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화 (79/112)
  • <79화>

    난 멈칫했다.

    잠깐, 보통 이런 거 안 외우고 다니지.

    하지만 유네리아 10년쯤 하면 알게 된다니까요?

    제가 게임을 하루 종일 붙잡고 있는 게임 폐인이라서 이런 건 아니고!

    변명을 위해 네드 님을 올려다봤을 때였다.

    네드 님은 감탄하는 얼굴이었다.

    “굉장히 전략적입니다.”

    정말 순수하게 감탄하고 계셨다. 그 덕에 난 변명하려던 말도 까먹어 버렸다.

    ……음음, 좋게 보고 계신 거겠지?

    “……여튼 13분이 로스나게 되는데 이 시간 동안 가만히 있으면 손해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외부 사냥터를 도는데…….”

    나는 알라반 위의 몇 군데를 가리켰다. 엘데로 날아다닐 수 있을 만한 거리의 필드 사냥터들이었다.

    “여길 쓸어버리고 얼른 엘데 타고 여기로 가서 얼른 엘데 타고 여기 쓸어버리면 딱! 4분 남거든요? 그 사이에 리안 해저 동굴로 다시 돌아가면 돼요.”

    4분이 이동시간으로 소요되긴 하지만 이 레벨에는 최고의 사냥 방법이었다.

    내가 그렇게 공장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레벨을 420가량으로 만들겠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레벨이 420이 될 때까지 쉼 없이 반복해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유네리아는 사냥 지속 보너스도 있어서, 사냥 오래 할수록 경험치 보너스가 있거든요.”

    “아하…….”

    5분 내로 몬스터를 다시 잡아야만 지속되는 보너스지만, 이동시간이 4분이니까 괜찮다!

    “좀 힘들겠지만, 이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요. 별로 신경 써야 할 기믹 없는 사냥터로 골랐으니까.”

    내가 지도를 보면서 계획을 재점검할 때였다.

    네드 님이 불쑥 물었다.

    “그런데 스킬창에 설치형 스킬이 있던데, 그걸 활용할 수는 없습니까?”

    “설치형 스킬이요?”

    몰라서 묻는 거 아니다.

    그 쓰레기 스킬은 말뚝처럼 가만히 있는 보스들한테 데미지를 1이라도 더 주려고 박아 놓는 쓸데없는 적치물에 불과했다.

    심지어 하나당 지속시간이 30분씩이나 돼서 같은 맵에 설치를 많이 하면 렉만 걸렸다.

    그렇다고 그 설치된 물건이 30분 동안 온전히 일을 하느냐?

    NO.

    유저가 맵을 이동해 로딩을 타는 순간 싸악 사라져 버린다.

    쓰레기도 그런 쓰레기가 없었다.

    분명 스킬창에도 쓰레기 탭에 넣어놨을 텐데?

    그것까지 보셨어요?

    “설치형 스킬로 사냥하는 건 좀 무리가 있어요. 물론 애들 레벨이 낮고 네드 미니 스킬 공격력이 좋아서, 잡을 수야 있겠는데……. 설치하고 같이 잡으려면 오히려 동선만 꼬일 수도 있어요.”

    유네리아의 몹은 꼭 같은 위치에 리젠된다.

    요컨대 맵에서도 자신이 갖고 있는 스킬과 무기에 따라서 최단의 공격 경로를 가지고 칠 곳만 쳐서 몬스터를 잡고 지나가는 게 빠른 사냥의 지름길이란 소리다.

    그런 의미에서 설치형 스킬은 마이너스였다.

    일단 설치형 스킬이 몹이 젠되는 위치에 설치되면 그 몹이 다른 데로 밀려나면서, 맵 전체의 몹 위치가 조금씩 바뀌기 때문이다.

    그럼 20마리 잡을 수 있는 거 엉뚱한 데 처박히는 몹 때문에 19마리 잡게 되고, 이게 바로 경손실로 이어지는 것이다.

    경손실은 참을 수 없어!

    하지만 네드 님은 고개를 저었다.

    “설치형 스킬을 병용해서 사냥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요?”

    네드 님은 지도를 보다가 말했다.

    “설치형 스킬로만 사냥하는 게 어떤지, 여쭤보는 겁니다.”

    “네?”

    난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순 있긴 한데 그게 별로 똑똑하게 몬스터를 공격하지 않아요.”

    그래서 사냥에 실제로 쓰긴 좀 여러모로 문제가 있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네드 님은 그래도 고개를 저었다.

    “얼마나 똑똑하든 몬스터를 잡을 수만 있다면 최고의 효율을 뽑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서 네드 님이 지도를 가리켰다.

    그리고 알라반에서 내가 가리킨 사냥터들을 잇는 원을 그렸다.

    “이렇게 한 바퀴 돌면서, 설치형 스킬만 설치하고 돌아다닌다면요.”

    “설치형…… 스킬만?”

    “네.”

    네드 님이 눈을 반짝였다.

    “설치형 스킬만 여러 군데 설치하는 겁니다. 저희가 공격하지 않아도 경험치를 얻을 수 있게.”

    난 눈을 깜빡였다.

    “그게 이론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닌데, 설치형 스킬은 로딩 탈 때마다 없어지거든……요……?”

    어라?

    난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와서 로딩 탄 적이 있었나?

    그럴 리가!

    현실처럼 만들겠다고 기 쓴 게 보인 이 세계였다.

    유네리아 PC 버전에서 맵을 불러들일 때 나오는 로딩 화면이 뜰 리가 없었다.

    “로딩을 안 타네요??”

    그러네??

    난 귀신을 본 것 같은 얼굴로 네드 님을 돌아보았다.

    그러네? 그럼 그냥 설치형 스킬만 쓰면 되네?

    심지어 우리에겐 지치지 않는 용 엘데까지 있었다.

    “그냥 하늘에서 설치형 스킬만 쓰면 되겠는데요?”

    “그것도 됩니까?”

    네드 님은 그건 몰랐던 듯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잠깐, 이러면 해저 동굴은 빼고 외부 사냥터로만 사냥 경로를 조정해야겠다!

    난 빠르게 지도 위의 경로를 수정했다.

    몹 때려잡는 거? 아무리 내가 사냥머신으로도 불린다지만 지루하기 짝이 없는 반복 작업이다.

    근데 로딩이 없는 걸 이용한다면?

    설치형 스킬만 깔아놓으면 날로 경험치를 먹을 수 있다!

    물론 30분마다 스킬을 써줘야 한다는 게 문제지만, 이것도 네드 님한테 있을 ‘버프 지속시간 증가’ 계열의 스킬을 쓰면 거의 1시간 넘게까지 연장할 수 있었다.

    “좋아쓰!”

    난 나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그러면서 원형으로 바꿔 놓은 사냥 경로를 가리켰다.

    “이대로만 포탑 뿌리면 돼요!”

    되기만 한다면 대박이다!

    난 눈을 반짝이며 네드 님을 바라보았다.

    “역시…… 천재셨던 거죠?”

    네드 님은 내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 * *

    난 사람들이 왜 방치형 게임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유저였다.

    맨날 모바일 게임에 보면 ‘방치형 RPG!’ 하면서 나오는 게임들이 보였는데,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유네리아도 자는 시간에 자동사냥이 되면 좋겠다는 상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실제로 랭커들은 ‘부주’를 두고 자신이 자는 동안 사냥을 시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하지만 레벨업을 전부 자동사냥으로 해결한다면?

    대체 게임은 누가 해? 뭐 하러 해? 사냥하는 맛에 하는 거 아니었어?

    하지만 포탑을 알라반 전체에 뿌려본 결과 나는 방치형 게임을 사람들이 왜 하는지 이해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0.07%).]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0.02%).]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0.05%).]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0.01%).]

    ……

    경험치 획득 알림이 수도 없이 떴다.

    이건 각기 다른 사냥터에서 들어오는 경험치였다.

    그리고 경험치를 얼마씩 먹는지 제대로 보기도 전에 스쳐 지나가 버렸다.

    그만큼 엄청난 경험치가 빠르게 쌓이고 있었다.

    내 시야 오른쪽의 게이지바가 올라가는 게 보일 정도였다.

    “노력하지 않아도 뭔가 굴러들어오는 게 엄청 기분 좋은 일이네요.”

    방치형 게임 왜 하는지 알 것 같다!

    가만히 있어도 레벨업할 수 있다!

    현실에선 쌔빠지게 일해야 뭔가를 얻을 수 있지만, 게임에서마저 그럴 필요는 없잖아?

    가만히 있어도 강해지는 방치형 성장 RPG 유네리아! 함께하세요!

    물론 한정판입니다!

    나만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여기서 나가기 전까지만!

    젠장!

    ―으음, 맛이 좋군.

    그리고 이 사냥 방식은 엘데와 비상식량에게도 각광받았다.

    ―뀨우~

    원래대로라면 신나게 날아다니며 노동했어야 했을 그들은 한 시간마다 몸 풀 겸 알라반을 한 바퀴 날아다니면 끝이었다.

    물론 푸른 용이 자꾸 하늘을 날아다니면 알라반 사람들이 불안해할 것 같아서, 천상계 고도로 날아다녔지만 그게 엘데한테 무리가 될 리가 없었다.

    ―치이익!

    [‘네드 미니(유니)’의 ‘뇌전포탑(Lv.5)’ 스킬의 지속 시간이 5분 남았습니다.]

    알림창이 뜨는 걸 보면서 난 엘데를 돌아보았다.

    “다시 곧 한 바퀴 돌아야겠다.”

    ―좋은 걸 먹으니 몸을 풀 맛이 나는군.

    그리고 엘데와 비상식량의 만족도가 높은 건 노동강도가 낮아서 뿐만이 아니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해 볼까요?”

    네드 님이 뭔가를 꺼내 들며 물었다.

    그래, 저것 때문에 이놈들의 만족도가 하늘을 뚫는 것이다!

    * * *

    수십 분 전.

    “다 좋은데 포탑 다시 박을 때까지 할 일이 없네요.”

    우리는 이 계획의 치명적인 장점이자 단점을 발견했다.

    1시간이면 낮잠 자기야 좋은 시간이지만, 1시간마다 자다 깰 수는 없잖아?

    그럼 뭔가 소일거리가 필요했다.

    그런 우리의 눈에 보인 게, 인벤토리에 있던 요리 도구들이었다.

    “이거라도 해 볼까요?”

    유니가 요리를 하자고 한다?

    이건 에이리 님도 기절하고 유네리아 게시판 놈들도 기절할 일이었다.

    난 미니게임 하는 컨텐츠면 다 싫어했거든.

    그냥 조르아 맨손으로 때려잡기 같은 괴기한 사냥을 할망정, 생산 스킬은 질색이었다.

    하지만, 이게 해 보니까 생각보다 재밌단 말이야?

    “음……!”

    무엇보다 레버를 목숨 걸고 잡아당기는 것 같은 네드 님을 보고 있노라면 재미는 절정에 달했다.

    [해산물 로제 파스타 : ★7.5]

    그리고 네드 님은 생각보다 훨씬 요리에 재능이 있었다.

    대부분의 요리가 날씨와 장소 보너스, 도구 보너스를 안 받는 걸 제하면 최고급으로 나왔던 것이다.

    아니, 사냥도 잘하고 요리도 잘해?

    공대 하면 또 은근히 신경 쓰이는 게 스펙업용 요리 아니겠는가?

    [민초단 @mincholove

    아니 X발 내가 무슨 공대 전속 요리사냐]

    [민초단 @mincholove

    그럼 돈을 주든지]

    [민초단 @mincholove

    셀프 모르냐 시X 음식점가서 물은셀프 써있어도 물 달라고 뻐길 X끼들]

    [민초단 @mincholove

    지들은 저주받은 손이라 고급요리가 안나온대 어이가없어서]

    [민초단 @mincholove

    공대원들한테 니들은 손이없냐 발이없냐라는 말을 고급스럽고 품격있게 하는 방법 구함]

    [카시아스 @KAsius_UE

    hand less foot less]

    음, 품격 있는 유네리아 SNS 짤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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