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화 (63/112)
  • <63화>

    “허어, 이게 무슨 일인가.”

    라이미트가 그렇게 뇌까리더니, 하늘로 손을 뻗었다.

    엘프들의 수장이자 남부 마탑의 주인이기도 하다는 설정이 있을 텐데, 그는 전혀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우웅!

    라이미트의 손에서 빛이 번쩍였다.

    “흐으음!”

    그리고 그가 기합을 주는 순간, 하늘에 금 간 부분으로 엘프의 마력이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와장창!

    그 틈을 파고든 마력은 완전히 하늘의 결계를 박살 냈다.

    그러자 하늘이 갈라지며 깨진 유리 조각이 쏟아져 내리듯이 결계의 조각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드러난 건 우리가 봤던 흐린 하늘이었다.

    “……!”

    라이미트는 눈을 크게 떴다.

    그제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숲 이곳저곳이 불타면서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는 모습이.

    “이게 대체…….”

    라이미트는 정말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듯했다.

    아니 고기 맛이 아무리 좋기로서니 식도락에 취해서 숲이 불타는 것도 모르는 게 말이 돼?

    “내 주변에 결계가 쳐져 있었을 줄이야.”

    라이미트는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아니, 댁은 마탑주라면서 결계가 쳐진 줄도 모르고 거기서 고기 구워 먹었어?

    여러모로 오늘따라 이상해 보인다고 생각할 때였다.

    [‘기이한 마력’에 노출된 엘프들이 파티를 적으로 인식합니다!]

    [돌발 퀘스트 ‘수호’를 입수했습니다.]

    [엘프들의 수장 ‘라이미트’를 지키세요!]

    돌발 퀘스트가 떴다.

    “어?”

    뭐야, 설마 잡아야 돼?

    [살아있는 엘프들을 죽일 경우 엘프의 저주를 받습니다!]

    아니 뭐 어쩌라고! 오는 엘프 잡으라며!

    슬금슬금 주변의 인기척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필 우리가 있는 곳은 공터였고, 엘프들은 숲속에 숨어서 손만 내민 채 활을 겨누고 있었다.

    위치도 제대로 잡기 힘든 상황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숲 다 때려 부수면 된다.

    문제는 그러면 엘프도 죽고 엘프의 저주도 받고 보너스로 겉옷 수리도 영영 못 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스릉!

    그때 네드 님이 검을 꺼냈다. 난 기겁했다.

    “자자잠깐만요!”

    지금 엘프 죽이면 우리 사회적 위치도 죽는 거야! 내가 그를 말리려는 때였다.

    “살아있는 엘프들만 해당된다면 저들은 잡아도 될 것 같습니다.”

    “?”

    뭔 소리야? 난 숲속을 돌아보았다. 활을 겨눈 손이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오.”

    난 움찔했다. 무슨 좀비 영화 보는 줄 알았다.

    창백하다 못해 새파랗게 얼굴이 질린 엘프들은 누가 봐도 살아 있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되살아난 엘프 / Lv. 226]

    아니, 켄에 이어서 이번엔 엘프까지 되살아나?

    이렇게 되면 확실한 건 리리스가 여기에 들른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잡죠!”

    어쨌든 살아있는 엘프가 아니라 되살아난 엘프면 이쪽에는 호재였다.

    난 검을 들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 * *

    유네리아는 컨트롤을 심하게 타는 게임이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같은 능력치에 같은 스킬, 같은 아이템을 들고도 누군 보스에게 털리고 누군 보스를 뭉개놓고 나온다는 뜻이다.

    사냥 속도도 당연히 차이 날 수밖에 없었다.

    경험치 쌓는 속도는 랭커들에게 가장 민감한 부분이었으니 상위 랭커로 갈수록 컨트롤을 따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컨트롤이 좋은 사람은 접속하자마자 귓속말을 우수수 받곤 했다.

    [오늘 500층 같이 가실래요?]

    공대와는 다르게 사냥은 같이 하는 게 훨씬 빠르기 때문에, 난 그런 귓속말이 오면 대충 닉네임을 보고 골라 가는 편이었다.

    어차피 다 아는 얼굴들인데 닉네임만 보면 사냥 스타일 딱 나오니까~ 느낌 아니까~

    그리고 나는 사냥할 때 파트너로 딜 잘하는 사람만 꼽았다.

    어떤 사람은 몹몰이를 잘하고 어떤 사람은 온갖 스킬을 다채롭게 써서 재밌게 사냥을 했지만, 난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몹 빨리 잡는 놈하고만 같이 사냥했다.

    힐? 어차피 나한테 힐이 없는 것도 아니고, 주력 스킬 보너스로 힐량이 적어도 상관없었다.

    장비를 종결 수준으로 세팅해놔서 별로 닳지도 않았으니까.

    물론 나처럼 딜링기에 스킬이 몰빵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해독 스킬이나 보조 스킬의 숙련도가 낮았다.

    때문에 던전에서 독이라도 걸렸다간 좀 귀찮아지기 마련.

    그래도 괜찮다.

    안 맞으면 되니까!

    힐러 없이 사냥 다니는 나는 덕분에 유네리아 유저들이 ‘S자 무빙’이라고 부르는 것에 능숙했다.

    그건 내가 있던 자리에 공격이 오는 순간, 그 자리를 피해 몬스터들이 다시 공격하기 전에 몬스터들을 잡는 것이었다.

    ―퓽! 퓨슝!

    문제는 내가 PC버전 유네리아에서만 했지, 실제로 그걸 해본 적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았다.

    몬스터가 화살을 쏘는 순간!

    “!”

    난 재빨리 몸을 틀어 옆으로 피하고, 몬스터들에게 빠르게 접근했다.

    ―써걱!

    검에 나무와 함께 되살아난 엘프들이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바닥에 닿아 완전히 쓰러지는 걸 볼 틈은 없었다.

    ―팟!

    내가 있던 자리에 다시 화살이 꽂혔다.

    난 다시 빠르게 움직여 다른 방향의 되살아난 엘프들을 덮쳤다.

    “!”

    놀란 엘프들이 괴성 비슷한 비명을 질렀지만 내 검은 이미 그들을 가른 후였다.

    이대로만 잡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콰르릉!

    네드 님은 전기 속성 마법으로 엘프들을 지지고 있었다.

    라이미트를 등진 채였다.

    그리고 라이미트와 네드 님을 감싼 방어막이 화살을 막아내고 있었다.

    나도 저 뒤에 들어간 채로 꿀을 빨면 좋았겠지만, 유네리아는 유저들이 날로 먹는 것만큼은 목숨 걸고 막는 게임이었다.

    [‘수호’ 미션 기여도(%)

    네드(71%)

    유니(29%)]

    [미션 기여도가 20% 이상 차이나면 실패합니다.]

    그래, 이딴 조건을 붙여 가면서!

    “아니, 라이미트만 지키면 됐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거 아니냐?

    욕을 부어 봐야 기여도만 차이 날 뿐이었다.

    “네드 님, 나머지는 제가 잡을게요!”

    ―콰르릉!

    내 말에 번개 한 번을 마지막으로 네드 님이 방어막 구축에 집중했다.

    그사이 난 엘프들 사이를 다시 파고들었다.

    문제가 있다면.

    [되살아난 엘프(Lv.226)가 ‘유도 화살’을 조준합니다.]

    S자 무빙으론 간혹 못 막는 스킬이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런 거에 맞아 죽었으면 내가 혼자 공략을 다닐 수 있었을까요?

    “비상식량!”

    용이 튀어나올 땐 1초간 무적 상태다.

    그걸 이용해 공격을 막고 재빨리 액세서리화시키는 방법으로 화살을 막으면 그만이었다.

    난 나도 모르게 외쳤다가 멈칫했다.

    잠깐, 지금 난 비상식량 주인이 아닌데?

    당연히 비상식량이 내 주머니에서 나오는 일은 없었다.

    X 됐다!

    ……한 방은 안 나겠지?

    내가 최대한 몸을 틀어 유도 화살의 치명타만은 피해 보려는 때였다.

    [네드의 ‘견고한 방어막’ 효과를 받습니다.]

    견방? 이건 미리 차지해놔야 하는 스킬인데?

    네드 님을 돌아보니 네드 님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내가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미리 올려놓은 거야?

    전율에 뒷골이 당겨왔다.

    이런 인재, 진짜 놓칠 수 없어요……!

    [‘수호’ 미션 기여도%

    - 네드 65%

    - 유니 35%]

    ―퓽!

    그 사이 화살이 다시 날아왔다. 난 몸을 간신히 틀어 피했다.

    지금 감동할 때가 아니야!

    “고마워요!”

    그니까꼭나랑나중에공대!

    난 뒷말을 삼키면서 검을 휘둘렀다.

    ―챙!

    근데 힘이 덜 들어가서인지, 엘프가 화살의 금속 부분으로 내 검을 막아냈다.

    “어쭈.”

    제법 단단한 장비를 가졌구나?

    그렇다면 이쪽도 방법이 있었다.

    [레살라토르의 검]

    난 인벤토리에 검을 던져넣고 토르의 검을 들었다.

    어차피 라이미트도 네드 님의 몇 겹의 방어막에 들어가 있으니 팀킬할 염려도 없다.

    “하압!”

    ―쌔액!

    난 눈앞의 엘프에게 토르의 검을 휘둘렀다.

    “!”

    엘프는 아까처럼 활을 들어 검을 막으려고 했지만, 이번엔 막히지 않았다.

    ―파지직!

    그야 전기가 통하는데 막아서 뭐 하겠습니까?

    내가 씩 웃은 순간이었다.

    ―파지지지지직!

    분명 내가 지진 건 하나인데 엘프들이 단체로 데미지를 받기 시작했다.

    “어?”

    얘네가 단체로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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