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화 (42/112)
  • <42화>

    ―꼭 열어야겠나?

    그는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러고는 문을 돌아보았다가, 어느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잠깐, 그 불결한 인간이 내 봉인에……!

    봉인을 훼손했다더니 뭔가 결정적인 걸 발견한 모양이었다.

    ―봉인을 감히 교묘하게 바꿔 놔!?

    불결한 인간이라고 해 봐야 떠오르는 건 리리스뿐이었다.

    엘데는 내가 더 말하지 않아도,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구름문 앞을 앞발로 내리쳤다.

    그러는 순간.

    ―쿠르르릉!

    [문을 감싸고 있던 푸른 마력이 해제되었습니다.]

    [‘구름문’이 개방됩니다.]

    “오.”

    내가 짧게 감탄하는 사이,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폐쇄되어 있던 구름문 안쪽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런데.

    “어?”

    그 모습에는 네드 님과 엘데뿐만이 아니라 나와 비상식량까지 놀라 버렸다.

    “저건…….”

    우린 누가 뭐라고 할 틈도 없이 구름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구름문 안엔 네 마리의 용이 죽어 있었다.

    그것도 나란히, 회색으로 굳어서.

    ―크오오오오……!

    분노한 엘데가 울부짖었다.

    ―감히, 감히……!

    그가 용들을 살피는 사이 난 용들에게서 기이함을 느꼈다.

    용하고 수도 없이 사냥을 가본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용이 저런 모습으로 죽는 건 딱 한 경우뿐이다.

    “이거 출혈 디버프로 사망한 것 같은데.”

    요컨대 피 빨리다 죽었다는 소리다.

    내 말에 네드 님이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주변에 싸운 흔적이나 피를 흘린 흔적은 없습니다. 죽을 정도로 피를 빼 갔다면 분명히 용들이 움직였을 텐데.”

    “그야…….”

    출혈 디버프는…… 원래 쥐도 새도 모르게 생겨서 남의 HP를 채워주는 스킬이니까?

    몹한테 빨대 꽂고 출혈 쓰는 건 아니니까 흔적이 안 남을 법도 한데.

    잠깐.

    그럼 피를 마신 놈이 있겠네?

    “그럼 용의 피를 마신 사람이 있다는 거네요?”

    유네리아의 설정상 용의 피를 마시는 건 죽겠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용의 힘을 견디지 못한 신체가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사망 처리되거든.

    근데 그걸 먹고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

    “일단 리리스는 마셨을 것 같네요.”

    여기 들어와서 죽은 용 두고 셀카 찍고 나가진 않았을 거 아냐?

    차라리 용을 죽인 게 리리스라고 보는 쪽이 현명했다.

    “그리고.”

    회상에서 본 켄의 모습.

    어느 순간부터인가 강해진 데다가, 리리스가 죽어가는 켄을 살릴 때 썼던 붉은 마법.

    그게 그냥 네크로맨서 마법이라서 빨간색인 줄 알았더니, 흡혈 버프 비슷한 거였어?

    “켄도 마셨을 것 같은데.”

    아니면 갑자기 동네 청년이 기사단장이 되는 것도 이상하고, 무엇보다.

    ‘하아!’

    그의 검에서 뻗어 나오던 물 속성의 공격.

    “원래 NPC는 속성공격을 못 하거든요.”

    내 말에 네드 님이 눈을 크게 떴다. 그도 켄의 물 속성공격을 봤을 테니까.

    모험가도 아닌 NPC가 어떻게 속성공격을 했나 했는데, 만일 물 속성의 용의 피를 먹었다면 가능할 수도 있었다.

    ―희생된 용은 이 넷뿐이군.

    그때 안쪽까지 돌아보고 온 엘데가 비참한 얼굴로 말했다.

    “네 명만 피를 마셨다는 거지?”

    내 말에 엘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네드 님은 고개를 기울였다.

    “한 명이 여러 번 마셨을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하긴 맛집 한 번만 가진 않지.

    내가 고개를 끄덕일 때 엘데가 눈살을 찌푸렸다.

    ―용조차도 다른 용의 피를 마실 수 없다. 피가 서로 부딪혀 몸에 해롭기 때문이지. 그런데 인간이 둘 이상의 피를 취했을 리가.

    펄럭! 날개를 펼쳐 보인 엘데가 말을 이었다.

    ―힘을 원하는 자라면 한 마리만 취했을 것이다. 어떻게 인간이 용의 피를 마시고 살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선 시대엔 사약 먹고 안 죽은 사람도 있었다는데, 뭐 별의별 사람이 다 있겠지.

    난 볼을 긁적였다.

    “그럼 용의 피를 마신 게 둘은 더 있다는 거네?”

    일단 켄하고 리리스의 경우를 보았을 때 그들은 보나 마나 엄청 강해졌을 것이다.

    내가 그 말을 한 순간이었다.

    [퀘스트 ‘폐쇄된 하늘다리의 인간들’ 클리어!]

    [메인 퀘스트 ‘용의 피를 취한 인간들’을 입수했습니다.]

    [용의 피를 취한 인간들

    - 용의 피를 마신 인간 4명 찾기

    - 켄, 리리스, ?, ?]

    퀘스트창이 번쩍거렸다.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퀘스트창을 끄고 있을 때였다. 네드 님이 용들을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용들의 색이 모두 다릅니다.”

    “그건 아마 속성 차이…… 오.”

    어차피 유저의 레벨이 높아질수록 용이 무슨 속성인지는 별 상관이 없어지게 된다.

    때문에 용의 색은 그냥 본인 룩과 얼마나 색이 잘 맞느냐 정도의 의미밖에 없었다.

    하지만 퀘스트가 이런 식으로 굴러간다면?

    “켄이 물 속성 스킬을 썼고, 리리스가 하늘 속성 스킬을 썼거든요?”

    불 속성 스킬도 쓰긴 했지만 분명 직접 공격하는 근접 공격 스킬은 모두 하늘 속성이었다.

    데미지가 하늘색으로 떴던 게 기억나니 분명했다.

    “흐음.”

    난 용들을 살폈다.

    회색빛으로 탁하게 변했다고 해도 기존 색이 무엇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네 마리 각각 푸른색, 하늘색, 붉은색, 연녹색.

    이 말인즉슨.

    ―각각 물 속성, 하늘 속성, 불 속성, 바람 속성의 용들이로군.

    엘데가 말했다. 나와 네드 님의 시선이 마주쳤다.

    “용의 피를 마셔서 해당 속성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하면, 물 속성과 하늘 속성 용의 피는 켄과 리리스가 마셨다고 보는 것이 맞겠군요.”

    네드 님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람하고 불 속성 스킬 쓰는 NPC만 찾으면 되겠네요.”

    그러다가 난 멈칫했다.

    잠깐.

    “크리스탈도 마침 불이랑 바람 속성 남았는데?”

    이건?

    내 감이 말하고 있었다.

    “크리스탈 갖고 있는 애들이 용의 피도 마셨나 본데요?”

    ―그놈들을 당장 죽여 용의 분노를 보여 줄 것이다!

    엘데가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용의 분노는 모르겠고 난 그걸 말리지 않았다.

    어쨌든 모로 가도 불하고 바람 속성 크리스탈만 얻을 수 있으면 유네리아 탈출의 꿈도 순식간이니까.

    “그럼 최근 불 속성이나 바람 속성을 얻은 NPC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네드 님이 말했다. 합리적 추론에 박수!

    하지만 그는 곧 고민에 빠졌다.

    “이런 곳에선 정보 수집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말에 난 눈을 찡긋했다.

    “그건 아주 기가 막힌 방법이 있죠.”

    “?”

    네드 님이 눈을 깜빡였다.

    * * *

    우린 일단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남은 크리스탈이 두 개인데, 그게 불이랑 바람이라.”

    난 아까부터 용족의 욕인지 유네리아의 친절한 필터링 서비스인지, 아무튼 욕인 게 분명한 소리를 지껄이며 날고 있는 엘데의 등 위에서 고민했다.

    “원래 유니 님이 알고 계시던 스토리 내용과 같습니까?”

    네드 님이 물었다. 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원래 알라반 다음이 불 속성 크리스탈 얻으러 가는 건 맞아요. 문제는.”

    난 눈살을 찌푸렸다.

    “위치가 바뀌었을지도 몰라요. 원래 교황청 지하에 크리스탈이 있었어야 했는데 없었던 걸 보면.”

    “음…….”

    네드 님의 표정이 덩달아 심각해졌다.

    “역시 정보가 더 필요하겠군요.”

    “그래서 그걸 얻으러 우리가 날아가고 있죠.”

    그렇게 가라앉은 표정 안 지어도 됩니다! 내가 눈을 찡긋했을 때였다.

    [‘테리반 성’에 진입합]

    [니]

    [합니]

    [진입합니다.]

    렉이 걸렸다. 그리고 아마도 목만 남았을 나와 눈이 마주친 네드 님의 얼굴이 하얘졌다.

    릴렉스, 원래 자주 날아다닙니다, 예.

    ―탁!

    몸이 붙었는지 시야가 살짝 흔들리며 다시 잡혔다.

    난 하얘진 네드 님의 눈을 가려주었다.

    레드썬.

    그러면서 말했다.

    “어쨌든 정보는 테리반 성에서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이곳에 뭔가 있습니까?”

    “있죠. 유네리아 최고의 정보통이.”

    유네리아엔 이런 말이 있다.

    뭘 모르겠으면 음유시인을 찾아가라. 다 불어줄 것이다!

    “?”

    네드 님이 내 손 안에서 눈을 깜빡이는 게 느껴졌다. 난 그제야 아차 했다.

    “아, 네드 님은 본 적이 없으시겠구나?”

    메디카 스타트였으면 당연히 못 봤지! 난 네드 님의 눈에서 손을 떼고 말했다.

    “그 NPC 덕에 네드 님 찾아갈 수 있었던 거예요. 북쪽 군도에 계실 때.”

    “오…….”

    네드 님이 눈을 크게 떴다. 눈이 좀 반짝이는 게, 아무래도…… 기대하시는 듯했다.

    “감사한 NPC군요.”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난 멈칫했다. 그리고 급히 말했다.

    “가면1골드달라고할건데거기다가10만골드줄수있다고말하면안돼요.”

    내 말에 네드 님이 눈을 크게 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명심하겠습니다.”

    웃지 마요! 나 진지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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