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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39/112)
  • <39화>

    네드 님의 말에 왕의 눈에선 하트가 나올 기세였다.

    “왕국민들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그들을 생각하신다는 것을요.”

    난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제가 알라반 왕국민이니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네드 님을 흘끗 보니, 네드 님이 감사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해왔다.

    왕은 내 말에 감동받은 듯했다.

    “그래, 이렇게 짐을 알아주는 왕국민들이 있으니, 힘내야겠지.”

    그가 몸을 폈다. 바르르 떨리는 몸을 왕비가 도닥여주는 게 보였다.

    “이 나라의 아비 되는 자가 힘들어하면 누가 내게 기댈 수 있겠나?”

    그 말에 왕비가 고개를 저었다.

    “힘들 땐 힘들다고 하셔야지요.”

    그 말엔 나도 공감이었다.

    “맞아요, 힘들 땐 힘들다고 하세요.”

    꼭 그렇게 버티는 사람 많더라.

    “왕이 운다면 아랫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나?”

    뭐라고 생각하긴.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난 어깨를 으쓱했다.

    “전하께서도 사람이구나…… 하지 않을까요?”

    “뭐?”

    왕이 눈을 크게 떴다. 난 그런 그에게 말했다.

    “누구든 본인이 힘들면 힘든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시련을 버틸 수 있는 그릇의 크기는 다르다고요. 그리고 그 그릇이 작다고 해서, 탓하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요.”

    “……!”

    내 말에 왕이 눈을 크게 떴다.

    “왕이 무너진다면…….”

    “힘들어한다고 무너지는 건 아니니까요.”

    잠시 쉬었다가 가는 거지.

    난 그 얼굴을 보면서 생각했다.

    물……론! 비록 근래 들어 리리스한테 홀리시는 바람에 사치만 부리셔서 민심은 폭동 직전이지만, 아무튼!

    그죠? 난 갑자기 말이 없어진 네드 님을 돌아보았다.

    네드 님은 살짝 눈을 크게 뜬 채였다. 렉 걸리셨어요? 내가 네드 님을 들여다볼 때였다.

    “흐흑……!”

    감동받은 왕이 결국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그러면서 나와 네드 님 앞에 알림창이 떴다.

    [‘히든 퀘스트 : 알라반 왕의 눈물’클리어!]

    [보상 : 알라반 왕성 신뢰도 99% 고정, 알라반(알라반 소속 던전 포함)에서 얻는 경험치+50%]

    헐, 대박.

    연기한 보람이 있는 보상이었다.

    알라반에 있는 던전이 몇 갠데 경험치+50%?!

    “정말 고맙네. 그런 깊은 뜻이 있었다니……!”

    왕은 내가 입을 떠억 벌리든 말든 감동받은 얼굴로 네드 님을 쳐다보았다.

    “여튼 모험가들 덕에 알라반은 평화를 지킬 수 있었네. 정말 고맙네!”

    왕은 감동받은 얼굴로 활짝 웃어 보였다.

    [Level up!]

    [Level up!]

    [Level up!]

    ……

    레벨업 창이 십수 개는 뜬 것 같았다.

    와, 경험치 쏠쏠한데? 거의 메인 퀘스트 급이잖아?

    [유니 / Lv. 341]

    내가 레벨업에 함박웃음을 짓는 사이 왕이 말했다.

    “자네들에게 달리 줄 것은 없고…….”

    없으면 경험치 더 주시면 안 될까요?

    내가 눈을 반짝이는 사이 왕이 말했다.

    “앞으로 자네들의 이름을 알라반의 모든 이에게 알리겠네.”

    [알라반의 모든 NPC의 호감도가 10% 증가합니다.]

    “오.”

    괜찮은 보상이었다.

    “감사합니다.”

    네드 님도 호감도란 단어를 보더니 얼굴을 폈다.

    “알라반이라면 어디에서든 자네들을 용사라고 칭할 걸세.”

    [칭호 : ‘알라반의 용사’ 획득!]

    이거야 뭐 원래 주는 초반 칭호니까 넘어가고.

    그럼 이제 다음 퀘스트 하러 가면 되는 건가?

    내가 슬슬 레벨 499짜리 고오급 생선찜을 입에 집어넣을 때였다.

    “자네들 같은 용사가 전에도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갑자기 왕이 또 아련해지기 시작했다.

    왜, 또?

    “다른 근심이 있으십니까?”

    네드 님은 ‘바라는 게 뭐냐’는 말을 고급지게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난 정답을 알 것 같았다.

    NPC가 갑자기 뜬금없이 저런 얘기를 꺼내면?

    “자네는 하늘다리라는 곳을 아는가?”

    [‘메인 퀘스트 : 하늘다리’를 입수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퀘스트창이 떴다. 그럼 그렇지.

    호로록. 이번엔 내가 레벨 491짜리 파스타에 손을 뻗을 때였다.

    주머니가 꿈틀거렸다.

    ―하늘다리에 대해서라면 이 몸이……

    들어가십쇼.

    난 주머니를 잠가 버렸다.

    하늘다리 박살 낸 주범을 이 자리에서 꺼냈다간 호감도고 신뢰도고 자시고 감옥행이다!

    “어떤 푸른 용이 하늘다리를 짓밟아 버렸지. 하등한 인간들과 더 교류할 수 없다면서 말이야.”

    다시 주머니가 들썩이기 시작했지만 난 주머니를 열지 않았다.

    차차차참아!

    엘데 입장에선 억울할 것이다.

    사람들이 막 쳐들어와서 용을 펫으로 데려가는데 빡치지 않을 수가.

    게다가 엘데가 날뛰기 전까지 하늘다리 위 천상계는 최고급 사냥터로 각광 받았다.

    요컨대 인간들이 용을 학살했다는 소리다.

    하하하지만 여기서 튀어나오면 안 돼!

    내가 미안했다! 나도 거기서 사냥 좀 했다!

    “저런…….”

    물론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네드 님은 진심으로 왕 앞에서 안타까워했다.

    “그 용은 왕국의 어떤 용감한 모험가도, 기사도 잡을 수가 없었지. 그래서 결국 하늘다리를 폐쇄해 버렸다네.”

    왕이 한숨을 내쉬었다.

    네드 님은 처음 듣는 얘기겠지만 난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다른 곳에 하늘다리를 만들었는데…….”

    다시 주머니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차차참아! 릴렉스!

    내가 주머니를 누르는 순간, 왕은 의외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런데 폐쇄된 하늘다리에서 사람이 오간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네.”

    뭐라고?

    이건 나도 처음 듣는 소리였다. 주머니 속의 엘데조차도 당황했는지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런데 그에 대해 알아보라 할 겸 기사단장을 부른 이후로, 기억이 없군…….”

    왕은 다시 서글퍼진 얼굴로 우리에게 물었다.

    “폐쇄된 하늘다리는 푸른 용이 날뛴 이후로 왕명으로 출입을 금지한 곳이라네. 그런데도 거리낌 없이 오가는 자들이라면 푸른 용을 상대할 자신이 있으면서도, 이 알라반의 왕명에 반발하는 자들이겠지.”

    왕은 노한 얼굴로 말했다.

    “그들에 대해 알아봐 줄 수 있겠는가?”

    [① 네.

    ② 알겠습니다.]

    선택지가 의미가 없는 것 같은데?

    물론 메인 퀘스트이니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남부 퀘스트가 시작되었다.

    * * *

    네드는 사실 메인 퀘스트의 내용에는 크게 관심 없었다.

    어차피 퀘스트가 어떻게 진행되든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유네리아의 NPC들은 생각보다 훨씬 깊이 있게 설정되어 있었다.

    기계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마치 생동감 있는 사람처럼.

    ……유니 님과는 달리.

    그의 시선이 왕을 위로하는 유니를 향했을 때였다.

    그의 귀에 콕 박혀 들어오는 말이 있었다.

    “누구든 본인이 힘들면 힘든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시련을 버틸 수 있는 그릇의 크기는 다르다고요. 그리고 그 그릇이 작다고 해서, 탓하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요.”

    그 말에 네드는 저도 모르게 유니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힘들면 힘들다고 해요.’

    언젠가 들었던 목소리와 그 말이 완벽하게 겹쳐 들려서.

    어?

    그가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아주 가까운 과거에 저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가 잊을 리가 없었다.

    답답한 그의 삶에서, 처음으로 그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준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은혜를 갚지 못한 사람이었으니까.

    받았으면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교육을 받은 그에게, 그건 매우 마음에 걸리는 일이었다.

    ‘이 비서, 지난번―’

    병원에서 만난 간호사는?

    그래서 사직서를 내기 전, 그는 비서에게 묻고 싶었다.

    그 간호사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서.

    하지만 업무도 아닌 개인적인 일로 사람을 만나는 건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일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그 간호사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그분께는 나도 수많은 환자 중 하나일 테니까.

    ‘예?’

    ‘아닙니다.’

    그래서 이 비서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충 살아요, 대충!’

    그렇게 말하면서 웃던 그 사람의 얼굴을 네드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건 제 인생의 첫 위로였다.

    그런데 그 말이 다시 들려오고 있었다.

    그때와 똑같은 말, 똑같은 표현으로.

    그는 살짝 입을 벌렸다.

    설마.

    유니 님이, 그때 그분인가?

    네드는 유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정답을 밝혀낼 수 있는 질문을 알고 있었다.

    유니 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이름만 한 번 여쭤보면 된다.

    간호사 명찰에 있던 이름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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