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화 (48/112)
  • <48화>

    하지만 저렇게 잘생긴 얼굴로 의아해할 만큼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다.

    “요리 나올 때 디렉터가 다트를 잘 못 했거든요.”

    그래서 공식 방송 ‘운영자의 모험가 체험’에서 실시간 플레이를 하다가 실컷 망신당한 후, 요리 패치를 할 땐 다른 게임으로 바꿔 버렸다.

    [‘요리’ 스킬이 개선됩니다.

    - ‘요리’ 스킬의 점수를 결정하는 미니게임이 다트에서 신규 게임 ‘불 조절 레버’로 변경됩니다.]

    유저 분들의 몰입을 위해 어쩌고저쩌고 말은 좋았지만 그냥 방송에서 쪽팔려서 바꿨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었다.

    “많이 어렵습니까?”

    네드 님이 긴장해서 물었다. 난 손을 내저었다.

    “아뇨, 안 어려워요. 이게 뭐냐면…….”

    난 짧게 설명해 드렸다.

    디렉터가 멍청해서 나온 게임이라 규칙이 복잡할 리가 없었다.

    청기백기라고도 불리는 이 미니게임은, 화면이 빨개지면 레버를 아래로, 화면이 하얘지면 레버를 위로 올려야 하는 게임이었다.

    “색이 백색과 적색만 있는 겁니까?”

    네드 님은 어느새 노트를 꺼내서 필기까지 하고 계셨다.

    아니 레버 게임을 이렇게 본격적으로 공부하신다고?

    “네. 딱 백색하고 적색만 나와요. 레버 아래로 당기고 있으면 어느 순간 화면이 백색으로 딱 바뀌는데, 그땐 다시 위로 올리고 기다리면 돼요.”

    그럼 다시 적색 뜨고. 그럼 다시 내리면 되고.

    오케이? 쉽다니까요?

    “음.”

    네드 님은 긴장한 기색이었다.

    “한번 연습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걸 연습까지? 하지만 그러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AM 4:00]

    “시간이 없어서 안 될 것 같은데요. 지금 레버 켜야 돼요.”

    켜서 재료까지 올려놔야 4시에 시작한 요리로 인식될 것이다!

    내 말에 네드 님이 멈칫했다.

    “예?”

    “빨리빨리!”

    안 그럼 하루 멍 때려야 한다고요!

    그럼 남부 숲도 타고! 엘프 사라지고! 우리 겉옷도 사라지고! 미래에는 깡통뿐이야!

    “빨리빨리빨리!”

    내가 손짓하자 네드 님은 얼결에 구름 어쩌고 철판과 육즙 어쩌고 칼을 꺼내 들었다.

    ―탁, 타탁.

    그리고 불 앞에서 요리 스킬을 사용하자 네드 님 앞에 레버가 떴다.

    “오랜만에 보네, 저 레버…….”

    난 요리가 귀찮아서 사 먹는 유저였기 때문에 레버를 자주 볼 일이 없었다.

    파티원의 레버라서 반투명하게 보이긴 했지만 확실히 재료도 제대로 올라가 있었다.

    “이제 불 조절만 하시면 되는데.”

    네드 님은 레버를 잡은 채 긴장한 기색이었다.

    아마 우리가 파티원이 아니었으면 네드 님이 허공에서 한 손은 허공을 짚고, 한 손으로는 뭔 기둥을 쥔 채 긴장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초보 마을 DJ 입장...jpg]

    [길가다가 비트타는 애 봤는데 얘 뭐냐]

    [요리스킬 바뀐거 남들한텐 레버 안뜸?]

    [남들한텐 허공에 손짓하는걸로 보이는 거 실화?ㅋㅋㅋㅋㅋㅋㅋ]

    덕분에 패치 당시에도 난리였지. 음음.

    내가 딴생각을 잠깐 했을 때였다.

    “연습도 없이, 할 수 있을까요?”

    네드 님은 유독 긴장한 기색이었다. 긴장했는지 레버를 쥔 손에는 하얗게 힘까지 들어가 있었다.

    아니, 불 조절 레버에 이렇게까지 긴장하실 일이야?

    “떨지 마요. 안 떨어도 돼.”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왜 유네리아 개발팀은 유네리아를 최초로 두 발로 밟아 보는 전무후무하고 엿 같은 이 경험에 스크린샷 기능은 안 넣어 놨지?

    추억을 쌓으라며?

    추억 쌓으려면 사진은 찍을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하지만 요리를 잘못하면 재료를 처음부터 다시 구해야 합니다. 게다가 시간도…….”

    “괜찮아요, 괜찮아. 제가 알려 줄게요. 하라는 대로만 해요.”

    어차피 화면이 빨개지는지 하얘지는지는 나한테도 반투명하게나마 보이니까.

    “혹시 몇 초 내에 레버를 올리거나 내려야 합니까?”

    네드 님이 중요한 질문을 했다.

    이게 몇 초 내로 바꿔야 하는 거더라?

    “2초인가 1초인가 그럴걸요?”

    그걸 생각하면서 바꿔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내 말에 네드 님이 더욱 긴장했다.

    “……생각보다 중대한 일을 맡게 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상자 2천 개 까는 게 네드 님에겐 좀 중노동이었던 모양이다.

    20만 골드보다 2천 개 까는 게 더 데미지가 크다니, 유네리아 현실판의 문제였다.

    “정 떨리면 네드 님은 레버만 쥐고 있어요.”

    어휴! 나는 네드 님의 옆으로 다가가 섰다.

    내 자신 있는 눈과 네드 님의 긴장한 눈이 마주쳤다.

    내가 아무리 요리는 안 하고 산다지만 레버도 못 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내가 네드 님 손 잡고 움직일게요.”

    될 것 같은데? 아마?

    난 레버를 잡은 네드 님의 손 위에 내 손을 겹쳐 보았다.

    원래 미니게임은 타인이 도울 수 없다. 도우려고 하면 [타인의 미니게임에 간섭할 수 없습니다]가 뜨게 되어 있는데, 안 뜨는 걸 보니 그냥 네드 님 손을 잡은 걸로 인식된 모양이었다.

    유네리아 자유도가 이걸 해냅니다!

    “괜―”

    [귓속말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 귓속말(유니) : 괜찮죠?]

    아니, 귀 가까이 있다고 다짜고짜 귓속말 처리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

    난 재빨리 네드 님의 귓가에서 슬쩍 떨어졌다.

    네드 님은 그대로 굳어 있었다.

    난 네드 님의 눈앞에 손을 흔들어 보였다.

    “네드 님?”

    “……아, 예.”

    네드 님은 고개를 털더니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레버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만일 실패하면, 제가 상자를 모두 열 테니 유니 님은 쉬십시오.”

    그러더니 비장하게 말씀하셨다. 난 눈을 깜빡였다.

    “상자를 왜 네드 님이 열어요?”

    아니 그리고 이래 봬도 3회용이거든요? 한 번 실패한다고 처음부터 다시 안 해도 되거든요?

    난 웃음을 터뜨렸지만 네드 님은 진지했다.

    “제가 실수한 것이니 책임을 져야겠지요.”

    그러면서 레버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불 조절 레버에 이렇게나 진심인 사람이 있다!?

    너튜브에 올리면 조회수 100만은 따고 들어갈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난 웃음을 터뜨렸다.

    “뭘 책임을 져요. 실패할 수도 있지.”

    내 말에 네드 님이 멈칫했다.

    “……실패해도 됩니까?”

    그러더니 뜬금없이 물었다. 난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실패해도 된다니까요.”

    “그러다가 도구가 깨져 버리면―”

    “다시 하면 되죠.”

    당연한 것을 물으시네. 내 말에 네드 님은 말이 없었다.

    난 손을 펼쳐 보였다.

    “실패하면 한 번 더 하면 되고, 안 되면 또 한 번 더 하면 되고. 만약에 도구 박살 나면 뭐 엘데를 다르게 구슬려 보죠.”

    설마 유네리아인데 루트가 하나밖에 없겠습니까?

    “…….”

    그러니까 준비 OK? 난 네드 님의 레버를 잡은 손에 다시 힘을 주었다.

    “실수할까 봐 긴장하지 마요. 앞으로도 실수할 일이 차고 넘치게 많을 텐데. 제가 할 테니까 레버만 잡고 있어요.”

    내가 다 해결해 줄게!

    “손만 잡고 있어요, 손만. 저 믿죠?”

    찡긋하는 내 눈과 네드 님의 시선이 마주쳤다.

    “…….”

    그리고 침묵이 흘렀다.

    “네드 님?”

    이런 중요한 순간에 멍 때리기 있기 없기?

    “……정말, 실수해도 괜찮습니까?”

    조심스러운 말에 난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하죠. 실수 없는 사람이 어딨어요?”

    내가 네드 님의 레버를 잡은 손을 꽉 잡았을 때였다. 그 순간.

    [!]

    네드 님 앞에 있던 레버 근처가 빨갛게 반짝였다.

    아아아니 말도 없이 시작하시면 어떡해!

    난 재빨리 레버를 위로 올려 버렸다.

    * * *

    [‘2020년을 빛낸 기업인’]

    [대한민국이 주목하는 젊은 CEO]

    강이현.

    항상 그 이름의 뒤를 따라다니는 단어들은 화려했다.

    ‘이현이 어머님은 행복하시겠어요. 이렇게 천재 아들을 둔 기분은 무슨 기분일까?’

    ‘행복은 무슨요. 더 노력해야죠.’

    그리고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어머니도 그에게는 익숙했다.

    ‘네가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람들 귀에 박히고, 어디에 녹음되고 받아 적힐지 모른다는 걸 왜 모르지?’

    ‘좀 더, 지금보다 좀 더 조심스럽게 행동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유명한 기업인인 그의 아버지는 그가 뭘 하든 불만족스러운 듯했다.

    ‘더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야지.’

    그가 채 걷기도 전에 그를 ‘천재 코스’에 편입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한 그의 부모는 그에게 한결같은 것을 기대했다.

    그 누구도 깎아내릴 수 없는 완벽한 사람.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는 깔끔한 기업인.

    그러면서도 능력 있는 자.

    ‘사악해? 나빠? 돈에는 나쁜 돈이 없지. 어떤 짓을 해도 완벽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들키지 않을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착하게 살아.’

    ‘멍청하게 살라니, 그게 말이에요? 이현아, 너는 다른 애들하곤 달라.’

    그의 부모님은 다른 걸 요구하면서도 결국 같은 것을 원했다.

    완벽함. 실수 없는.

    때문에 바깥에선 하하호호 웃는 그의 부모는 집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싸웠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그에게 말했다.

    ‘자고로 존경받는 기업인이란…….’

    끊임없이 그에게 요구했다.

    오직 앞으로 나아가기를, 다른 사람보다 더 일찍, 완벽하게 나아가기를 종용했다.

    그러면서 아주 일찍부터 상류사회의 사교계에 그를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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