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연지곤지]
에필로그
유네리아는 좌담회가 끝나고 개선안을 발표한 후, 대대적인 이벤트를 발표했다.
[유네리아 리부트 프로젝트]
그리고 반응은 뜨거웠다.
“진짜 이게 되네.”
지금까지 유네리아에 대한 불신을 쌓아 온 랭커 유저들은 물론이고 나까지 감탄할 정도로 유네리아는 바뀌고 있었다.
물론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게임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고…….
[강이현이 사는 템 보면 다음 패치 알 수 있는 거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KJ가 유얼머니게임즈, 사실상 유네리아의 운영에 영향을 끼치게 되면서 네드 님이 제대로 게임을 즐길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럼 내 공대파트너는???
[그래서 네드 템 안사잖아]
[이미 사서 살게 없는거임]
[그럼 유니가 사는거 보면 됨]
……물론 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 건 마찬가지였다.
물론 우리한테 다음 패치 정보가 자세히 전달되는 건 아니었다.
KJ 내부에서도 콘텐츠사업을 전담하는 건 네드 님이 아니라 동생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일반 유저가 알 게 뭐란 말인가?
이렇게 이 망겜을 접게 되는 건가???
[유니 유저님께]
그런 나와 네드 님에게 뜻밖의 제안이 왔다.
물론 좌담회에서 공식적으로 우리에게 사과하면서 충분한 보상을 약속한 후였다.
그래서 메일을 스팸에 처박지는 않았지만, 뭐가 그렇게 친하다고 이렇게 연락 주세요?
하지만 제안은 꽤 혹할 만한 제안이었다.
“오…….”
요컨대 유네리아 측에서 제안한 것은 이것이었다.
[KJ, 유얼머니게임즈 인수 후 VR 본격 투자]
[게임 세계의 새로운 가능성 열어]
한창 유네리아 VR버전 개발과 테스트가 반복되고 있는 요즘.
물론 유저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개발인 만큼 시간은 걸렸지만,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나와 네드 님이 들어갔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유네리아의 VR세계를 먼저 체험해보신 두 분께 새로운 레이드 시스템을 앞두고……]
그리고 그런 우리가 먼저 유네리아 VR에 들어가서 보스 레이드를 체험해 보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홍보 면에서도, VR 사업에 투자하고 있는 KJ 측에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나>>> 저번처럼 로그아웃 안 되는 것만 아니면 될 것 같은데요]
뭣보다 엘데와 비상식량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건 기쁜 일이었다.
[엘데가 기뻐합니다.]
PC 버전으론 이 정도의 시스템 메시지만 볼 수 있었으니까.
[네드 님>>> 안정성 면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 개발중인 만큼, 따로 VR 테스트용 서버를 만들어 변수를 최소화하면 괜찮을 거라는 것이 동생의 의견이긴 합니다.]
네드 님은 신중했다.
신중한 네드 님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안전은 그야말로 보증된 셈이었다.
[나>>> 그럼 가요]
그럼 참을 수 없지! 무엇보다 패치되기 직전의 뜨끈뜨끈한 보스 레이드는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안전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생겼다.
* * *
문제의 컨텐츠 ‘유저의 모험’ 라이브 방송 날.
나와 네드 님이 들어가서 켠 인벤토리가 합쳐져 있는 모습이 방송을 타 버린 것이었다.
[뭐임 둘이 결혼함????]
[결혼한사이였음???]
당연히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헉.”
실시간 방송 채팅을 볼 수 있도록 한쪽에 UI가 마련된 탓에 채팅 내용은 그대로 보였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는 말이 자막으로 나오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난 네드 님에게 작게 물었다.
“어떡하죠, 이거?”
모르긴 몰라도 기업인한테 연애는 중요한 일 아닌가?
물론 내가 네드 님 선 자리 막아 주겠다고는 했지만 이런 식으론 아니었는데!
뭔가 좀, 어? 전문적이고, 어? 좀 더 격식 있는 자리에서, 어?
무엇보다 미디어에 알려지기로 KJ그룹 총수는 굉장히 보수적인 이미지였다.
여기서 갑자기 이렇게 밝혀지면 보나 마나 노발대발하실 텐데 여자친구인 척하다가 돈 봉투 맞고 쫓겨나는 거 아니냐?
‘나랑만.’
그때 네드 님의 고백이 불쑥 떠올라 얼굴이 빨개졌다.
아, 이거 방송 타면 안 되는데!
온갖 망상이 머릿속을 때릴 때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더니 네드 님이 작게 속삭였다.
“유니 님의 답대로 하겠습니다.”
내 답? 내가 눈을 깜빡일 때 네드 님이 옅게 웃었다.
“유니 님은, 곤란하십니까?”
그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난 알고 있었다.
인벤토리가 합쳐진 것, 다시 말해 인게임에서 결혼한 건 게임 내에서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발표할 순 있었다.
‘배우자 미니’라는 사기 스킬이 있다는 걸 유네리아 유저들이 모두 아는 이상 납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
난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완전한 답을 찾아냈다.
알려져도 딱히 상관없을 것 같다고.
우리가 처음엔 타의 반 자의 반으로 결혼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라고.
이혼할 생각도 없고, 이 사람이 좋고.
무엇보다 이 사람과 있는 지금이 즐겁다고.
“안 곤란해요.”
내 답에 네드 님의 웃음이 짙어졌다.
“좋습니다.”
* * *
그리고 레이드 컨텐츠가 끝난 후.
우리가 유얼머니게임즈의 VR 실에서 나오자마자 기자들이 우르르 쫓아왔다.
“두 분께서 게임 안에서 결혼하셨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개인적인 관계로 발전한 겁니까!”
열띤 질문은 나올 거라고 짐작했던 질문이었다.
기자들 다루는 건 네드 님이 잘했으므로, 난 네드 님을 돌아보았다.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 순간 네드 님이 입을 열었다.
“개인적인 관계로 발전한 것이 맞습니다.”
그러자 카메라 플래시가 더 바쁘게 터지기 시작했다.
“두 분이 연인관계란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마 지금쯤 이야기가 아니라 기정사실화되어 있을걸?
유네리아 게시판이 불타고 있을 것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내 주머니의 휴대폰이 미친 듯이 울리는 걸 봐서는 확실했다.
내 웃음을 봤는지 기자들이 물었다.
“열애설 인정하시는 겁니까!”
연인관계가 맞냐 아니냐 했던 질문이 열애까지 번져 버렸다.
네드 님은 그 질문에 멈춰 섰다.
나와 나란히 걸음을 맞추던 네드 님은,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물었다.
“문제가 있습니까?”
그날로 난 진짜 유명인이 되었다.
* * *
KJ가 투자한 VR 게임 사업은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침체되던 RPG 시장에 닥친 새로운 파도]
KJ에 대한 평가는 고공행진했다.
사업을 이끈 건 강이현의 동생 강진하였으니 명목상으로는 강진하의 공이었지만, 사실상 주목받는 건 강이현이었다.
강진하는 그 상황에 불만을 가질 법도 했으나, 시원하게 답했다.
“나였으면 거기 들어가서 못 나왔어요.”
그 말로 KJ의 형제 사이에 불화가 생기는 건 아니냐는 말은 쏙 들어가 버렸다.
[VR사업 박차…… 관련 법제화 시급]
[KJ, “가장 중요한 건 안전”]
연이어 뉴스가 뜨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했다.
[늦어도 10년 내로는 상용화되지 않겠습니까?]
[게임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게 될 겁니다.]
해외에서의 반응도 뜨거웠다.
그리고 당연히 KJ 강이현의 평판은 하늘을 뚫으려고 했다.
[모르는놈1>>> 그동안 잘 지냈니?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 네 뒷자리에 자주 앉아 있었던 남자애 기억나?]
[모르는놈2>>> 안녕 은채야!!! 중학교 동창인데 오랜만에 인사하네!]
그리고 난 기억도 못 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연락을 받았다.
난 새로 폰을 파면서 그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 버렸다.
“이게 공인의 고통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하지만 고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다 나를 알게 되면서 이상한 놈들이 따라붙기도 했던 것이다.
“이쪽에서 지내시는 건 어떻습니까.”
내 사정을 들은 네드 님은 그야말로 완벽한 집을 준비해 주었다.
청소할 사람, 밥해 줄 사람이 있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인터넷이 안 끊기는 집이란 것이었다.
아, 물론.
“유니 님?”
퇴근 후에 네드 님이 찾아오기 아주 좋은 위치라는 장점도 있었다.
그는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지만, 함부로 문을 따고 들어오는 법이 없었다.
나도 굳이 비밀번호를 바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비밀번호는 우리 둘만 아는 비밀이 되어 버렸다.
“오늘 칼퇴하셨는데?”
네드 님이 준비해 준 내 집에서 가장 번쩍거리는 곳은 역시 게임방이었다.
네드 님, 유니 잘알…….
“일정 정하는 날이잖아요.”
네드 님이 겉옷을 벗어 걸어두고 내게 다가왔다.
“아, 저도 듀티 표 뽑아왔어요.”
난 병원 근무 일정표를 꺼냈다.
사실 본의 아니게 유명해지면서 병원도 옮길까 싶었는데, 오히려 큰 병원이 더 편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그대로 다니기로 결정했다.
작은 병원엔…… 보안팀이 없잖아?
잘리면 다른 병원 가지 뭐!
물론 이직률과 취업률이 하늘을 뚫는 직군인지라 편하게 생각한 것도 있었다.
“이번 달은 제가 해외 일정이 있습니다.”
“어, 제 오프데이랑 겹치는데?”
그와 일정을 정리하던 난 쭉 이어진 오프데이를 가리켰다.
사실 그의 해외 일정은 몇 달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밤낮이 다른 국가에 가면 연락하기가 힘드니까, 아예 그날을 오프로 비워 둔 것도 있었다.
물론 난 굳이 그걸 말하진 않았다.
음, 새삼 강조하면 뭐하잖아. 내가 볼을 긁적일 때였다.
“때마침 잘 됐군요.”
네드 님이 빙그레 웃었다.
그는 오프가 겹치는 것에 놀라지도 않는 듯했다.
내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을 때였다.
네드 님이 뭔가를 꺼내 내 앞에 내밀어 보였다.
“마침 직항이라 민항기를 이용할 것 같은데요,”
그가 내 앞에 내민 건 다름 아닌 비행기표였다.
“우연히 두 장을 끊어 버렸습니다. 이 날짜로요.”
……그도 내가 이때 오프를 잡을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 얼굴이 타오르는 가운데, 그가 물었다.
“어쩌죠? 곤란하시면 취소할까요?”
놀리는 거지! 다 알고 묻는 거지!
난 손을 내저었다. 푹 익은 얼굴을 감출 틈도 없었다.
“안 곤란해요.”
하나도 안 곤란해!
내 말에 네드 님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나도 약속한 것처럼 웃어 버렸다.
<때려부수기 전에 꺼내주세요>
완결.
외전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