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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74/112)
  • <74화>

    세레나를 돕고 레벨업을 하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서 엎어져 죽었을지도 몰랐다.

    이게 뭔데? 크리스탈 공명하면 미세먼지 생겨?

    지금 폐에 스크래치 나서 17.7만 박힌 거야?

    [네드의 ‘힐링’ 스킬 효과를 받습니다.]

    [+177,252]

    네드 님이 민첩하게 힐링을 해 주는 사이 알림이 이어서 떴다.

    [분당 1회, 크리스탈 공명 데미지를 받습니다!]

    “뭐?”

    “유니 님, 이건…….”

    네드 님, 그렇게 혼란스럽다는 표정으로 절 쳐다보셔도 답이 안 나옵니다!

    이건 저도 처음이에요!

    내 얼굴에서 답을 들은 듯 네드 님이 입을 닫았다.

    네드 님이야 내 스탯으로 체력도 방어력도 높으니 별 타격이 없는 모양이었지만 이쪽은 달랐다.

    게다가.

    내 캐릭터는 힐이 주력 스킬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일 사용 횟수 제한이 있었다.

    그리고 만약에 HP가 조금이라도 깎인 상태에서 이 데미지를 크리티컬로 받으면?

    오.

    그대로 길바닥 엔딩이다!

    물론 네드 님이 소생해 주면 그만이라지만, 그렇게 몇 분마다 죽어 가면서 퀘스트를 진행하는 건 무리였다.

    [크리스탈 공명 폭발까지 00:59:44 남았습니다.]

    [시간 내에 크리스탈 공명을 막으십시오.]

    그때 다시 알림이 떴다.

    [00:59:43]

    그리고 그 시간제한은 아예 시야 위에 고정되어 버렸다.

    “크리스탈 공명 폭발?”

    아니 이딴 시스템이 있었어?

    유네리아 10년 하면서 처음 듣는 듣도보도 못한 시스템에 당황했을 때였다.

    “일단 물러나는 게 좋겠습니다.”

    아, 크리스탈 공명이니까!

    바람 크리스탈 영역인 여기에서 벗어나면 데미지도 받지 않는다!

    “그러는 게 좋겠네요.”

    난 일단 네드 님의 손을 잡고 뒤로 돌아서 뛰었다.

    [크리스탈 공명 데미지를 받습니다!]

    [-166,202]

    그 와중에 공명 데미지는 알차게 나를 때리고 지나갔다.

    [00:58:13]

    새빨간 시간 초가 58분 13초를 가리켰을 때.

    [크리스탈 공명이 해제됩니다.]

    [시어드 성의 경계 범위에서 벗어났습니다.]

    알림창이 뜨면서 시간 초가 멎었다.

    “오…….”

    놀란 탓에 숨이 찼다. 난 무릎을 짚은 채 몸을 숙였다.

    헉헉거리면서 고민하자니 어이가 없었다.

    아니, 58분 안에 바람 크리스탈을 찾으란 거야 뭐야?

    “크리스탈 공명은, 다섯 개의 크리스탈이 다 모여서 일어나는 거겠지요?”

    네드 님이 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원래 이런 거 없었는데 추가했나 봐요.”

    그럼 그렇지! 어쩐지 일이 쉽게 풀린다 했다!

    용진아!!

    내가 다시 디렉터 이름을 속으로 외칠 때였다.

    “그럼 크리스탈을 얻으면 공명이 더 심해진다는 뜻이겠군요.”

    네드 님이 청천벽력같은 팩트를 내리꽂았다.

    “그…….”

    러……게요?

    조졌다! 난 머리를 싸맸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네드 님이 물었다.

    이럴 때 뉴비를 돕는 건 고인물의 잔머리! 였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엔 잔머리를 굴려도 무슨 결과가 나오질 않았다.

    “아니, 애초에 크리스탈은 레벨 500으로 취급받아서 저기에 뭔가 영향을 주려면 501레벨 이상의 아이템이 필요하거든요?”

    근데 이 동네 만렙이 500이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부분?

    “네드 님, 우리 그냥 여기 살림 차리라는 것 같은데요?”

    “예?”

    네드 님이 우뚝 굳었다. 아니, 그렇게까지 정색하실 필요는 없는데.

    나와의 살림이라는 미래가 어지간히 끔찍하신지 돌하르방이 되어 버린 네드 님을 두고 난 짱돌을 신나게 굴리기 시작했다.

    “아니, 인벤토리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고 공명을 안 하진 않을 거고.”

    그렇다고 500레벨 이하의 아이템을 조합한다고 500레벨 이상의 아이템이 나오는 것도 아니……

    “……잠깐만.”

    500레벨 이상의 아이템? 500레벨 이상?

    난 문득 북쪽 군도의 안개 너머를 떠올렸다.

    거기 500레벨 넘는 애들 있지 않을까?

    애‘들’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한 마리는 있을 터였다.

    나랑 네드 님이 만날 때 네드 님을 공격하고 있던 그 거대한 몬스터!

    “네드 님! 저번에 그! 그 몬스터요!”

    난 돌하르방 네드 님의 어깨를 붙들었다. 네드 님이 멈칫했다.

    “예?”

    “네드 님이 혼자 잡고 계셨던 거!”

    “아.”

    네드 님이 뒤늦게 반응했다.

    “‘헤르암의 거인’ 말씀이십니까?”

    그런 거창한 이름이 있었어요? 네임드 몬스터였어?

    물론 잡몹 주제에 내 스펙에 그 정도 데미지를 먹이진 않았을 터였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놈이요! 그놈 잡으면 크리스탈 공명 막을 수 있어요!”

    네드 님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 거인과 이 시어드 성이 관계가 있습니까?”

    난 손을 내저었다.

    “크리스탈을 레벨 501 이상으로 처리되는 주머니 안에 담으면 공명을 막을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501레벨의 주머니를 만들려면 501레벨 이상 몬스터의 드랍템이 필요하고!

    그게 딱! 그놈이라는 겁니다!

    * * *

    네드 님과 나는 시어드 성 근처 작은 마을에 들렀다.

    “…….”

    외지인을 반기지 않는 메디카의 평민들답게 우리를 쳐다보는 NPC들의 눈빛은 경계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런 건 별로 상관없는 일이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회의를 할 테이블이 있느냐 없느냐 정도였으니까.

    다행히 메디카의 인심이 아예 말라비틀어지진 않았는지 그들은 돈을 받고 허름한 여관방 하나를 내주었다.

    그리고 우린 그 여관의 기울어진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난 네드 님이 대충 기억나는 대로 그렸다고 주장하는 그림을 내려다보았다.

    “제가 기억하는 헤르암 거인의 모습입니다.”

    네드 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아무리 봐도 유네리아 스크린샷 흑백 버전 같은

    그림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혹시 스크린샷 기능이 없는 건 이분이 그냥 스크린샷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난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네드 님이 그린 그림은 거대한 거인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이 사람 혹시 전직이 인쇄기 아니야?

    “진짜 그림이 취미세요?”

    “네. 취미입니다.”

    네드 님은 고민 없이 바로 답했다.

    진짜? 이게 취미라고?

    난 믿을 수 없는 얼굴로 그림을 받아 들었다.

    “그것 말고는 기억나는 것이 없군요.”

    그리고 그런 내 앞에서 네드 님은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대체 뭐가? 이렇게 잘 그려서? 취미가 너무 잘나서?

    난 손을 내저었다.

    “있을 거 다 있네요.”

    심지어 잘 그렸어! 난 거인의 팔다리와 머리를 가리켰다.

    “여기 이렇게 그리신 부분, 빛나고 있었던 것 맞죠?”

    빛이 퍼져 나오는 걸 어떻게 이렇게 펜 하나로 그릴 수가 있지?

    난 감탄을 삼킨 채 물었다.

    네드 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연하늘빛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연하늘빛.”

    그럼 하늘 속성의 코어라는 말이다.

    난 그림을 가리켰다.

    “보통 이렇게 한 화면, 아니 시야 안에 들어오지 않는 애들이 이런 빛나는 곳을 갖고 있으면 거기가 코어라는 뜻이거든요?”

    “코어라면.”

    네드 님은 어감에서 바로 알아채신 듯했다.

    “그곳을 부숴야 거인을 해치울 수 있는 거군요. 그래서 제가 혼자 잡지 못했던 거고…….”

    이해력에 150점 드립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늘 속성이니까 두 가지 이상의 속성을 섞어서 공격하면 잘 먹힐 거예요.”

    하늘 속성은 다른 속성과는 달리 불리한 속성이 없다.

    대신 속성 조합 공격에 취약하다는 약점이 있었다.

    “문제는 이놈 기믹인데…….”

    유네리아 10년 차, X 같은 보스 만드는 방법을 책으로도 낼 수 있는 내 눈으로 보건대.

    “제가 보기엔 이 코어들 동시에 파괴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본체를 때릴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일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뭐 추가적으로 X 같은 기믹 몇 개 더 넣었겠지, 뭐.

    그건 직접 가서 확인해야 한다.

    “동시에 다섯 군데를 공격하려면, 음.”

    네드 님이 스킬창을 보는 게 보였다.

    “제가 딜링 주력 캐릭터이긴 한데 5개에 폭딜을 꽂긴 좀 힘들 거예요.”

    엄청 타이밍 잘 맞춘다면 모를까.

    아니면 나, 아니 내 반 정도 되는 놈이 서브딜러로 받쳐 준다면 모를까.

    “으음.”

    게다가 문제는 또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이름이 있는 네임드 몬스터가 레벨이 500 이상이면, 저는 아마 지금 상태론 스치면 사망할 거거든요?”

    [유니 / Lv. 360]

    레벨 360으로 500레벨대 네임드 보스한테 덤빈다?

    그냥 먹이 되겠다는 거나 다름없지.

    물론 비싼 아이템을 둘둘 두를 수 있으니 한 방에 죽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한 방 안 나면 뭐하나, 두 방 날 텐데.

    난 볼을 긁적였다.

    “방어계열 스킬을 최대한 빨리 익혀서 방어 스탯만 올린다고 해도…….”

    방어 스킬은 하필이면 얻어터지면서 배우는 게 대부분이라, 제대로 배워서 쓸 만하게 키우려면 시간이 꽤 들 터였다.

    이럴 땐 그냥 유네리아 게시판에 헬프치면 되는데…….

    평소엔 웬수 같았던 그 인간들도 지금은 없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어디서 내 반만 하는 놈 안 나타나나?

    눈을 몇 번 깜빡였던 난 눈을 크게 떴다.

    “오.”

    그 방법이 있었지! 내 반응에 뭔가 느꼈는지 네드 님이 날 돌아보았다.

    “방법이 생각나셨습니까?”

    마치 내가 방법을 못 찾을 거라곤 생각지도 않았다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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