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화 (51/112)
  • <51화>

    그 후 그는 많은 일을 겪었다.

    일단 그가 입고 있던 ‘알라반 제복’부터가 문제였다.

    그가 선택한 국가는 공교롭게도 메디카라는 국가였고, 메디카는 알라반과 적대관계라고 했다.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그는 여관 밖으로 나갔다가 뜨거운 시선을 받고는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메디카 한가운데에 알라반인이?’

    ‘뭐지?’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시선을 받은 후에.

    하지만 그것에 식은땀이 나는 것도 잠깐.

    그는 지금 제가, 강이현이 아니라 네드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지금은 누가 손가락질해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건 묘한 기분이었다.

    ‘길이…….’

    그는 그 후로, 마치 일탈이라도 하는 것처럼 마음껏 실수했다.

    길도 잃어버렸고, 분 단위로 쪼개어 사용하던 시간도 허송세월로 보내 봤다.

    일단 유니라는 사람을 찾아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게다가 바깥에 있게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자꾸 ‘체력’이 깎여서 회복해야 했다.

    다행히 그걸 회복할 수 있는 물건은 인벤토리에 있었다.

    [커피쫩쫩]

    ……이라는 이름의 카테고리에.

    아무래도 유니라는 유저 분이 설정해둔 게 분명했다.

    “잠시 빌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한 그가 ‘커피쫩쫩’ 칸에서 붉은색의 포션을 꺼내 마셨다.

    그러자 체력이 부족하다며 눈앞을 붉게 물들였던 효과가 사라졌다.

    그걸 다시 집어넣을 때였다.

    뭘 잘못 건드린 건지 갑자기 ‘퐁!’ 소리와 함께 어깨가 묵직해졌다.

    “?”

    어깨를 툭툭 털어내려는 순간. 손끝에 묵직한 것이 걸린다 싶더니 별안간 눈앞에 샛노란 덩어리가 튀어나왔다.

    “!”

    [비상식량이 소환됩니다.]

    그리고 나온 알림창에 그는 적잖이 당황해야 했다.

    비상……식량……?

    그게 왜 어깨를 건드리면 나온단 말인가?

    그런데 눈앞에 나타난 노란 덩어리의 정체는 더 가관이었다.

    ―크아아아암.

    하품을 하는 그 ‘비상식량’의 정체는 용이었으니까.

    * * *

    그 비상식량에 올라탈 수 있다는 걸 아는 데에도 꽤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비상식량이 인벤토리의 ‘먹이’ 칸에 있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렸다.

    그리고 그때쯤에는 비상식량을 타고 날고 있었다.

    ―뀨아아~

    비상식량은 하늘을 나는 게 신나는지 어디론가 쭉 날아가기 시작했다.

    “길을 안내해 주는 건가?”

    비상식량은 그냥 기분이 좋아서 나는 거였지만 그렇게 내버려 둔 게 화근이었다.

    [‘헤르암 군도’ 일대가 지도에 추가되었습니다!]

    [헤르암의 거인과 마주쳤습니다!]

    [헤르암의 거인을 퇴치하십시오!]

    뭔가 복잡한 시스템창이 지나갔다고 생각한 순간.

    [-1,939,431!]

    순식간에 시야가 흔들리면서 머리 위로 뭔가 거대한 물건이 지나갔다.

    그리고 시야가 붉어졌다.

    체력이 부족할 때의 현상이었다.

    그는 습관적으로 ‘커피쫩쫩’ 칸의 물약을 먹으면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

    [장비]

    [스킬]

    ……

    낯선 칸투성이였지만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체력 칸 옆에 쓰인 작은 설명을 확대해 본 후엔 더욱 그랬다.

    [체력이 모두 떨어지면 사망한답니다^^ -친절한 네리아GM]

    원래 PC버전에선 이런 설명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그 밑의 주의사항은 가관이었다.

    [이 세계에는 단 두 명뿐! 죽으시면 유니 님이 살려줄 때까지 기다리셔야 돼요~ -친절한 네리아GM]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 여부를 가릴 틈은 없었다.

    헤르암의 거인인지 뭔지 하는 것은 안개에 파묻힌 채 이쪽으로 검만 휘둘러 왔고, 그때마다 체력은 아슬아슬하게 남았다.

    [체력 회복 포션을 사용합니다.]

    다행히 ‘커피쫩쫩’ 칸은 든든할 정도로 가득 차 있었기에 죽을 일은 없었다.

    그 사이 그는 빠르게 무기와 스킬 설명을 훑기 시작했다.

    [멱살잡이]

    스킬 칸에는 익숙한 이름의 스킬도 있었다.

    “아, 그분이 그때 쓰셨던…….”

    분명 자신의 캐릭터에겐 없었던 스킬이었다.

    이 엄청난 스탯도, 스킬도 모두 다 유니라는 분의 것일 터였다.

    아무래도 죽으면 그분께도 피해가 될 것 같은데.

    실수와 민폐에 날카롭게 반응하는 뇌가 다시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스킬]

    새로운 것을 얻었으면 사용하기 전에 이론부터 빠르게 습득하여 실수를 최소화한다.

    그는 제 인생 지론에 맞게 스킬을 하나하나 읽어나갔다.

    다행히도 그사이 용 비상식량은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스킬을 다 읽어갈 때쯤. 문제가 생겼다.

    [비상식량이 너무 긴 비행으로 힘들어합니다.]

    “……지치는 건가?”

    살아있는 생명이면 당연히 지치겠지만……, 게임 안이라는 생각에 기계 비슷하게 생각했던 건 사실이었다.

    ―뀨우.

    하지만 힘없이 돌아보는 노란 얼굴의 용과 시선이 마주치니 정말,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기계처럼 대할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일단 돌아가자.”

    헤르암의 거인을 퇴치하라고 했지만, 지금은 퇴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듯했다.

    그렇게 돌아간 그에게 도착한 게 유니의 편지였다.

    “……유니 님?”

    우편 시스템이 있었구나.

    어떻게 배달되는 거지? 근본적인 질문은 역시 해결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네드 님.]

    그렇게 시작된 편지는 그에게 친절하게 해야 할 일을 알려주고 있었다. 문제는.

    “……좌표?”

    좌표를 보고 위치를 찾아가라고?

    그는 비상식량으로 날아가며 스쳐 지나갔던 지역명들과 하늘에 떠 있는 섬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유니가 말하는 빨간 지붕의 건물은 없었다.

    “크리스탈을 부수지 않는다.”

    다행히도 유니가 보내 준 편지에는 주의사항이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그가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도록 배려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그 사실에 매우 감사했다.

    혹시나 또 실수를 하더라도, 크리스탈만 부수지 않으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이…… 생각보다 어렵네.”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낯설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게 유니가 말한 섬을 향해 다시 날아올랐을 때.

    문제가 생겼다.

    [헤르암의 거인이 쫓아왔습니다!]

    [헤르암의 거인이 ‘습격’을 가합니다!]

    별안간 눈앞이 번쩍하더니, 시스템창이 떴다.

    [비상식량이 사망했습니다.]

    “……!”

    그 순간 그는 심장이 꽉 조여오는 것 같았다.

    익숙한 강박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실수해서는 안 된다.

    무언가를 얻기 위한 계산된 실수 외의 실수는 곤란하다.

    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결정적인 실수였다.

    사교 인맥을 위한 비즈니스 매너로 굳어 있는 머리에 금이 가는 듯했다.

    그 순간.

    ―슈욱!

    그의 머리 위로 검이 다시 한번 날아왔다. 헤르암의 거인의 공격이었다.

    [-904,911]

    체력이 훅 깎여 나갔다. 체력 회복 포션을 마시면서도 그는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방어 스킬]

    수백 가지가 있는 스킬은 이미 다 읽어 두었다. 그중에 이 상황에 쓸 만한 스킬은 몇 개고 떠올랐다.

    실제로 될지는 모르지만.

    [‘전면방어’ 스킬을 사용합니다.]

    실험을 해 볼 순간은 물론 금방 다가왔다.

    다시 한번 날아온 헤르암 거인의 칼이 그의 ‘전면방어’ 스킬에 막혀 굉음을 냈다.

    ―쩡!

    [-108,200]

    90만 가까이 체력이 깎였던 걸 생각하면 확실히 방어 효과가 있었다.

    조금 자신감을 얻은 그가 이러저러한 스킬을 사용해 헤르암의 거인을 공격해 보기 시작했다.

    [-66,132!]

    ‘창 투척’이라는 스킬로 낸 데미지였다.

    분명 스킬을 같이 사용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는 몇 번의 시도를 거친 끝에 헤르암의 거인에게 점점 유의미한 데미지를 내기 시작했다.

    [-1,002,317!]

    거인의 체력은 순조롭게 깎여 갔다.

    “이렇게 하는 거구나.”

    생각보다 스릴 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후우우우웁!

    거인은 별안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면서 주변의 안개가 옅어질 때까지 안개를 들이켰다.

    그리고.

    [헤르암의 거인 : 100%]

    체력을 다시 100%로 회복해 버렸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벌써 포션을 수백 개 마신 상황에서, 다시 한번 이 짓을 해야 한다고?

    게다가 주변에 거인이 빨아들일 안개는 많았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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