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화 (67/112)

<67화>

“미안해요, 으아악!”

트롤 실화냐! 내가 당황해서 소리를 지를 때였다.

“얌전히 숲의 제물이 되어라!”

라이미트의 덩굴로 만들어진 채찍이 내게 날아들었다.

지가 이상X씨야 뭐야!

―쩡!

[네드의 ‘견고한 방어막’ 스킬 효과를 받습니다.]

[-0]

유네리아의 방어막은 만들어지자마자 가장 강한 강도를 지닌다.

요컨대 타이밍에 맞게 방어막을 쳐야 데미지가 잘 감소한다는 소린데.

“0?”

0??

난 순간 멍하니 네드 님을 돌아보았다.

완벽하게 막았잖아!

―깡!

다시 한번 채찍이 날아들었다.

[네드의 ‘견고한 방어막’ 스킬 효과를 받습니다.]

[-3]

3??

이게 사람의 반응 속도란 말인가?

난 믿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견고한 방어막이면 즉시 발동도 불가능한 스킬이잖아?

미리 준비를 해 뒀다는 소린데?

“유니 님?”

그때 눈이 마주친 네드 님이 날 불렀다.

아아아니, 지금 감동받을 때가 아니지!

일단!

“잡을게요!”

난 이왕 꺼낸 김에 레살라토르의 검을 잘 쓰기로 마음먹었다.

때마침 저렇게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데다 비까지 오는 날씨다.

그리고 레살라토르의 검은 치명타가 터지면 벼락까지 내리치는 검이다.

다시 말해, 레살라토르의 검으로 잘하면 저기 떠 있는 놈의 머리를 낙뢰로 쪼갤 수 있다는 소리가 된다.

[네드의 ‘속도 증가’ 스킬 효과를 받습니다.]

내가 뛰어가려고 하자 네드 님의 버프가 날아들었다.

“?”

너무 자연스러워서 공대 서포터랑 공략 온 기분이었다.

게다가 라이미트는 나도 보스몬스터로는 처음 보니까, 정말 맨 처음 던전 뚫렸을 때 아무 공략도 없이 헤딩하는 거나 다름이 없는데.

못 깰 것 같지가 않다! 안 죽을 것 같다!

보스몹이 언제 어떤 타이밍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공략은, 당연히 공대원들의 임기응변에 따라 클리어 난이도가 달라졌다.

그리고 지금 파트너인 네드 님은 거의 만점에 가까웠다.

내가 지금까지 봤던 놈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런 말 들어 본 적 있는가?

[진정한 기믹은 몬스터가 아니다. 파티원이다!]

하지만 그건 네드 님 사전에는 없는 말인 듯했다.

이런 눈물 나는 완벽한 서포트를 받으면서 데미지도 못 박으면 칼 꺾어야지, 응?

난 하늘에 떠 있는 라이미트를 살펴보았다.

“이놈들!”

그때 라이미트가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러더니 채찍을 말아쥐고 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우우웅!

음, 땅에 내려오다니 일단 딜 하라는 소리지?

내가 공격력 버프를 둘둘 감고 놈에게 레살라토르의 검을 들이댔을 때였다.

라이미트가 눈을 번쩍 떴다.

[라이미트 / Lv. ____]

흐릿하게 떠 있던 라이미트의 레벨이 드러났다.

[라이미트 / Lv. 344]

항아리가 되어 버린 어디의 누군가와는 달리 양심 있는 레벨이었다.

이거 네드 님이 한 대 치면 죽을 것 같은데?

난 힘을 잔뜩 실어 때리려던 걸 가볍게 한 대만 때려 보았다.

[라이미트(96%)]

체력은 4% 깎였다.

버프를 꽤 감고 쳤으니까 4% 깎인 게 많이 깎였다고 볼 순 없었다.

문제는 이 정도에 4%가 깎일 정도면 내 능력치, 그니까 네드 님이 치면 한 방 난다는 소린데?

“네드 님, 일단 얘 때리지 말아 보세요!”

하필이면 얘는 메인 퀘스트 보스 몬스터다.

[라이미트 처치 : 0/1]

퀘스트 클리어를 하려면 저놈을 잡은 것으로 처리되어야 한단 말이다.

그러려면 유네리아의 시스템상 내가 저놈을 잡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어야 했다.

날로 먹을 수 있는 게임이라면 그냥 네드 님이 툭 치면 됐을 텐데, 아쉽게도 유네리아는 그게 불가능했다.

유네리아에서 파티원이 함께 경험치를 먹을 수 있는 조건.

일단 파티원의 레벨 차이가 200 이상 나지 않을 것.

[유니 / Lv. 350]

일단 퀘스트로 많이 레벨업한 덕에 200 이상으로 차이 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몬스터를 잡는 데에 충분히 기여할 것.

요컨대 40% 이상 체력을 깎는 데 기여하거나, 막타를 치든지, 아니면 가장 많이 때리든지. 둘 중 하나는 해야 했다.

그냥 쉽게 말해서 반반씩 잡으면 편하다는 소리였다.

“제가 반피 깎으면 잡아 주세요!”

내 외침에 네드 님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이놈의 망겜, 유저가 편한 건 싫어해가지고!

물론 여기서 레벨 차이나 기여도와 상관없이 경험치와 드랍템을 받았다간, 흔히 말해서 ‘공장’이 성행할 게 분명했다.

안 그래도 ‘dsfasfjasg’ 같은 이상한 닉네임의 공장 캐릭터들이 온갖 곳에서 매크로 돌리는 것 때문에 골치 썩는 게임인데, 보스몬스터 드랍템까지 부캐가 먹을 수 있다면?

그럼 공장들이 혼자 7개의 계정을 켜서 8배의 보상을 먹으면서 보스몹을 잡을 것이 뻔했다.

그럼 안 그래도 망한 유네리아의 경제가 더 망할 테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좀 풀어 주면 안 되겠니?

어차피 유저도 우리 둘밖에 없는데?

[파티원간 레벨 차이가 130 이상입니다.]

[‘유니(Lv.350)’님은 라이미트의 HP를 40% 이상 소모시켜야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

어림도 없다는 듯이 알림창이 떴다.

안다고!

알아서 빡친다고!

―콰르릉!

난 쥐고 있던 레살라토르의 검을 다시 휘둘렀다.

내 빡침을 검도 알아 줬는지 치명타가 박혔다.

[라이미트(90%)]

그러자 라이미트의 모습이 눈앞에서 쑤욱 사라졌다.

“숲의 분노를 맛보거라!”

그러면서 하늘 위에 나타났다.

뭐라도 기믹을 설치하려는 게 분명했다.

처음 보는 보스지만 괜찮다!

어차피 사골처럼 우려먹는 유네리아에 나오는 기믹이라고 해 봐야 그게 그거지!

와라!

라고 생각한 순간 내 발아래에 하얀 네모가 떠올랐다.

그리고 네드 님의 발아래에는 까만 네모가 생겼다.

“어?”

설마? 하필 이 기믹이야?

“음과 양의 조화를 맛보거라!”

생긴 건 서구적인 주제에 뜬금없이 왜 음양 조화를 따져!

난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아니, 이거, 네드 님!”

네드 님이 멈칫하는 게 보였다.

그 순간 우리 주변의 땅 위가 뷔페 디저트 코너의 케이크 조각처럼 나뉘었다.

빛나는 흰색 선. 확실했다.

“이거는!”

―쨍!

그때 라이미트의 주변으로 충격파가 전해졌다.

[체력 : 117,216 / 299,242]

칼로 막았는데도 위치가 가까워서 그런가, 데미지가 상당히 들어왔다.

“숲의 조화를 무시하지 마라!”

무시 안 했지만 지 혼자 빡쳐서 외쳐 대는 라이미트에게서 난 빠르게 물러났다.

―파팟!

―파파팟!

그러자 내가 밟은 땅의 사각형들이 모조리 하얀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

네드 님은 그걸 보고 놀란 듯했다.

그렇죠!

많이 놀라셨겠죠!

초 단위로 생사가 갈리는 고레벨 컨텐츠에서도 음양 기믹은 최고로 귀찮은 기믹 중 하나였다.

그야 딜이랑 버프 제대로 들어갔는지 계산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바닥 장판까지 색칠해야 하니 당연했다.

음양의 조화.

파티원이 랜덤으로 까만색과 흰색 기운을 가지면서 맵 전체가 일정 개수의 칸으로 나뉘게 된다.

몇 개인지는 매번 다르지만 짝수 칸인 그 칸들을 음양, 즉 까만색과 하얀색으로 딱 절반씩만 채운 후에야 보스에게 딜을 넣을 수 있는 기믹이다.

만약 절반씩 못 채우거나, 비율이 틀리면?

‘방어력 감소(1)’

X 같은 디버프가 중첩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저게 5번인가 쌓이면 사망한다.

그것뿐이면 모르겠는데 이 음양 조화 기믹이 X 같다는 평을 받는 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한붓그리기로 음양조화 기믹을 치우고 프리딜 10초 가능.]

내가 언젠가 어떤 보스 공략에 썼던 문장이었다.

그때 당시 내 공략글 베스트 댓글은 이거였다.

[BEST!][딜가놈 : 그래서 한붓그리기가 뭔데]

└유니 : 한 번 지나간 곳은 밟지 말고 칸을 다 채우라고

└딜가놈 : 그걸어케함]

그렇다!

유네리아의 많은 유저들이 한붓그리기의 정의도 모르고 있었다.

“이거 반반씩 채워야 돼요!”

하지만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한붓그리기로!”

사실 나라도 못 알아들을 것 같았다.

네드 님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봐온 당신의 브레인을…… 믿어요……!

그때 네드 님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칸을 다 채우면 어떻게 됩니까?”

다 채우면?

“그때 딜 넣을 수 있어요!”

내 말에 네드 님이 중요한 걸 물었다.

“그럼 칸이 다 채워진 상태에서는 밟았던 곳을 밟아도 됩니까?”

일단 저 질문이 온다는 건 한붓그리기가 뭔지 안다는 소리였다.

난 희망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역시 믿고 있었다구!

네드 님의 브레인에 찬사를 보내는 사이 네드 님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총 몇 칸인지 아십니까?”

몇…… 칸이냐고?

그……러게?

반반씩 나눠서 밟으려면 그걸 알아야 하는데?

PC 버전이라면 모를까 지금 상태에서는 보이지도 않았다.

쓸데없이 현실적이라서 나무 때문에 시야가 죄다 막힌 탓이었다.

썩을!

내가 욕지거리를 할 때였다. 네드 님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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