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황성 기사단은 우리의 거처를 물었다.
“메디카 수도 광장의 여관으로 전달해 주십시오.”
우린 미리 준비해 둔 여관의 주소를 댔다.
물론 거긴 우리가 머무는 곳은 아니었다. 방만 빌려 둔 곳이었지.
네드 님은 신문사를 움직이려면 우리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행히도 유네리아는 로브에 ‘얼굴 감추기’ 기능이 따로 있어서, 로브를 모자까지 뒤집어쓰면 머리카락 색 정도의 외형은 몰라도 얼굴까지 보이지는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다시 한적한 여관으로 돌아오고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쯤 수도 광장 여관에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겠지만.
“황성에서 초대할 거야 짐작하고 있었는데 전 퀘스트로 뜰 줄 알았거든요.”
난 아무 변화도 없는 퀘스트창을 쳐다보았다.
아까 분명히 황성 기사단장이 우릴 황성으로 초대하겠다고 했지만, 서브퀘스트는 뜨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이 생길 거라곤 유네리아 개발진이 생각지도 못했다는 뜻이었다.
그럼 어떻게 초대를 받을까, 했는데.
네드 님이 수도 중앙 여관을 빌려둔 이유가 이거였다니.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자연스러워 보였다. 소문을 주무르고 기자들을 뜻대로 움직이는 것도.
기자들을 피하는 것도.
“이런 일 많이 해 보셨어요?”
난 결국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냥 궁금해서 묻는 일상적인 질문이었다.
별로 무게를 실은 질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네드 님은 의외로 진지하게 반응했다.
멈칫한 그가 나를 살피는 게 느껴졌다.
“……왜요?”
물어보면 안 되는 거였나? 내가 눈을 깜박일 때였다.
네드 님이 문득 물었다.
“혹시,”
혹시? 우리 사이로 짧은 침묵이 지나갔다.
그 사이 네드 님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가, 살짝 벌렸다가, 마른침을 삼켰다.
이 짧은 순간이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네드 님의 말이 이어졌다.
“―이런 저는 싫으십니까?”
그 말에 난 눈을 깜빡였다. 네드 님이 조금 아픈 듯한 미소를 지었다.
옅게 흐려진 눈, 그러다 이내 긴 속눈썹 사이로 감추어지는 눈동자.
눈을 내리깐 그가 물었다.
“제가 이런 일은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능숙하다 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처연하게까지 들리는 목소리였다.
난 눈을 깜빡였다. 좀…… 의외이긴 했지만 별생각은 없었다.
세상에 자전거 씹어먹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일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뭐 달라질 게 있나?
좀 신기하긴 했다. 나랑 다른 세상 사는 사람 같잖아.
난 신문에 나와본 적도 없는데.
“별생각 없는데요?”
내 말에 네드 님이 숨을 멈추었다.
당연한 거 아닌가?
“좀 다른 세상 사람 같긴 한데, 뭐. 그렇다고 네드 님이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요?”
내가 빙그레 웃었다.
“저랑 약속한 거 어길 분도 아니고.”
공대 안 뛰고 튀실 것도 아니고.
아니, 오히려 이렇게 기자 달고 다니는 데에 익숙한 분이면 약속을 잘 지키시지 않을까?
내가 눈을 반짝일 때였다.
네드 님이 눈을 가늘게 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군요.”
그러더니 정말 안도한 얼굴로 말했다.
다행입니다, 라고.
* * *
수도 광장의 여관 앞으로 왔던 초대장은 이러했다.
‘황성에서 열리는, 메디카의 새 영웅들을 위한 만찬’ 초대.
우리는 그 초대장에 보란 듯이 퇴짜를 먹였다.
정확히는 너무 죄송스럽다며 극구 사양했다.
‘저희는 용병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런 만찬은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겸손함 공격!
기자들이 포진해 있는 여관에 잠입하는 건 다소 복잡한 일이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메디카의 두 용사’, 황가의 초대에 대한 답장은?]
[메디카의 두 용사, 금빛 로브의 용사로도 불리는 남녀를 황성에서 초대했다는 소식이 수도를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수도의 ‘S’모 여관에 머무른다는 용사들에게는 이미 황제 폐하의 친서가 도착한 상태.
하지만 그들은 자리를 비워 친서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현행 제국법상 근방에 있을 경우 황족의 친서는 하루 내로 받아 회신해야 하는 것이 원칙. 그렇지 않으면 황족모욕죄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다.
수도 서쪽 언덕에서 이미 목격되었고, 황성 기사단장에게 여관 주소를 알려준 상황이니 ‘근방에 있을 경우’라는 조건은 충족되는 셈.
과연 용사들이 하루 이내에 황가에 답장할 수 있을지, 수도의 많은 사람들이 비어 있는 용사들의 방에 주목하고 있다.
한편 S여관의 주인 M씨는 “처음엔 용사인 줄도 몰랐지”라며, 그들이 얼마 전에 방을 선불로 3개월 치 방값을 준 채 빌렸으며, 그 후로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M씨는 “용사님들인 줄 알았으면 뜨거운 수프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건데……” 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기자들은 우리가 황가의 친서를 씹었다가 황족 모욕죄로 끌려가진 않을까 걱정해 주었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그들에게 들키지 않고 여관방에 잠입한 우리는 성공적으로 회신을 써서 자리에 놓았으니까.
“언제 왔다 갔지!?”
“분명히 여관 앞에서 물 샐 틈 없이 지켜보고 있지 않았소!?”
물 샐 틈은 왜 없애? 우리가 범죄자야?
어이가 없었지만 아무튼 기자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정중하게 연회를 거절하는 우리의 답장은 황가에 도착했다.
[메디카의 두 용사, ‘만찬에 초대될 만큼 대단한 일 한 거 아냐’ 만찬 정중히 사양]
[황가 관계자, “폐하께서 ‘요즘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겸손한 자들’이라며 찬사”]
그리고 그렇게 기사가 뜰 때쯤, 우리는 금빛 로브를 쓰고 수도 중앙광장에 보습을 드러냈다.
“황성에서 ‘만찬 초대’를 거절당했으니, 가벼운 연회로라도 우리를 초대하려 들 겁니다.”
네드 님의 그 말에, 그럼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는 곳에 있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을 낸 건 나였다.
내가 민 컨셉은 이거였다.
‘비상시가 아닐 땐 일반인, 하지만 위험할 땐 제국민들을 위해 거침없이 움직이는 영웅’.
그리고 그 효과는 대단했다.
“금빛 로브의 용사들이다!”
“메디카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들의 찬사가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금빛 로브를 쓴 우리가 나타난 순간 제국 광장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물론 환호받으려고 간 건 아니었다.
초대를 거절한 우리가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면, 우릴 영입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황가에서도 액션을 취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갔을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수도의 시장을 거의 다 돌아보고 해 질 녘이 되었을 때쯤.
“저분은…….”
“오오, 황성의 마차야!”
놀란 사람들이 길을 터주는 곳 사이로 위풍당당한 마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무려 마부석에 앉아 있는 NPC는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메디카 황성 시종장이잖아?
기사단장이 정중하게 퇴짜맞은 꼴이었으니 거물이 올 거라곤 생각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폐하께서 가벼운 다과회에 초청하고자 하십니다.”
시종장이 정중하게 말했다.
이번엔 제국의 평민들이 모두 보는 가운데에서 황가가 용사들을 영입하는 데에 힘쓰고 있다는 걸 알린 셈이었다.
“황가에서 두 분을?”
“설마 기사단으로 영입하시려는 건가?”
“그간 ‘능력 있는 자가 살아남는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소이까?”
“이제 우리에게도 신경 써 주시는 건지…….”
제국민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어렸다.
역대 메디카 황제들은 대대로 귀족 친화적인 정책을 펼쳐 왔지만, 현 황제는 유독 그 정도가 심한 자였다.
평민들이 몬스터에게 죽어 나가든 말든 구제책을 만들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필드보스를 피해 몬스터가 없거나 능력 있는 영주의 아래로 들어가려고 애써야 했던 제국민들의 삶에, 빛이 떠오른 것이다.
“영광입니다.”
우리는 그 반응을 지켜보고는 천천히 마차에 올라탔다.
원래 제국민들의 안전에는 관심이 없던 오만한 현 메디카 황제는, 이로써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게 된 것이다.
몬스터를 잡을 힘과, 지금껏 외면한 탓에 돌아서기 직전이었던 민심을.
* * *
“용사들의 얼굴이라. 역시 눈에 띄는 자들은 외모도 남다른 건가.”
황제는 금빛 로브를 벗은 우리 둘을 보자마자 말했다.
이제 황제가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으니, 더 이상 모습을 감출 필요는 없었다.
얼굴을 드러냈다고 우리가 신문사에 소문을 흘린 사람들이라는 게 소문날 일은 없었다.
일단 그 작업을 할 때에는 머리색이 달랐으니까.
네드 님이 염색을 왜 하나 했더니 정말 용의주도하고 또 용의주도한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황제 폐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리는 황제에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메디카 황제가 흡족해합니다.]
알림창이 떴다.
반면 주변 귀족들은 우리를 경계하는 자 반, 반기는 자 반이었다.
특히 황제가 민심을 잃으면 반기를 들려고 했던 세가 큰 귀족들이 우리를 아니꼽게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 봐야 황제의 눈에 띈 우리를 함부로 할 수는 없는 법.
그들은 황제가 ‘용사’들을 손에 넣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네들이 지금껏 수많은 괴물을 무찔러 온 무용담은 익히 들었네. 정말 이 혼란스러운 메디카에 꼭 필요한 인재가 아닐 수 없지…….”
그렇게 뇌까리던 황제가 우리에게 물었다.
“자네들은 검을 왜 들었나?”
우리는 그렇게 묻는 황제의 의도를 이미 알고 있었다. 황제는 우리를 제 아래로 들일 생각이다.
그리고 당연히 황제의 신임을 얻어서 시어드 성을 박살 낼 명분까지 얻어야 하는 우리는 그걸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바로 답했다. 이렇게 말하면 황제는 당연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군.”
그야 당연하다.
지금까지 현 메디카 황제가 제국민들에게 지나치게 관심이 없어서 죽음을 좌시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명목상으로 그는 제국민들의 생명을 책임지는 자였으니까.
그가 기대에 찬 눈으로,
“혹시 황가의 명예기사가 될 생각은 없나?”
우리가 기다리던 말을 했다.
모든 게 계획대로였다. 나와 네드 님은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가문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알림창이 띠링 떠올랐다.
[히든 시스템 ‘메디카 황제의 굳은 믿음’이 개방되었습니다!]
[‘굳은 믿음’은 신뢰도나 호감도와는 다른 시스템으로 적용되며, 굳은 믿음의 정도에 따라 메디카 황제에게서 여러 가지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시스템이 있었어?
그 뒤로 촤르륵 무슨 보상이 펼쳐졌지만, 우린 그 보상엔 관심 없었다.
난 그 보상이 최대레벨 350의 장비를 주는 게 끝이란 걸 알아챈 뒤 재빨리 알림창을 껐다.
우리가 원하는 보상은 하나였다.
시어드 성 깽판 허가권!
그거 하나면 돼!
그리고 우리는 그 목적을 향해 아주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