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112)
  • <66화>

    내 말에 세레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빠가 이상해지셨어요.”

    그야 그건 언젠지 뻔했다.

    “숲에 빨간 머리 여자가 들른 후부터죠?”

    내 말에 세레나가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그것을?”

    난 라이미트 앞에서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말해주었다.

    “우리가 걜 항아리로 만들었거든요.”

    “네?”

    세레나는 괴이한 표정을 지었지만 난 더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건 바깥 세계의 어른의 사정이 얽힌 문제란다. 요컨대 제작비 아끼기나 버그망겜같은…….

    “……아무튼 별로 좋은 사이는 아니란 거죠.”

    내 말에 세레나는 그제야 마음을 놓은 듯했다.

    “여튼 그날 이후로 아빠는 이상해졌어요.”

    세레나가 원래 이렇게 설명충 NPC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시나리오가 바뀌어도 대차게 바뀌면서 뭔가 몇 가지 설정이 추가된 듯했다.

    “그니까…….”

    세레나의 긴말을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원래 엘프들은 그렇게 잘 사는 집단이 아니었다.

    그야 당연했다. 그들은 자연이 내어주는 만큼만 먹고 사는 자연 친화적인 종족이었으니까.

    ‘숲에서 내다 팔 것이 없을까?’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별안간 자본주의에 눈을 뜬 라이미트는 숲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세레나는 지금 생각하면 숲을 유지할 마력이 없어서 어떻게든 인간 마법사들의 힘을 빌리고 싶으셨던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하지만 숲에 팔아먹을 만큼 남아나는 물건이 있을 리가 없었다.

    엘프들은 먹고 살 만큼만 구한다는 삶의 철칙을 가지고 있는 만큼, 열심히 뭔가를 재배해서 돈을 번다는 개념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즈음에 찾아온 게 그 빨간 머리 리리스였다.

    그 후 라이미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더 이상 숲에서 내다 팔 것을 찾진 않으셨어요. 대신 주기적으로 엘프들을 숲 중앙으로 들이셨는데…….”

    거길 들어간 엘프들은 두 번 다시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게 괴담으로 퍼질 즈음엔, 아예 길을 지나던 인간 모험가들을 숲 깊숙한 곳으로 들이셨고요.”

    세레나는 그들이 어디로 사라지는지 궁금했다고 했다.

    제가 아끼던 엘프가 불려 들어가고 나선 더욱 그랬다.

    그렇게 몰래 쫓아간 곳에서 세레나는 진실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아까처럼 숲에 사람을 묻어 버리는 라이미트를 봤다 이거죠?”

    내 말에 세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그걸 두고 보기만 할 수는 없었어요.”

    그 후로 세레나는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나무와 교감을 맺었다고 했다.

    그 아래에 아지트를 만들었고.

    “아빠를…… 말리고 싶었는데 아빠는 저도 만나주지 않으셨거든요.”

    세레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가 말했다.

    “이건 옳지 않은 일이니까, 누군가는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대충 사정은 이해가 갔다. 세레나가 고개를 푹 숙였다.

    “울면 안 되는데.”

    세레나가 울음을 애써 참았다. 난 고개를 저었다.

    “울고 싶으면 울어야죠. 울면 안 되는 게 어딨어요?”

    내 말에 세레나의 훌쩍임이 커졌다.

    * * *

    한참을 울던 세레나가 울음을 뚝 그친 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을 때였다.

    그녀가 혼자 만든 건 아닌 게 분명한 이 지하 공간은 꽤 넓은 듯했다.

    복도를 오가는 엘프들의 발소리도 들리는 걸 보면.

    “세레나 님.”

    근데 세레나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건 아는 목소리였다.

    “들어오세요.”

    어느새 울음을 그친 세레나의 말에 문이 열렸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펠릭스?”

    내 목소리에 근엄한 표정으로 들어오던 펠릭스가 눈을 크게 떴다.

    “역시 자네들이었군? 살아있을 줄 알았네!”

    그러면서 별안간 친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

    안도하는 척하지 마! 언젠 걸리면 모른 척한다며!

    내가 인자한 미소를 지어줄 때였다.

    “아무튼, 그래서 저는 모험가님들께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요.”

    울던 것은 언제고, 그녀는 다시 엘프들의 대표가 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라이미트를 따르지 않는 엘프들의 대표.

    “어떤 것을요?”

    내 질문에 네드 님의 시선도 펠릭스의 시선도 그녀에게 향했다.

    그 순간 퀘스트창이 떴다.

    [‘세레나의 선택’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세레나의 선택

    - 세레나의 요구사항 들어주기]

    퀘스트창과 함께 세레나가 말했다.

    “숲의 존속을 위해서, 라이미트를 물리쳐주실 수 있을까요?”

    그야 어차피 잡아야 했으니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숙련된 유네리아 유저는 자고로 부탁만 들어주지 않는 법이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사실 저희는 이 숲에 얻을 게 있어서 왔거든요.”

    “얻을 것이라면…….”

    세레나는 긴장한 얼굴로 나를 살폈다.

    “금전적인 것이라면 조금 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요.”

    “아, 그건 괜찮아요.”

    금전도 뜯어내면 좋겠지만 남부 숲 엘프에게 돈이 어딨겠는가?

    경험치는 당연히 줄 거고……. 난 갑자기 펠릭스가 경험치바를 당겼던 게 떠올라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대신 이 숲 어딘가에 있을 불 속성 크리스탈을 찾는 걸 도와주세요.”

    내 말에 세레나가 눈을 크게 떴다.

    “불 속성 크리스탈이요?”

    “네. 불 정령이 이 숲에 자꾸 얼쩡거리는 이유이기도 할 거고요.”

    라이미트는 자기가 불맛 나는 음료를 마셔서 정령들이 모여드는 줄 아는 모양인데, 그건 반만 맞는 생각이었다.

    불 속성을 띠게 된 그에게 정령들이 모여들기야 하겠지만, 라이미트가 그 정령들을 강하게 만들 수는 없다.

    “아…….”

    내 설명에 세레나는 놀란 얼굴이었다.

    “크리스탈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건 들어 알고 있었어요. 반쯤은 전설인 줄 알았지만…….”

    하긴 그녀도 몰랐을 것이다. 숲 한가운데에 불 속성 크리스탈이 묻혀 있을 줄은.

    천리안으로 뒤져봐도 고기 먹는 엘프들밖에 안 나왔으니 정답은 하늘에 있거나 땅에 묻혀 있다는 건데, 십중팔구 이 경우 땅이다. 하늘이면 보였겠지, 뭐.

    그리고 엘프들 허락 없이 냅다 땅을 파볼 수는 없으니 답은 거래뿐이었다.

    “어때요?”

    내 말을 들은 세레나의 고민은 아주 잠깐이었다.

    “좋아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미트를 물리치고 제가 숲의 수장이 된다면, 제 능력이 닿는 한 불 속성 크리스탈을 찾는 것을 돕겠어요.”

    거래 성립이었다.

    * * *

    나와 네드 님은 세레나의 안내를 따라 얕은 숲 쪽으로 난 비밀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왔다.

    ―쏴아아……

    마침 바깥은 비가 오고 있었다.

    “그럼, 힘내주세요!”

    세레나는 응원하고는 비밀 통로의 모습을 다시 감춰 버렸다.

    [세레나의 선택

    - 세레나의 요구 들어주기(진행중)

    - 라이미트 처치(NEW!)]

    그러자 퀘스트 내용이 갱신되었다.

    [세레나의 선택 : 숲의 보호]

    근데 없던 퀘스트도 떴다.

    “?”

    [세레나의 선택 : 숲의 보호

    - 숲 훼손하지 않고 라이미트 보스전 클리어]

    [현재 숲 보존도 : 99%(70% 이하로 내려가면 퀘스트가 실패합니다.)]

    [퀘스트 실패시 ‘세레나의 원망’ 디버프를 받습니다.]

    사기 계약 당한 거야, 나?

    세레나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아니, 숲을 박살 내지 않고 잡으라고?”

    게다가 70%? 너무 깐깐한 거 아니냐? 네드 님이 스킬 제대로 박으면 숲 절반은 날아갈걸?

    “……조심해야겠군요.”

    네드 님은 곤란한 얼굴로 숲을 돌아보았다.

    난 네드 님처럼 생불이 아니었으므로 빡친 얼굴로 우리가 나왔던 비밀 통로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빨리 꽁지를 빼더라니!

    “음…….”

    네드 님은 그사이 고민에 빠진 듯했다.

    하긴, 지금 세레나 욕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거리가 있어서 라이미트와 교감한 나무들도 우리를 잘 보지 못하겠지만, 빠르게 판단을 내려야 했다.

    저 나무들이 우리를 발견하기 전에, 싸우기 유리한 위치를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숲에서 싸우는 것보단 숲 밖에서 싸우는 게 유리할 것 같습니다.”

    네드 님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그렇긴 한데, 저놈이 숲에서 나오려고 하진 않을 것 같거든요?”

    숲에 교감할 나무가 한바닥인데 뭐하러 사막까지 기어 나와서 싸우겠는가?

    그럼 방법은 하나였다.

    “최대한 버프 바르고 들어가서, 나무 하나에 불을 붙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나무에 불을 붙이면 라이미트가 바로 나타날 겁니다.”

    나무들과 교감하고 있는 그이니 나무가 불탈 위기에 처하면 바로 나타날 것이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자기 집 앞마당이라고 방심하는 놈한테 풀버프 오프닝을 꽂는 거죠.”

    오프닝. 온갖 버프를 떡칠해서 공격하는, 가장 데미지가 많이 나는 순간을 말한다.

    최대한 숲의 피해를 줄이려면 어쩔 수 없었다.

    이거만 잡으면 세레나 고것의 멱살을 짤짤 잡고 흔들 것이다!

    차마 겉옷 수선 장인을 때려잡을 순 없으니 분노를 삭여야 했다.

    살인 한 번이면 참을 인이 세 번이라고 했다.

    얼른 라이미트 잡고 진정하자!

    “좋아요, 그럼 버프부터.”

    세레나 그걸 콱!

    [레살라토르의 검]

    내가 검을 꺼낸 순간이었다.

    난 꺼내자마자 내 판단 실수를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파지지지지지직!

    내가 공격 의사를 드러낸 채로 토르의 검을 휘두르면 당연히 토르의 검의 전기 효과가 발동된다.

    그리고 하필 바깥은 촉촉하게 비가 오고 있었다.

    ―파타타타탓!

    날카롭게 튄 전기가 근처의 나무를 건드렸다.

    [치명타!]

    그리고 지금 떠서는 곤란한 알림과 함께, 토르의 검 효과로 나무 위에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파사삭! 화륵!

    잠깐, 이렇게 나무에 불붙으면? 나무랑 교감하고 있는 놈이?

    “여기 있었구나, 이놈들!”

    아니나 다를까 벼락같이 라이미트가 튀어나왔다.

    내 얼굴이 새하얘졌다.

    트트트롤짓했잖아! 으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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