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화 (90/112)
  • <90화>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부터 메디카의 하늘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았다.

    [수도 상공의 ‘기이한 구름’ 화제…… 황제 폐하의 은덕인가?]

    [메디카 전체에서 기이한 진동 경험자 속출, 피해 없는 지방 없어]

    [마법사 “심상치 않은 일의 전조”]

    신문들도 당연히 난리가 났다.

    나와 네드 님은 그 신문들에 집중했다.

    이 신문들을 보면 어디에 몬스터가 나타나는지 뛰어다니지 않아도 알 수 있을 테니까.

    “이건 오늘자 석간신문이에요.”

    ―탁.

    우린 아예 여관방 세 개를 빌려 버렸다.

    각자 하나씩은 자는 곳, 다른 하나는 업무용으로 쓰기 위해서였다.

    난 그냥 각자 방에서 하면 되지 않나 싶었는데, 네드 님은 의외로 강경했다.

    ‘업무환경과 수면환경은 분리되어야 일의 효율이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너무 진지하게 말해서 거절할 수도 없었다. 저 부분에 있어서 어떤 철학이 있으신 듯했다.

    아니 뭐, 여관방 하나 더 빌린다고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나야 상관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두 분이서 방을 세 개 빌리신다굽쇼?”

    한적한 곳의 여관 주인이었다.

    그는 우리의 말을 반기는 눈치였지만,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두 분이서 하나가 아니라요?”

    “세 개요, 세 개!”

    왜 하나야!

    아무래도 여관 주인은 나와 네드 님 사이에 뭔가 있길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단언컨대 나와 네드 님이 하는 거라고는 하루 종일 신문 보기밖에 없었다.

    내 일생에 본 종이신문보다 더 많은 신문을 본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할 때쯤이었다.

    [서브 퀘스트 ‘수상한 균열’을 입수했습니다.]

    이내 퀘스트가 도착했다.

    내겐 익숙한 퀘스트였다.

    “떴네요.”

    앞으로 나타날 필드보스의 시간과 위치를 알려 주는 퀘스트.

    PC 버전에서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메디카 신문’ 아이템을 사용하다 보면 획득하는 퀘스트였지만, 이 세계에서는 달랐다.

    정말 신문을 꼼꼼히 읽어 봐야만 발생하는 퀘스트였다.

    “‘수상한 균열’ 퀘스트가 맞습니까?”

    네드 님도 비슷한 타이밍에 떴는지 내게 물어 왔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무기를 챙겼다.

    토르의 검으로 한 방 날까? 이 정도로 아이템을 둘둘 말았는데 한 방이 안 나면 이상하지 않을까요?

    그때 네드 님이 나를 제지했다.

    “보스 몬스터를 잡는 것도 좋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

    필드보스 묵히시게요?

    이건 인기 없는 필드보스에게나 하는 전략이었다.

    [사라지는, 묻히는 컨텐츠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라는 모 팀장의 말에 따라 ‘오래 필드에 남겨져 있는 필드보스 몬스터’가 더 좋은 보상을 주게 되면서 나오게 된 사냥방식.

    그냥 필드보스를 잡으면 보상이 안 좋으니까, 현실 시간으로 한 1주일 묵혀서 잡는 거다.

    그럼 1주일 동안 해당 필드보스를 매일 때려잡은 것보다 더 좋은 보상을 준다.

    물론 어떤 나쁜 놈이 그렇게 ‘묵히고 있는’ 보스 몬스터를 멀리서 저격이라도 했다간 망하기 때문에, 보스몬스터 앞에서 길드 하나가 죽치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물론 랭킹 상위의 길드들은 현존하는 필드보스를 묵혀서 나오는 보상을 먹는 것보단, 최상위 레이드를 뺑이치는 게 더 돈이 잘 벌렸기 때문에 하지 않는 짓이기도 했다.

    하지만 뉴비가 해 보기엔 나쁘지 않은…….

    내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아뇨, 연락할 데가 있어서요.”

    네드 님이 옅게 웃었다. 난 눈을 깜빡였다.

    누구요? 같이 사냥할 친구는 아닐 테고?

    * * *

    곧 네드 님이 연락한 것은 그동안 신문을 모으면서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었다.

    그를 따라간 난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이 이렇게 사교적인 사람이었나?

    “아, 자네인가? 또 신문 사러 왔어?”

    “네.”

    네드 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움직임을 따라 그의 갈색 머리가 살랑 흔들렸다. 네드 님과 내 머리는 갈색으로 물들인 상태였다.

    최대한 기억에 남지 않는 자연스러운 머리색으로 염색한 것이다.

    “요즘은 자네처럼 신문 자주 찾는 사람이 없는데, 보기만 해도 흐뭇하구만.”

    신문사 사람은 그간 네드 님과 친해졌는지 이런저런 근황 이야기를 떠들며 신문을 건네주었다.

    “내 딸이 자네 반만 닮았으면 좋겠군. 그 애가 이번에…….”

    “아, 검에 재능 있는 따님 말씀이시군요.”

    그러더니 네드 님은 신문사 사람보다도 더 길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대체 저 사람 딸이 올해 유학 갔다가 돌아왔는데, 학문 대신 검에 더 관심이 있어서 아카데미에 갔는데, 점수가 반타작이 나서 방에 처박혀 있다는 사생활은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그걸 기억하고 있었나?”

    껄껄 웃으면서 네드 님의 등짝을 두드리는 신문사 사람을 보니, 그가 무심코 흘린 말을 네드 님이 기억하는 듯했다.

    정말…… 대단한 기억력이었다.

    “그럼요. 필 님의 이야기인데 흘려들을 수 있나요. 그래서 말입니다만, 이건 수도의 유명한 대장간의 소개장입니다.”

    그러면서 네드 님은 인벤토리에서 소개장을 꺼내 보였다.

    아니 저런 건 또 어디서 나왔대?

    심지어 지금 보는 NPC 필은 호감도 시스템에도 없는 NPC였다.

    한마디로 라비스를 마시게 해도 친해질 수가 없다는 말이다.

    원래 저 NPC는 말을 걸면 한마디 스크립트도 없이 [신문을 산다 / 대화 종료]밖에 뜨지 않는 NPC인데?

    어떻게 저렇게 친해진 거야?

    “대장간?”

    정말 다른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친근한 표정인 필은 소개장을 받아들었다.

    네드 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필 님의 따님이 성적이 안 좋은 건 검 때문일 수도 있으니까요. 요즘 워낙 좋은 검이 많이 나와서 제대로 대련을 하기도 전에 검이 부러지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네드 님이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 제가 모험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검을 바꾸면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원래 새 장비템 마련하면 기분전환 되는 법이죠……. 난 나도 모르게 납득해 버렸다.

    “오오. 고맙네!”

    필은 나보다 훨씬 더 감동받은 듯했다.

    “역시 자네뿐이야! 지난번부터 정말 도움 많이 받고 있네!”

    대체 뭘 도와주신 겁니까? 나처럼 신문만 사고 온 거 아니었어?

    물론 나도 신문을 사면서 혹시 필요할까 싶어서 호감도 시스템이 있는 NPC는 모조리 호감도 MAX를 찍어 놓고 온 길이었다.

    하지만 이쪽은 호감도 시스템이 없는 NPC와도 이미 짱친이 되어 있었다.

    이게…… 이게 사교력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필 님께서도 늘 도와주시지 않습니까.”

    네드 님은 빙그레 웃더니 은밀하게 물었다.

    “그런데 다른 신문사에서는 몬스터에 대한 소문이 있던데, 혹시 이쪽에서는 달리 들은 소식이 없으십니까?”

    그 말에 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뭐? 몬스터에 대한 소문?”

    “예. 하늘을 찢고 나타난다는 거대 몬스터에 대한 소문 말입니다.”

    “그, 그런 소문이 있었나? 기사는?”

    다른 신문에 기사가 떴는지 묻는 듯했다. 그러면서 손이 바빠지는 그에게 네드 님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저도 듣기만 한 거라서요. 곧 올라올 모양이더라고요.”

    “그럼 또 우리 쪽에서 놓칠 수 없지. 혹시 어떤 소문인지 자세히 말해줄 수 있나?”

    그 말에 네드 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서쪽 언덕 위에 구름이 줄곧 모여 있지 않습니까? 그 안에서 새벽마다 기이한 빛이 번쩍인다는 제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제보는 단언컨대 없었다.

    요컨대 저건…… 뻥카였다.

    하지만 완전 거짓말은 또 아니긴 했다.

    [수상한 균열

    - 메디카 수도 서쪽 언덕 위를 새벽에 확인하기(NEW!)]

    분명히 퀘스트가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위치나 시간을 아는 사람은 단언컨대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이 세계 NPC들이 퀘스트를 받을 리가 없으니까!

    “고맙네, 고마워!”

    분명 우리가 오기 전까지 반쯤 졸고 있던 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취재 장비를 챙겨 서둘러 떠났다. 당연히 향하는 곳은 서쪽이었다.

    * * *

    네드 님은 그렇게 십수 개의 신문사에 소문을 흘렸다.

    원래 횡단보도에서 세 명만 하늘을 쳐다봐도 뭐가 지나가는 줄 안다고, 신문사 여러 개에서 움직임이 생기기 시작하자 곧 언론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뭐라고? 몬스터가 서쪽 언덕에?”

    그리고 당연히 황가에도 그 소식이 들어갔다.

    메디카의 수도 근처라는 소식에 긴장한 황성의 기사단이 서쪽 언덕에 파견된 건 새벽이 되기도 전이었다.

    난 이제 네드 님의 계획을 알 것 같았다.

    ―인간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군.

    우리는 천상계 고도에서 엘데를 탄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엘데의 말대로 서쪽 언덕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제각기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신문 기자들은 물론이고 귀족가의 기사들부터 한 건 해 보려는 용병단까지.

    “……!”

    “!!”

    보스몬스터 관련 기사를 먼저 내서 특종을 잡으려던 기자들도, 한 건 해보려던 용병단과 병력들도 당황하는 가운데 황성 기사단까지 나타나자 현장의 혼잡함은 더해졌다.

    한참 아래쪽이라 다들 뭐라고 떠드는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확실한 건 저 모든 상황은 네드 님이 불과 여섯 시간 만에 만들어낸 것이란 점이었다.

    아무리 네드 님이 메디카 국적이라지만 모험가가 이 정도 영향력을 가지는 게 쉬울 리 없었다.

    아니, 불가능했다.

    유네리아를 수도 없이 했던 유저들도 이런 각계각층의 NPC들을 자연스럽게 불러 모아 어떤 ‘사건’을 만들 순 없었다.

    그게 PC 버전의 한계인지, 아니면 사람의 한계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난 유네리아의 자유도를 체험해본 사람으로서 감히 의견을 낼 수 있었다.

    이건 사람의 한계였다. 이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저들 사이에서 ‘네드’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고, 저들이 제 의지로 서쪽 언덕에 모인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 모였군요.”

    네드 님은 황성 기사단까지 보고 만족하는 얼굴이었다.

    ―뀽~

    그의 어깨에서 비상식량이 힘차게 울었다. 기분 좋은 울음소리였다.

    난 네드 님의 계획을 알 것 같았다.

    [수상한 균열

    - 메디카 수도 서쪽 언덕에서 새벽에 나타나는 존재 확인하기]

    저 몬스터가 나타나면 우린 곧바로 해치우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저 밑에 있는 자들의 레벨은 높아 봐야 330.

    300대 후반의 필드보스 몬스터를 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마 쓸려나가겠지.

    그럼.

    “도저히 잡지 못할 것 같은 때에 우리가 등장하는 거죠?”

    내 말에 나와 네드 님의 시선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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