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112)
  • <61화>

    [Level Up!]

    한 번으론 모자랐는지 몇 번을 더 천장을 쳤다.

    [Level Up!]

    [Level Up!]

    [Level Up!]

    “이거면 됐나?”

    펠릭스가 물었다.

    이런 연출도 있었어???

    유네리아 10년 하면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물론 레벨업은 뭐든 옳다.

    난 좀 당황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이럴 정신에 리리스가 항아리로 바뀌는 버그나 고치면 좋을 것 같지만, 지금은 클리어가 먼저였다.

    “가요.”

    그렇게 네드 님과 나는 숲으로 진입했다.

    [‘엘프들의 숲 : 깊은 곳’으로 진입합니다.]

    숲 가운데로 들어가는 길은 험했다.

    일단 사람들이 잘 오가지를 않으니 숲길도 끊어질 듯 말 듯 난 데다가, 군데군데 싸우는 불 정령과 물 정령을 피해 가는 것도 일이었다.

    [불 정령 / Lv. 123]

    잡는 거야 쉬웠지만 쟤들이 튀어서 다른 곳에 알리기라도 했다간, 우리가 몰래(?) 들어온 것을 들킬 테니 어쩔 수 없었다.

    [네드 : ‘위험 감지 결계’ 유지 중]

    파티 버프창에는 네드 님의 결계가 떠 있었다.

    주변에 생명체가 있으면 알려주는 스킬이다.

    저걸로 몬스터 잡기 귀찮을 때 요긴하게 몬스터 피해 갔었지.

    “……근데 설마 스킬 다 외우신 거예요?”

    원래 주로 쓰는 스킬 말고는 알지도 못하는 게 대부분인데.

    내 말에 네드 님은 가볍게 답했다.

    “스킬 설명은 모두 읽어보았습니다.”

    “네? 970개를요?”

    내 말에 네드 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의 캐릭터를 빌리게 되었으니, 폐는 끼치지 않아야 할 것 같아서요.”

    “…….”

    난 네드 님의 스킬창을 뒤늦게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습득 스킬이 50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도 대부분 싸우면서 자동으로 생기는 ‘가로막기’ ‘집어던지기’ 같은 스킬이 대부분이었다.

    나도 스킬 다 배워둘 걸 그랬나?

    하지만 유네리아의 주요 컨텐츠 중 하나가 스킬을 얻는 것이었다.

    그걸 다 해주면 뉴비는 무슨 재미로 게임을 하란 말인가?

    물론 스킬 얻을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아무튼 내가 다 뚫어놓는 건 좀…….

    결국 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제가 스킬 습득 가이드 해 드릴게요.”

    엄지척! 내가 손을 들어 보였다.

    시기에 맞춰 특수 퀘스트로 얻어야 하는 일부 스킬을 제하더라도, 800개가 넘는 스킬을 모조리 배우는 건 대장정이었다.

    그리고 그걸 도와주는 사람을 ‘스킬 습득 가이드’라고 불렀다.

    밥은 컴퓨터 앞에서 먹고 게임만 한다고 해도 끝내는 데에만 나흘은 걸리는 지옥의 코스다.

    심지어 시급(?)도 비쌌다. 퀘스트에선 온갖 조건을 다 요구했기 때문에.

    하지만 네드 님이라면 특수 퀘스트까지 다 깨드릴 수 있습니다.

    왜냐고?

    같이 공대 뛸 거니까. 인재는 프리미엄 풀코스로 모십니다.

    내가 눈을 반짝였다.

    “어때요? 같이 공대 뛰어주시는데 제가 스킬 사용법까지 다 가르쳐 드릴게요.”

    내 말에 네드 님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공대가 정확히…….”

    “그냥 보스몹 잡는 거예요. 같이.”

    아무튼 맞다니까? 너무 처음부터 하드 컨텐츠라는 걸 알려주면 뉴비를 낚을 수 없었다.

    네드 님은 내 말에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내가 뭘 숨기는 걸 알아차리신 듯했다.

    아니, 근데 거짓말은 안 했거든요?

    난 결국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제가 스킬 가이드 해 드리는 대신, 저랑 공대 뛰는 걸로.”

    “그건 전에 약속드렸었지 않습니까.”

    네드 님이 옅게 웃었다. NoNoNo. 하지만 난 손을 내저었다.

    “각서 씁시다, 우리.”

    내 말에 네드 님이 멈칫했다.

    뭔가 구렁텅이에 빠지는 느낌이 든다면 기분 탓입니다.

    아무튼 기분 탓이라니까?

    “……각서를요?”

    그리고 네드 님은 아니나 다를까 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수상한 사람으로 의심받고 있잖아!

    수상한 건 아니고 그냥 공대원에 목마른 사람일 뿐입니다!

    “네. 여기 나가면 공대 꼬오옥 같이 가는 걸로. 모른 척하지 않는 걸로.”

    사실 이렇게 들이대면 이상하게 보일 거란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전부터 자제하고 싶었지만 공대의 ㄱ자도 모르는 이 뉴비를 옭아매려면(?) 각서라는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물건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뭔 게임 공대에 각서까지 쓰냐 싶었지만 이걸로 붙잡을 수만 있다면……!

    지금 이 순간 각서를 받아놔야 내 미래의 공대 파트너를 안 놓칠 수 있다!

    내 진지한 표정과 네드 님의 눈썹을 살짝 치켜올린 표정이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파바박!

    갑자기 우리 앞에 화살 서너 개가 내리꽂혔다.

    “!”

    놀란 내가 걸음을 멈춰 섰다.

    네드 님을 돌아보니 네드 님도 놀란 표정이었다.

    위험 감지 결계가 있어서 화살 쏠 만한 놈들이 있었으면 네드 님이 알아챘을 텐데?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풀숲에서 엘프 수십 명이 고개를 내밀 때까지도, 네드 님 앞에 어렴풋이 떠 있는 알림창은 조용하기만 했다.

    “멈춰라.”

    당황한 가운데 엘프들 중 하나가 풀숲에서 걸어 나왔다.

    “이 이상 접근하지 마라!”

    “신원을 밝혀라!”

    엘프들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쏟아졌다.

    아니, 위험 감지 결계에 진짜 안 걸렸단 말이야?

    저건 NPC도 잡는 스킬인데?

    네드 님을 돌아보니 살짝 고개를 젓고 있었다.

    “감지 결계에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오.”

    그럼 아예 이 이벤트를 만들 때부터 우리가 반드시 걸리게 해 놨다는 뜻인데?

    이게 그렇게 중요한 이벤트라고?

    난 눈썹을 치켜올렸다.

    어쨌든 걸린 건 걸린 거니까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난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희는 모험가입니다. 수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수장님 보러 왔다고 하면 수상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숲 한가운데에서 길 가던 사람이라고 할 순 없잖아?

    아니나 다를까 우리 앞으로 나온 엘프가 눈살을 찌푸렸다.

    “모험가?”

    왜 이런 숲에 왔느냐고 하겠지?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수장님과 약속하신 분들입니까?”

    엘프가 공손해졌다!

    난 순간 멈칫했다.

    [① 아닌데요.

    ② 맞습니다.]

    선택지가 떴다. 이건 중요한 선택지다!

    난 선택지창을 노려보았다.

    그 너머로 보이는 엘프들이 활에 다시 화살을 재는 걸 보니, 여기서 아니라고 했다간 화살 꼬치가 될 것이 분명했다.

    네드 님에게 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맞습니다.”

    그리고 2번을 선택했다. 네드 님도 내 사인을 알아들으셨는지 같은 답을 했다.

    “맞습니다.”

    역시 이렇게 찰떡처럼 알아들으시는 걸 보면 역시 같이 공대를 뛸 운명이 아닐까요?

    설레는 이 마음을 누르지 못하는 사이, 엘프가 말했다.

    “그렇다면 주기로 한 물건은?”

    한층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경계하는 목소리였다.

    주기로 한 물건……?

    “생긴 게 다른데?”

    그 사이에 엘프들은 서로 떠들면서 나와 네드 님의 얼굴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모험가들이야 이름과 모습이 워낙 많이 바뀌니…….”

    닉변권과 외형변경권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아무튼 엘프들은 생긴 걸로 우리를 판단하진 않는 듯했다. 편견 없는 엘프들이라서 다행이었지만 문제가 있었다.

    [엘프들에게 주기로 한 아이템을 건네십시오.]

    그래서 주기로 한 아이템이 뭔데?

    ―촤륵!

    내 앞에 인벤토리가 떴다.

    난 인벤토리를 넘기면서 빠르게 ‘넘길 수 있는 아이템’과 ‘넘길 수 없는 아이템’ 종류를 확인했다.

    일단 넘길 수 없는 건 장비와 돈, 포션, 금속제와 나무로 만든 물건들.

    반면 넘길 수 있는 건…….

    [카린 풀]

    [예누스 고기]

    [예누스 정제육]

    [쑥 케이크]

    쑥 케이크는 왜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음식 종류는 다 되는 듯했다.

    먹을 걸 달라는 소리 같은데.

    “음.”

    난 엘프들을 살폈다.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달라는 물건이 일반적인 물건은 아닌 것 같았다.

    ‘타락한 일부 엘프들이…….’

    그리고 펠릭스의 말.

    고기를 먹은 엘프들은 생각보다 많았고, 무엇보다 난 천리안으로 고기를 봤다.

    그것도 무려 세레나가 고기를 들고 있는 걸 봤지.

    문제는 일반적으로, 엘프들의 동네에서 고기를 내밀었다간 화살 꼬치가 되어 쫓겨난다는 점이었다.

    잘못 선택했다가 엘프들의 숲에 들어오지도 못하는 사람이 된다는 소리였다.

    “원래 엘프들한테 고기 주면 쫓겨나거든요?”

    난 네드 님에게 작게 설명해 주었다.

    “예.”

    “근데 지금은 줘봐야 할 타이밍인 것 같아요.”

    혹시 알아? 아까 그 타락한(?) 엘프 동료가 얘네들일지?

    “일단 제가 고기를 줘 볼게요. 만약에 반응이 영 아니다 싶으면, 음.”

    난 볼을 긁적였다.

    “절 미친놈 보듯 보시고 풀떼기창에 있는 거 아무거나 저놈들한테 주시면 돼요.”

    어쨌든 둘 중 하나는 의심을 피해야 했으니까.

    내 말에 네드 님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차라리 제가 고기를 주겠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적극적으로 나오시기 시작했다.

    “네?”

    “저는 화살을 맞아도 괜찮으니까요.”

    네드 님은 진지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난 손을 내저었다. 그거야 맞는 말이었지만 뉴비한테 이런 험한 루트를 체험하게 한다고?

    “전 화살 피할 수 있어서 괜찮아요.”

    고인물의 무빙을 하부로 보지 마라!

    하지만 네드 님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같이 하죠.”

    뭘 같이 해? 고기 도박이요? 난 손을 내저었다.

    “그럼 만약에 잘못되면 우리 둘 다 원시인 되는 거예요. 겉옷 수리 불가능!”

    “괜찮습니다.”

    아니 이 사람이 뉴비라 그런가 겉옷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네!

    깡통을 안 입어 보셔서 그래!

    “그게―”

    내가 네드 님을 설득하려는 때였다.

    [시간 초과!]

    알림창이 떴다.

    아니, 시간초가 어디 있었는데!

    라고 따질 것을 알기라도 했다는 듯이, 인벤토리 오른쪽 아래에 아주 작은 글씨로 새빨갛게 글자가 빛나는 게 보였다.

    [00:00!]

    무슨 CF 말미에 지나가는 보험약관처럼 그렇게 조그만 글씨로 써놓고 지금 시간제한 있었다고 주장하는 거?

    내가 얼굴을 구길 틈도 없이 우리에게 화살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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