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7화 (97/112)
  • <97화>

    [‘5속성 조합’ 마법창 지속 시간 : 00:00:13……]

    네드 님이 눈을 크게 뜬 사이, 난 네드 님의 옆에 있던 비상식량을 툭 두드렸다.

    “비상식량!”

    원래는 내 용이 아니니까 내 명령엔 답이 없어야 했다. 하지만.

    ―뀨우!

    비상식량은 다행스럽게도 고민도 없이 내게 날아왔다.

    비상식량과 내 시선이 마주쳤다.

    내가 비상식량을 조련한 지 N년 만에 처음으로 마음이 통한 순간이었다.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비상식량이 불쑥 커지더니, 나를 태우고 날아올랐다.

    [‘5속성 스킬 조합’ 마법창 지속 시간 : 00:00:10……]

    시간이 얼마 없었다.

    네드 님이 들고 있는 스킬은 하필이면 유네리아 스킬 조합 중에서도 폭발 범위가 넓은 레시피였다.

    네드 님이 잘못 터뜨렸다간 네드 님은 물론이고 나까지 사망이라는 소리였다.

    그럼 소생이고 뭐고 없어!

    유네리아에서 인생 종 치는 거야!

    이딴 X같은 데서 인생 종 칠 순 없지!

    ―뀨우!

    비상식량이 힘차게 날개를 펼쳤다.

    노란 등을 PC 화면이 아니라 실제 눈으로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최대한 아래로 빠르게!”

    ―뀨!

    내 말에 비상식량이 아래로 몸을 기울였다.

    쌔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엘데보다는 확실히 느렸다.

    [네드 ‘5속성 스킬 조합’ 마법창 지속 시간 : 00:00:07……]

    7초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 땅까지는 멀었다.

    바람 크리스탈의 형태는 보였지만 그뿐이었다.

    “엘데가 했던 것처럼 날개 접고 급강하할 수 있겠어?”

    원래 비상식량은 엘데처럼 빠르게 날 수 있는 애가 아니었다.

    그냥 엘데 타고 올걸 그랬나?

    하지만 창을 쥐고 있는 네드 님이 잘못 움직였다간 창은 그대로 폭발한다.

    비상식량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비상식량이 할 수 있을까?

    ―뀨……!

    그런데 비상식량은 내 불안한 마음을 읽어낸 것처럼 힘차게 울었다.

    놀랍게도 고개를 끄덕인 비상식량은, 엘데를 흘끗 바라보고는 과감하게 날개를 접었다.

    ―파아아앗!

    당연히 바닥으로 내리꽂히는 속도는 빨라졌다.

    “!”

    놀란 난 안장을 꽉 붙들었다.

    [용가리 대가리는 언제 좋아지냐]

    [용가리 컨텐츠는 나온 지 몇 년 됐다고 버려진 거임?]

    [AI도 띨빵한데 어떻게 던전 데려가라고ㅋㅋㅋㅋ 유네리아의 동반자는 개뿔 그냥 몸빵용 고기방패 아니냐?]

    유네리아 게시판에서 용이 욕을 먹었던 게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패치할 때마다 왠지 용이 더 멍청해지는 것 같다며 욕하는 유저가 한둘이 아니었고, 거기엔 나도 포함이었는데.

    이제 그 발언 철회다!

    용의 AI는 발전하고 있었어! 사실 발전이 없었던 건 유저가 아닐까요?

    얘는 없는 스킬도 익히는데?

    [네드 ‘5속성 스킬 조합’ 마법창 지속 시간 : 00:00:05……]

    순식간에 땅이 가까워졌다. 눈앞에 바람 크리스탈이 보였다.

    “크리스탈 안 깨지게 근처에서 날개 펴고 속도 줄이는 거야!”

    바로 땅 위에서 멈춰 설 수 있어야 했다.

    그게 가능할까?

    엘데야 여러 번 했지만, 비상식량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뀨!

    하지만 지켜본 게 한두 번이 아니라 그런지, 비상식량은 놀랍게도.

    ―펄럭!

    완벽한 위치에서 날개를 펴고 착지했다.

    날개를 늘어뜨린 끝에 바람 크리스탈이 빛나는 게 보였다.

    “저거야!”

    난 고민 없이 바람 크리스탈을 집었다.

    방금 전까지 바람 장벽을 유지하면서 강력한 힘을 내뿜고 있었기 때문인지, 주변은 오히려 휑했다.

    덕분에 바람 크리스탈을 손에 쥐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바람 크리스탈을 입수했습니다!]

    [네드 ‘5속성 스킬 조합’ 마법창 지속 시간 : 00:00:03……]

    문제는 내가 올라탈 시간이 없다는 거였다!

    에이, 여기서 죽더라도 인벤토리에 바람 크리스탈 넣었으니까 괜찮아!

    소생 받으면 된다!

    눈을 질끈 감은 내가 날개 끝에 걸쳐져 있다시피 했던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펄럭!

    비상식량은 놀랍게도 날개 끝을 활짝 펴 말아 올려, 나를 등 위로 던지듯 태우고 날아올랐다.

    “!”

    뭐뭐뭐뭐임? 너 이런 것도 할 줄 아는 놈이었어?

    놀랄 틈은 없었다.

    [네드 ‘5속성 스킬 조합’ 마법창 지속 시간 : 00:00:02……]

    “던져요!”

    비상식량이 땅을 박차고 날아오름과 동시에 내가 외쳤다.

    먼 곳에서 네드 님이 쳐다보는 게 보였다.

    이 이상 시간을 끌면 허공에서 터질지도 몰랐다.

    “……!”

    네드 님은 내 말에 아주 잠시 멈칫하는 듯하더니, 시어드 성으로 마지막 마법창을 집어던졌다.

    ―쓔웅!

    창이 내리꽂히는 사이 비상식량은 믿기지 않을 속도로 위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쿠콰콰콰쾅!

    우리가 빠져나온 곳에서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크게 일었다.

    바람 방벽을 믿고 저택에서 나와 있던 시어드 영주가 허망한 얼굴로 무너져 버린 저택을 돌아보는 게 보였다.

    그러게, 상대를 봐 가면서 덤비라니까.

    흙먼지와 굉음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사이, 엘데의 등 위로 복귀한 난 작아진 비상식량을 어깨에 얹은 채 네드 님과 하이파이브했다.

    “나이스 타이밍이었어요.”

    폭탄 터지기 2초 전까지 들고 있기도 힘들었을 텐데.

    나 같으면 불안해서 그냥 집어던졌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네드 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평소 같은 온화한 표정으로 웃었다.

    “유니 님께서 잘 지시해 주신 덕분입니다.”

    이런 굳은 믿음……! 나쁘지 않아요! 기분 최고야!

    ―짝!

    우리는 다시 한번 하이파이브했다.

    * * *

    시어드 저택이 박살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황성의 마법사들이 우르르 시어드 성으로 몰려 왔다.

    그러더니 급히 물었다.

    “몬스터가 나타난 걸 봤네! 어디에 있지!”

    멀리서 그 잠깐 얼굴을 들이민 타고를 봤다니 눈도 좋은 친구였다.

    “그, 그건…….”

    네드 님을 태운 엘데는 천상계 고도에 있었으니 시어드 성주가 저택을 부순 범인을 알 리 만무했다.

    그가 눈을 굴리는 사이, 나와 네드 님은 타고가 죽은 자리에서 슬그머니 걸어 나왔다.

    물론 엘데에서 내려서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원래 자고로 인생은 타이밍.

    적당한 순간에 나타나 주는 것이 국룰 아니겠는가?

    “저희가 해치웠습니다.”

    우리의 말에 마법사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어쨌든 명목상으로 우리는 메디카의 안전을 위해 파견된 거라, 몬스터에 무관심해 보여서는 곤란했다.

    우린 보란 듯이 타고가 드랍한 ‘타고의 단단한 비늘’ 아이템을 들어 보였다.

    “휴, 자네들이었군.”

    마법사들은 우리를 보자 눈에 띄게 안심한 얼굴이었다.

    “생각보다 강력한 마력이 터져 나와서 깜짝 놀랐다네.”

    그 말을 우리는 그냥 웃어넘겼다.

    “너, 너희는!”

    하지만 시어드 성주는 곧바로 우리가 누군지 알아보았다. 저택을 날려버린 놈이라는 것을.

    타고를 박살 낸 것도, 바람 방벽을 박살 낸 것도 같은 마법 창이었으니 그가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어떻게 그런 힘을……!”

    그가 경악하며 입을 벙긋거리는 사이, 난 겸손하게 말했다.

    “저희 둘이 잡기엔 큰 몬스터이긴 했죠. 시어드 성에서 이목을 끌어 주신 덕에 잡을 수 있었답니다.”

    내 말을 네드 님이 받았다.

    “저택을 희생하면서까지 시선을 끌어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우린 감동받은 얼굴로 시어드 성주를 바라봐 주었다.

    “그, 너희, 그……!”

    당연히 시어드 성주는 뒷목을 잡았지만, 진실을 말할 수는 없을 터였다.

    여기서 진실을 말했다간 바람 크리스탈로 방벽을 만들었다는 사실까지 실토해야 할 테니까.

    그럼 힘에 미쳐서 황제한테도 비밀로 하고 바람 크리스탈을 이래저래 써먹었다는 즐거운 사실도 제 입으로 불어야 할 터였다.

    “이이……!”

    결국 시어드 성주는 뭐라 말도 못하고 화를 삭였다.

    그 사이 황성의 기사단이 몰려와 말했다.

    “폐하께서 시어드 성주와 깊이 이야기를 나누길 원하십니다. 거절할 시 무력도 불사하라 명하셨습니다.”

    그 말에 시어드 성주는 당황했다.

    바깥 일에 관심 없었던 양반답게 예상보다 험악한 분위기에 당황한 듯했다.

    “그, 그럼 잠시 옷이라도 차려입고…… 어찌 이 꼴로 폐하를 뵈러 가겠는가?”

    시어드 성주가 더듬더듬 뱉은 말의 기사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들의 시선이 박살 나서 형체도 남지 않은 저택으로 향했다.

    같은 것을 본 시어드 성주가 하얘진 얼굴로 헛기침했다.

    “가, 가보라도 가지고 나오겠네.”

    가보가 아니라 크리스탈을 챙기려는 것이 분명했다.

    우린 그사이 적당히 빠져 주기로 결정했다.

    “폐하께서 명하신 일이니 저희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우리가 감히 끼어들 일은 아니라는 투로 알아서 물러나자 기사들은 아주 흡족해했다.

    “흐흠. 겸손한 자들이로군.”

    우리가 급속도로 황제의 신의를 얻은 건 사실이었으니, 혹시 이상한 속내를 갖고 있진 않을까 걱정한 게 분명했다.

    걱정하지 말라구!

    우리는 시어드 성 박살 내고 크리스탈만 갖고 싶었을 뿐이니까!

    “폐하께는 두 사람의 공이 컸다 말씀드리겠소이다.”

    기사가 선심 쓰는 척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었지만 우린 황송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만! 우리는 눈에 띄지 않게 엘데 대신 비상식량을 타고 날아올랐다.

    그러면서 난 네드 님에게 말했다.

    “한동안 메디카에 올 일 없겠네요.”

    “그럴 것 같습니다.”

    마침 타고를 끝으로 메디카의 보스 레이드 릴레이는 끝이 난다.

    때마침 타이밍이 좋았다.

    그럼 우리는 거대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 혜성처럼 나타나 메디카를 구하고 다시 사라진 사람들로 알려질 것이 분명했다.

    본의 아니게 위대해져 버렸지만 알 게 뭔가?

    “어차피 메디카엔 하드컨텐츠도 없어요.”

    어깨를 으쓱한 내 말이 끝날 때쯤에는 우린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뒤에선 절규가 들렸다.

    “어디 갔어어어어어!!!”

    그건 당연히 바람 크리스탈을 찾는 시어드 성주의 절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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