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하지만.
강이현.
그는 현실의 제 이름을 뇌까리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쯤 뉴스에 무슨 기사가 실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 천재 기업인 강이현이 게임 하다가 쓰러졌다고?
<‘천재 기업인’의 추락?>
그는 온갖 안 좋은 기사들의 헤드라인이 눈앞에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현실감이 확 드는 것 같았다.
‘실수해도 돼요. 사람이 뭐 그렇지.’
‘실수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연하다는 듯이 실수를 허락받았던 건 강이현이 아니라 네드였다.
그는 현실로 돌아가는 순간 다시 강이현이 되고, 실수 없는 완벽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이 덧씌워질 것이다.
부모님의 시선도, 주변 사회의 시선도 항상 그 기대를 가지고 그를 따라다닐 것이다.
“…….”
네드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아는 세계는 고운 척 착한 척 상대를 대하면서, 상대가 실수하거나 제게 밑지기만을 기다리는 피라냐들의 세계였다.
실수는 곧 약점이 되는 세계.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깼다.
그는 그 세계에서 잠시만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 세계 밖에 있는 이 사람에게까지, 그런 기대를 받고 싶지 않았다.
아.
그는 짧게 숨을 내뱉었다. 문득 세상이 좁아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제게 첫 위로를 건넸던 사람, 그리고 제게 ‘실수’를 허락해준 사람.
적어도 세상에는 두 개의 숨구멍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세상에 오직 숨을 쉴 만한 곳은 한 곳뿐이었다는 것이.
눈앞이 어두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보다 간절해져 버렸다. 그가 유니를 바라보았다.
제 어두운 세상에 내려온 반짝이는 빛 한 줄기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 *
“제가 알던 거랑 퀘스트 시작이 좀 다르긴 하거든요?”
나는 만찬 자리에서 나오면서 네드 님에게 말했다.
“…….”
네드 님은 흔치 않게 그런 내 말을 듣지 못하신 듯했다.
“네드 님?”
내가 재차 부르자 네드 님이 뒤늦게 반응했다.
“……아.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그는 엄청 곤란한 얼굴이었다. 사람이 좀 멍 때릴 수도 있지.
“전에 제가 했던 퀘스트랑 내용이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고요.”
“아.”
네드 님은 내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 말씀하신 대로라면 남부에 크리스탈이 있어야 하는데, 지도에 표시된 하늘다리 위치는 남쪽이 아니라 남서쪽에 가깝군요.”
“맞아요. 원래 하늘다리 가는 내용이 없었는데.”
그때 주머니 속의 엘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이번엔 그를 막지 않고 주머니를 열어 주었다.
―나를 막다니!
“거기서 튀어나왔으면 우린 지금쯤 지하 감옥이었을걸?”
내 말에 네드 님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이었다.
“하늘다리 박살 낸 푸른 용이 엘데거든요.”
난 네드 님께 한마디로 설명을 끝냈다.
“……!”
네드 님은 놀란 듯 엘데를 올려다보았다.
“그렇다면…… 엘데는 메인 퀘스트와 관련된 NPC가 아닙니까?”
“그런 셈이죠.”
네드 님이 감탄한 얼굴로 날 돌아보았다.
하긴, NPC를 어떻게 조련했는지 궁금하실 터다.
이게 다 유네리아의 자유도를 이용한 변칙적 플레이 아니겠습니까?
“대단한 용이었군요.”
하지만 네드 님은 순수하게 엘데의 능력치에 감탄한 듯했다.
물론 펫으로 쓸 용치고는 능력치가 너무 사기긴 한데, 왜…… 왜 이렇게 떨떠름하지?
―크흠. 이제야 알았느냐?
우쭐한 얼굴로 엘데가 날개를 펴기 때문인가?
네드 님의 답에 엘데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자신에 취한 사이, 난 네드 님에게 말했다.
“아무튼 이번 퀘스트 쭉 밀면 남부 크리스탈도 얻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럼 크리스탈 하나만 남게 돼요.”
그거까지 구하면 유네리아 운영팀에 깽판치고 깽값 물어주러 갈 수 있다!
내가 밝은 얼굴로 말하자 네드 님이 온화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는군요. 수월하게 진행되어서 다행입니다.”
“수월…….”
……한가?
하긴 북쪽에서 크리스탈 날로 먹고 초보 마을에서 날로 먹은 거 생각하면 수월하게 진행한 건 맞았다.
잠깐.
이렇게 중간까지 난이도가 쉽다는 이야기는?
난 불길함을 지우려 애써 미소를 지었다.
유네리아 10년 차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보통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리면, 마지막에 X 같은 걸 박아놓던데……?
난 내 감이…… 부디 틀리길 바라며 엘데의 등 위에 올라탔다.
―이 몸의 위대함을 아는 인간이니 특별히 태워 주는 것이니라.
예누스 정제육의 위대함 아니고?
―슈웅!
확실히 속도 하나는 위대한 엘데는 빠르게 우리를 목적지로 데려다 놓았다.
[‘하늘다리 : 인근 지역’에 진입합니다.]
―이곳에 침입자가 있었다니, 불쾌하기 짝이 없군.
하늘다리 근처에 내려앉자마자 엘데가 한 말이었다.
아까 용케 주머니에서 안 튀어나온, 아니 못 튀어나온 그였다.
―펄럭!
크게 날개를 펼쳤다가 접은 엘데를 보면서 난 멈칫했다.
아까는 정신없어서 생각하지 못했는데, 알라반 근처에서 저 푸른 날개가 펼쳐졌으니 알라반은 한바탕 난리가 났을 게 분명했다.
재앙이 다시 도래한다! 지진이 온다!
이러면서.
……빨리 알라반에서 떠야겠군.
“폐쇄된 하늘다리 말이지?”
난 눈앞에 있는 뭉게뭉게 구름다리를 올려다보았다.
저건 내가 전에 갔던 신버전(?) 구름다리고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좀 더 외진 곳에 존재했다.
―그렇다.
액세서리 크기로 작아져 내 어깨에 올라온 엘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네드 님이 물었다.
“폐쇄된 하늘다리라는 건……?”
“아, 원래 이 위에 천상계라는 곳에 올라가려면 하늘다리라는 데를 거쳐야 했거든요?”
내 말에 엘데가 날 돌아보았다.
별로 마음에 안 든다는 기색이었다. 난 그런 그와 눈을 마주치면서 말했다.
“그런데 거기서 몇 년 전에 오류……가 나서 푸른 용 하나가 날뛰는 바람에 유저들이 다 죽어 나간 적이 있어요.”
“푸른…… 용 말씀이십니까?”
네드 님의 시선이 엘데에게로 향했다. 진청색의 용.
“네.”
뭔 생각이 드신다면 그 생각이 맞습니다아.
그때 엘데가 한껏 고개를 쳐들며 날개를 퍼덕였다.
―내 이야기로군.
그의 말을 들은 네드 님이 엘데와 날 번갈아 보았다.
“오류……?”
의아한 얼굴에 난 어깨를 으쓱했다.
“여튼 그땐 오류로 알려져 있었어요.”
지금 와서 세계관상 알라반 역사에 편입될 줄은 몰랐지만.
잠깐.
그렇게 생각하던 난 멈칫했다.
이놈들 오류인 거 인정하기 싫어서 그냥 끼워 넣은 거 아니냐?
이게 바로 유저 죽이고 외양간 고치기?
―인간과 용은 원래 만나선 안 될 존재다. 그런데 하찮은 인간들이 하늘다리 위의 존재들을 감히 길들이려 하다니!
그때 엘데가 갑자기 급발진하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함께해 봐야 하등 쓸모없는……!
이러다가 동네 사람들 다 쫓아오겠네!
[예누스 정제육]
난 아이템창의 고기를 하나 꺼내 그의 입에 물려 주었다.
우물우물.
갑자기 말하다 말고 고기를 받아먹은 엘데가 헛기침을 하더니, 목소리를 좀 가라앉혔다.
―……아무튼 용의 수명은 길다. 인간과 함께해 봐야 좋을 것이 없지.
하등 쓸모없다는 말은 예누스 정제육을 주면서 취소된 모양이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내가 감동받는 사이 엘데가 우리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더니 준비되지 않은 우리 앞을 팩트로 내리쳤다.
―어차피 너희는 줄곧 존재하다가 어느 순간 말도 없이 사라져, 돌아오지 않을 것 아니냐?
“예?”
네드 님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난 그 말을 곧바로 알아들었다.
설마 이거, 접는 거 이야기하는 건가?
―너희는 어느 순간 기별도 없이 우리 옆에서 사라지지. 그럼 용들은 기약 없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엘데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동안 너희를 주인이나 친구랍시고 살갑게 대하던 용들은 새까만 공간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리될 바에야 아예 인간과 연을 맺지 않는 게 이롭지.
“……!”
네드 님은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유저가 접으면 잠이라도 자게 해주든가! 그런 설정이었어?
용들의 네버랜드라도 만들어 주면 곤란했던 거야?
―뀨우.
그 순간 네드 님의 어깨 위에 있는 비상식량과 눈이 마주쳤다.
저거 진짜야?
그렇게 묻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비상식량은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진짜면 비상식량한테 좀 미안……해하기엔 난 풀접이었다.
난 당당하다!
―그래서 하늘다리에 올라오는 인간들을 모조리 쓸어 버렸지. 다른 곳에 하늘다리를 만들 줄은 몰랐지만.
엘데는 분노한 듯 내 어깨 위에서 발을 굴렀다.
물론 쪼끄만 상태라서 데미지는 별로 들어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