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천리안 스킬.
온갖 것을 다 볼 수 있지만 퀘스트 관련 아이템이나 상황은 볼 수 없다는 게 특징인 스킬이었다.
물론 비정상적으로 높은 레벨의 히든 보스가 나타난 지역에, 레벨이 낮은 유저가 천리안을 쓰면 나처럼 해제되는 경우도 있긴 했다.
하지만 레벨 500인 네드 님한테 저렇게 알림이 뜬다는 건?
“제가 그랬잖아요. 퀘스트 아이템 있는 곳은 못 본다고.”
내 말에 네드 님이 눈을 크게 떴다. 난 그에게 찡긋해 주었다.
“그 말인즉슨 천리안이 안 써지는 지역에 퀘스트 아이템이 있다는 소리죠.”
천리안으로 퀘스트를 쉽게 깨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만든 제약이라고 하는데, 멍청하게도 그건 반대로 퀘스트 아이템을 찾기 쉽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하여간 유네리아 옆데이트 끝내주는 건 알아줘야 해요.
“확실히 그렇겠군요.”
네드 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조금 눈을 크게 뜬 채였다.
“근데 우리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아요.”
난 그런 그에게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숲이 많이 타서요?”
네드 님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건데, 방금 천리안에서 중요한 엘프를 봤어요.”
하늘색 머리 엘프. 반짝이는 금안. 손에 들린 고기…… 아아니, 고기는 잘못 본 것 같아!
어쨌든 풍류(?)를 즐기는 그 엘프는 바로 겉옷 수리 장인 ‘세레나’였다.
“빨리 안 가면 우리의 사회적 이미지가 위험해질 것 같거든요?”
내 말에 네드 님이 멈칫했다.
“엘프들의 상태가 심각합니까?”
“매우요.”
매우 많이. 난 속으로 외쳤다.
죽지 마, 세레나―!!
이러다 숲 다 타겠어!
“엘데, 빨리빨리!”
난 엘데의 등을 두드렸다.
―이보다 더 빠르게 날라고?
엘데의 불퉁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이런 엘데에게 불을 붙이는 방법.
“설마 불가능해?”
너…… 그런 용이었니?
내가 짠한 눈으로 쳐다보자 엘데가 날다 말고 고개를 뒤로 돌려 날 쳐다보았다.
“어어 안전 운전!”
내가 앞 보라는 뜻으로 앞을 가리키자 엘데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목이 날아가도 난 모른다.
저건 또 뭔 소리야?
“목이 왜 날앏.”
내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을 때였다.
―쓔우우웅!
몸이 확 뒤로 젖혀졌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날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본 네드 님은,
“?”
내 시야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유니 님?”
그의 목소리가 멀어져 갔다. 그리고 내 시야는 허공에 멈춰 있었다.
“뭐냐?”
나 설마 너무 빠른 나머지 허공에 버려진 거?
멍청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니 몸이 없었다.
그리고 앞을 보니 네드 님 앞에 머리 로딩이 덜된 내 캐릭터가 보였다.
설마 지금 저쪽으로 머리 로딩되고 있는 거?
“아오, 이놈의 망겜을―”
―후욱!
다음 순간 로딩이 다 됐는지 네드 님의 얼굴이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왔다.
네드 님은 얼굴이 하얘진 채였다.
“숲이라서 렉이 좀 심했나 봐요.”
내가 말하자 네드 님이 이마를 짚었다.
[‘남부 : 엘프들의 숲’에 진입합니다.]
[불 속성 크리스탈 영역에 진입합니다.]
[보유한 ‘저항의 정령석’ 효과로 불 속성 크리스탈의 ‘무더위’ 디버프 효과를 받지 않습니다.]
그런 우리의 시야에 시스템창이 둥실둥실 떠올랐다.
[메인 퀘스트 ‘남부 : 마법의 숲’을 입수했습니다.]
* * *
목이 몇 번 더 날아가고 네드 님이 몇 번의 소생 스킬을 더 시도한 끝에, 우린 간신히 남부 사막에 내려설 수 있었다.
숲 근처에 엘데가 착지했다간 나무가 죄다 부러져 나갈 것이 분명했으므로, 사막에 착지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디버프 ‘모래 폭풍’ 상태에 빠집니다!]
[체력이 초당 100씩 떨어집니다.]
모래 폭풍은 불 속성 크리스탈 디버프가 아니라서 저항의 정령석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듯했다.
“이건 숲 근처로 가면 나아지니까 얼른 가죠.”
난 입을 열자마자 후회했다.
입 안으로 모래가 한 바가지 들어온 느낌이었다.
“읍.”
내가 얼굴을 구길 때였다. 네드 님이 손을 펼쳤다.
[네드의 ‘정교한 보호막’ 효과를 받습니다.]
[디버프 ‘모래 폭풍’이 해제되었습니다.]
“어?”
스킬로 막히는 거였어? 난 눈을 크게 뜨고 보호막을 살폈다.
정교한 보호막은 그냥 방어력 좋은 보호막일 뿐인데?
반투명한 연두색의 이 보호막을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아니, 잠깐만.
난 반투명한 연두색의 촘촘한 그물 사이로 푸른 이펙트가 반짝이는 걸 보았다.
저건 뭐야?
“역풍 스킬과 함께 써 봤습니다.”
네드 님이 말했다.
역풍?? 그 게시판에서 싸움박질 날 때 짤로나 쓰이는 개그 스킬이 여기서?
앞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50%의 힘으로 받아치는 게 스킬 효과인 역풍은 말 그대로 쓸모가 없는 스킬이었다.
누가 바람을 정면에서 맞으면서 역풍을 쓴단 말인가?
데미지 감소 효과가 확실한 방어 스킬을 두고?
게다가 역풍은 바람을 튕겨낸다는 설명이 붙은 것이 무색하게 바람 속성공격에 대한 데미지 감소 효과는 없었다.
말 그대로 쓰레기……였는데?
“오…….”
난 감탄하는 얼굴로 네드 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혹시 천재세요?”
내 말에 네드 님이 난감한 듯 웃었다.
“어릴 때 킹쓰빅 좀 하셨나 보다.”
창의력 하면 킹쓰빅 아니겠습니까?
“나도 킹쓰빅할 걸 그랬나?”
그럼 이렇게 딜사이클 외우고 다니는 주입식 게이머가 아니지 않았을까요?
내 말에 네드 님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길로 스스로를 훈련해오셨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입니다.”
이 사람은 뭔 말을 이렇게 이쁘게 하지?
병원에서 진상 보고, 선임간호사 진상 짓 보고, 게임 와서 파개한다 같은 진상놈들만 보다가 이런 사람 보니까 눈이 돌아가려고 했다.
‘유네리아 클베유저 앞에서 꼴값떠네ㅋㅋ’
‘아는척하지말고 본인 딜이나 잘하세요’
라고 말하면서 딜은 내 반도 안 나오는 공대 빌런들만 보다가 이런 사람 보니까 눈이 부셨다.
“여기 나가면 저한테 일주일에 한 번만 시간 내주실래요?”
“예?”
나도 모르게 공대원을 향한 욕심을 드러낸 난 내 입을 찰싹 때렸다.
“아아아무튼 퀘스트 하러 갈까요?”
미미미쳤나봐! 게임도 오래 안 한 일반인한테 뜬금없이!
난 빠르게 눈앞의 NPC를 향해 다가갔다.
“허어…… 숲을 살려야만 하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유네리아 NPC 종특인 ‘도와줘요 눈빛’을 발사하는 NPC에게.
오늘따라 저 눈빛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NPC에게 다가가자, NPC는 다짜고짜 내 어깨를 붙잡았다.
“모험가! 나를 좀 도와주게!”
다짜고짜 도와달라는 NPC들은 한 대씩 때려 주고 싶었지만, 상대가 남쪽 숲 엘프 NPC라면 마음이 사르르 녹는 법이다.
왜냐고?
그야 내 사회적 지위와 겉옷이 얘네 손에 달려 있어서…… 요컨대 우리는 상부상조하는(?) 사이였다.
“무슨 일인데요?”
내가 묻자 엘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난 엘프 장로 펠릭스라고 하네.”
그러고는 NPC답게 뜬금없이 자기소개를 했다.
[메인 퀘스트 ‘대륙 남부 : 마법의 숲’을 입수했습니다.]
자연스럽게 퀘스트 쪽지를 퀘스트창에 욱여 넣어준 펠릭스가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 글쎄…….”
퀘스트창에 종이 쑤셔 넣으면 퀘스트 되는 거였어?
놀라운 연출에 벙찐 사이 그의 말이 이어졌다.
“이 남쪽 숲에는 원래 정령이 많다는 걸 아는가?”
그야 알고 있었다.
모험가들이 중간에 정령석을 얻어 속성 공격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이 남쪽 숲 근처에서였으니까.
특이한 건 엘프들과 정령은 계약이 불가능하고 인간들만이 정령과 계약이 가능하다는 것?
왜인지는 나도 모르고 당시 디렉터였던 용진이도 모르고 에이리 님도 모르고 오직 시나리오 라이터만 알 터였다.
근데 존재는 하는 거겠지? 응?
아무튼 정령과 계약은 안 되고 친구인 덕에 힘을 빌릴 수 있는 엘프들은 이 남쪽 숲을 조성하는 데에 물 정령과 바람 정령의 도움을 받았다.
거기까진 괜찮았는데.
엘프들이 불 속성 정령과는 사이가 틀어졌다는 게 문제였다.
‘불 정령들은 숲을 해치기만 해!’
그게 엘프들의 주장이었다.
너희들은 고기도 안 먹냐고 따지기에는 정말 고기도 안 먹는 애들이라서 따질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 불 속성 정령들이 요즘 이 숲을 앞마당처럼 드나들고 있다네!”
설명하던 장로 펠릭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외쳤다.
“그들을 좀 어떻게 해 주게!”
[대륙 남부 : 마법의 숲
- 엘프들의 사정 들어보기(완료)]
“불 정령을 남쪽 숲에서 쫓아내 달라는 건가요?”
내 말에 펠릭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원래도 불 정령들 중 극히 일부는 우리 엘프와 교류를 했지. 아무리 우리가 불을 싫어한다고 해도 생활에 아예 불이 없어서는 곤란하니까.”
그야 그렇겠지. 물건 소독이나 장비 만드는 것도 그렇고.
“문제는 불 정령들이 지나치게 많아졌다는 것이네. 그들의 수를 좀 줄여 주게!”
그러면서 펠릭스는 간곡하게 우리의 손을 붙잡았다.
문제는.
[대륙 남부 : 마법의 숲
- 엘프들의 사정 들어보기(완료)
- 엘프 도울 방법 찾기(NEW!)]
이 상태에서 퀘스트창이 안 바뀐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뭐 불 정령 수를 얼마나 줄여 달라고? 내가 눈썹을 치켜올릴 때였다.
“흐흠. 부탁하네!”
그러더니 펠릭스는 말 걸기 전처럼 딴 곳을 보며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퀘스트 힌트를 더는 안 준다는 소리였다.
이놈 봐라?
난 눈썹을 치켜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