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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80/112)
  • <80화>

    이 SNS 짤은 유네리아에선 이미 밈이 되어 버린 짤이었다.

    그만큼 공대 뛸 때 필수적으로 소모되는 요리를 누가 만드는가로 뒷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우리 공대엔 그런 게 없을 듯했다. 난 감동스러운 얼굴로 네드 님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은 안 가진 게 뭐지?

    “레버 당기는 것이 생각보다 재미있네요.”

    무려 요리를 즐긴다고?

    “지지진짜 재밌어요?”

    난 흥분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정말 재밌으면 공대용 요리 네드 님이 맡아 주시면 전 정말 땡큐 완전 땡큐인데!

    “네. 무엇보다 레버를 당기는 순간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게, 무척 마음에 듭니다.”

    머리를 비울 수 있는 취미가 될 것 같다며 네드 님이 웃었다.

    난 네드 님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음식물 쓰레기 : ★0.5]

    덕분에 네드 님의 레버를 내가 망쳐 버린 것 같지만 한 번쯤은 괜찮을 것이다!

    난 반짝이는 눈으로 네드 님을 올려다보았다.

    “요리 좋아하는 공대원 최고예요…….”

    공대용으로 쓰는 최고급 요리는 거래도 안 되는 요리라서, 일일이 파티창을 켜고 나눠 먹어야 하는 음식이었다.

    때문에 한 달마다 공대용 음식 만든다고 기를 썼던 기억이 났다.

    상위권 유저들은 이걸 ‘김장’이라고 불렀는데, 가장 빡칠 땐 역시.

    [새로운 요리가 3종 추가됩니다.

    - 탄두리 치킨, 구름 스테이크, 민트초코 아이스크림]

    [탄두리 치킨 : 순간 공격력 20% 증가]

    이딴 개 사기 신규 아이템이 추가될 때다!

    [아니 X발 김장 다했는데]

    [탄두리치킨의 세계가 왔습니다]

    [치느님 어서오고ㅋㅋㅋㅋㅋㅋㅋ어쩐지 어제 김장하기 싫더라]

    [아 X발 진짜 그럼 내 고르곤졸라피자는 어디다쓰는데]

    고르곤졸라 피자는 탄두리 치킨이 나오기 전, 순간 공격력 15% 증가로 공대용 음식으로 쓰였던 음식이었다.

    [고르곤졸라는 이쪽입니다 손님^^ https://garbage.trash.com]

    상위권 사냥 유저 치고 요리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저 때마다 게시판은 북적거렸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사이에 혜성 같은…… 이…… 천사가 등장한 것이다!

    심지어 레버도 잘 당겨!

    “네드 님도 드시면서 하세요.”

    난 그가 만든 탄두리 치킨 중 하나를 그의 입에 물려 주었다.

    [탄두리 치킨 : ★2.5]

    그러자 거짓말같이 레버가 삑사리났다.

    난 슬그머니 손을 물렸다.

    “방해 안 하겠습니다아.”

    “아닙니다, 더 주세요.”

    네드 님이 웃음을 터뜨렸다.

    괘괘괜찮은 거죠?

    난 네드 님에게 틈날 때마다 음식을 넣어 주었다.

    우린 물론 공대용 김장을 하는 게 아니라서 온갖 음식들이 다 튀어나왔다.

    [삼겹살 꼬치구이 : ★7.8]

    [조개구이 : ★8.0]

    그리고 그건 당연히 우리 입과 용들의 입으로 들어갔다.

    파라다이스가 어디 있는지 아는가?

    돈 걱정 배부를 걱정 없이 마음껏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는 곳에 있다!

    그리고 유네리아의 포만도는 이런 구이형 음식으로는 지겹게도 안 찼다.

    [포만도 X발 관리 어떻게 하라고 치즈만 X나 뜯어먹게 생겼네]

    그렇게 욕을 다발로 먹는 포만도 시스템이었지만 오늘만큼은 감사했다.

    덕분에 포식합니다!

    [‘네드 미니(유니)’의 ‘뇌전포탑(Lv.5)’의 지속시간이 1분 남았습니다.]

    “잠깐 올라갔다가 오죠.”

    물론 중간중간 운동도 해 주고 있다고요!

    “이번엔 어느 쪽으로 날아갈까요?”

    난 맛있는 걸 잔뜩 먹고 흡족해진 엘데의 위에 타며 물었다.

    사냥터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포탑을 뿌려 놓고 1시간 동안 노닥거릴 위치를 묻는 것이었다.

    ―촤륵!

    네드 님이 지도를 펼치더니, 한 곳을 짚었다.

    “이번엔 이쪽 절벽은 어떻습니까?”

    “좋죠!”

    다음은 거기다!

    내가 기분 좋게 엘데의 등을 두드리자, 엘데가 천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 * *

    [유니 / Lv. 412]

    유네리아 사냥 역사에 한 획을 그을, 하지만 PC 버전으로 하지는 못할 사냥 방식은 정말 대단했다.

    이런 꿀을 PC 버전에서 못 빠는 게 한이다……!

    난 그사이 설치형 스킬을 깔아 두는 위치도 바꾸었다.

    360 때 돌던 사냥터와 400대에 도는 사냥터가 달라지는 건 당연할 수밖에 없다.

    [네드가 ‘뇌신 빙의’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전격 스킬 데미지 효과 +20%]

    [장비한 ‘레살라토르의 검’ 데미지 보너스로 전류 관련 스킬의 데미지가 증가합니다.]

    [장비한 ‘시오 군단장의 장갑’이 ‘설치형 스킬 데미지 보너스’ 효과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아이템빨과 버프빨까지 받으니 못 잡을 이유가 없었다.

    “와, 바다 구현 잘해 놨네.”

    그리고 경험치가 미친 듯이 올라가는 걸 흐뭇하게 보면서, 우린 바다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여기서 몇 번 더 뺑이를 돌리면 420은 금방 찍을 것 같았다.

    마의 구간 360~370을 넘기고 나서 불이 붙은 사냥 속도는 그야말로 버그 수준이었다.

    하지만 니들이 버그로 여기다가 우리를 가둬 놨으니 따지면 안 되지 않을까요?

    버그라고 제재를 하든 말든 난 이곳에서 나가자마자 유네리아 운영팀에 가서 깽판을 놓을 것이다.

    대체! 이벤트를! 어떻게! 기획하는! 거야!

    음, 멱살 잡고 다섯 번 흔들면 깽값 얼마 나오지?

    내가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할 때였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맑은 바다군요.”

    네드 님은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난 바다를 돌아보았다.

    “아, 엘로아 해안가는 그렇죠.”

    유네리아 커플 여행지로 구름다리만큼 유명한 이곳은 커플들이 ‘부부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많이들 서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만큼 불륜(?)의 장소로도 유명해서, 새벽마다 여기 풀숲 어딘가를 뒤져보면 꼭 불륜 커플이 한두 개씩은 나왔다.

    분명 결혼한 것으로 유명한 캐릭터들이 숨어서 스크린샷을 남기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왜냐고?

    여기 밤하늘이 정말 은하수가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예쁘거든.

    하지만 그래도 불륜은 안 된다!

    근처에서 채집할 조개가 있어서 돌아다니다가 발견했던 불륜 커플 몇 쌍이 생각나는 가운데, 쓸데없는 기억이 또 끼어들었다.

    [#속초바닷가 #너와함께 #단둘이 #컾스타그램 #사랑해]

    아오, 그 속초 빌런들을 확!

    난 왜 바닷가랑 좋은 추억이 없는 것 같지?

    그때 네드 님이 바다 앞에 섰다.

    ―쏴아아…….

    새하얀 모래사장 위에 맑은 물이 들어찼다가 포말을 남기며 흩어지는 게 보였다.

    네드 님은 그 바다를 신기한 듯 지켜보고 있었다.

    삼 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바다를 처음 보시는 건 아닐 테고.

    난 그의 옆에 다가가 섰다.

    “뭐 보세요?”

    확실히 구현은 잘해 놨다.

    레벨이 400이라 그런가 시력도 좋아져서 수평선도 뚜렷하게 보였고, 덕분에 몰려오는 얕은 파도도 선명한 사진처럼 눈에 박혀 왔다.

    현실에선 안경 인생인데 여기선 맨눈으로도 별게 다 보이네.

    ―쏴아아……!

    가까이 오니까 바닷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정말 실제로 바다에 온 것처럼.

    바닷물은 네드 님의 신발 바로 앞까지 왔다가 물러가기를 반복했다.

    “업무의 연장선으로 바닷가 도시에 들른 적은 많았어도, 바다에 놀러 온 적은 없어서요.”

    그가 옅게 웃었다.

    “신기해서 보고 있습니다.”

    난 그 말에 네드 님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대체 무슨 삭막한 삶을 살아오신 겁니까?

    “동영상으로 남기고 싶을 만큼 인상적입니다. 사람 한 명 없는, 넓은 바닷가.”

    그가 뇌까렸다.

    하필이면 좋은 추억 쌓으라고 주장한 주제에 스크린샷도 동영상도 못 찍는 지금으로서는 아쉽게도 불가능한 소원이었다.

    그는 정말 아쉬워 보였다.

    “동영상은 안 되지만, 그림이라도 남겨 보시는 건 어때요?”

    난 슬그머니 물었다.

    물론 그가 펜 하나로 만들어내는 그림이 신기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가 너무 아쉬워 보인 탓이었다.

    “……아.”

    네드 님은 뒤늦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그림 그려서 남길 생각은 안 하신 거?

    “제 그림으로도 이 느낌이 살아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남기고 싶은 그림은 있습니다.”

    그러더니 해변 안쪽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시기 시작했다.

    “뭔데요?”

    내가 따라가려고 하니 네드 님이 내게 정중하게 손을 펴 보였다.

    “그곳에 계셔 주시겠습니까?”

    “여기요?”

    난 그의 발자국이 물에 쓸려가는 걸 내려다보다가 물었다.

    네드 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닷가의 유니 님을 그려 보려고요.”

    “아. 모델이에요, 저?”

    하긴, 바다만 그리면 좀 심심하긴 하겠다.

    여기가 거짓말처럼 깨끗하고 드넓은 바다이긴 했지만, 그만큼 모래, 바다, 하늘 말곤 볼 게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 사람 한 명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음음.

    “네.”

    네드 님은 그러면서 노트를 꺼냈다.

    대체 나랑 똑같은 노트랑 펜 가지고 어떻게 저렇게 고퀄리티 그림을 그리는 거지?

    난 네드 님이 지금까지 그렸던 그림들을 생각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바닷가에 어색하게 섰다.

    “…….”

    “…….”

    펜을 움직이려던 네드 님이 옅게 웃었다.

    “자유롭게 계시면 됩니다.”

    “자……유롭게……?”

    자고로 어릴 때부터 자유 주제 글쓰기 백일장이 제일 어려웠고 자유 형식 보고서가 제일 어려웠는데요?

    하지만 난 최대한 나름 자연스럽게 해변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

    물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무 뒷모습만 보이면 좀 그런가?

    슬쩍 그를 돌아보니 그는 그림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 그리는데 움직이면 안 되나?

    난 재빨리 다시 앞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네드 님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움직이셔도 됩니다.”

    “움직이면 못 그리지 않아요?”

    동영상도 아니고 그림인데? 하지만 네드 님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는 듯이.

    ―쏴아아……

    바닷바람이 내 긴 머리칼을 훑고 지나갔다. 붉은 머리카락 사이로 그가 그림에 열중하는 게 보였다.

    이러니까 진짜 바다에 단둘이 데이트라도 온 것 같았다. 옆에 정신없이 올라가는 경험치 창만 아니었으면 꽤 낭만적일 뻔했다.

    속초 빌런들도 이 느낌에 바닷가 온 건가?

    묘한 기분에 난 네드 님을 돌아보았다.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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