 있었다.
어차피 C 받을 거, 깔끔하게 드랍하고 과방 가서 낮잠이나 잘까. 그 생각을 첫 수업 만에 무려 열여섯 번이나 했다.
그러다 보면 생각의 틈에 공백이 생겼다. 그 공백은 며칠 전에 진우와 나눴던 대화로 꽉 채워졌다.
자살. 관심병사. 가해자. 그리고 백한결.
시선이 자연히 허공 어딘가로 붕 떴다. 전화해 볼까. 아니면 메시지라도. 그런 생각을 수백 번째 했다. 근데 연락하는 것도 우습지 않은가. 한결은 그 고통을 털어놓지 않았다. 알려 주려 했던 걸 안다. 제가 그 연락을 못 받았고.
하지만 끝끝내 그가 숨긴 일을 주제로 일 년 전에 헤어진 연인이 그때 힘들었다며? 하고 연락하는 것도 이상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생각의 틈은 넓지 않았다. 은한은 여전히 사망년이었고, OT 기간이 끝나자 슬금슬금 과제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동안 손을 놓고 있던 공모전도 출품 계획을 세웠다.
어물쩍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금세 가을바람이 캠퍼스를 휩쓸었다. 중간고사가 다가왔다는 말이기도 했다.
“아 존나 시디과에 오는 게 아니라 문창과에 갔어야 했어.”
미현이 질퍽한 욕을 흘렸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학생의 신분에서 벗어나는 그녀는 요즘 열심히 자소‘설’을 쓰는 중이었다. 못 먹어도 일단 대기업. 보통의 취준생들이 하는 생각이다. 그녀라고 다르지 않았다.
은한은 위로 대신 깍두기를 그녀의 국밥 위에 올려줬다. 저도 내년에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 그래서 남 일 같지 않았다.
“아니, 입사 동기가 무엇입니까, 를 대체 왜 물어보는 것 같냐?”
“어……. 글쎄…….”
“답은 정해져 있는 거라고. 돈 벌려고! 돈! 벌려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내가 씨발, 일이 좋아서 입사하겠냐! 회사의 발전은 개나 주라 그래! 미현이 탁탁 수저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은한이 흘끔, 할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자주 보는 드라마의 재방송을 틀어 놓으시고 쿨쿨, 코까지 골며 주무신다.
미현은 다른 곳보다 이르게 하반기 모집을 시작한 대기업에서 고배를 마셨다. 미현뿐만 아니라 은한의 과 학생들 대부분이 그랬다. 어제도 코가 삐뚤어지라고 술을 드셨단다.
그리고 어정쩡한 점심시간. 도서관 피시실에 박혀 있는 은한을 자기 해장하는 걸 구경하라고 불러냈다.
이제는 은한만큼이나 국밥집에 단골이 된 미현이다. 은한은 제가 한 것도 없는데 괜히 뿌듯했다. 우리 할머니 국밥이 모옵-시 괜찮지.
“설마 거기다 돈 벌고 싶어서요. 그렇게 적었냐?”
“내가 미쳤니? 존나 구구절절. 저는 어려서부터 이 회사에서 나온 과자를 먹으며 자랐습니다. 그걸로 시작해서 부모님도 그 과자를 좋아하세요. 제가 디자인한 패키지의 과자를 부모님이 드시고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로 끝났지.”
부러 발랄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미현에 은한이 꺽꺽, 숨도 못 쉬고 웃었다. 과자 먹으면서 행복이라니. 아 물론 행복할 수도 있지만, 과자를 썩 즐기지 않는 미현이 그리 말하니 웃기기만 했다.
“개 빡쳐서 어제 이솔이 집에서 그 브랜드 과자 다 사 놓고 술 마셨잖아. 회사를 씹는다 생각하면서 과자를 씹었지. 근데 역시 과자는 안주로 쓸 게 못 돼. 먹어도 먹어도 속이 허하다.”
미현이 꾀죄죄한 몰골로 고개를 저었다. 쯧, 혀를 찬 은한이 그녀의 앞으로 반찬들을 밀어 줬다. 그 후 제 뚝배기에 코를 박았다. 과제가 바빠 어제저녁도 못 먹고, 아침은 당연히 못 먹었고. 12시간만의 첫 끼라 밥이 목구멍으로 술술 들어갔다. 밥 세 공기 먹어야지, 다짐했다.
오도독, 오도독 깍두기를 씹던 미현이 물었다.
“은하니 너는. 과제 중?”
“어. 일러스트레이션.”
“억. 그거 과제 존나 많지? 나는 그거 하다가 손가락 쥐 났었다.”
가느다란 미현의 손가락이 까딱까딱 은한의 눈앞에서 춤을 췄다. 은한이 울상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턴 할 때 야근을 수없이 해서 지구력은 끝장난다 생각했으나 이건 진짜 답이 없었다.
“나 그거 과제 한 거 있는데, 줄까?”
후루룹, 국물을 떠먹던 미현이 넌지시 기적 한 줌을 건넸다. 은한의 얼굴이 순식간에 활짝 갰다. 세상에. 이 사랑스러운 친구를 어쩌면 좋지.
“진짜?”
“어. 외장 하드에 있을걸? 학교 가면 보내 줄게.”
“하…….”
은한이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잠깐 기쁨을 만끽하다 번쩍 손을 쳐들었다.
“할머니! 저희 순대랑 만두 주세요!”
“…….”
어째 돌아오는 반응이 없다. 은한이 빼꼼 고개를 뒤틀었다. TV 아래에 엎드리신 할머니가 고롱고롱 주무시고 계신다. 은한이 한 번 더 그녀를 불렀다.
“할머니!”
“…….”
“할머니?”
가늘게 들썩이는 등이 육안으로도 보이는데. 결국 의자에서 일어난 은한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살살, 할머니의 어깨를 흔들었다.
“할머니.”
“어어…….”
게슴츠레 눈을 뜬 할머니가 백발을 아무렇게나 쓸어 넘겼다. 잠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이다. 형용할 수 없는 죄송함이 피어올랐다. 괜히 단잠을 방해한 듯해서.
“할머니 어제 장사 늦게까지 하셨어요?”
“아녀. 졸려서 그려. 왜? 벌써 가게?”
“아니요. 저희 순대랑 만두 주세요. 미현이가 저한테 선물 줬거든요!”
“그랴? 앉아있어. 지금 해 줄랑께.”
툭툭 무심한 손길로 은한의 머리칼을 쓰다듬은 그녀가 주방으로 향했다. 구부정하게 굽은 허리가 오늘따라 낯설다.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주시하고 있던 은한이 미현에게로 돌아갔다.
“미현아. 많이 먹어. 모자라면 이야기하고.”
“오냐.”
테이블 위에 순대와 만두까지 올라오니 기분이 순식간에 좋아졌다. 두 사람은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함께 식사를 이어갔다. 하얀 국밥 위로 새카만 그림자가 지지 않았다면, 그렇게 기분 좋게 식사를 끝냈을 터였다.
“방울아아아아아!”
빽- 내지르는 고함에 국밥집 전체가 경련했다. 금세 다시 잠드셨던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셨고, 미현은 사레가 걸려 콜록콜록 기침을 해댔다. 은한 역시 눈을 땡그랗게 떴다. 너무나 익숙한 음성에, 호칭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방울아 살아있었어어?”
“…….”
“방울아 왜 전화도 안 받고, 톡도 안 보고오!”
“어…….”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
태준이 은한의 어깨를 한가득 끌어안고 그리움을 토해 냈다. 세상에. 은한이 참담하게 눈을 내리감았다. 하태준 혼자 있어라. 제발, 혼자 있어라. 그리 빌었지만, 언제고 신이 제 편이었던 적이 있었는가.
삐그덕삐그덕 돌린 시야에는 태준과 진우. 그리고 한결이 서 있다. 진우 역시 당황한 건지 모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한결은 무언가를 목도한다. 딱 그 수준의 표정이었다.
그리고 공대남 셋은, 태준의 고집으로 은한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은한은 잘 먹던 국밥이 역류하는 걸 느꼈다. 학교 가는 길에 소화제를 사 먹어야겠구나, 생각했다.
미현과 함께 있을 때 만난다. 국밥집에서 만난다. 다 예상 답안에 있던 것인데, 합석한다는 없었단 말이다. 빌어먹을 하태준.
“와. 방울이 이제 금방울이네?”
“어어…… 뭐…….”
“만져 봐도 돼?”
“어어…… 그래…….”
은한의 옆에 찰싹 달라붙은 태준이 그의 금발을 신기한 듯 매만졌다. 저도 일 년 내내 금발을 해 놓고는 뭐가 그리 새롭다고. 그러고 보니 지금은 밤색으로 물들어 있다.
공대남 셋과 은한, 거기다 미현까지. 다섯 명이 둘러앉은 테이블은 어색하다 못해 얼 지경이었다. 은한이 엊그제 말을 배운 것처럼 더듬더듬 미현을 소개했다.
“그…… 어…… 여기는 미현이. 내 동기야.”
“안녕하세요. 손진우라고 합니다. 제 옆에 애는 백한결이고, 방울이, 그러니까 은한이 옆에 있는 애는,”
“하태준입니당.”
“네. 안녕하세요.”
미현이 밤새 술을 마셔 걸걸한 목소리를 애써 숨겼다. 은한의 핸드폰을 불나게 하던 또라이 공대남 셋이 이들이구나.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 후로는 정적 같지 않은 정적이 이어졌다. 은한은 반절 정도 남아 있는 뚝배기에 눈알을 빠트릴 듯 고개를 수그렸고, 미현은 느릿하게 수저질을 했다. 진우는 할머니와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았으며 태준은 방울아, 뭐 하고 지냈어? 손진우가 너 뉴욕 갔다고 하긴 했는데. 쩐당. 부러워. 나도 데리고 가지. 아, 나 군대에 있었구나. 근데 방울이 너는 탈색했는데 머릿결이 어떻게 이렇게 좋아? 셀 수 없이 질문과 혼잣말을 쏟아냈다. 그리고 한결은.
“…….”
그저 침묵이었다. 목구멍이 꽉 막혀 음식이 들어가지 않은 건 진작이고, 이제는 콧구멍까지 막히기 직전이었다.
아니 씨발. 어쩌다 이런 일이 도래한 거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은한이 국밥을 헤집으며 해답을 찾았다. 허나 알 수 있을 리가 있나. 태준이 마구잡이로 끌고 온 상황인데. 그저 어서 이 지옥 같은 상황이 끝나길 바라고 또 바라야 했다.
세 사람 몫의 국밥이 나왔다. 할머니가 희한한 조합의 테이블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천천히들 먹어. 체하면 아프다.”
넌지시 걱정 한마디를 던지고 가신다. 그녀의 눈에도 심상찮은 분위기인가 보다. 은한은 모든 걸 포기하고 식사에 몰두하기로 했다.
간간이 진우와 미현이 어색한 대화를 주고받고, 태준이 일방적으로 은한에게 말을 퍼부었다. 식사는 표면적으로만 매끄럽게 흘러갔다.
“그럼 방울이 휴학했으니까 이제 3학년 2학기야? 우리는 2학년 2학긴데. 일 년밖에 차이 안 나네!”
“어어. 그렇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깍두기를 집으려 젓가락을 옮겼는데, 달칵. 누군가의 젓가락과 맞물렸다. 은한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 젓가락이 한결의 것인걸.
챙그랑!
소스라치게 놀라 젓가락을 놓치고야 말았다. 테이블이 순식간에 싸하게 물들었다.
진우와 미현이 움찔 어깨를 떨었다.
“……방울아?”
“……은하니?”
은한이 동공을 잔뜩 확장 시킨 채 한결을 바라봤다. 한결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는지, 눈을 크게 뜨고 은한을 쳐다보고 있었다. 약 3초쯤. 눈을 마주하고 있다 홱, 시선을 돌렸다.
“손이 미끄러져서…….”
아. 나가 뒤질까.
은한이 주섬주섬 테이블에 널브러진 젓가락을 챙겼다. 그러나 침몰할 대로 침몰해 버린 분위기는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 늘 발랄하던 태준도 꾹 입을 다물고 있다.
의외로 가장 먼저 입술을 뗀 사람은 한결이었다.
“나, 약속 있었는데 잊어버리고 있었어. 먼저 갈게.”
변명 한 번 참 성의 없다. 한결이 빠르게 짐을 챙겼다. 짐이라고 해 봐야 풀지도 않은 가방이 다였다. 만 원짜리 하나를 테이블에 둔 그가 일어선다. 끼이익. 의자 밀리는 소리가 쓸데없이 크게 났다.
“할머니. 저 먼저 가 볼게요.”
“밥 안 먹고?”
“아아. 약속이 생각나서요.”
내일 또 올게요. 그 사이에 또 인사성은 바르다. 꾸벅 허리를 숙인 한결이 곧 가게를 벗어났다. 하지만 그가 떠난 후에도 네 사람은 무거운 정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결의 앞에 놓여 있던 뚝배기에서 하얀 김이 올라온다. 몇 숟갈 뜨지 않아 새것과 다름이 없었다.
은한이 신경질적으로 젓가락을 내려놨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콱콱 땅을 짓밟으며 가게를 나왔다. 멀지 않은 거리에 목적지 없이 걷고 있는 한결이 보였다.
씨근덕거리며 그를 향해 뛰었다.
“백한결.”
“…….”
뒤를 돈 한결의 눈썹이 살짝 위로 올라갔다. 은한이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작게 숨을 들이마신 은한이 와다다 준비했던 말을 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신경 쓰지 않는 척. 몇 번이나 연습했던 거라 자신 있었다.
“교양은 네가 뺐으니까, 이건 내가 갈게. 어차피 거의 다 먹었고.”
“…….”
한결이 지긋이 그를 내려다봤다. 그 상황에서도 가볍게 흩날리는 금발이 그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괜찮아. 네가 먹어. 말랐다, 너.”
“…….”
단조로운 한결의 말이 참…… 속없이 평화롭다. 은한은 짜증이 났다. 그가 아니라 저에게. 너는 왜 이런 순간조차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일까. 그런 너에게 나는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먼저 지쳐 떨어져 나가게 만들었을까.
“나 안 말랐어.”
“…….”
“그러니까 가서, 먹어.”
이럴까 봐. 이럴까 봐 진우, 태준과 거리를 뒀다. 한결이 불편해할 테니까.
한결의 입술이 한일자로 다물렸다. 그의 시선이 은한의 얼굴 위를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이렇게 오래,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일 년 만에 처음인데. 나누는 대화 꼴이 영 별로다.
“진짜 괜찮아서 하는 말이야. 들어가서 밥 먹어.”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기 싫다는 듯 한결이 미련 없이 뒤를 돈다. 은한의 얼굴이 맥없이 흘러내렸다. 그가 또 나를 등지고 걸어간다. 성큼성큼 걷는 걸음걸이에 망설임이라곤 없다. 은한이 벅벅, 세게 눈두덩을 문질렀다.
속이 맵다.
* * *
팀플. 팀플. 팀플. 은한은 전생에 팀플을 하다 화병으로 죽은 게 틀림없었다. 영어 발표와 토론. 강의명만 봐도 속이 울렁거렸으나 교양필수라 이수해야만 했다.
문제는 토론. 토론을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팀 단위로 하는데. 이 미친년놈들이 죄다 잠수를 탄 거다. 당장 다음 주가 발푠데.
토론을 망치면 잘 받아 봐야 B다. 나름 1년이나 어학연수를 다녀왔는데, B를 받을 순 없었다.
하지만 토론이 혼자 잘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전략을 짜야 하는데, 실컷 짜 놔도 이 연락 없는 새끼들이 행패를 부리면 어쩌냔 말이다.
“존나…… 원한다…… 자퇴…….”
창가 카페에 앉은 은한이 쿵, 머리를 박았다. 작은 누나가 그냥 뉴욕에서 같이 살자고 할 때 고분고분 말 들을 걸 그랬나. 하다하다 이제는 파비우가 그리울 지경이었다.
수십 장의 자료에 볼을 파묻은 은한이 핸드폰을 밝혔다. 동기 톡방이 시끌벅적하다. 저와 같이 자퇴를 울부짖는 그들에 슬핏 웃음을 흘렸다. 쭉쭉, 스크롤을 내렸다. 저 아래에 이제는 죽어 버린 또라이 공대남 셋 톡방이 있다.
나가지도 못하고, 지우지도 못하고. 은한의 몇 남지 않은 미련 중 하나였다.
지금은 태준과도, 진우와도 연락하지 않는다. 또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까 봐. 국밥집에서 일이 있던 후, 태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아주 간곡히 사과를 전했다.
단지 그 순간 제가 너무 반가웠고. 아무리 한결과 그리 됐다 한들, 절 잃고 싶지 않았고. 또 잘 하면 한결과 제가 다시 친구로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단다.
은한은 그래. 알았어. 괜찮아. 그리 단조로운 답만 전했다. 그리고 자연히 연락이 끊겼다.
한참이나 공대남 셋. 그 활자를 바라보던 은한이 몸을 일으켰다. 다시 자료에 집중하려 했다. 토론 주제는 쉬웠다. 선의의 거짓말을 해도 되는가. 기초 필수 교양의 영어 토론이다. 전부 한국인인데 경제나 과학 같은 걸 주제로 줄 리 없었다.
찬반은 교수님이 임의로 정해 줬는데, 은한은 반대 입장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반대로 쓸 수 있는 사례가 떠오르질 않았다. 선의의 거짓말이 왜 선의인데. 다 잘 되라고, 배려하는 게 선의가 아닌가.
“반대가 어디 있어. 씨발…….”
저만 해도 매일 선의의 거짓말을 달고 사는 판에. 은한이 쭈웁. 새까만 아이스커피를 빨아 당겼다. 관자놀이가 지끈해질 정도로 차가운 액체가 답답한 속을 씻어 내리는 듯했다.
“사례가 하나 있긴 하지.”
제가 한결에게 수도 없이 했던 선의의 거짓말들. 그에게서 전화가 올 때마다 수업 중 아니야. 힘들지 않아. 안 아파. 그런 같잖은 거짓들을 끊임없이 나불거렸었다. 결과는 지금의 상황이 충분히 말해주고.
그렇다 한들. 교양 수업에 들어가서 내가 게인데, 남자친구가 군대에 갔어. 걱정하지 말라고 선의의 거짓말을 존나 했거든? 근데 헤어졌어. 그럴 순 없지 않은가.
은한이 푸욱- 한숨을 내쉬며 턱을 괬다. 널따란 창밖으로 펼쳐진 날씨가 참 암울하다. 새까만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는데, 비는 오지 않았다.
그러잖아도 좋지 않은 기분을 땅끝까지 끌어내리는 날씨였다. 여름이 지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에어컨을 틀고 있는 카페 덕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곱절이 됐다.
부르르. 어깨를 떤 은한이 다시 모니터에 집중했다. 선의의 거짓말. 거짓말. white lie, lie. 그런 것들을 검색하며 구글에 뼈를 묻는 중이었다.
우우웅-
핸드폰이 울렸다. 은한이 컴퓨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더듬더듬 핸드폰을 찾았다.
[손진우]
오랜만에 뜨는 이름이다. 은한은 물끄러미 그 이름을 보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다. 일언반구 말도 없이 전화한 거 보면, 당연히 좋은 일은 아니리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백한결일까. 무심코 잘생긴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그에 관한 이야기일지라도 무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또 뭘 몰라서 그에게 상처를 주는 건 끔찍할 만큼 싫었으니까.
마른 입술을 핥은 은한이 꾹.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은한아.
역시나. 예상대로 가라앉은 목소리다. 은한이 흡. 헛숨을 삼키며 그가 뱉어낼 비보를 감당할 준비를 했다.
“응.”
-학교야?
“아니. 정문 앞 카페.”
-바빠?
“뭐. 그냥. 왜?”
-그……. 어…… 그러니까…….
“…….”
은한은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그가 말을 끌면 끌수록 다리가 덜덜덜 방정맞게 떨렸다. 뭔데. 무슨 일인데. 재촉하고 싶은 마음과,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공존했다.
그리고 진우가 던진 비보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은한이 감히 감당할 수 없는 거였다.
“하아, 하아…….”
무릎과 발목이 으스러질 것처럼 아팠다. 발바닥도 아렸다. 오랜만에 신은 구두가 발을 더 아프게 만들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저 멀리 ‘장례식장’. 단정하게 쓰인 팻말이 보였다. 그제야 멈춰 가쁜 숨을 골랐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만나는데 엉망인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언제부터 흐르고 있었는지 모를 눈물을 벅벅 억척스레 닦아 냈다. 그래도 시야는 자꾸만 흐려졌다. 비도 오지 않음에도 온 세상이 축축이 젖었다.
넥타이를 정리하고, 재킷에 구겨진 부분이 없는지 점검했다. 구두끈도 풀었다가 다시 묶었다.
-오늘 점심 먹으러 갔더니 문이 닫혀 있더라고. 할머니가 쉬신 적이 없는데. 괜히 아쉬워서 서성거리다가 문에 포스트잇 붙어있는 거 발견했다.
여기 우리 학교 병원 장례식장이야. 우리도 방금 왔어. 너한테도 알려 줘야 할 것 같아서. 안 바쁘면 너도 와서 인사드려.
그러다 잠시 무릎에 코를 파묻고 미처 추스르지 못한 눈물을 쏟아냈다. 결국 은한은 울음을 그치는 데 실패한 채로 장례식장에 들어서게 됐다.
“왔어?”
“어어…….”
조객록을 쓰고 있으니 진우가 울적한 얼굴로 은한을 반겼다. 그 옆에 태준과 한결 역시 어두운 얼굴로 서 있었다. 그들과의 인사는 잠시 미루고, 먼저 상주에게 가 서투른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 후 분향실에 들어섰다.
바깥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맴돈다. 매캐한 향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수북이 쌓인 국화 위에 할머니의 얼굴이 걸려 있었다.
“……할머니. 저 왔어요.”
은한이 애써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어. 왔냐? 무심한 할머니의 대답이 들려오는 듯했다.
분명 몇 주 전만 해도 드라마를 보며 웃으셨는데. 이제는 그 웃음을 사진 안에서 짓고 계신다. 예쁜 담홍빛 한복을 입고 있으신 할머니는 참…… 아리따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자주 갈 걸 그랬어요.”
“…….”
“이제 할머니 국밥 못 먹어서 어쩌지.”
“…….”
“밥 잘 먹었습니다. 감사해요, 할머니.”
진짜…… 보고 싶을 거예요. 향을 올린 은한이 천천히 두 번 절을 했다. 후두둑. 두꺼운 눈물방울이 바닥에 진한 얼룩을 만들었다.
죽음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많은 글과 드라마에서 또 영화에서 그랬으니까. 그래도, 이렇게까지 기미 없이. 예고 없이. 차마 한마디 말조차 건네지 못할 정도로 급작스러울 필요가 있는가.
대상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상주와도 맞절한 은한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뗐다. 장례식장에는 사람이 많았다. 너무 조용하지도, 너무 들뜨지도 않은 장례식장이 어색했다. 태어나 처음 와 보는 곳이니 당연했다.
모든 이들이 울고 있는 곳이 장례식장이라 생각했는데. 간간이 웃는 소리도 들리는 게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가족들에게는 급작스러운 죽음이 아니었구나, 싶어서.
살짝 입을 벌린 은한이 장례식장 가운데에 멀뚱히 서 있었다. 눈앞에 할머니의 영정 사진이 잔상처럼 일렁여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리 와.”
누군가가 은한의 팔목을 잡아챘다. 은한은 그가 누군지도 모른 채, 끌려가듯 발을 옮겼다. 다다른 곳은 접객실 구석 어귀였다. 육개장과 하얀 쌀밥. 정갈한 밑반찬이 놓인 상에는 소주 두 병이 올려져 있었다. 푹 고개를 고꾸라트린 태준과 진우도 있었다. 그럼 제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이…….
은한이 희끄무레한 시야를 헤쳐 냈다. 까만 수트를 입은 한결이 방석 하나를 가지고 왔다. 별말 없이 그 자리에 앉았다.
“인사드렸어?”
진우가 물었다. 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쇳덩이 같은 공기가 테이블에 내려앉았다. 은한은 앉아서도 툭, 투둑 눈물을 떨어트렸다.
이곳이 할머니의 장례식장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났다. 지금 국밥집에 가면, 드라마를 보고 있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절 반길 것 같은데. 하얀 김이 올라오는 국밥과, 서비스라는 말조차 않고 턱 내려놓던 만두가 있을 것 같은데.
소매가 축축했다. 하도 눈물을 닦아 내서. 종국에는 끅끅 딸꾹질까지 했다. 새빨갛게 일어난 눈가가 쓰렸으나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종이컵에 찬물을 따른 한결이 그것을 은한에게 내밀었다. 은한은 컵을 받아 들고서도 삼키진 못했다. 한결이 코로 한숨을 내쉬었다.
“밥은?”
“생각 없어…….”
“그래도 먹어.”
빈속에 울면 안 좋아. 한결이 은한의 앞으로 밥과 국을 밀었다. 하다못해 나무젓가락까지 쪼개 준다. 은한이 짜증스레 컵을 내려놨다. 거칠게 일렁인 물이 손등을 적셨다.
“대체 나한테 왜 그러냐, 너.”
“…….”
한결의 얼굴이 버석하게 굳었다. 눈을 잔뜩 홉뜬 은한이 그를 노려봤다. 충혈된 눈동자가 형형한 빛을 뿜었다. 나한테 지쳐서 날 버린 건 넌데, 왜 자꾸 흔들어. 왜 나를 옥죄어 죽이려 해. 원하는 게 뭔데.
진우가 낮게 으르댔다.
“야. 너네 작작해. 이 새끼들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
“…….”
진우의 꾸지람에 은한이 질끈 눈을 감았다. 짜증이 났다. 절절하게 운 탓에 눈알이 따갑다. 머리도 아팠다. 그런 상황에서도 옆에 앉은 한결이 신경 쓰여 미치기 직전이었다.
은한이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짓눌렀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그칠 줄 모른다.
“하, 할머니…… 사고…… 같은 거 나신 건 아니지?”
“응. 주무시다 가셨대.”
“다행이네…….”
단전 아래까지 숨을 들이마셨다. 꿉꿉한 공기가 내장을 온통 쓸어내린다. 장례식장의 공기는, 공기로 표현하기엔 모호한 다른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그래서 마시면 마실수록 끝없는 슬픔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 같았다.
여태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태준이 툭. 한마디를 던졌다.
“할머니 보고 싶다.”
그 말에 한껏 울적해졌다. 은한이 다시금 찡하게 달아오르는 코끝을 숨기지 못했다.
“……나도.”
네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슬픔에 잠겨 있었다.
언제부터 쏟아졌는지 모를 비가 세상을 적시고 있었다. 좁은 처마 밑에 선 은한이 멍한 눈으로 빗방울을 셌다. 흐린 시야가 제자리로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비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잠시 정신을 개러 왔거늘. 비가 온몸으로 방해를 해 댔다. 웅덩이로 번지는 작은 파동들을 보고 있는데, 옆으로 매끈한 구두 하나가 섰다. 은한이 빼꼼히 고개를 들었다.
담배를 꼬나문 한결이었다. 어깨 위의 빗물을 털어낸 그가 하얀 담배 한 개비를 내밀었다.
“피울래?”
“……아니. 나 담배 끊었어.”
자꾸 누가 생각나서. 뒷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삼켰다.
“……그래?”
한결이 바스러질 듯 웃었다. 그리고는 쓰레기통을 향해 담배를 조준했다. 은한이 다급하게 그의 재킷 자락을 쥐었다.
“그냥 나 주라.”
“끊었다며.”
“물고만 있게.”
눈썹을 들썩인 한결이 다시 담배를 내밀었다. 은한이 그것을 입에 물었다. 오랜만에 혀끝에 닿는 담배가 낯설다.
찰칵, 라이터에 불이 붙고 한결의 입술 새로 하얀 아지랑이가 뿜어져 나왔다. 매캐한 연기를 맡으니 흡연 욕구가 치솟았다. 은한이 잘근잘근 필터를 씹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추락하는 비를 구경했다. 쏴아아- 쏟아지는 빗소리와 간간이 한결이 뿜는 연기 소리, 이따금 시끄러운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와 자동차 소리가 정적을 가득 메꿨다.
은한이 물고 있던 담배를 반으로 부러트려 쓰레기통에 던졌다. 장례식장 귀퉁이, 어두침침한 곳에 있는 쓰레기통은 재떨이로 이름을 바꾼 지 오래인 듯했다.
한결은 담배를 연달아 세 개나 피웠다. 은한이 흘끔 그를 훔쳐봤다.
“넌 안 우네.”
“…….”
그는 답이 없었다. 여전히 폭우의 허공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을 뿐. 은한은 그의 눈동자에서 아주 많은 감정을 봤다. 슬픔, 그리움, 애통함, 우울함. 뭐 그런 거.
그리고 그사이에 섞인 미묘한, 익숙함. 타인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목도한 적 있는, 그래서 슬픔을 어떻게 추슬러야 하는지 알고 있는 익숙함.
은한이 한결을 향해 몸을 돌렸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 지금도 제정신이 아니야. 깊은 물에 빠져서 익사하고 있는 것처럼 무서워.”
“…….”
“그러니까, 미쳤다 생각하고 물어볼래. 아니면 내가 병이라도 걸릴 것 같거든.”
은한의 말에 한결이 물고 있던 담배를 빼냈다. 그의 검지와 중지에 걸린 담배가 새빨갛게 익어 간다. 은한이 마른침을 삼켰다.
“왜 말 안 했냐?”
“뭘.”
“너희 부대에. 그런 사건 있었다고. 그렇게 좆같은 오해 받고 있다고. 왜 말 안 했어?”
“…….”
한결의 손에서 담배가 추락했다. 척척한 바닥이 담뱃불을 흔적도 없이 죽였다.
“어떻게…… 알았어?”
“그게 중요해?”
“어떻게, 알았냐고.”
한결의 얼굴이 마구잡이로 뒤틀렸다. 그는 무언가에 분노한 것 같기도 했고, 부끄러운 치부를 들켜 수치심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은한이 픽, 헛웃음을 삼켰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서 알려 주시더라, 씨발놈아.”
“…….”
“너는 언제까지 숨길 생각이었는데? 평생? 하긴 우리 헤어졌으니까 숨기고 말고 할 필요도 없었겠다.”
은한이 툭, 바닥을 찼다. 물방울 몇 개가 공중에 나부낀다.
“근데 말이야. 너 그 일 있을 때, 나랑 사귀는 중이었잖아. 진짜 잠깐. 잠깐만 사귀던 그때로 돌아가서 물어볼게.”
“굳이,”
“싫어도 물을 거야. 이미 물었어. 대답해. 왜, 말 안 했어, 왜.”
은한의 독촉에 한결은 오히려 더 단단히 입을 다물었다. 은한은 이제 오기까지 들었다. 대체 뭐 얼마나 대단한 이유기에, 이렇게까지 꽁꽁 숨기나 궁금했다.
은한이 한 발자국 한결을 향해 다가갔다. 가까워진 그에게서 담배 냄새와 익숙하지 않은 냄새가 섞여 났다. 이전에 맡아 봤던, 머스크 향. 뿌리지 마. 안 어울려. 네 원래 냄새가 훨씬 좋아. 말하려다 말았다. 그리 말할 권리가 없어서.
“왜 숨겼냐고. 물었잖아.”
“말하려고 했었어.”
참다 못한 한결이 혀 아래에 숨겨 놨던 수많은 말 중 한마디를 꺼내 놨다.
“…….”
은한의 동공이 가늘게 경련했다. 맞아 그랬지. 바쁘다는 말에 그래도 잠시만, 통화하면 안 되겠냐고. 그리 애원했었지. 그건 전적으로 제 잘못이 맞다.
하지만…… 그 후로도 말할 시간은, 기회는 많지 않았던가. 3주라는 긴 시간 동안, 수십 번이고 전화할 수 있었다. 종일 핸드폰을 끌어안고 살면서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얼마나 깊은 자괴감에 빠져 벌 같지 않은 벌을 받았는지 알고나 있을까.
“그날, 한 번뿐이었잖아. 내가 다시 통화하자고 했지. 근데 안 했잖아. 얼마든지 다시 할 수 있었는데……. 3주 내내 네 전화만 기다렸는데, 왜…….”
“그러고 싶지 않았어.”
“……뭐?”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하……. 왜? 그때는 이미 내가 미워지고 난 후였어?”
“강은한. 나는 단 한 순간도 너를 미워한 적이 없어.”
한결이 꽉 어금니를 씹었다. 그의 눈에 분노가 일렁였다. 그런 표정의 한결은 처음 봤다. 은한은 저도 모르게 도망칠 뻔했다.
후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쉰 한결이 상기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되뇌기 시작했다. 은한과 우연한 만남이 거듭될수록 절벽과 가까워지는 게 살갗으로 느껴져서. 차라리 모든 걸 털어놓고 끝내고 싶었다. 그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나는…… 그날도 네게 전화 걸까, 말까. 수십 번이나 망설였었어. 혹시 네가 바쁠까 봐. 내가 방해가 될까 봐. 그래도 안 할 수가 없더라. 네 위로 한 마디가 너무 간절했거든.”
“…….”
한결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은한이라면, 이런 말을 해줄 거야. 이런 말을 듣고 싶어. 그 생각으로 수화기를 들었었다.
“네가 그럴 리가 없는데.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네. 나는 알아, 네가 그러지 않았다는 거. 그런 평범한 위로가…… 너무 고팠어.”
“…….”
“근데 너 그때 뭐라고 했어.”
은한이 다급하게 입술을 뗐다. 그날이라면 저도 할 말이 있었다. 저도 힘들었고, 바빴고, 아팠고. 물론 감히 한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사정이 있었단 말이다.
아스팔트에 거칠게 갈렸던 무릎이 다시금 아려 오는 듯했다. 여태 끈질기게 흉터로 붙어 있는 상처였다.
“그날은 나도…….”
하지만 한결은 은한의 변명을 들어 주지 않았다.
“은한아. 나도 사람이야. 상처받고, 슬퍼해. 그게 다 단지 너를 좋아해서. 그래서 받는 상처야.”
“…….”
“그리고 나는 그날 아주, 아주 큰 상처를 받았어.”
너를 계속 좋아하는 게, 힘들 만큼. 한결이 건조한 눈두덩을 꾹꾹 눌렀다. 연한 짜증이 배어 있는 행동에 은한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저는 또 사과보다, 이해보다 제 입장을 먼저 말하려 했다. 이해를 얻으려 했다. 그러한 실수는 충분히 했다. 은한이 꽉, 세게 입술을 깨물었다. 변명 말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했다.
“대답 들었지? 먼저 들어간다.”
한결이 떨어진 꽁초를 주워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곤 뚜벅뚜벅 처마를 벗어나 척척히 젖은 땅을 가로질렀다. 그의 까만 재킷 위로 세찬 비가 가감 없이 쏟아졌다.
눈을 한 번 깜박일 때마다 한결이 멀어진다. 은한은 그걸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철벅. 물웅덩이 위로 발을 디뎠다. 축축이 젖은 바짓단이 쇳덩이처럼 무거워졌다.
한결은 그리 멀지 않았음에도, 멀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힘겨웠다. 그럼에도 은한은 끈질기게 한결을 따라잡았다. 끝내는 그를 앞질러 길목을 막고 섰다.
“내가 미안해.”
“…….”
“그렇게 상처받았을 줄 몰랐어.”
사과 한마디 전하는 데 참 오래도 걸렸다. 일 년을 돌고 돌았다. 그날, 하얀 가로등 아래서 더는 제 얼굴 보기가 힘들다는 말을 들었던 날. 그날 한 번이라도 한결을 붙잡아 볼걸. 다시는 전화 못 받는 일 없을 거라고. 나 아직도 너 좋아한다고. 미안하다고. 그런 말만 했어도 이리 길게 돌아오진 않았을 터였다.
은한이 속눈썹에 주렁주렁 매달린 빗물을 아무렇게나 닦아 냈다.
“한결아.”
“…….”
오랜만에 부르는 그의 이름이 어색했다. 다행히 한결은 은한을 무시하지도, 지나치지도 않고 가만히 기다려 줬다. 그래도 불안해서 빗물에 흠뻑 젖은 그의 소맷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만큼 간절했다.
어떻게 결론이 나도 좋았다. 한결과 함께 했던 시간을 악몽으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떠올릴 때마다 내 스무 살이 얼마나 행복했고, 얼마나 사랑받았었는지 추억하고 싶었다.
“하, 한 번만 위로하게 해 주라.”
“…….”
“제발……. 어?”
은한이 간절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그렁그렁한 눈동자와 짓무른 눈가, 발갛게 익은 코끝이 찬 빗물에 씻겨 갔다. 한결이 빗물에 무거워지는 앞머리를 아무렇게나 쓸어 올렸다.
“어떻게 할 건데?”
“어?”
“위로. 어떻게 할 건데.”
“…….”
어…… 그러니까……. 은한이 안절부절못하고 눈을 굴렸다. 제발, 까지 붙여가며 위로하겠다더니 어떻게 할 건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한결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일 년이 넘었어. 인제 와서,”
“잠시만, 잠시만.”
은한이 휘휘 주위를 둘러본다. 곧 무언가를 발견하고 한결의 손목을 질질 잡아끌었다. 한결은 께름칙하게 그의 손에 이끌려갔다.
은한의 발이 멈춘 곳은 얕은 화단 앞이었다. 제대로 손질되지 않아 바스러진 낙엽과 얼기설기 규칙 없이 자란 잔디로 엉망인 화단. 한결이 한쪽 눈썹을 비죽 위로 올렸다. 꽃이라도 심자는 걸까.
은한이 성큼 얕은 화단 위로 올라갔다. 한결보다 조금 높아진 시야가 어색했다.
“어…….”
호기롭게 끌고 올 때는 언제고 말을 먹는다. 요상하게 몸을 뒤틀던 은한이 쭈뼛쭈뼛 팔을 벌렸다.
“이리 와.”
“…….”
“와서 안기라고.”
하. 한결이 맹한 낯으로 뻐끔 턱을 떨어트렸다. 은한의 광대에 불그스름한 열이 찼다. 물끄러미 그것을 응시하던 한결이 주먹을 쥐었다가 풀었다.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다 으득 이를 씹는다. 신경질적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안절부절못했다.
척척한 빗물에 시야가 흐렸다. 덩달아 정신도 눅눅히 어디론가 녹아들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못한 은한이 한결의 손목을 쥐고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한결이 속이 텅 빈 인형처럼 그에게 끌려갔다.
은한이 천천히 그의 널따란 등을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힘들었지.”
“…….”
너무 늦은 위로였다. 지금 해 봐야 뭐가 얼마나 달라지겠느냐마는. 조금이라도 한결을 위로해 주고 싶었다. 보듬어 주고 싶었다.
은한은 한결의 등뿐만 아니라 귓불을 매만지기도 하고, 흠뻑 젖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서툰 위로를 전했다.
“나는 다 알아. 네가 안 그런 거. 그 새끼들이 멋대로 오해한 거야.”
“…….”
“네가 그럴 리가 없는데.”
멀뚱히 굳어있던 한결의 팔이 느리게, 아주 느리게 들렸다. 그 손이 곧 한가득 은한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한결이 은한의 목덜미에 얼굴을 욱여넣었다. 이게 그렇게 그리웠다. 잔잔한 심장 소리가, 은은한 체취가. 아니, 그냥 은한 그 자체가.
한결은 그를 미워하기엔, 그를 너무나 사랑했다. 제가 죽을 것 같아 그를 버렸는데, 그를 버리고 나서는 죽지 못해 살았다.
허리를 감싸 쥔 한결의 팔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숨이 가빠졌다. 귓가에 단조로이 내려앉는 은한의 목소리가 대충 덮어 뒀던 상처를 다시금 헤집기 시작했다.
덜덜덜, 어깨가 볼품없이 경련했다. 한결은 꾸역꾸역 삼켜 낸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순식간에 곰팡내가 나고, 거무튀튀한 취조실 구석으로 돌아갔다.
그가 축축한 음성으로 죄목 없는 속죄를 시작했다.
“어떻게 괴롭혔냐고, 어떻게 때렸냐고 묻더라. 나는…… 상상으로조차 그래 본 적이 없는데.”
“…….”
좁은 취조실에 갇혀서 온종일 그런 질문만 받았었다. 험악한 표정을 한 남자들이 캐묻고 또 물었다. 그들은 답을 정해 놓고 제가 그 말을 하길 원했다. 그 답이 무엇인지 뻔히 보였지만 해 줄 수 없었다. 그러지 않았으니까.
“내 편이 하나도 없었어. 다 나를 비난했어. 아무도 내 말을 믿어 주지 않았어. 걔가 있는 병실에 가 보고 싶었는데, 안 된대. 내가 그렇게 만들어…… 놓고 염치도 없다고…… 그랬어.”
한결의 목소리가 드문드문 끊겨 갔다. 은한이 질끈 눈을 감았다. 볼을 타고 흐르는 게 눈물인지 빗물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참, 아픈 날이다. 할머니도, 한결도.
은한이 조금 더 단단히 한결을 보듬어 안았다. 불규칙한 한결의 숨이 귓가에서 흩어지는 게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슬펐다.
“내가…… 그러지 않았어.”
“응. 네가 그런 거 아니야. 너는 잘못 없어.”
“내가…… 안 그랬어…….”
“알아. 네가 안 그런 거.”
아무리 덩치가 크고, 어른스럽다 한들. 한결은 그래 봐야 스물한 살이었다. 아끼던 사람이 자살시도를 했다. 그 슬픔을 미처 추스르기도 전에 온갖 추궁과 미움과 오해를 감당해 내야 했던 그가 얼마나 난도질당했을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진작 달래 줬어야 했는데. 위로해 줬어야 했는데. 이렇게 큰 상처를 혼자 감당하게 했다. 연인이란 이름 아래에 있으면서도,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대뜸 나타난 한결이 그만하자고 말할 만도 했다. 은한은 비로소 한결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폭우 속에서 한참이나 서로의 온기를 나눴다. 한결은 꾸역꾸역 억누르던 서러움을 다 쏟아 내겠다는 듯 울었고 은한은 그런 그가 가여워 함께 울었다.
“둘이 뭐해?”
빗줄기를 해치고 파고든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그러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머리 위로 떨어지던 비가 그쳤다 했더니 어느샌가 우산이 하늘을 대신하고 있었다.
“새로운 놀이야?”
끌어안고 비 맞기? 눈을 댕그랗게 뜬 태준이 비죽 웃으며 묻는다. 은한과 한결이 후다닥 떨어졌다. 다행히 비가 엉엉 운 얼굴을 감춰 줬다. 은한이 벅벅 얼굴을 문질렀다.
“가, 가게?”
“어. 손님이 많이 오시더라고. 잠깐 일손 돕다가 나왔어. 역시 우리 할머니 인맥도 쩔어. 장난 아니야.”
태준의 어깨로 비가 쏟아진다. 남자 셋이 한 우산을 쓰고 있으니 당연했다. 은한이 태준의 손을 밀어냈다.
“너 써. 우리 어차피 다 맞아서, 괜찮아.”
“…….”
태준이 코를 찡그리며 한결과 은한을 번갈아 봤다. 은한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오랜만에 보는 눈빛이다. 귀신에 홀린 것 같기도 하고, 정신을 놓은 것 같기도 하고. 또라이 발발 직전의 눈.
아니나 다를까. 태준이 쥐고 있던 우산을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까뒤집어진 우산에 금세 빗물이 차올랐다.
“……미쳤냐?”
“응.”
고개를 까닥인 태준이 하늘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두 팔을 한껏 벌리며 비를 온몸으로 품었다. 은한이 그를 미친놈 보듯 흘겼다.
태준은 하늘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집요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은한과 한결이 그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볼 정도였다. 새까만 구름이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다. 언뜻언뜻 색이 다른 구름 새로 희끄무레한 빛이 스며들었다가 사라졌는데 그게 뭐라고 넋을 놓게 됐다.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비에 눈을 뜨기가 힘들었음에도 꾸역꾸역 구름을 쳐다보고 있었다.
“……너희 뭐하냐?”
어깨에 우산을 걸친 채 담뱃불을 붙이던 진우가 세 사람을 발견하고 돌덩이처럼 굳었다. 멀쑥하게 수트를 잘 차려입은 남자 셋이, 어디가 모자란 것처럼 우두커니 서서 비를 맞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진우 너도 이리 와라.”
“되게 재미있어.”
은한이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진우를 불렀다. 진우의 콧구멍이 마구 벌렁거렸다. 그들 틈에 끼고 싶은 마음과, 후에 젖은 옷가지를 걱정하는 마음이 마구 부대낀다. 물론 승리는 전자가 했다.
우산을 접은 진우가 뚜벅뚜벅 그들 옆으로 걸어갔다. 잠시 세 사람을 응시하다 그들처럼 고개를 젖혔다.
쏴아아- 퍼붓는 빗줄기가 온몸을 적시다 못해 마음마저 적신다. 알 수 없는 해방감과 시원함이 느껴졌다.
“비 진짜 오랜만에 맞는다.”
“나도. 초딩 때는 비 맞으면서 자주 놀았는데.”
“할머니 덕분에 이 나이에 이런 짓도 해 보네.”
“그러게. 할머니 덕분에.”
은한이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제 옆에, 그렇게 그립고 그립던 공대남 셋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먼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미국에서 온 지가 언젠데. 이제야 그 기분을 만끽한다.
문득 먼 과거에, 딱 이 모습과 똑같이 서서 첫눈을 받아먹던 게 떠올랐다. 슬핏,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우리는 눈도 처먹고, 비도 처마시고. 일찍 뒤질 거야.”
“아니야. 이거는 할머니가 내려 주시는 거라서 몸에 좋아.”
태준이 단호히 그 말을 부정했다. 은한이 코를 훌쩍였다.
“존나……. 그러면 내가 할 말이 없지. 많이 마시자.”
네 사람은 오랫동안 비 아래에 서 있었다. 실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웃음을 흘리면서, 시간을 공유하면서.
온몸을 때리는 듯한 세찬 비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먹구름 사이로 쨍쨍한 햇빛이 드리웠다.
환절기가 끝나 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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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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