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화 (43/112)
  • <43화>

    “그 NPC가 듣기보다 좋은 놈이 아니거든요. 어쩌다가 그놈이 호감형 NPC가 됐지?”

    내가 말을 잘못 꺼낸 게 아닐까?

    난 두근 반 세근 반 하는 마음으로 음유시인 NPC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네드 님을 보면서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그래도 저와 유니 님을 만나게 해 준 NPC가 아닙니까.”

    네드 님은 온화한 얼굴이었다. 난 그런 그에게 결국 말할 수밖에 없었다.

    “북부 섬……에서 활약하실 때요.”

    헤매실 때요, 라고 하면 난감해하실까 봐 말을 슬쩍 바꿨다.

    그놈이 위치를 찍어준 게 아닙니다아.

    내 말에 네드 님이 멈칫했다.

    “북부에서 헤맬 때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러더니 자신에게도 가차 없이 팩트를 퍼부었다.

    그러면서 얼굴은 왜 가리는 건데?

    “길은 자주 헤매지만, 그곳은 심지어 날아가는 곳이었는데.”

    요컨대 적치물이 있는 지상도 아니고 상공에서 길을 헤맨 게 부끄러우신 모양이었다.

    난 웃음을 터뜨렸다.

    “원래 처음 가면 다 헤매요.”

    그렇다고 지도가 멀쩡하게 있는 게임인데 메디카에서 북부 군도까지 가는 사람은 없지만, 아무튼…… 그랬다.

    아무튼 지도 탓이다!

    “유네리아 지도가 원래 쓰레기라서 그래요.”

    정확히는 퀘스트를 주는 NPC들이 Z축을 표시해주지 않는 바람에, 해당 위치에 가서 위아래를 싹싹 긁어야 한다는 게 문제였지만.

    ‘이곳에 가면 있을 것이오!’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면서 지도에 원을 그려준 곳에 가 보면, 그 한가운데에는 당연하다는 듯 퀘스트 관련 목표물이 없었다.

    그리고 지상과 지하 온갖 군데를 다 뒤지면 ‘설마 이딴 곳에 처박아 놨겠어’의 ‘이딴 곳’에서 발견되는 게 보통이었다.

    심지어 그러는 와중에 Z축은 제대로 표시도 해주지 않는 지도는 지하가 있으면 그냥 그 길을 더 진하게 표시해줄 뿐이었다.

    그게 지하 몇 층 규모의 구조물인지는 유네리아 공략 게시판 말고는 알려 주는 데가 없었다.

    요컨대 유저가 다 알아냈다는 소리다.

    “……다음엔 안 헤매겠습니다.”

    네드 님은 그래도 내 말에 좀 회복하신 듯했다.

    아이고, 길 잃어버리는 것 가지고 뭘!

    “백 번이고 잃어버려도 돼요! 괜찮아!”

    난 빙그레 웃어 주었다. 그리고 주점을 열었다.

    “……하니, 이런 일이 있을…….”

    “내 아들이 그렇게 말했다니까!”

    “어허!”

    그러자 시끄러운 주점의 분위기가 그대로 와닿았다.

    그리고 꼴에 시간마다 위치를 옮기는 음유시인 NPC는 그곳의 구석에서 졸고 있었다.

    “저기 있네요.”

    네드 님은 졸고 있는 음유시인 NPC를 보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뭔가 기계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군요.”

    무슨 최첨단 NPC를 생각하신 겁니까?

    난 황당한 표정을 숨기며 NPC에게 다가갔다.

    “오늘도 돈이 없다…… 돈이!”

    그러면서 텅 빈 지갑을 털어 보이는 음유시인 NPC는 우리를 은근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돈 달라는 거지, 응?

    난 저놈을 볼 때마다 저놈이 이 게임에서 제일 부자라는 썰이 생각나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저 NPC와 호감도를 풀로 쌓은 에이리 님에 따르면, 음유시인 NPC는 과거에 말 그대로 길거리를 전전하던 거지 NPC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노래라고 읽고 정보통이라는 능력을 얻어서 음유시인을 해 먹으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뉴비들에게 귀한 1골드씩을 뜯어가면서.

    “커어…….”

    잠든 척하면서 슬며시 눈을 떠서 이쪽을 보는 건 아주 가관이었다.

    저놈한테 알고도 돈을 뜯겨야 한다니.

    그것도 두 번이나!

    난 얼굴을 구기며 그 앞에 앉았다.

    “재미있는 이야기 좀 해줄 수 있어요?”

    내 말에 음유시인 NPC가 눈을 떴다.

    그러더니 우리 둘을 보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

    “흥, 입이 말라붙어서 이야기 같은 건 못 해.”

    말라붙었는데 대답은 어떻게 하십니까?

    심지어 파티면 파티 인원수대로 돈을 받는 이 철저한 NPC에게 결국 내가 골드를 꺼내주려는 때였다.

    불쑥 네드 님이 물었다.

    “라비스를 먹일까요?”

    “먹…… 어?”

    어라? 난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이놈한테 라비스 먹여볼 생각을 안 했네?

    그야 당연했다.

    내가 원래 캐릭터 상태였다면 이놈 근처에 올 일이 없었을 테니까.

    게다가 내가 이놈한테 말을 걸어야 할 시나리오 퀘스트를 하고 있었을 땐, 호감도 시스템이나 라비스 같은 게 없었다.

    “먹여 보죠.”

    난 유네리아의 시스템에 거의 적응한 것 같은 네드 님을 감동스러운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그러는 동안 실험정신 철저한 네드 님이 주머니에서 라비스 병을 꺼내 들었다.

    * * *

    그리고 몇십 분 후.

    우리는 음유시인의 일대기를 듣고 있었다.

    “내가! 옛날엔! 그냥 길거리에 나앉아 아무것도 못 하는 놈이었다 이 말이야!”

    거나하게 취하신 음유시인 NPC께서는 전혀 궁금하지 않은 정보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길에서 안 팔아본 게 없었지. 강물 떠다가 성수라고 팔아도 보고, 그냥 집 공기 담아다 천상계 공기라고 갖다 팔기도 해 보고…….”

    그냥 사기꾼 아니냐? 그렇게 아련한 얼굴로 사기 경력 읊지 말아 줄래?

    “하지만 모두 실패했지. 아무도 사는 자가 없었어.”

    샀겠냐?

    “그런데 그때! 내 인생에 빛이 들었지.”

    그러면서 음유시인 NPC가 눈을 반짝였다.

    그런 그의 이야기를 네드 님은 흥미롭다는 듯 고개까지 끄덕여가며 이야기를 들어 주고 계셨다.

    그래서 더 떠드는 듯했다. 라비스 한 100개는 먹은 것처럼 말하네, 저놈.

    그래서 크리스탈 정보는 언제 줄 건데?

    내가 눈살을 찌푸리려는 때였다. 음유시인 NPC가 별안간 우리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비-밀스러운 힘을 가지게 됐다 이 말일세.”

    그런 게 있으면 음유시인은 왜 하고 있냐?

    지난 사기 경력을 듣고 나니 이놈의 말에서 신뢰도가 팍팍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놈이 제대로 하는 거라고는 정보 전달밖에 없―

    “내가 어떻게 대륙 각지의 이야기를 곧바로 알게 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음유시인 NPC가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난 그 말에 멈칫했다.

    그야 NPC니까……라고 넘기고 살았는데 그것도 이유가 있었어!?

    내가 눈썹을 치켜올릴 때였다.

    네드 님이 답했다.

    “궁금합니다.”

    그러게. 나도 궁금하네.

    네드 님의 흥미롭다는 눈과 약간의 흥미를 담은 내 눈이 음유시인 NPC를 향한 순간이었다.

    [‘천리안’ 스킬의 단서를 얻었습니다.]

    “어?”

    난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천리안? 이거 오래전에 사라진 스킬이잖아?

    멱살잡이와 비슷하게 사장된 스킬이었지만 이유는 달랐던 스킬.

    멱살잡이야 그냥 사람 집어 던지는 게 전부였지만 천리안은 너무 사기라서 사라진 스킬이었다.

    특정 조건만 충족하면, 그곳에 가지 않아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영화처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천리안으로 시간당 50골 비바스 보스룸 모니터링해주실분]

    [천리안알바구합니다]

    얻기는 어려웠지만 성능은 확실한 이 스킬은 아르바이트 시장까지 만들어 버렸다.

    원래 규칙 없이 랜덤하게 등장하는 보스 몬스터가 등장했는지 모니터링하는 아르바이트로.

    특히 당시 인기였던 보스 몇 종류는 그 방에 10분 정도만 있을 수 있는 데다가, 미로를 뚫고 들어가야 해서 들어가기도 어려웠다.

    갔다가 없으면 10분 대기 타다가 그냥 공치고 나와야 했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그 상황에 직접 가 보지 않고도 보스가 떴는지 안 떴는지 볼 수 있는 천리안 스킬은 가히 사기였다.

    [드디어 생활이 가능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보스룸에서 숙식 안해도 된다 갓진석]

    [킹갓제네럴진석]

    [게임의 신 ‘강진석’]

    유네리아 유저 게시판이 그렇게 디렉터에게 호의적이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물론 그게 지나치게 사기인 데다가, 유저들의 동시접속 수를 줄인다는 걸 깨달은 강진석 디렉터는 그 스킬을 전부 회수해 버렸다.

    [줬다 뺏는 게 어딨냐고]

    [더이상 유네리아는 갓겜이 아니다]

    [현시각 보스룸 파밍 현황....jpg]

    [누구 맘대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천리안퀘템 환불좀]

    당연히 게시판은 불탔고 보스룸에서 아이템을 파밍하는 유저들은 다시 발바닥에 불나게 뛰어다니게 되었다.

    [스킬 ‘천리안’이 삭제됩니다.

    - 운영팀에서는 스킬 ‘천리안’이 기획의도와 다르게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 395Lv. 서브 퀘스트 ‘멀리서 내려다보는 세상’ 퀘스트 보상으로 지급되었던 ‘천리안’ 스킬이 삭제됩니다.

    - ‘멀리서 내려다보는 세상’ 퀘스트의 보상이 ‘단안경’ 아이템으로 변경됩니다.]

    기획 의도가 대체 뭐였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천리안 사건 하면 유명했다.

    천리안 퀘스트를 클리어하려면 5만 원짜리 ‘망원경’ 아이템을 캐시로 구매해야 했는데, 그 아이템을 환불해 주지도 않았던 것이다.

    이유야 이러했다.

    [안녕하세요, 환상의 대륙 유네리아의 GM! 네리아입니다.

    ‘멀리서 내려다보는 세상’ 퀘스트에 사용된 ‘망원경’ 아이템의 환불에 대해 문의 주셨는데요^^

    유저님께서 해당 아이템을 구매하신 목적이 ‘멀리서 내려다보는 세상’을 클리어하기 위함인지 확인하기가 어려워 해당 부분은 환불이 어려움을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즐거운 대륙 탐험! 유네리아 대륙의 네리아GM이었습니다^^]

    망원경 그 쓰레기템을 사는 이유는 정말 천리안퀘 하나밖에 없었지만 아무튼 딴 데도 쓸 수 있으니 환불은 못 해주겠다는 대응이었다.

    새삼 빡치네?

    그 망원경이 아마 내 아이템창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터였다.

    근데 다시 천리안을 푼다고? 설마 또 사기로 내놓고 회수할 거 아니지?

    너도 진석이랑 같은 짓 할 거 아니지? 용진아 믿는다?

    난 바뀐 지 얼마 안 된 현 디렉터의 이름을 뇌까리는 동안 음유시인 NPC가 말했다.

    “이 능력만 있으면 뭐든 볼 수 있지…… 대륙 어디에서 일어나는 일이든 말이야.”

    확실히 내가 아는 그 천리안 스킬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그럼 여기서 문제가 있었다.

    “근데 그런 능력으로 왜 1골드만 받는 음유시인 하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