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91/112)

<91화>

난 다른 쪽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민가는 대피 중이었다.

누가 봐도 대규모 몬스터가 나타날 것 같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민간인 피해는 적겠지만, 메디카 황실로서는 저 몬스터를 얼른 처리하고 싶을 것이다.

문제는 황성 기사단 능력으론 턱없이 부족하다는 거지.

“그렇죠.”

네드 님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는 여유로워 보였다. 나처럼 놀란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이 모든 상황이 자연스럽고 일상적이라는 듯이.

아니, 몬스터가 나타나는 거야 시스템적인 문제라 쳐도 신문사들 사이로 이렇게 자연스럽게 파고들어 사람들을 모여들게 하는 일이…… 그에게는 정말 익숙해 보였다.

“멋있어요.”

난 나도 모르게 말했다.

너무 대놓고 말했나? 잠깐 멈칫했지만 뭐 진짜 대단한 걸 어쩌란 말인가?

난 속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원래 내가 칭찬에 이렇게 후한 사람이 아닌데 이 사람 앞에선 거듭 감탄하게 된다.

난 다 때려 부술 생각이었는데!

“…….”

내 말에 네드 님이 나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눈은 크게 뜬 채였다.

“네드 님?”

뭐에 놀란 거야? 황가 기사들이 벌써 쓰러졌어요?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러기는커녕 그들은 오와 열을 뽐내며 주변 용병단의 기를 죽이고 있었다.

힘자랑 거기서 하면 보스몬스터는 어떻게 잡으려고 그러냐?

그 한심한 작태를 보다가 네드 님을 보니, 그는 아직도 눈을 크게 뜬 채였다.

“네드 님??”

내가 다시 부르자 네드 님은 그제야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뭐 때문에 놀랐어요?”

뭔 일 있어요?

레벨 400대 눈엔 안 보이고 500대 눈엔 보이는 무언가가 있는 거?

하지만 그렇다기엔 네드 님의 시선은 내게만 쏠려 있었다.

“아뇨.”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가 조금 머뭇거리다가 미소 지었다.

“기분 좋은 말을 들어서요.”

“무슨―”

말이요, 하려다가 문득 난 방금 했던 말을 떠올렸다.

‘멋있어요.’

설마 그거? 아니 그걸 그렇게 좋아하실 일입니까?

지금 보니 볼에 홍조도 있었다.

실화냐? 천상계 고도라 추워서 그런 거죠?

“유니 님께 들으니 더 기분 좋은 말입니다.”

네드 님이 말했다. 난 그 순간 문득 얼마 전의 말이 떠올랐다.

‘나랑만 같이 있어요.’

그가 했던 말. 갑자기…… 갑작스럽게 분위기를 반전시켰던 말.

그 말과 저 말이 자꾸 연결되는 이유를…… 알면서도 모를 것 같았다.

착각……이겠지?

* * *

―쾅!

과연 굴러가는 상황은 우리 예상대로였다.

[펜네라 / Lv. 380]

나타난 필드 보스의 꼬리질 한 방에 수십 명의 기사가 쓸려나가는 게 보였다.

필드보스의 공격 앞에서는 황성 기사단이고 용병단이고 그냥 한낱 인간일 뿐이었다.

누가 더 번쩍번쩍한 옷을 입고 있느냐 정도만 차이가 있을 뿐.

“예상보다 훨씬 고전하는군요.”

네드 님은 그 상황에 조금 놀라신 듯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버틸 거라고 계산했습니다만…….”

그러면서 나를 돌아보셨다. 설마?

“300레벨 정도가 다…… 저 같을 거라고 생각하신 건 아니죠?”

내가 400대 찍은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네드 님이 본 가장 최근의 300레벨 대는 나이긴 했다.

“…….”

네드 님은 답 대신 곤란한 듯 웃었다.

정말이었습니까?

300레벨 NPC들이 다 나 같이 사냥을 잘했으면 유네리아 유저들이 도태되지 않았을까요?

“유니 님이 유독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네드 님이 입을 열었다. 그때쯤 펜네라의 앞발에 기사단 열댓 명이 하늘로 비상하고 있었다.

―크르르릉!

펜네라의 울부짖음에 점점 패색이 짙어지는 병력의 모습이 보였다.

물론 싸울 줄 모르는 자들은 일찌감치 도망친 지 오래였다.

네드 님은 그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그래도 300레벨 대가 생각보다 강하지 않군요.”

그게 아니라 제가 유독 뛰어난 겁니다.

……라는 말을 하면 너무 자화자찬이 심해 보일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이내 황성 기사단이 결사 항전의 의지를 다지는 게 보였다.

방어할 의지를 버리고 오로지 공격할 의지만 보이는 날카로운 진형으로 바뀐 것이다.

그들은 곧 펜네라에게 진격할 것처럼 보였다.

―이제 끼어들지 않으면 저들은 몰살당할 거다.

엘데가 말했다. 난 네드 님을 돌아보았다. 내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잡아 주는 게 좋겠어요.”

네드 님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목적은 이거다. 최대한 눈에 띄기.

하지만 홀연히 떠나기.

그러기 위해서 가장 좋은 스킬은 역시 하늘을 건드리는 것이었다.

[네드 ‘하늘+전기 속성 스킬 조합’ 44%]

―쿠르릉! 쿵!

하늘에 심상찮은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낙뢰존이라고도 불리는 저 조합을 네드 님이 어떻게 알았는지 의문이었다.

스킬 설명에 스킬 조합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는 들었는데, 저것도 그중 하나였나?

“……?”

내가 고개를 기울이는 사이 주변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네드 님의 하늘+전기 스킬 조합으로 구름에 번개가 모여든 것이다.

먹구름에 가려 보이진 않았지만 보나 마나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고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되겠지요?”

네드 님이 날 돌아보았다.

[네드 ‘하늘+전기 속성 스킬 조합’ 89%]

두 가지 속성을 섞었기 때문에 준비에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리고 하늘+전기는 몬스터 크기가 크지 않으면 적중률도 떨어지는 스킬 조합이었기 때문에, 정말 남에게 보여 주는 용도 아니고서는 제대로 쓰지도 않는 조합이기도 했다.

물론 데미지도 별로였다.

하지만 내 능력치를 가진 네드 님이라면 레벨 380의 펜네라 정도는 한 방에 끝내기에 차고도 넘쳤다.

“네.”

내가 아래를 가리켰다.

준비되셨으면 쏘~세요!

내 손짓이 신호라도 된 것처럼, 네드 님의 손에 들린 마법 창이 빛을 발했다.

하늘+전기 속성이면 창은 쓸 필요가 없을 텐데?

[네드가 ‘보조 속성 부여(금속)’ 스킬을 사용합니다.]

알림창과 함께 네드 님의 손에 들린 마법 창이 은빛으로 달아올랐다.

아, 저게 피뢰침이었어?

커다란 펜네라 위에 저런 피뢰침이 꽂히면 확실히 적중률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쓔우우우웅!

이내 네드 님의 손에서 창이 날았다. 그리고.

―콰직!

살벌한 소리가 울렸다.

뒤이어 펜네라의 끼오오오오 하는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위로.

―쿠르르릉! 쿠쿵!

십수 개의 번개가 내리꽂혔다.

“……!”

그 후 급속도로 흩어지는 번개 사이로 사람들이 멍하니 그 현장을 보고 있는 게 보였다.

엘데는 그때쯤 빠르게 바닥으로 활강해 우리를 바닥에 내려 주었다.

―팟!

그리고 재빨리 액세서리 크기로 변해서 내 주머니로 쏙 들어와 버렸다.

“저게…… 저게 뭐지?”

“저 사람들이 한 일인가?”

“금빛 로브야!”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우리 쪽으로 시선이 쏠리는 게 보였다.

그야 번개 사이로 빠르게 바닥에 내리꽂힌 우리가 멀쩡하게 서 있는 걸로 보일 테니, 놀라는 게 당연했다.

엘데의 속도는 300레벨의 평범한 NPC들이 제대로 보기엔 지나치게 빨랐으니까.

“갈까요?”

우리는 아주 느긋하게 뒤로 돌아섰다. 마치 펜네라가 죽는 것을 확인하려고 내려왔다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가 몸을 슬그머니 뒤로 돌렸을 때였다.

우리가 기대한 상황이 찾아왔다.

“자, 자, 잠깐!”

말이 벼락 때문에 다 도망갔는지 무거운 갑옷을 입고 뒤뚱뒤뚱 뛰어오는 건 황성의 기사였다.

―아까 인간들을 통솔하던 자로군.

주머니에서 뒤를 흘끗 살핀 엘데가 말했다.

인간들을 통솔하던 자? 게다가 이 무거운 갑옷 소리는?

설마 황성 기사단장인가?

“거기 서 보시게!”

그때 그 목소리가 다시 우리를 불렀다.

“…….”

“…….”

네드 님과 나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시선을 교환한 후 뒤를 돌아보았다.

예상대로 나름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는 건 황성 기사단장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네드 님은 정말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나도 네드 님처럼 열심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황성 기사단장이 간신히 숨을 고르고 말했다.

“잠시 나와 함께 가 주지 않겠소?”

그가 갈라진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나와 네드 님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그러자 기사단장의 목소리가 간곡해졌다.

“폐하께서 두 분을 급히 보고자 하시오.”

그 말에 우린 놀란 것처럼 눈을 크게 떠 주었다.

물론 여기까지 미리 짜 놓은 액션이었다.

첫 번째 계획에 황성 기사단장이 덥석 걸려들 줄은 몰랐지만.

아무래도 어지간히 황성에서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금빛 로브의 용사들을?”

“오오…….”

그 말에 기사들을 치료하던 사제들도, 주변을 정리하던 마법사들도 이쪽에 시선을 주기 시작했다.

이게 우리가 노리던 것이었다.

이제 황제가 금빛 로브의 용사(……)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소문이 돌 것이다.

황성 기사단이 몬스터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 와중에 그들을 구해 준 우리가 황성으로 초대를 받았으니, 우리를 황가에서 스카우트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도 돌 것이고.

“황성에서 드디어 금빛 로브의 용사들을 영입하는 건가?”

“오오, 가까이에서 보니 로브가 더 번쩍이지 않소?”

그냥 금색 천이거든? 로브 찬양을 듣는 것 빼고는 모든 게 우리의 예상대로였다.

나와 네드 님은 당혹스러운 척 서로를 마주 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는 기간이라면 언제든 초대에 응하겠습니다.”

황성 기사단장은 우리의 답에 아주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우리를 어떻게든 데려오라는 소리를 들은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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