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6화 (106/112)
  • <106화>

    별다른 기계를 장착한 것도 아닌데 사람의 의식을 가상 세계로 보내 버린 기술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하지만 유얼머니게임즈가 아무리 놀라운 일을 해냈다고 해도,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사람에게 적용시킨 건 당연히 규탄받아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강이현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대체 자신이 어떻게 유네리아 가상세계로 떨어졌는가’였다.

    유니와 붉은 구슬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1차원적인 답을 들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의식을 잃고 실감 나는 ‘유네리아 세계’에 떨어지게 했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강이현이 알아보고자 했던 비밀은 의외로 금방 밝혀졌다.

    “사고였습니다!”

    위기를 느낀 유얼머니게임즈측에서 곧바로 연락을 취해 왔던 것이다.

    그들도 당황하고 있을 터였다.

    하필이면 유니 님과 같이 쓰러진 사람이 회사의 명운을 흔들 수 있는 투자사의 임원이었으니 당연했다.

    “일이 어떻게 된 것이냐면…….”

    그러면서 유얼머니게임즈측에서는 사태의 전말을 설명했다.

    원래 붉은 구슬 이벤트는 한 명의 유저만 게임 내로 들여보내는 이벤트였다.

    그런데 문제는 구슬에 실수로 귀속 시스템을 걸지 않았고, 그래서 시스템이 꼬이는 바람에 게임 내로 보내지는 유저가 둘이 됐다는 말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류가 발생하자 함부로 게임 내부에 간섭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자칫했다간 들어가셨던 게임 내의 시스템이 꼬일 우려가 있어서요.”

    그래서 손을 댈 수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강이현은 중요한 걸 물었다.

    “그럼, 그 유저 한 명의 동의는 받으신 겁니까?”

    “당연합니다!”

    유얼머니게임즈는 당당하게 말했지만 강이현은 믿을 수 없었다.

    분명 그 유네리아 세계로 보내진다는 유저 한 명은 유니 님이었을 텐데, 유니 님은 동의받고 안내받은 것치고는 너무 당황한 것 같았으니까.

    “그럼 왜 그 유저분과 제가 정신을 잃은 겁니까?”

    중요한 질문은 또 있었다.

    그 질문이 나오자 유얼머니게임즈 관계자는 진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원래…….”

    그가 곤란해하며 늘어놓은 이벤트 진행 계획은 이러했다.

    일단 유저가 동의하면, 동의한 유저에게는 등록된 개인정보로 물건 하나가 배송된다.

    그 물건과 유얼머니게임즈측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이 반응하여 유저를 가상현실로 보낸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유네리아로 보내질 유저에게 이벤트를 설명해 줄 직원도 파견될 예정이었다.

    “안전하시도록 순차적으로 절차를 밟아서 안전하게 안내할 예정이었습니다!”

    유얼머니게임즈 관계자는 그렇게 간곡하게 말했다.

    “그리고 강이현, 아니 네드 님께서 이동되신 건 저희도 정말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 기계는 해당 유저 분께만 배달된 것이라서요. 다른 곳에 그 기계가 있었을 리가 없는데……?”

    하지만 있는 곳이 딱 하나 더 있었다.

    하필 콘텐츠사업과 관련해 공부하고 있던 강이현의 동생, 강진하의 방이었다.

    첫 사업에 열의를 보인 강진하는 유얼머니게임즈의 시제품을 이미 받아 본 상태였다.

    그는 유저가 들어간 후에 유얼머니게임즈측 관계자와 함께 유저를 살펴볼 생각이었다.

    유얼머니게임즈의 가상현실 기술이 생각보다 더 정교하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 유얼머니게임즈에서 보낸 회심의 한 수였다.

    그런데 그 기기와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던 강이현이, 하필 유니와 붉은 구슬이 바뀌어 버리면서 가상현실로 보내져 버린 것이었다.

    “……그에 대해서는 정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기술은 뛰어났으나, 기술 빼고는 다 문제였다는 소리였다.

    모든 설명을 들은 강이현은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동생 강진하와 논의를 마쳤다.

    “이런 경우는 전무후무할 거야. 가상현실로 사람을 마음대로 보낸다니, 윤리적인 문제도 있고…….”

    그렇게 말하는 강진하에게 강이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투자계약은 재논의하겠다고 전할게.”

    강진하는 그렇게 결론 내리고는 방을 나섰다.

    아마 유얼머니게임즈는 이 소식을 들으면 발칵 뒤질힐 것이다.

    KJ의 투자를 전제로 한 사업을 이미 여러 개 벌리기 시작했으니까.

    엄청난 타격이 있을 테지.

    정말, 진정한 깽판이었다.

    * * *

    한바탕 온갖 검사가 지나갔다.

    영상 검사부터 임상검사까지 싹 해 보았지만 역시나 몸에는 문제가 없었다.

    난 깔끔하지만, 힘만 빠져 있는 몸 상태를 확인 후 상황 파악에 나섰다.

    대체 내가 쓰러져 있던 일주일간 무슨 일이 있었는가?

    [지저스>>> 유니님 뒤짐?]

    [지저스>>> 살 아 있 냐]

    [파개한다>>> 죽지마 돌아와 저정석 양보할게 ㅈㅂ]

    게임 친구들의 연락이 가장 많이 와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건 에이리 님의 연락이었다.

    [에이리님>>> 아직 아파요?]

    [에이리님>>> 주말에도 갈게ㅠㅠㅠㅠㅠ 진짜 뭐 잘못되는 거 아니지?]

    날 병원에 데려다주는 것도 모자라 주말에 또 오시려고 했던 모양이다.

    [나>>> 이제 괜찮아요]

    답장을 보내자마자 열띤 답변이 돌아왔다.

    [에이리님>>> 유니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님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에이리 님은 대흥분 상태인 것 같았지만 일단 상황 파악이 중요했기에 그녀를 진정시켰다.

    [나>>> 그런데 정신이 없어서 잠시만요 ㅠㅠ 일단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그러고는 다른 톡도 살펴보았다.

    에이리 님 다음으로 톡을 많이 보낸 건 파개한다 놈이었다.

    [파개한다>>> 왜연락없어]

    [파개한다>>> 야 너랑 공대했던 힐러가 연락좀받으래]

    그 힐러 새X랑은 다시 말 섞기 싫거든?

    난 게임 속에 들어가기 전에 이야기를 나눴던 놈을 떠올리며 새삼 이를 갈았다.

    [파개한다>>> 레이드하다 빡쳐서 나간거임?]

    [파개한다>>> 아 이벤트당첨됐댔지]

    [파개한다>>> 사실 이벤트가 로또였음?]

    [파개한다>>> 뒤짐? 접을거면 템뿌리고가라]

    걱정 고맙다, XX…….

    파개한다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가지각색의 톡을 보내 왔다.

    내가 일주일 동안 의식이 없었던 건 정말 사실인 모양이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 포털 사이트를 켜 보았다.

    [인터넷]

    어플을 켜자마자 내가 자주 들어가서 홈 사이트로 지정해놓은 유네리아 게시판이 떴다.

    아니, 떠야 했다. 그런데.

    [게시판 일시 폐쇄 안내]

    “폐쇄???”

    유네리아 게시판이 왜, 갑자기?

    사실 일주일이 아니라 일 년쯤 지난 게 아닐까?

    유네리아 관련 커뮤니티 중에서 가장 큰 게시판이 여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 갔냐?

    난 고글에 ‘유네리아 커뮤니티’를 검색했다.

    그리고 한 인터넷 뉴스를 발견했다.

    [유얼머니게임즈 ‘유네리아’ 공식 게시판 트래픽 장애…… 개선 후 오픈 예정]

    요컨대 사람이 너무 몰려서 잠시 공식 게시판을 닫는다는 뭐 그런 뉴스였다.

    아니, 이 고인물 망겜 게시판에 사람이 몰려서 게시판을 닫아?

    이건 유얼머니게임즈의 희망사항이 아닐까요?

    [점검 : 2021.1.26. 12:00~]

    그리고 점검은 며칠 전부터 시작된 듯했다.

    문제는.

    “점검 끝나는 날짜가 안 쓰여 있네?”

    실화냐?

    더 검색해 보니 유저들은 기약 없이 닫혀 버린 게시판 대신 포털 사이트에 비공식 카페를 만들어 모인 듯했다.

    [닉네임은 ‘서버-닉네임’ 통일 부탁드립니다.]

    대문짝만한 공지가 박혀 있는 유네리아 비공식 카페는 유네리아 게시판보다 훨씬 시끄러웠다.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글이 갱신되고 있었다.

    [●▅▇█▇▆▅▄▇ 공게 열어라]

    [망겜 어디까지가냐]

    [고객센터 닫더니 공게도 닫음 ㅋㅋ ●▅▇█▇▆▅▄▇]

    [그래서 하늘속성패치언제함 ●▅▇█▇▆▅▄▇]

    [●▅▇█▇▆▅▄▇ 여기가내가누울자린가]

    [아무튼 됐고 보상좀]

    [사료뿌려라 ●▅▇█▇▆▅▄▇]

    자유게시판은 드러눕는 이모티콘으로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로 글 하나가 올라왔다.

    [속보) 유니 1 사라짐]

    “?”

    내가 1이 사라져? 눌러 보니까 내 초콜릿톡 화면이 올라와 있었다.

    아니, 남의 초콜릿톡 화면은 왜 올려?

    언놈이야?

    [네리아-파개한다]

    너였니?

    댓글은 금세 불어났다.

    [메디카-아이스티빌런 : 엄마가본거아님?]

    └[네리아-파개한다 : 얘 혼자살아]

    내 개인정보 그렇게 흩날리지 말아 줄래?

    [메디카-클란트 : 누가 경찰에 신고한다며 경찰온거아님?]

    경찰에 신고는 왜 해?

    └[알라반-혁명적인갈비뼈 : 신고를 왜 함]

    나랑 비슷한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난 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메디카-클란트 : 맨날 피자시키던놈이 사흘째 안시키면 뭔가있는거임]

    └[네리아-파개한다 : 애가연락이안돼서]

    └[네리아-힐러남친 : 원래 풀접하던사람이었음]

    댓글이 우르르 달리는 게 보였다.

    요컨대 사람이 접속 좀 안 했다고 경찰에 신고한다는 소리?

    └[알라반-혁명적인갈비뼈 : 그게 신고가 되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리아-파개한다 : ㅁㄹ]

    그때 밑으로 다른 댓글이 올라왔다.

    [메디카-할아버 : 어 나도 1 사라짐]

    └[메디카-아주머 : 나도]

    └[메디카-큰스 : 나도]

    여기가 댓글창인지 내 친창인지 헷갈리려고 했다.

    그 후 내 초콜릿톡 알람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파개한다>>> 일어남?????]

    [지저스>>> 일어났으면당근좀]

    [지저스>>> 죽은줄알았어]

    [아주머>>> 죽음?]

    [파개한다>>> 사후세계도인터넷됨?]

    [클린트>>> 해킹아니냐]

    제대로 읽기도 전에 쏟아지는 카톡을 보니 인싸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욕 박으면서 얼굴 본 사이라고 걱정해 주는 걸 보니 좀 고마웠다.

    결국 난 파개한다의 글에 댓글을 달았다.

    [네리아-유니 : 니들 뭐하냐 여기서]

    댓글을 단 지 3초도 되지 않아 미친 듯이 카페 앱 알람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니들 뭐하냐 여기서’ 댓글에 대댓글이 달렸습니다(1).]

    [‘니들 뭐하냐 여기서’ 댓글에 대댓글이 달렸습니다(2).]

    [‘니들 뭐하냐 여기서’ 댓글에 대댓글이 달렸습니다(7).]

    [‘니들 뭐하냐 여기서’ 댓글에 대댓글이 달렸습니다(16).]

    알람 숫자가 미친 듯이 올라갔다.

    [진짜임?]

    [진짜유니임?]

    [근황아메리카방송좀]

    폰 터지겠다, 애들아!

    [네리아-유니 : 해킹 아님 가만히좀있어봐 폰터지게 ㅆ음]

    상황 파악은 끝내야 할 거 아냐!

    내 댓글에 더 알림창은 타올랐다.

    └[네리아-파개한다 : 오타난거보니까 유니맞음]

    오타가 내 정체성이었냐? 난 인자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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