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화 (50/112)

<50화>

[연지곤지]

처음 그가 유네리아를 시작해서 한 건 기이하게도, 실수였다.

어이가 없게도 그는 길을 헤맸다.

실수를 했다는 사실에 심장이 쥐어 짜이는 듯 아파 오면서 불안해도, 어이가 없어서 웃어 버렸다.

실수를 했는데 누구 눈치를 보는 거지?

누구 눈치를 보고 이렇게 불안해하는 거지?

게임 내에는 그가 강이현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사실은 그에게 묘한 쾌감을 가져다주었다.

일할 때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일정에 있는 건물의 구조도까지 외워 갔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그냥, 즐기면 된다.

‘혹시 활 있으세요?’

그래서 처음 만난 사람을 보고서도 긴장하는 것도 잠깐, 그는 편하게 그 사람을 대했다.

[유니]

머리 위에 쓰인 닉네임은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오랫동안 게임을 한 사람인 듯했다.

그렇게 스쳐 지나갈 줄 알았다.

무슨 이벤트 발표를 한다고 시스템창이 뜨기 전까진 그랬다. 정확히는.

[당첨되셨습니다!]

그 시스템창을 보고 나서 눈앞이 암전되기 전까진 그랬다.

* * *

그렇게 눈을 뜬 그는 아주 잠깐 당황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설마 내가 게임 하다가 쓰러진 건가?

일하다가 의식을 잃은 적은 있어도 게임 하다가 의식을 잃는 건 그의 인생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라면 ‘이건 어떻게 포장해도 망신을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며 노발대발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을 뜬 순간, 그는 더 어이없는 물건을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네드 유저님!”

그건 요정이었다.

그는 두 살부터 요정의 존재 따위는 믿지도 않았으므로 눈을 감아 버렸다.

꿈이었군.

게임 하다가 기절했다는 것보단 게임 하다가 잠들었다고 생각하니 조금 불안이 가셨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순간.

요정인지 뭔지 모를 것이 그의 귀에 대고 말했다.

“씹지 마시고요, 유저님.”

그 목소리는 꿈치고는 지나치게 실재감이 있었다.

그는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요정과 눈이 마주쳤다.

조금 전까지 얼굴을 구기고 있던 요정은 금세 얼굴에 미소를 띠더니 말했다.

“흠흠, 이건 꿈이 아니랍니다! 그러니 일어나세요~!”

해가 중천이네 뭐네 떠드는 요정은 정말 말도 안 되게도 날고 있었다.

이게 꿈이 아니라고?

저 큰 몸을 작은 날개가 날아오르게 할 수 있는가는 둘째치고, 주인을 날아오르게 하기에는 지나치게 업무 태만으로 보이는 날개가 눈에 띄었다.

날갯짓도 안 하면서 날고 있는, 말하는 요정이 눈앞에 있는데 꿈이 아니라고?

그가 눈썹을 치켜올렸을 때였다.

“유네리아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아! 유네리아 결제액 상위 1%에 해당하는 분들 중 단 한 분! 딱 한 분께만 드리는 초특급 초청 이벤트!”

그러더니 요정이 브이를 그려 보였다.

“유네리아 직접 해 보기!”

그리고 그가 황당해하기도 전에 궁금하지도 않았던 정보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컴퓨터로 즐기기는 그동안 아쉬우셨죠?”

하지만 다음 순간, 그의 귀에 말도 안 되는 말이 박혀 왔다.

“네드 님의 유네리아 플레이 시간은 무려 50,499시간! 지난 십 년간 유네리아는 네드 님께 너무나 큰 사랑을 받았어요~!”

그 말에 그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50,499시간은커녕 50,499초도 못 했을 텐데?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네?”

그렇게 말하는 요정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웃었다.

“호호! 믿기 싫……아니 어려우시겠지만 10년, 즉 약 87,600시간 중 50,499시간을 유네리아에서 보내셨답니다!”

“오늘 시작했습니다.”

그 말에 눈앞의 요정이 멈칫했다.

“이게 무슨…… AI로 처리할 수가 없는 문의 내용인데. 잠시만요.”

그러더니 고개를 휙휙 흔들더니 물었다.

“뭐라고요?”

아까 생글생글 웃기만 하던 얼굴보다는 훨씬 생동감 있는 얼굴이었다.

물론 그것도 요정 차림새인 이상 그에게 낯설어 보이는 건 똑같았다.

“오늘 처음 시작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게임.”

그 말에 요정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러다가 요정이 불쑥 물었다.

“여기서 퀴즈. 유네리아의 현시점 디렉터로 이번 초대박대박 이벤트를 기획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 말에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것도 기본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거였나?

그가 살면서 들은 수많은 질문 중에, 답에 근접하기조차 어려운 것은 이 질문이 처음이었다.

그건 묘한 긴장감을 가져다주었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긴장한다 해도 답이 나올 리가 없다.

그는 습관처럼 움찔했다.

모르겠다는 말을 했던 적이 있던가? 아주 어렸을 땐 했던 것도 같고.

‘지금 모르겠다는 말이 나와? 지켜보는 사람이 몇인데 이런 멍청한 대답을 해야겠어?’

귀에 딱지가 앉도록 고성을 지르는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더 긴 시간 동안 모르겠다는 말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패하는 것이 이렇게 두렵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심장이 본능적으로 꽉 조여올 때였다.

요정이 우뚝 굳었다.

그러더니 아주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모를 리가 없는데? 채팅 내역에서 가장 많이 나온 게 디렉터님 욕이었는데?”

그 말에 그는 요정보다 심각해진 얼굴로 되물었다.

“채팅 내역이 기록됩니까?”

실수와 실패에 민감한 그로서는 예민한 사항이었다.

하지만 요정은 그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그에게서 훅 멀어졌다.

“자자자잠시만요, 뭔가 잘못된 것 같아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뿅!”

그러더니 제 입으로 효과음을 내며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 * *

그리고 얼마 후 돌아온 요정은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그, 그, 어서 오세요 뉴비 님-!”

그 말을 그는 간단하게 정정해 주었다.

“제 닉네임은 네드입니다.”

“아…… 네!”

요정의 머리 위로 ‘^^;;’ 이라는 빛나는 글자가 생겼다가 사라졌다.

저건 뭐지?

그걸 보다가 요정을 내려다보니 요정은 빙그레 미소 짓고 있었다.

왠지 요정이 영업용 미소를 띤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전 운영자 네리아GM이라고 합니다. 이번 이벤트에 당첨…… 되셨어요!”

“이벤트요?”

그 발표하던 게 그건가?

물론 그는 유네리아에 적응하기도 바빴으므로 무슨 이벤트가 있다는 것도 유니라는 유저를 통해서 알았다.

“네! 유네리아 역사상, 아니 게임업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이벤트!”

그러면서 네리아GM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요정이 말해주는 내용은 거짓말 같았지만 진짜였다.

여기가…… 게임 속이라고?

“시야 안에 시스템창도 보이실 거예요~!”

그 말대로였다. 시야 구석에는 PC버전 유네리아에서 봤던 메뉴창과 여러 가지 버튼들이 떠 있었다.

“원래는 네드 님께서 재미있게 즐겨 주시길 바랐는데……!”

요정은 곤란한 얼굴로, 눈물 하나도 없는 얼굴을 손수건으로 훔치기 시작했다.

“근데 저희 쪽에서 착오가 있어가지고 유니라는 유저 분의 정보와 네드 유저님의 정보가 바뀌게 되어 버렸어요~! 이걸 어쩌지?”

그 답을 왜 내게 묻는단 말인가? 그가 눈살을 찌푸렸을 때였다.

“메뉴에서 상태 버튼을 누르면 캐릭터 정보를 보실 수 있답니다~!”

요정이 그의 시야에 떠 있는 ‘상태’ 버튼을 눌러 주었다.

[네드 / Lv. 500]

그러자 화려한 상태창이 그를 감쌌다.

뭐지?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던 제 레벨은 7이었다.

그럼 493레벨은 어디서 튀어나왔단 말인가?

“그게 바뀐 정보랍니다…….”

그러더니 요정은 날개를 축 늘어뜨리고 힘없이 말했다.

“원래 둘 중 한 분만 오셨어야 했는데, 버그로 두 분 다 오시게 되면서 정보가 바뀌어 버렸어요!”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네리아GM에게, 그는 일반적인 해결답안을 제시했다.

“그럼 정보를 제대로 돌려놓고 한 명은 돌려보내면 되지 않습니까?”

그 말에 네리아GM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게…… 안 된답니다!”

“?”

제 실수임을 인정하면서도 이렇게 뻔뻔하게 말할 수도 있다는 걸, 그는 그날 처음 알았다.

그건 아주 불쾌하면서도, 상쾌한 경험이었다.

남의 실수에 당했다는 것은 불쾌했지만, 이곳에선 실수해도 된다는 사실이 새삼 다가와 상쾌하기까지 했다.

그 생각에 잠긴 사이 네리아GM이 말했다.

“시스템상 이러쿵저러쿵한 결함이 있어서……!”

그는 결함이 있다는 걸 저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것도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냥 게임 시나리오 퀘스트를 클리어하시는 게 빨라요! 게임 시작하신 이유에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서’라고 쓰셨잖아요~”

그것도 기록이 남는 것이었다는 말인가?

하긴, 아무 이유 없이 정보를 수집하진 않을 터였다.

네리아GM은 그가 당황하는 사이 재빨리 말했다.

“정말 새로운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럼 파이팅!”

그러더니 다시 제 입으로 ‘뿅’ 소리를 내고 사라져 버렸다.

“?”

그가 상황 파악을 하려고 두 번쯤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

―뿅!

다시 눈 아픈 가루를 날리며 나타난 요정 때문에 또 눈을 비벼야 했다.

“어려운 일이 있으시면 유니 님을 찾으시면 된답니다! 뿅!”

그러더니 다시 사라져 버렸다.

“……그, 활 주신 분?”

그리고 정보가 바뀐 그분?

같이 여기 떨어졌다는 분이 그분인 듯했다.

“……?”

사람이 어떻게 게임에 떨어질 수 있지?

과학적인 고찰을 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가 이 세상에서 현실감을 느낀 건 묘하게도 자고 일어났을 때였다.

자고 일어나도 눈앞의 시스템창 UI는 그대로였으니까.

그리고 묘하게 배가 고프기까지 했다. 진짜 식사를 하지 않은 것처럼.

결국 그는 몸을 일으켰다.

[알라반 정장(염색됨)]

그는 처음 보는 하얀 옷을 내려다보다가 문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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