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화 (41/112)

<41화>

―그래도 그 후엔 인간들의 수가 줄어들더군.

그야 그랬겠지…… 원래 레벨 제한이 없던 천상계가 레벨 제한 300이 생긴 게 그때였으니까.

[이XX들 유료펫 팔아먹으려고]

[게임사 이름 영원히 바꾸지 마라 진짜]

[유얼머니게임즈 레전드 ㅋㅋㅋㅋㅋㅋㅋ]

유저들은 펫 팔아먹으려고 패치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이런 아련한 사정이 있었…… 다고 믿게 하려는 거지, 이놈들!

어차피 세상은 다 어른의 사정과 돈의 논리로 굴러가는 거다!

그래도 이런 걸 스토리로 만들어 준다니 좀 감동이었다.

돈 때문에 그런 거라는 오해를 받는 것보단, 이런 설정이 있으면 얘들이 몰입감을 좀 옆구리에서 찾는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실제로 있는 세계처럼 느껴지게 되니까.

―그런데 그 폐쇄된 하늘다리에 오가는 인간들이 있다니, 불쾌하기 짝이 없군. 어차피 인간들은 그곳에 들어가지도 못할 텐데.

그러게, 막혔는데.

난 볼을 긁적였다.

“그러게, 어차피 입장도 안 되는데.”

내가 아는 폐쇄된 구름다리 위는 버려진 맵이었다.

[천상계 용 NPC가 유저 공격하는 버그]

어느 정기점검날 이후.

원래 메인 퀘스트 때만 깨어나 유저를 공격해야 하는 엘데는 다짜고짜 하늘다리 위로 올라오는 유저들을 다 밟아 버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유저들의 수많은 버그 신고가 들어갔다.

그랬더니.

[패치 내용

- ‘천상계’ 지역으로 진입하는 ‘하늘다리’의 위치가 변경됩니다.

※기존 ‘하늘다리’는 ‘폐쇄된 하늘다리’로 이름이 변경되며, 진입하실 수 없습니다.]

유네리아는 그 맵에서 엘데를 삭제하는 대신 하늘다리 위치를 바꿔 버렸다.

이건 또 무슨 대처인가 싶어 달려가 본 유저들은 아연실색했다.

폐쇄된 하늘다리 쪽이 보이는 천상계 위쪽에서 내려다보면, 엘데는 여전히 분노해서 그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운영자도 올라가서 밟힌 거 아니냐]

[역대급 버그패치 ㅋㅋㅋㅋㅋ]

유저 게시판은 들끓었지만 유네리아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폐쇄된 하늘다리가 생긴 이후, 일부 유저들은 이후 스토리와 관련된 일시적 이벤트였을 가능성을 내어놓았다.

하지만 그건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아무 쓸모도 없는 맵이었는데…….

이렇게 메인 퀘스트에 끼워 넣는다고?

“아무튼 근처 마을부터 탐색해 보죠. 오가는 사람들이 있으면 거기 NPC들이 봤을 테니까.”

난 네드 님을 이끌었다. 우리 앞에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메인 퀘스트 ‘하늘다리’ 클리어!]

[메인 퀘스트 ‘폐쇄된 하늘다리의 인간들’을 입수했습니다.]

* * *

폐쇄된 하늘다리 근처에는 죽어가는 상가가 있었다.

한때는 유저가 붐비는 곳이었으니 이곳의 NPC들도 돈깨나 만졌을 것이다.

하지만 엘데가 날뛰면서 오는 사람이 뚝 끊기자, 먹고살 길도 서서히 끊겨 간 것이다.

재앙이란 늘 그렇듯 준비할 틈도 없이 벌어진 일이라, 상가에서 이사 갈 사람은 가고 돈이 없는 자들은 이사 갈 돈도 없어 남아 버렸다.

그대로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는 폐쇄된 하늘다리의 NPC로 처박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덕에 그들은 이곳을 오가는 외부인들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외부인?”

그렇게 묻자 우리를 의심스럽게 보던 NPC 마록은 라비스를 하나 먹더니 술술 불기 시작했다.

“처음엔 붉은 머리 여자가 왔지.”

나와 네드 님은 그 말에 움찔했다.

“리리스일까요?”

네드 님이 날 돌아보았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정황상 그게 맞을 것 같긴 한데…….”

여기서 갑자기 붉은 머리 여자 보스몹을 하나 더 넣진 않을 거 아냐?

리리스가 쌍둥이라는 설정이라면 모를까.

“으음.”

하지만 설정상 알라반엔 붉은 머리가 많았다.

이곳에 왔던 자가 리리스인지 아닌지 가려내려면 여러 가지 증거를 수집해야 할 터였다.

[퀘스트 ‘폐쇄된 하늘다리의 인간들 : 행적’을 입수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퀘스트가 떴다. 난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런 퀘스트는 귀찮게 여기저기 들르라고 시킬 텐데.”

난 고민하다가 네드 님을 돌아보았다.

“그냥 하늘다리 퀘스트 패스할까요? 어차피 메인 퀘스트긴 해도 여긴 크리스탈이 있을 만한 건덕지가 없거든요.”

아무리 크리스탈이 박혀 있는 위치가 바뀌었다고 해도, 크리스탈이 존재하려면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했다.

이걸 아는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크리스탈 관련 NPC 호감도 다 뚫어서 물어봤거든요?’

할 짓 없어서 NPC 공략하고 다니던 에이리 님이 말해 줬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에이리 님의 말에 따르면, 크리스탈이 존재할 수 있는 곳의 조건 중 하나가 일단 인구가 많을 것.

……인데 이 근처엔 인구가 없잖아?

“그냥 패스하고 남부 가도 퀘스트가 뜰 것 같―”

난 거기까지 말하고 말을 멈추었다. 네드 님을 돌아보니 그는 노트에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서서설마?

“혹시 이렇게 생긴 여자입니까?”

아주 잠깐 동안에 선 몇 개가 그어져 순식간에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건 당장이라도 ‘꺄하하하!’ 하고 웃을 것 같은 리리스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난 입을 떠억 벌렸다.

그리고 NPC 마록도 입을 떠억 벌렸다.

“맞, 맞습니다! 이 여자입니다!”

[퀘스트 ‘폐쇄된 하늘다리의 인간들 : 행적’ 클리어!]

[Level up!]

이걸 이렇게 클리어한다고?

하지만 몽타주라고 주장하기에는 거의 증명사진이나 다름없는 그림을 보고도 모르면 NPC 마록의 시력에 문제가 있는 것일 터였다.

“정말…… 기가 막히게 잘 그리시네요.”

내가 감탄하자 네드 님이 웃었다.

“가끔 취미로 그렸습니다.”

“……취미요?”

“네.”

네드 님이 진지하게 답했다. 난 그의 그림을 다시 쳐다보았다.

당장 리리스 소환진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취미의 정의가 저와 다르신 게 아닐까요?

* * *

아무튼 네드 님 덕에 번거롭게 행적을 찾는 퀘스트는 생략되었다.

“이 여자뿐만이 아니었소. 몇 명 정도 더 왔는데…….”

NPC 마록은 고개를 흔들었다.

“가끔 오는 관광객들과 구별은 힘들겠어.”

“관광객이 와요??”

여길?? 왜?? 길 잘못 찾아서?

내가 의아해하자 마록은 어깨를 으쓱했다.

“분위기가 좋아서 사진을 찍으러 왔다더군.”

“아.”

여기 커플 스크린샷 명소였지.

“근데 이 여자는 잊을 수가 없군. 일단 분위기가 너무 무서워서…….”

마록은 네드 님이 그린 리리스의 그림을 보다가 어깨를 문질렀다.

“집 밖으로 나오기조차 두려울 정도였다네.”

“아하.”

마력이 엄청나게 강한 사람이 지나가면 그런다는 설정이 있었던 것도 같았다.

어쨌든 그 뒤로 마록은 리리스가 얼마나 무서웠는지만 말하기를 반복했다. 이 NPC에게서 더 정보를 얻긴 그른 듯했다.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아무튼 그곳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폐쇄된 하늘다리에 가보는 게 좋을 거요.”

그야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그는 묘한 단서를 덧붙였다.

“그 리리스…… 라는 여자를 포함해서, 폐쇄된 하늘다리에 갔다가 돌아온 자는 없었거든.”

[퀘스트 ‘폐쇄된 하늘다리의 인간들 : 조사’를 입수했습니다.]

안 돌아왔다고? 그럼 거기 살림이라도 차렸다는 거야, 뭐야?

가면 리리스 살림살이 구경할 수 있는 거?

나와 네드 님의 시선이 마주쳤다.

* * *

엘데는 적당한 펫 크기로 키우고, 비상식량도 오랜만에 네드 님을 태우고 날아올랐다.

우리가 향한 곳은 당연히 폐쇄된 하늘다리 쪽이었다.

중간에 다리가 잘려 끊어져 있는 게 보였다.

알라반 왕에 의해서 하늘다리가 폐쇄된 흔적이었다.

[‘구름문’에 진입합니다.]

그때 알림창이 떴다.

그러면서 서서히 하늘에 떠 있는 푹신한 구름 한 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게는 익숙한 곳이었다.

한때는 여기로 사냥도 많이 왔었으니까.

[구름문]

하지만 그때는 열려 있던 구름문은 지금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리고 전투의 흔적도 남아 있었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의 손톱이 긁고 지나간 것처럼, 거대한 석문에 나 있는 자국이 거칠었다.

―……이곳은 오랜만이군.

그때 엘데가 뇌까렸다.

난 구름문을 살폈다.

[마력으로 봉인되어 있습니다.]

그러자 알림창이 문의 상태를 알렸다. 난 눈썹을 치켜올렸다.

파란색 마력인 걸 보니 물 속성 마력인 것 같은데…….

난 문득 엘데의 푸른 등짝을 내려다보았다.

잠깐, 엘데도 물 속성이잖아?

“혹시 네가 구름문을 봉인한 거야?”

내 말에 엘데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는 황당하다는 얼굴이었다.

―당연히. 그리고 이곳의 봉인은…….

푸드덕! 다시 날개를 펼쳐 날아오른 엘데가 구름문 앞에 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마력으로 막힌 문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훼손된 흔적이 있군. 안쪽으로 들어간 인간이 있다는 거다.

“훼손?”

근데 지금은 멀쩡하게 봉인되어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문을 살필 때였다.

“봉인을 직접 하셨다면, 푸실 수도 있습니까?”

그때 네드 님이 물었다. 엘데가 날개를 활짝 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오…….”

원래 퀘스트 대로라면 여기 들어온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구름문 근처를 탐색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을 봉인한 엘데가 직접 문을 열어 버린다면?

당연히 탐색은 쉬워진다.

아무리 이 근처에 스크린샷 찍으러 오는 커플이 많다기로서니, 구름문 안쪽까지 들어가진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리리스가 여기서 사진만 찍고 갔을 리도 없고.

결국 이 구름문 안에서 수상한 일을 한 놈들의 흔적만 구름문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거란 소리였다.

“열어 줄래?”

내 말에 엘데가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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