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5화 (95/112)
  • <95화>

    당연히 소식을 들은 황제는 노발대발했다.

    “뭐? 감히 짐이 보낸 자를 그렇게 대해?”

    그가 이를 악물었다.

    난 소식을 전해 주면서 그의 아픈 곳을 슬쩍 찔러주는 걸 잊지 않았다.

    “예. 분명 황제 폐하께서 보낸 자라고 말을 했는데도 그랬다고 합니다.”

    그러자 황제는 폭발해 버렸다.

    “당장, 겁 없는 시어드 성주에게 전해라!”

    시어드 성주는 메디카에서도 힘이 있는 성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성격이 워낙 괴팍한 덕에 친구는 없고 원수만 가득했다.

    한마디로 그가 황제의 눈에 엇나가길 기다린 자가 한둘이 아니었다는 소리다.

    그 덕에 많은 귀족이 환호할 만한 명령이 황제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당장 경고를 보내!”

    황제가 보낸 경고는 이러했다.

    [1. 당장 황가의 연락을 받고 안으로 사람을 들일 것.

    2. 몬스터의 공격이 주변 성을 쑥대밭으로 만들지 않도록 할 것.

    3. 몬스터를 빠른 시일 내로 처리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 보고할 것.]

    극대노한 황제는 이 셋 중 하나라도 하지 않는다면 황가의 병력을 직접 파견하겠노라 엄포를 놨다.

    그리고 시어드 성주는 그 전언을 보란 듯이 씹어 버렸다.

    ―쿠콰쾅! 쿠쾅!

    그때쯤 바람 장벽이 내는 굉음과 타고가 공격을 하는 소리로 시어드 성 주변은 이미 굉음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 못 들은 것일지도 몰랐다.

    황제가 분노게이지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사이 나와 네드 님은 여관에 있었다.

    황제는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다.

    여기서 황제가 폭발하지 않는 건 정말 황가의 병력을 보내면 시어드 성주와 정면 대결이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다혈질인 황제라지만 시어드 성주가 만만찮은 힘을 갖고 있다는 걸 의식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제 그런 황제의 뚜껑을 날려줄 때였다.

    “신문사 다녀올게요, 제보하러.”

    내가 눈을 찡긋하자 네드 님이 날 돌아보았다.

    처음엔 이 사람이 뭘 하는 건가 싶었는데, 이젠 그가 앞으로 뭘 할지도 알 것 같았으니까.

    내 스타일은 이런 전략이나 계략보다는 다 때려 부수는 쪽이었지만, 이쪽도 때로는 재밌는 것 같았다.

    “어떤 것을 제보하시려는 겁니까?”

    네드 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난 그런 그에게 당당하게 대꾸했다.

    “시어드의 바람이, 황가 기사단이 쩔쩔맸던 보스 몬스터보다 더 큰 몬스터의 공격도 튕겨내고 있다고 제보해야죠.”

    내 말에 네드 님이 눈을 크게 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계획을 읽은 것처럼 말씀하셔서 조금 놀랐습니다.”

    난 그 말에 다시 한번 눈을 찡긋했다.

    “척하면 척이죠.”

    원래 응용법을 모르면 사람이 발전이 없는 법이다.

    그러면 새로 뜨는 보스 기믹에 적응할 수 없는 법!

    게이머는 항상 열린 머리를 가져야 한다!

    자신 있게 여관을 뛰어나간 난 신문사들에 차례로 소문을 흘렸다.

    그리고 얼마 후, 황제의 귀에까지 신문기사가 들어갔는지 결국 황제가 폭발했다.

    “황가의 전언을 무시한 것도 모자라 정체불명의 힘을 가졌다니! 그런데 그걸 감히 보고도 안 해!”

    거기에 난 불을 붙여 주었다.

    “폐하께서도 모르시는 힘이라니, 저 힘을 다른 용도로 쓸까 염려됩니다.”

    “……!”

    메디카 황제가 가장 불안해하는 것이 바로 저거였다.

    결국, 황제는 시어드 성에 최후통첩을 날렸다.

    [연락을 받지 않으면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판단, 시어드로 병력을 보내겠다.]

    드디어 우리가 원하는 상황이 된 거다.

    요컨대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물론 이쪽은 안 들여보내 주면 때려 부수고 쳐들어간다에 가까웠지만 아무튼 계획은 순조로웠다.

    [성을 감싼 바람을 거두고, 그 힘의 정체를 밝혀라!]

    황제는 전언을 연달아 보냈지만 시어드 성주는 전언이 들리지 않는 건지, 들리지 않는 척하는 건지 그것마저 무시해 버렸다.

    우린 그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과연 시어드 성주는 반역자로 몰릴 위기에서, 바람 장벽의 정체를 밝힐 것인가?

    바람 장벽의 정체를 밝히고 크리스탈에 대해 말한다면 반드시 황제는 황성으로 크리스탈을 가져오라고 할 것이다.

    그럼 그 크리스탈 갖고 튀면 된다.

    만약 크리스탈을 숨긴다?

    그럼 우리가 황제의 빛나는 정의 검이 돼서 시어드 성을 썰어 버린 다음 크리스탈을 가져오면 된다.

    어느 쪽이든 좋아!

    시어드 성주 마음대로 해!

    그리고 얼마 후.

    이틀의 유예기간을 주었지만 시어드 성주는 끝내 침묵했다.

    하긴, 그럴 것이다.

    바람장벽과 타고의 굉음을 뚫고 전언을 들었다고 한들 크리스탈의 정체를 밝힐 리가 없었다.

    힘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시어드 성주가 크리스탈을 내주려 할 리가 없었으니까.

    “당장……!”

    결국, 황제가 괴력으로 집무실 책상을 엎어 버렸다.

    ―와장창!

    “당장 저 극악무도한 반역자를 잡아들여라! 어떤 수단을 쓰든 상관없다!”

    그리고 그 명령은 우리에게도 주어졌다.

    [서브 퀘스트 ‘메디카 황제의 진노’를 입수하였습니다!]

    [시어드 성주 포획하기 (NEW!)]

    ―짝!

    그 퀘스트가 뜨자 나와 네드 님은 약속한 것처럼 하이파이브를 했다.

    시어드 성주 포획은 황가 기사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저희가 먼저 길을 뚫겠습니다!”

    “어떻게 말이오?”

    어떻게 시어드 성의 바람 장벽을 없앨지 회의하려던 기사들이 우리를 번개같이 돌아보았다.

    우린 기사단 건물에 가서 당당하게 말했다.

    “그 극악무도한 자의 저택을 날려버리겠습니다!”

    우리가 부술게! 너희는 잡기만 해!

    막타충은 사절이었지만 이번만은 깔끔하게 허락해 주기로 했다.

    “오오……!”

    “과연, 거대 몬스터들을 잡던 황금 로브의 영웅들답습니다!”

    기사들이 환호했다. 이게 바로 윈윈이라는 것이다!

    * * *

    ‘커다란 마법을 쓸 거라 주변 피해가 클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저희가 먼저 가면 나중에 합류해 주십시오.’

    나와 네드 님은 그렇게 마지막까지 충실한 황가의 명예기사 코스프레를 하고 나왔다.

    물론 나오는 우리의 얼굴엔 충성심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인간들의 관계는 복잡하군. 부술 힘이 있으면서도 굳이 이런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니.

    엘데가 우릴 등에 태우면서 말했다.

    확실히 엘데가 보기엔 번거로워 보일 법도 했다.

    아니, 사실 우리도 귀찮았다.

    하지만 학살자 칭호를 받았다간 유네리아 생활이 불가능한데 어쩌겠는가?

    어떻게든 명분을 만들어야지.

    그게 인격을 가진 인간과 파개한다의 차이란다.

    ―……복잡하군.

    하지만 엘데는 역시 이해할 수 없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쓔웅!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엘데의 속도로 시어드 성의 범위까지 들어서는 건 순식간이었다.

    [‘시어드 성’ 지역에 진입합니다.]

    [현재 ‘시어드 성’과 적대관계 유지 중입니다.]

    익숙한 메시지가 떴다. 이제 뒤에 뭐가 뜰지도 알 것 같았다.

    [바람 크리스탈의 영향권에 진입했습니다.]

    [시어드의 경비체계(Lv.2)가 반응합니다!]

    예상대로 또다시 시어드의 공격이 우리를 향하기 시작했다.

    [네드의 ‘견고한 방어막’ 스킬 효과를 받습니다.]

    [네드가 ‘역풍’ 스킬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번엔 우리도 당황하지 않았다. 만반의 준비를 다 해 왔거든!

    나와 네드 님, 그리고 네드 미니와 유니 미니의 옆에는 방어막 스킬이 담긴 구슬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난 그 상태로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광고용 판넬(메디카용)]

    황가의 전언은 그냥 마이크 비슷한 마법을 써서 외친 거라 시어드 성주에게 안 들렸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메디카 국적인 사람 귀에 말을 쑤셔 박아 주는 판넬이라면 어떨까!

    이 극악무도한 아이템은 유료 아이템이라는 이유로 채팅 설정에서 안 뜨게 설정할 수도 없는 잔인한 아이템이었다.

    유네리아 유저라면 꼭 이 판넬에 한 번쯤 눈이 썩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모 팀장과 모 팀장의 사랑 이야기를 써 올리는 것들 때문이라든지, 부장님 개그를 해대면서 깔깔대는 놈들 때문이라든지.

    하지만 오늘은 내가 당하는 날이 아니다!

    들어라, 시어드 영주!

    [시어드 성주, 들립니까? 아아]

    난 메디카 국적이 아니었으므로 내 앞에는 판넬의 내용이 뜨지 않았다.

    하지만 네드 님이 날 돌아보는 걸 보니 메디카 국적인 사람 앞에는 뜨는 게 분명했다.

    문제는 NPC도 뜨느냐인데.

    [뭐냐!!]

    누군가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 왔다.

    시어드 성주다! 들리나 보다!

    우렁찬 목소리에 난 화색을 띠었다.

    [우리는 폐하의 황명을 받고 시어드 성의 입장을 들으러 왔다.]

    내 말에 시어드 성주는 의아한 듯 받아쳤다.

    [무슨 입장!?]

    아무래도 황가의 전언을 못 들은 게 분명했다.

    쪼오금 억울한 구석이 있으시겠지만? 그러게, 크리스탈만 넘겼으면 초가삼간 날아갈 일은 없었을 텐데, 쯔쯔.

    난 하나도 안타깝지 않은 얼굴로 시어드 성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폐하께서는 최근 이 근처에 나타난 몬스터를 빠르게 처리하길 원하셨다. 뿐만 아니라 무분별하게 시어드 성 근처가 공격당하는 사태에 대해서도 시어드 성주가 올바른 대처를 하길 원하셨다.]

    [무, 무슨 소리냐? 그런 명령은 들은 적이 없―]

    없으시겠지! 하지만!

    [그런데 시어드 성주는 이 모든 명령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움직였으니 그 책임을 물으라 명하셨다!]

    그러자 시어드 성주가 당황해서 외쳤다.

    [돌, 돌아가라! 직접 폐하를 알현하고 말씀드리겠다!]

    다급한 목소리였지만 난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이미 폐하께선 충분한 기회를 주셨다!]

    [난, 난 듣지 못했다고!]

    성주가 발광을 하든 말든 난 연달아 외쳤다.

    [문을 열어라! 황명이다!]

    [문은 열겠다! 잠시만……!]

    [그리고 이 의문의 바람의 힘에 대해서도 해명해라!]

    내 말에 시어드 성주의 말이 뚝 끊겼다.

    그래, 저보다 약한 사람만을 성에 들이는 시어드 성주였지만, 황가와 척져서 귀찮아질 바에야 마음에 안 드는 놈이라도 성내에 들이려 할 것이다.

    하지만 바람 크리스탈은 다른 이야기였다.

    [……]

    시어드 성주는 예상대로 말이 없었다. 난 씩 웃었다.

    [그에 대해 해명하지 않는다면 힘으로라도 비밀을 밝혀내라는 명이 있으셨다!]

    과연 시어드 성주의 선택은?

    내가 알기로 시어드 성주는 그렇게 충성스러운 자가 아니었다.

    메디카에서 독립하려면 독립할 수도 있을 만큼 강한 힘과 재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독립하면 제가 수련할 시간이 없어지기 때문에 안 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 제 힘을 크게 증가시켜 줄 바람 크리스탈을 내놓을 것이냐, 황명을 어길 것이냐 선택한다면?

    [……]

    시어드 성주가 답이 없자 난 최후통첩을 날렸다.

    [오후 열 시까지 시간을 주겠다!]

    그러자 마법 너머로 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마이크 마법(?)을 끄지 못한 시어드 성주 주변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게 분명했다.

    [어차피 이 바람 방벽을 부술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성주님.]

    그리고 사람의 마음에 불을 붙이는 목소리도 들려 왔다.

    속닥거려도 다 들리거든?

    “부수는 게 불가능하다고 자신하고 있는데요?”

    내가 네드 님을 돌아보니 네드 님은 눈을 가늘게 떴다.

    하긴, 레벨 500짜리 아이템으로 방벽을 만들고 나면 누구든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법이었다.

    한 번 박살 나 보기 전까진.

    어딜 부숴 볼까?

    “음…….”

    내가 눈을 빛내는 사이 네드 님은 고민에 빠졌다.

    하긴, 이분은 뭐 때려 부숴서 해결하는 성격이 아니시지.

    아니나 다를까 네드 님이 아이템창에서 광고용 판넬을 꺼냈다.

    부드러운 설득을 하시려는 게 분명―

    [부술 수 있다는 걸 믿지 못하신다면 예시를 보여드리죠.]

    하……다……?

    내가 멍청한 표정을 짓는 사이, 네드 님의 머리 위에 스킬이 떠올랐다.

    [전기+바람 속성 스킬 조합 71%]

    바람 속성 스킬이 조합되면 스킬 준비 속도가 빨라진다.

    이내 전기와 바람 속성이 덧입혀진 마법창이 네드 님의 손을 떠났다.

    ―쓔웅!

    바람 장벽은 탄탄했지만,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내리꽂히는 레벨 500의 마법창을 튕겨내진 못했다.

    그리고.

    ―쿠콰콰콰쾅!

    시어드 성주가 있는 저택 바깥쪽, 성의 경계가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난 입을 떠억 벌렸다.

    “아아아니, 바로 때려 부수시는 거예요?”

    이런 방식도 아는 분이었어요? 기겁한 나와 네드 님의 시선이 마주쳤다.

    “원래는 선호하지 않는 방식입니다만…….”

    네드 님이 부드럽게 웃었다.

    “이렇게 하는 걸, 유니 님이 더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그러니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그런 뒷말도 들은 것 같았다. 난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고 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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