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게임 ‘유네리아’ 랭커 유저 사라져]
그건 이전에 묻혔던 기사였다.
근데 그걸 다시 발굴해 낸 어떤 기자가 다시 기사를 쓴 것이었다.
[유저 ‘유니’ 관심 높아져…… 그는 누구인가?]
이딴 기사가 왜 포털 메인에 올라와 있어?
NOOOOOOO……!
이런 관심은 사절이었다. 절대 사양이라고!
왠지 기자들에게 걸리면 나도 인터뷰를 당할 것 같은 강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유저 ‘유니’를 안다는 소식통에 따르면 서울 소재의 N 대학병원에……]
서울 소재의 N 대학병원 여기밖에 없잖아! 숨기는 척하지 마!
무엇보다 그 소식통 대체 누구야!
내 개인정보가 해외로 날아가는 줄 알았더니 국내에서도 잘 돌아다니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알라반-빠께쓰 : 강2현 병원도 N대학병원아니냐]
└[메디카-주지스 : ㅇㅇ 맞음 서울에 N대학병원 하나뿐임]
└[알라반-빠께쓰 : 역시 유니=강이현이었던거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시판은 타다 못해 재도 안 남을 것 같았다.
게시판이 이 정도인데 기자들이 냄새를 안 맡았을 리가 없었다.
복도가 좀 소란스러워지는 것 같았다.
“병원에서 이러시면……!”
“……게는 안 하겠…….”
“이미 소란스럽고…….”
말리는 보안팀 사람들과 기자들의 실랑이 소리가 들려 왔다.
설마 여기에 유니가 입원해 있습니까? 같은 멍청한 질문 하는 거 아니지?
내 이름이 유은채가 아니라 성이 ‘유’ 씨에 이름이 ‘니’라고 해도 병원에선 그런 거 안 가르쳐 주거든?
하지만 이대로면 왠지 어떻게든 걸릴 것 같았다.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혹시 강이현과 같은 날짜에 입원한 환자 중에 오늘 깨어난 환자가 있습니까? 이건 개인정보 아니잖아요?’
같은 소리에 얼렁뚱땅 넘어갈 사람이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게다가 병원은 은근히 정보가 빨리 도는 곳이었다.
분명 개인정보는 소중하지만?
남의 의료정보를 마음대로 불어 버리면 처벌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지만?
이렇게 한 사건으로 시끄러우면 실수로든 어떻게든 이야기가 샐 수밖에 없었다.
“일단……, ……보자!”
왠지 바깥이 더 시끄러워지는 것 같다.
내가 지금이라도 화장실이나 다른 곳으로 숨어야 하는지 고민할 때였다.
“어, 강이현이다!”
갑자기 밖에서 우렁찬 외침이 들렸다.
환자들 다 있는데 시끄럽게 굴지 말라고!
욕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목소리 사이로 기자들이 우르르 달려가는 게 보였다.
병원 복도에서 뛰지 마!
근데 불행 중 다행인 건 사방팔방으로 퍼지는 것 같던 기자들이 강이현에게 달려간 것 같다는 점이었다.
이때다 하고 튀어야 하나?
아직 얼굴도 안 알려져 있는데 튀면 더 의심스럽지 않을까?
내가 심각하게 고민할 때였다.
“뭐야?”
“……졌어!”
“어디로 갔지?”
기자들이 당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였다.
―쿵쿵.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바이탈 잴 시간 아닌데?
시계를 봤던 난 문틈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기겁했다.
“유니 님, 계십니까?”
날 이렇게 부를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아니,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라고 놀라기에는 병실 앞에 ‘유X채’라고 이름이 붙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기자들을 어떻게 피해서 온 건지 신기했다.
“네.”
내 말에 문이 살짝 열렸다.
그리고 문틈으로 보이는 건, 낯설지만 익숙한 얼굴이었다.
뉴스에서 봤고, 그리고.
“……와.”
유네리아 커스텀이랑 많이 닮으셨는데?
알고 보니 왜 KJ 강이현이랑 연결하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닮아 있었다.
물론 유네리아의 구현도 한계상 다른 부분도 많았지만 느낌이 그랬다.
“네, 네드 님?”
내 말에 문 너머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기자들이 몰려올 겁니다. 혹시 인터뷰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없어요. 네버.”
절대 없어!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네드 님이 빙그레 웃었다.
“움직일 수 있으시겠습니까?”
내 걸음은 일주일 누워 있던 사람치고는 가벼웠다.
그건 네드 님도 마찬가지였다.
“가능은 한데 전력 질주는 못 하겠어요.”
원래 병원에서 뛰면 안 되는 것도 있고, 그러다가 힘 풀려서 넘어질 것 같았다.
낙상위험 NOOOOOO!
내 말에 네드 님이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숨는 것이 좋겠습니다.”
“숨을 만한 곳이…….”
화장실 가려고 했는데, 우리 병원에 남녀공용 화장실 따위는 없었다.
그럼 대체 병원에 숨을 만한 곳이 어딨―
“아!”
인간은 언제나 방법을 찾아낸다니까?
난 나도 모르게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이리 와요!”
눈을 크게 뜬 그가 내 손에 이끌려 왔다.
다행히도 내가 입원한 병동이 내가 일하던 병동이라 다행이었다.
난 기자들이 다른 곳을 기웃거리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서 간호사들이 머무는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안쪽에 있는 약물 준비실로 들어갔다.
원래 당연히 간호사가 아니면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었다.
“잠깐만 빌릴게요!”
뭐 안 건드릴게!
내가 간호사이니 건드리면 안 되는 게 뭔지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란 걸 기자들도 알고 있을 터였다.
숨기엔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는 의미였다.
―달칵.
어차피 우리 병동이 일하는 사이클을 생각해 보면, 지금은 오후 7시 30분이니 6~7시에 나가야 할 약물은 다 갖고 나갔을 것이다.
그러니 잠깐 잠가 놓아도 일하는 데에 문제는 없을 터였다.
그렇게 쓰지 않는 방처럼 불 꺼진 약물 준비실에, 나와 네드 님만이 남았다.
“여긴…….”
네드 님이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난 나도 모르게 네드 님의 입을 턱 막아 버렸다.
바깥에서 외침이 들린 탓이었다.
“이 층에 식물인간이었다가 깬 사람이 있대!”
죄송하지만 식물인간 아니거든요!
그리고 병원에서 소리 지르지 좀 마!
“조용히 해 주세요!”
날카로운 병동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아, 죄송합니다!”
기자도 사과하며 걸음 소리를 줄였지만, 여전히 병원을 쏘다니는 건 똑같았다.
“지금 당장 나가 주셔야겠습니다.”
그사이 보안팀 목소리도 들렸다.
기자들을 보이는 족족 잡아 내쫓고 계신 게 틀림없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기자들이 나가면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멀어져갈 즈음.
난 네드 님의 입에서 슬그머니 손을 뗐다.
그제야 나와 네드 님의 시선이 제대로 마주쳤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내가 불쑥 물었다.
“……어떻게 알아봤어요?”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이었다.
아무리 병실 밖에 유X채라고 쓰여 있었다지만, 내가 유은채가 아니라 유동채나 유금채면 어쩌려고 그렇게 불쑥 들어와?
그것도 얼굴도 다 알려진 사람이? 내가 기자들 부르면 어쩌려고?
하지만 네드 님은 소리 없이 웃었다.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어떻게요?”
“이전에 본 적이 있거든요.”
“?”
네드 님이 나를요? 내가 네드 님을 본 게 아니라?
난 네드 님을 가리켰다가 날 가리켜 보였다.
네드 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눈을 깜빡였다.
난 그쪽이랑 달리 TV에 나올 일이 없는데?
그때 네드 님이 옅게 웃었다.
유네리아 안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부드러운 미소였다.
“이 병원에서요, 뵌 적이 있습니다. 과로로 편두통이 와서 들른 날이었는데…….”
급성 편두통? 그럼 우리 병동까지 올 일이 없는데? 생각하던 난 문득 눈을 크게 떴다.
“어!”
소리 지를 뻔하다가 난 급히 입을 막았다.
내 환자가 아니라 동기 환자라서 잠깐 스쳤던 것뿐이지만, 과로인 것 같다길래 마음을 담아 조언해 준 기억이 났다.
좀…… 인생 대충 살자고.
“설마 그…….”
그때 만난 사람이랑 망겜에서 만나서 붉은 구슬이 체인지되는 바람에 캐릭캐릭체인지를 찍고 나올 확률은?
난 입을 떠억 벌렸다.
“진짜……예요?”
그쪽이 그 환자…… 강이현인 것도, 네드 님인 것도?
믿기지 않아 묻는 말에 네드 님은 나를 보다가 휴대폰을 들었다.
그러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부우우웅!
병원인 만큼 당연히 진동모드로 해 놓은 내 휴대폰이 울렸다.
화들짝 놀라 본 화면엔 익숙한 닉네임이 떠 있었다.
[네드 님]
나와 그의 눈이 마주쳤다. 설마 하는 마음에, 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내 말에 눈앞의 네드 님이 입을 열었다.
“네,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그의 목소리는 전화 너머의 소리와 눈앞의 소리가 겹쳐져 들려 왔다.
내가 살짝 입을 벌리자, 눈앞의 네드 님, 강이현이 부드럽게 웃었다.
“다시 뵙겠습니다. 네드, 강이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