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7화 (107/112)
  • <107화>

    흥분한 에이리 님과 다른 게임 친구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이러했다.

    내가 쓰러진 일주일 사이 유네리아는 난리가 났다.

    붉은 구슬 이벤트 발표 직후.

    에이리 님은 내가 또 인터넷이 끊겨서 말이 없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친구 창에서 뜨는 내 닉네임 상태가 이상해졌다고 했다.

    [[네리아]유니(접속중)]

    원래 이렇게 떠야 할 것이.

    [유니]

    서버도 상태도 사라져 버린 채로 떠 있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나랑 친구추가 되어 있던 사람들도 이벤트 특전 아니냐 하면서 말이 많았던 모양인데, 그 후 당연한 의문이 붙었다.

    ‘그래서 이벤트 보상이 뭔데?’

    그걸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그에 이어서 내가 이틀 넘게 잠수를 타니까 다른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암살당했나봄]

    [지금까지 흑우짓 음머 감사하고요 저승에서 뵙겠습니다]

    [특등한우로 유얼머니게임즈에 잡혀간거 아니냐? 지금쯤 대표밥상에 올라갔을듯]

    장난스럽게 시작되던 말들은 의외로 진실(?)에 가깝게 접근하기도 했다.

    [이세계티켓 받은 거 아님?ㅋㅋㅋㅋㅋㅋㅋㅋ]

    정답이었으나 정답이라고 생각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우스갯소리가 나오던 중, 나를 걱정하던 에이리 님이 내 집에 와 보니 나는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바로 병원으로 옮겼는데, 그냥 자는 상태라는 진단만 나왔다고 했다.

    근데 며칠이 지나도록 좀처럼 의식이 깨지 않아서 걱정을 많이 했다고.

    에이리 님은 누구네들과는 달라서, 일단 내 상태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근황도 개인정보니까.

    하지만 유저들은 아니었다.

    [게임 ‘유네리아’ 랭커 유저 사라져]

    작은 뉴스도 떴다고 했다.

    “아니, 이딴 뉴스를 내주는 데가 있어?”

    어이가 없어서 물어보니 돈 내면 뉴스도 만들어주는 데가 있다고 했다.

    거참 고맙다!

    [네리아-파개한다 : 그래서 이벤보상 뭐였음?]

    정신없이 상황을 파악하는데 파개한다가 물었다.

    “이게 참.”

    내가 할 말이 많거든? 인자하게 웃은 내가 댓글을 달았다.

    [네리아-유니 : 그게진짜내가할말이많거든? 글따로판다 발닦고기다려라]

    이 기가 막힌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믿을까?

    고민하는 사이 댓글이 우르르 달렸다.

    [대기탄다]

    [공식 라이브방송보다 기대됨]

    [아메리카방송으로 방송좀]

    방송은 개뿔! 난 얼굴을 구겼다.

    [유네리아 붉은구슬이벤 후기]

    일단 제목을 쓰고 있을 때였다.

    ―우우웅!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02-XXXX-XXXX]

    모르는 번호였지만, 잠시 기다리니 번호를 자동으로 검색해주는 어플 ‘웬웬’이 상대의 정체를 알려 주었다.

    [웬웬 분석결과 : 유얼머니게임즈]

    고객센터가 아니라 공식 전화로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오.”

    감탄한 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헉, 안녕하세요, 유니 님!]

    헉은 뭐야? 안 받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잠시 휴대폰을 쳐다본 내가 다시 휴대폰에 귀를 댔을 때였다.

    [유니 유저님이시죠? 반갑습니다!]

    그 말에 난 어이가 없어서 순간 되물었다.

    “반가워요? 반가워???”

    상황 다 알고 그러는 거지?

    내 말투에서 빡침이 느껴졌는지 직원이 말했다.

    [저, 저희도 많이 당황스럽습니다.]

    그러면서 애써 웃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래서 당황스러우신 중에 전화는 왜 하셨는지?”

    내가 깽판 치는 걸 못 참고 달려와 준 거야?

    이제 여기다 대고 쌍욕하면 돼?

    내가 욕을 장전하고 있을 때였다.

    뜬금없이 직원이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메일로 발송된 붉은 구슬 이벤트 이용약관을 확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이용약관? 뭔가 있었던 것 같긴 했다.

    따끈따끈하게 1분 전이 찍혀 있는 이용약관을 누르는데, 휴대폰 너머에서 말했다.

    [살펴보신다면 아시겠지만, 이번 이벤트에서 있었던 일은 내부기밀로 처리되어 제삼자에게 발설할 수 없도록 조항이 있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네?”

    이딴 조항이 있었다고?

    난 이용약관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회사 ‘유얼머니게임즈(이하 회사)’와 ‘유네리아 붉은구슬 이벤트 당첨자(이하 유저)’의……]

    살면서 이용약관을 이렇게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난 놀랍게도 이상한 부분을 확인했다.

    [제4조 기밀 유지

    1. ‘유저’는 이벤트 보상 진행 중 얻게 된 모든 정보를 함구하는 데에 동의하며……]

    진짜 있잖아!

    아니, 근데 이럴 거면 이벤트를 왜 하는데?

    아무리 당첨자가 한 명이기로서니 당첨된 사람이 뭐 했는지 알려지지 않으면 그게 이벤트야?

    특히 이번처럼 현금 결제액으로 당첨자가 결정되는 이벤트라면 분명 홍보 목적의 이벤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발설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익숙한 밑장빼기의 냄새가 나는데?

    내가 눈썹을 치켜올릴 때였다.

    [그럼 즐거운 오후 되세요!]

    상큼한 목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난 왜 방금 이놈이 네리아GM 같지? 이 엿같은 상큼함이 닮았는데?

    “이딴 조항이 진짜 있었다고?”

    심지어 빨간 글씨로 쓰여 있기까지 했다.

    아무리 내가 이용약관이나 사용설명서는 대각선으로 읽고 넘긴다지만 빨간 글씨는 한 번쯤 읽을 법도 한데?

    이걸 내가 진짜 못 봤다고?

    “아니, 그 전에 이걸 다 읽고 동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라고 외치고 보니 네드 님은 다 읽었을 것 같았다.

    “근데 네드 님이 이딴 거에 동의를 했다고?”

    내용을 보니 가관이었다.

    [……‘유저’는 이벤트 진행 중 발생 가능한 신체적, 정신적 문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였음을 보증한다.]

    이해할 건덕지도 없었는데요?

    회원가입 동의할 때 약관 자세히 안 읽는 습관이 내 인생에서 일주일을 날려 버렸단 말인가?

    “아냐…….”

    뭔가 있었다.

    난 둘째치고 네드 님은 이걸 다 읽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네드 님이 이딴 거에 동의했다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냄새가 난다!

    난 쓰던 글을 지우고 자유게시판에 다른 글을 썼다.

    [애들아 붉은구슬이벤에 원래 이런 약관 있었냐

    글쓴이 : 네리아-유니

    내용 : (이용약관.jpg)]

    그러자 댓글이 바로 올라왔다.

    [네리아-파개한다 : 이용약관을 어떻게 기억함]

    [네리아-파개한다 : 스샷은 왜찍어놨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게…… 아니 근데 스샷 찍어 둔 건 아니거든? 방금 뜨끈뜨끈하게 온 거거든?

    그때 다른 댓글이 떴다.

    [메디카-지저스 : 나 이거 스샷찍어놓은거 있는데 기달]

    오 역시 한 놈 정돈 있을 줄 알았다!

    └[메디카-아주머 : 이딴걸왜찍어둠]

    └[메디카-지저스 : 흑우자랑하느라]

    ……이유가 좀 비참하긴 했지만 어쨌든 저장해 뒀으면 됐다.

    [유니 봐라]

    [글쓴이 : 메디카-지저스

    내용 : (이용약관.jpg)

    니꺼랑 다른거같은데 당첨자만 따로쓰는거 있음???]

    “오.”

    지저스의 말대로 내 이용약관과는 생긴 게 달랐다.

    일단 빨간 글씨는 다 빠져 있었다.

    그럼 그렇지, 이놈들이 사기를 쳐?

    └[네리아-유니 : 아니 따로쓴건 아닌데 일단 ㄱㅅ]

    지저스 내가 나중에 밥 한 번 살게!

    난 주먹을 꽉 쥐었다.

    대놓고 사기를 치려고 하다니 이놈들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굴러가는 거야?

    [유얼머니게임즈]

    난 다시 왔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내 약관만 다른 게 어떻게 된 일인지 따질 참이었다.

    「상대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우물로 연결……」

    하지만 유얼머니게임즈는 전화를 보란 듯이 씹어 버렸다.

    “얼씨구?”

    어이가 없어서 전화를 든 채로 카페 자유게시판을 새로고침했을 때였다.

    이상한 글이 눈에 띄었다.

    [속보) 유니 정체.jpg]

    [글쓴이 : 네리아-솔로대장

    내용 : (인터넷뉴스기사.jpg)

    기사보면 알겠지만 유니 실종된 날부터 강2현도 실신해서 병원 실려감

    근데 유니 일어난 시간에 강E현도 일어났다고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해도 이런 오해가 없었다.

    [메디카-쓰레기통 : 어쩐지 현질을 ㅈㄴ해대더라니]

    └[네리아-솔로대장 : 비밀이 있었던거임ㅋㅋㅋㅋㅋㅋㅋ]

    [알라반-아갓쉬 : 재벌3세가하는 흥겜 유네리아 ㄷㄷ]

    [메디카-인생한방 : 이글을보고 KJ주식풀매수했습니다]

    근데 KJ 강이현이 나랑 같은 시간에 눈을 떴다고?

    이름도 같고. 설……마.

    난 침대에 달려 있는 개인용 TV를 켜 보았다.

    그리고 켜자마자 뉴스 속보를 마주쳤다.

    그건 병원에서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환자복을 입고 있었지만 잘생긴 얼굴이 가려지는 건 아니었다.

    왼쪽 위, 작은 글씨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속보] KJ 강이현 의식회복]

    그리고 그 밑으로 지나가는 커다란 자막엔 이렇게 나와 있었다.

    [강이현 “꾸준한 관심 감사하다”]

    자막은 그가 했던 말을 반복해서 올려 주는 건지 바로 바뀌었다.

    [“자세한 상황은 곧 말씀드리겠다”]

    그때 기자 중 한 명이 물었다. 아무래도 실시간 인터뷰인 듯했다.

    「게임을 하다가 실신하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입니까?」

    그 말과 함께 화면 오른쪽 아래로 작은 화면이 떴다.

    [KJ 강이현, 실신한 채 자택에서 발견]

    그러면서 앰뷸런스에서 급히 응급실로 들어가는 침대 하나가 보였다.

    당연히 저기 누워 있었던 건 강이현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뉴스를 작게 보여 주는 듯했다.

    그런데.

    “……?”

    저 병원 입구 익숙한데?

    익숙해서 문제인 응급실 화면을 보다가, 강이현이 앉아 있는 현재의 뉴스 화면을 본 난 눈을 크게 떴다.

    저 익숙한 마크는?

    “……우리 병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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