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화 (47/112)
  • <47화>

    [광고용 판넬(알라반)]

    [광고용 판넬(메디카)]

    까다 보니 각 나라 유저들에게만 보이는 전체 채팅을 할 수 있는 아이템도 나왔다.

    지금 써 봐야 쓸모도 없는 아이템이었다.

    유네리아를 두 발로 탐험하는 이 엿같고 전무후무한 경험을 하는 건 나와 네드 님뿐이라고 했으니까.

    게다가 국적도 달라서 알라반 판넬로 말해 봐야 네드 님한테 들리지도 않을 터였다.

    써 볼까?

    [판넬에 원하는 말을 들려주세요]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알림창이 떴다. 굳이 판넬에 대고 말하진 않아도 되는 듯했다.

    [네드 님]

    난 별생각 없이 네드 님을 작게 불러 보았다. 생각에 잠긴 그는 내가 뭘 하는지 보지 못한 듯했다.

    [(광고) 유니 : 네드 님]

    그리고 시스템창에 알람이 떴다. 알라반인인 내겐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네드 님은 메디카인인 탓에 안 보이는지, 미동도 없었다.

    [광고용 판넬(대륙용)]

    그러는 와중에 대륙용 판넬도 나왔다. 이건 전체 유저한테 다 보이는 거다.

    [광고용 판넬(대륙용)]

    [광고용 판넬(대륙용)]

    근데 이게 연달아 나오네? 내가 데이아를 째려보자, 데리아가 두루마리 중간을 가리키며 빙그레 웃었다.

    [광고용 판넬(대륙용) - 5.33%]

    5%짜리 아이템 연달아 나와서 좋아해야 하는 거야?

    그러기에는 우리 옆에 쌓인 판넬이 너무 많았다.

    이건 심지어 나중에 PC버전 가서 팔까 싶어도 팔리지도 않을 아이템이었다.

    랜덤박스에 맨날 끼워져 있는 대표적 쓰레기 아이템이었으니까. 오죽하면 템창을 비운다고 이걸로 소설을 쓰는 놈도 있었다.

    그때 할일없어서 가만히 채팅창만 보고 있다가 본의 아니게 읽었던 기억이 났다.

    [(광고)이야기꾼 : 강진석과 오경식의 사랑이야기]

    [(광고)파개한다 : 저XX뭐냐]

    [(광고)아쭈꾸림 : 안궁금한데]

    [(광고)이야기꾼 : 강진석은 어느날 길을 가다가 오경식을 보고 첫눈에 반했어요]

    하필 이름이 디렉터 이름이라서 내용에 분개하는 유저들이 더 많았던 기억이 났다.

    [(광고)아쭈꾸림 : 누가 쟤좀 킬해봐 제발]

    [(광고)파개한다 : 쟤 길드 어디임]

    [(광고)너어는진짜 : 적대길드찾습니다 PK에 백만골]

    [(광고)이야기꾼 : 하지만 강진석은 네리아교 패치를 한 솔로의 왕]

    [(광고)이야기꾼 : 자신의 신념을 꺾고 사랑에 빠질 것인가! 2탄을 기대해주세요]

    [(광고)파개한다 : 쟤 찍먹길드네]

    그때쯤 신상(?)이 털려버린 이야기꾼은 킬 위기를 맞이했지만 어쩐 일인지 곧 나타났다.

    [(광고)이야기꾼 : 익명의 후원을 받아 2탄을 연재합니다^^]

    후원한 게 에이리 님이란 건 평생 묻을 비밀이었다.

    에이리 님 저런 거 좋아하세요?

    [(광고)파개한다 : 어떤XX냐고]

    [(광고)이야기꾼 : 결국 사랑에 빠진 강진석은 솔로교도 무너뜨리고 오경식과……]

    에이리 님의 후원을 받아 한참 연재를 하던 이야기꾼은 결국 넘지 말아야 할 빨간 선을 넘어 제재를 받아 버렸다.

    별놈 다 있다, 진짜.

    “어휴, 쓰레기 템.”

    내가 끔찍한 기억을 되새기며 판넬을 뒤로 던졌을 때였다.

    “아.”

    네드 님이 문득 멈칫했다. 그를 돌아보니 그의 손에는 웬 철판이 들려 있었다.

    “어?”

    난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얻은 거야?

    나도 놀라고 네드 님도 놀라고 데이아도 놀란 가운데 네드 님이 신중하게 내게 아이템을 건넸다.

    “……이겁니까?”

    네드 님이 내게 아이템을 건네는 순간.

    [총알도 막을 듯이 단단한 플레이팅용 철판]

    난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생긴 건 똑같은데 재질이 다르네?

    “이거 말고 구름처럼 푹신한 철판이어야 돼요.”

    내 말에 네드 님이 멈칫했다.

    생각에 잠겨 있었던 것도 잠깐, 평소처럼 돌아온 그가 내게 물었다.

    “이거…….”

    그는 몇 번 말을 고르는 듯하더니 물었다.

    “푹신하게 만드는 방법은 없습니까?”

    네드 님도 상자 까기가 질리신 모양이었다.

    “없 어 요.”

    단호하게 말한 난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네드 님이 상자를 471개째 깠을 때의 일이었다.

    * * *

    하지만 인간은 승리한다고 했던가?

    “나왔다!!”

    상자 따위가 탕진하기엔 네드 님의 전 재산이 너무 많았다.

    우린 결국 상자를 2000개 가까이 연 끝에 구름처럼 폭신한 플레이팅용 철판과 육즙을 가두는 요리용 칼을 얻고야 말았다.

    “호호, 고생했어.”

    그리고 우리에게 20만 골드를 뜯어간 데이아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미소지었다.

    “이건 서비스야! 가져!”

    [데이아의 절친한 친구 상자 10개를 획득했습니다.]

    2천개 열었는데 10개는 어느 나라 서비스냐?

    내가 인자한 미소를 짓는 사이, 데이아는 확률 고지 두루마리를 돌돌 말았다.

    그때였다.

    ―툭, 데구르르르…….

    그때 데이아의 주머니에서 다른 두루마리가 굴러 나왔다.

    [요리의 날 기념★데이아의 가족같은 킹갓제네럴짱친 상자 랜덤 아이템 박스 확률 고지]

    킹갓 뭐?

    나와 네드 님의 시선이 나란히 두루마리 상단으로 향했다.

    [구름처럼 폭신한 플레이팅용 철판 – 1.03%(단, 100번 상자를 오픈시마다 보너스로 지급)]

    [육즙을 가두는 요리용 칼 – 1.03%(단, 100번 상자를 오픈시마다 보너스로 지급)]

    뭐요?

    “앗.”

    우리와 시선이 마주친 데이아는, 갑자기 철저한 얼굴로 말했다.

    “유료로 직접 구매한 상자의 환불 및 청약철회는 7일 이내로 가능하지만 이미 사용한 물건은 불가능한 거 알지?”

    쟤를 때려잡고 집을 털면 상자도 돈도 나오지 않을까?

    내가 인벤토리에서 칼을 고를 때였다.

    “두 사람 다 미성년자도 아니니까 미성년자의 계약에 대한 법정대리인의 취소권 행사도 불가능해!”

    그러더니 데이아는 냉큼 튀어 버렸다.

    “야!”

    내가 손에 잡힌 칼을 집어 던지지 못한 건 그게 하필이면 토르의 검이었기 때문이었다.

    * * *

    네드 님은 이성적이었다.

    난 데이아를 당장 잡아 족칠 생각뿐이었는데, 네드 님은 이렇게 말했다.

    ‘일단 스킬부터 얻는 게 좋겠습니다. 남부 크리스탈의 일도 바쁘고요.’

    ‘그 사이에 쟤는 튈 것 같은데요?’

    ‘그건 천리안 스킬로 찾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난 네드 님의 브레인에 곧바로 납득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우리는 드르렁 자느라 정신없는 엘데 대신 비상식량을 타고 예누스 농장에 도착했다.

    시간은, 새벽 네 시.

    “음.”

    난 예누스 농장 구석에 불을 피운 후 주변을 살폈다.

    네드 님이 말했다.

    “혹시 중간에 다른 예누스들이 방해한다든지…….”

    함정이 있을 것 같은지 불안한 듯했다. 하지만 아무리 유네리아가 망겜이어도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한국 게임이잖아요.”

    “예?”

    내 말이 뜬금없게 들렸는지 네드 님이 눈을 깜빡였다. 난 엄지를 척 들어주었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 한국 게임에서 밥할 때 건드리겠어요?”

    아닌 게 아니라 요리하는 유저를 보면 공격하려던 몬스터도 그냥 집에 가는 기괴한 게임이 바로 유네리아였다.

    “……그런.”

    네드 님은 황당한 얼굴이었지만 난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예누스는 먼저 공격하는 애들도 아니라서 괜찮아요.”

    무엇보다 자기 친구 굽는데 이쪽으로 오는 건 좀…… 슬픈 일이 아닐까요?

    [AM : 3:58]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사실 PC버전에서만 천상계의 지평을 바꿔 볼 요리를 했었으니 여기서는 처음인 셈이다.

    하지만 이 온도, 습도, 공기, 분위기.

    확실하다. 이건 예누스 스테이크 8점짜리다.

    게다가 여기에 도구 보너스로 맛을 잡아줄 요리도구 두 개.

    “준비 끝이네요. 이제 네 시 땡 치면 요리하면 돼요.”

    요리에서 실수만 없으면 10점짜리를 만들 수 있는 완벽한 환경이다.

    내 능력치, 아니 네드 님의 능력치로는 미니게임만 좀 신경 쓰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그럼 아까 말씀하신 미니게임이…….”

    “네, 지금 하는 거죠.”

    롸잇 나우.

    내가 바닥을 가리키면서 요리도구를 건네자, 네드 님이 잠시 멈칫했다.

    그러다가 물었다.

    “제가요?”

    “아, 제가 능력치가 지금 낮아서요.”

    능력치가 낮은 상태로 하면 손이 흔들려서 미니게임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PC버전에서는 마우스가 흔들렸으니 아마 여기선 손이 흔들리겠지.

    내 말에 네드 님이 멈칫했다.

    “미니게임은 저번에 말씀하셨던 다트입니까?”

    그 말에 난 손을 내저었다.

    “아뇨, 요리는 다른 미니게임이에요.”

    네드 님이 멈칫했다. 안 알려드렸던가, 아까?

    “불 조절 레버로 불 세기 조절하는 게임이에요.”

    “요리만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네드 님은 의아한 듯 물었다.

    하긴, 물약 제조도 다른 생산 스킬도 죄다 뜬금없는 다트 게임인데 요리만 불 조절 레버로 뜬금없는 디테일을 살려 둔 이유가 궁금하시긴 할 거다.

    난 그 말에 예쁘게 웃어 주었다.

    “어른들의 사정이 있죠.”

    “?”

    네드 님이 고개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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