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8화 (88/112)

<88화>

“일단 제가 메디카 황제에 관해 아는 건 이 정도예요.”

네드 님은 날아가는 중간에도 시간을 버리지 않았다.

네드 님이 먼저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붙든 건 나였다.

난 답을 거부할 생각은 전혀 없었으므로, 나름 머릿속에서 정보를 정리한 다음 네드 님에게 말했다.

“일단 현 황제면 반역으로 황위를 찬탈했어요.”

이쪽 설정이 또 MSG가 팍팍 뿌려져 있는 설정이라 기억은 잘 났다.

“아하.”

이건 중요한 정보인지 네드 님이 빠짐없이 기록하는 게 보였다.

난 황제와 연결된 다른 중요한 정보들을 전달했다.

“그래서 반역이나 아랫사람들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해요.”

여기까진 모두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난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더 알고 있었다.

“근데 그걸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다 티 난다는 게 문제지만.”

애초에 메디카의 현 황제는 별로 정치와 가까운 인물이 아니었다.

표정을 감추고 의도를 감추는 데 능숙한 귀족 사회의 일원이 아니라, 지방 전장 출신이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메디카의 전 황제가 너무 막 살아서, 귀족들이 추대한 인물이었으니까.

음, 퀘스트 재탕도 안 했는데 이 정도 기억하는 거면 내 뇌세포가 많이 죽지는 않은 듯했다.

3교대 해서 뇌세포 많이 죽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내가 자화자찬하는 사이 네드 님이 필기를 마쳤다.

그러고는 다시 노트를 보며 고심하기 시작했다.

“음…….”

그러는 사이 엘데는 근처 벌판에 착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난 엘데가 활강을 하든 말든 흔들림 없이 앉아 있는 네드 님을 보다가 생각했다.

시어드를 박살 내려면 메디카 황제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니 정보를 얻어 가는 건 이해가 되는데.

신뢰도 퀘스트를 아시는 것 같진 않고, 이걸로 어떻게 허락을 얻어내시려는 거지?

‘혹시 이번 일, 제게 맡겨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던 네드 님은 정말 자신 있어 보였다.

신뢰도 퀘스트 없이 황가의 허가를 받아낼 수 있을 것처럼.

어떻게?

가능할까?

의심했지만 난, 얼마 후 인정해야 했다.

난 유네리아를 너무 시스템적으로만 접근하고 있었다.

물론 게임이 다 그렇겠지만, 이렇게 게임 세계에 들어왔을 때에는 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도 있는 모양이다.

그런 의미에서 네드 님의 방식은 아주 새롭고, 아주 성공적이었다.

* * *

네드 님은 일단 굉장히 계획적인 사람이었다.

나처럼 대충 사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그랬다.

“이걸 입어 주시겠습니까?”

네드 님이 준비해 온 옷은 레벨 450제의 초고급 수제 정장이었다.

당연히 메디카 복식이었다.

“메디카 복식을 입어도 황가 사람들은 제가 알라반 사람이란 걸 알아볼 거예요.”

난 혹시나 네드 님이 모를지도 모르는 부분을 지적했다.

내 말에 네드 님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복식과 관계없이 말입니까?”

“황성 NPC들은 가까이 있으면 알라반인이라는 걸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나도 어떻게 알아보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거의 뭐 알라반인한테 냄새라도 맡는 건지 황성 NPC들은 알라반인한테 매우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한국 오면 외국인들이 마늘 냄새 난다고 하는 거랑 비슷한 건가?

“그럼…….”

네드 님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겉보기에는 알라반인 모험가와 메디카인 모험가가 외형 차이가 크지 않으니 생각지 못하신 부분인 듯했다.

“제가 가만히 있을까요? 방해되나?”

난 손을 펴 보였다.

하긴, 메디카 황성에서 신뢰 얻는데 알라반인이 있으면 방해될 법도 하지.

그런데 내 말에 네드 님은 놀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그렇게 놀라실 것까지야…….

네드 님은 손까지 내저어 보이고 있었다.

근데 뭐 빠질 땐 빠져야 빠르지 않겠는가?

원래 딜 넣을 때도 마구잡이로 때리면 딜이 더 안 들어가는 법이었다.

스킬 데미지를 최대화할 수 있는 타이밍에 적절한 스킬로 한 대 치는 게 더 빠르게 딜을 넣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클리어 속도를 위해 빠져야 한다면 난 빠질 용의가 있었다.

“신뢰도는 국적상 못 도울 것 같고, 어디 부술 일 있으면 편히 부르세요!”

네드 님 현재 능력치로 부수는 것보단 파괴적이지 않겠지만, 이쪽은 기술 좋게 원하는 것만 쏙쏙 골라 부술 수 있답니다!

이래 봬도 난 ‘유네리아 대박살 이벤트’라 쓰고 ‘폐허 이벤트’라고 불리는, 모두 부수기 이벤트에서 1위를 차지한 사람이었다.

이벤트의 랭킹 조건은 이러했다.

[유네리아에서 가장 많은 것을 부쉈으면서도 NPC들에게 피해가 없을 것.]

그리고 난 피해 본 NPC가 한 명밖에 없었다.

……당시 랜덤 아이템 박스를 판매하던 ‘니만’ NPC만큼은 살려 둘 수가 없었으니까.

아무튼 골라 부수기 1위가 여기 있습니다!

뭐든 맡겨만 주십시오!

내가 주먹을 불끈 쥘 때였다.

“일단 처음에는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네드 님은 내 말을 부드럽게 받았다.

난 눈을 깜빡였다.

그럼 나중엔 있다는 말씀?

내가 의아해하는 사이에도 네드 님은 이것저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이거였다.

[메디카 일간신문]

음유시인이 노래를 전하면서 소식을 전하는 게 일반적인 알라반과는 달리, 메디카는 주요 소식통이 신문이라는 설정은 알고 있었다.

네드 님이 모으는 건 한 가지 신문사의 신문이 아니었다.

얼마 후.

귀족층만 보는 신문부터 평민들만 보는 신문들까지 빠짐없이 모은 네드 님이 여관 테이블에 신문을 쌓아 놓았다.

늘어놓는 이유를 모르진 않지만 좀 신기했다.

내가 알던 메디카 신문은 사장된 컨텐츠였는데.

어차피 신문에서 얻을 정보가 있으면 신문을 주로 보는 유저들이 다 퍼날라서 ‘광고형 판넬’ 아이템으로 광고해 주었기 때문에, 볼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유네리아를 오래 한 나도 이렇게 가까이에서 신문을 보는 건 엄청 오랜만이었다.

[수도 서쪽 벌판에서 ‘특이현상’ 관측…… 각계 주목]

[수도 사교계에서 주목하는 ‘이것’!]

……광고 같은 것도 있었지만 아무튼 신문에는 생각보다 정보가 많았다.

몇 개의 신문을 계속 보다 보니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있었다.

“몬스터 출몰 문제가 가장 많네요.”

내 말에 네드 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네드 님은 고민하다가 말했다.

“처음엔 싸울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이렇게 되면 싸우러 가 봐야 할 듯합니다.”

난 네드 님의 말에 눈을 깜빡였다.

“이거 잡으시게요?”

“예.”

네드 님이 가리킨 몬스터들에 대한 기사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내가 맨날 심심풀이로 잡던 메디카의 필드보스에 대한 정보들이었으니까.

“위치와 출몰 시간을 알면 편할 것 같은데…….”

네드 님은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건 제가 알아요.”

하지만 아쉬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내 말에 네드 님이 나를 돌아보았다.

“유니 님이 어떻게……?”

“이거 메디카 필드보스 이야기거든요.”

신문 보고 애들이 판넬로 띄워 주는 얘기가 바로 메디카 필드보스 출몰 소식이었다.

그리고 출몰하는 몬스터마다 나오는 장소와 시간은 서너 가지 정도로 정해져 있었다.

고인물이라면 그 정도는 다 외우고 다니는 법.

특히 이렇게 서쪽이네 동쪽이네, 위치까지 짚어 주고 있다면 출몰 시간은 뻔했다.

“이거는 ‘비아스’라는 레벨 368짜리 필드보스인데, 서쪽 들판에서 자정부터 나와요.”

난 네드 님이 먼저 짚은 신문 기사를 가리켰다.

그 다음엔 그 옆에서 제국 북쪽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어쩌고 하는 기사를 가리켰다.

“이건 비아스 쌍둥이 괴물인 디아스인데 380짜리예요. 북쪽 산맥에서 일출이랑 같이 나오고…….”

내가 몬스터를 하나하나 짚어줄 때마다 네드 님은 멈칫했다가 필기하기를 반복했다.

이런 건 어떻게 아시느냐는 표정이었다.

……원래 파밍에 미쳐 있다 보면 외우기 싫어도 외우게 된답니다.

“이거 잡으러 가시게요?”

설명을 다 한 내가 신문을 가리켰다.

확실히 우리는 메디카에선 듣도 보도 못한 모험가들이니, NPC들에게 인지도를 쌓으려면 필드보스를 잡는 게 최선이긴 했다.

어디 보자, 필드보스 타임 테이블이 오전 6시부터 시작되니까…….

내가 최적의 사냥 경로를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네드 님이 고개를 저었다.

“다 잡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요?”

황제가 볼 수 있을 시간에만?

내가 고개를 기울이자, 네드 님이 웃었다.

“힘 조절을 해서 적당히 ‘사투’를 벌이며 잡으면 됩니다.”

한 방에 보내 버리는 게 아니……고?

아.

난 무슨 작전인지 알 것 같았다.

“일단 메디카에서 골머리 앓을 만한 필드보스들만 적당히 상대해 주다가 빠지자는 거죠?”

처리를 못 해서 고생인 걸 우리가 잡으면 메디카 황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때 우연인 척 만난 다음 신뢰도 퀘스트를 진행하면 훨씬 수월하게 신뢰도를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역시 네드 님이다!

난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내 눈앞의 뉴비는 좀 다른 방법을 생각하는 듯했다.

“예. 그러다 보면 메디카의 평민들부터 우리에게 관심을 보일 겁니다.”

지배층이 아니라 평민의 눈에 띄실 생각인가?

어차피 메디카는 지배층이 다 해먹는 사회인데 굳이 평민의 눈에 띌 필요가 있을까요?

지독히 효율 따지는 게이머다운 생각을 할 때였다.

“현재 메디카의 평민들은 지배층에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네드 님이 평민들의 신문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유니 님의 말씀에 따르면 메디카의 평민과 지배층은 원래도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무언가에 불만이 쌓이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말한 네드 님이 손을 펴 보였다.

“그건 신문들을 보면 귀족들이 제 안전을 신경 쓰느라 평민들의 안전을 등한시하기 때문인 것 같고요.”

신문을 내려놓은 네드 님이 말을 이었다.

“메디카는 지배층 위주로 돌아가는 국가이지만, 결국 지배층도 상류층이 있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아래를 받쳐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네드 님은 두 달 전과 비교해서 ‘몬스터들을 평민에게 구해 주는’ 내용의 기사가 많아졌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평민들에게 좋게 보일 만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죠.”

그렇게 말하면서 네드 님이 가리키는 것들은 모두 네드 님이 말한 내용의 기사들이었다.

“그리고 두 달 전 황가 차원에서 여론전에 주력한 것 같습니다. 이런 신문들이 많이 생긴 걸 보면요.”

네드 님은 신문 몇 개를 들어 보였다.

그건 새로 창간된 신문들이었는데, 종이 질도 번쩍번쩍한 데다가 무엇보다 은근슬쩍 황가와 귀족에 대해 우호적인 기사를 많이 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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