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112)

<32화>

유네리아는 용 컨트롤을 따로 지원하는 게임이었다.

문제는 용 컨트롤 기능을 ON해야 가능하다는 건데, 현실화된 이 유네리아에는 그런 기능이 없었다.

그렇다면?

“비상식량, 왼쪽으로!”

명령할 수밖에.

네드 님의 명령에 이어 내가 외쳤다.

“엘데, 오른쪽으로!”

하지만 여기엔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비상식량이야 맞아보는 게(?) 익숙하니 금방 따랐지만, 그걸 명령하는 네드 님은 미안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엘데는 당연히 용미사일이 되어 본 적이 없으니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

―잔인한 인간 같으니!

“용이 방어력은 끝내주잖아.”

내가 들어가면 열댓 번은 죽어야 할걸? 그럼 대륙은 누가 구하고 예누스 정제육은 누가 주냐?

내가 엘데에게 엄지를 척 들어 보이자 엘데가 얼굴을 구겼다.

―콰르릉!

그런 엘데 위로 보스몹의 공격이 내리꽂혔다.

―흥.

엘데의 HP가 깎이는 폭이 큰 걸 보니 저 스킬은 맞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가 보스존 안에 두 용만 넣어 놓은 동안.

“…….”

네드 님은 용에게 매우 미안한 얼굴이었다.

양심을 버리십쇼. 쟤들은 원래 저러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보아야겠습니다.”

결국 네드 님이 말했다. 이러다가 예누스 정제육하고 구름사탕보다 비싼 음식 개발하시는 거 아냐?

가끔 본인이 개발한 용 음식을 주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다.

당연히 용은 비싼 걸 먹을수록 싼 건 쳐다도 안 봐서 돈 먹는 하마가 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어지간한 사람은 절대 용에게 그런 걸 먹이지 않았다. 주머니 텅 비고 싶지 않으면.

“비상식량, 조금만 더 힘내자! 맛있는 것 만들어 줄게!”

네드 님이 비상식량을 응원했다.

―크오오오!

그러자 비상식량은 의욕적으로 공격을 맞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크흠.

그 사이로 엘데의 은근한 눈빛이 느껴졌다.

엘데 눈 가려야겠……다가 아니라, 잠깐만.

원래대로 돌아가면 입 비싸진 비상식량한테 내가 밥 줘야 하는 거 아냐?

하지만 네드 님을 말릴 수도 없었다.

나라도 PC버전의 펫으로서 용을 본 게 아니라 눈앞에서 온갖 감정표현을 하는 용을 먼저 만났으면 저랬을 것 같았다.

내 말엔 콧방귀만 뀌던 비상식량이 귀여운 척하는 건 좀 한 대 때려 주고 싶지만 아무튼 그랬다.

―콰릉! 콰르릉!

그렇게 몇 분 더 용들이 고생한 후.

“엘데, 고생했어!”

내가 외치자 엘데가 액세서리화되면서 내 어깨에 내려앉았다.

“비상식량, 돌아와!”

네드 님의 명령에 따른 비상식량도 마찬가지였다.

―우웅!

그 순간 보스룸이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아무도 입장하지 않았던 것처럼.

“대충 어떻게 잡아야 할지 알 것 같아요.”

보스 패턴 파악 끝이었다. 난 리리스를 가리켰다.

가성비 게임답게 리리스의 동작은 레벨 500대 던전 마지막 보스와 같았다.

어쩐지 걸어 나오는 모습도 비슷하더라니!

그래픽이고 몬스터 생김새고 색만 바꿔서 우려먹는다고 ‘사골리아’라고 불리는 게임다웠다.

“잘 보세요. 이렇게.”

내가 손을 폈다가 천천히 말아쥐었다.

“천천히 주먹 쥐면 한 명한테 강한 공격.”

그리고 팔 넓게 벌리면 광역기.

별안간 꺄하하하거리면 기를 모아서 공격하는 거니까 이건 기를 모으지 못하게 방해해야 했다.

“그리고 몸을 살짝 수그리면 그건 돌진기니까 리리스가 보는 방향에서 피해야 돼요.”

내 말이 끝나자 네드 님이 감탄했다.

“관찰력이 좋으시군요.”

“이건 관찰력이라기보단…….”

이렇게 순수한 칭찬을 받으니 양심이 찔렸다. 난 결국 어깨를 으쓱했다.

“경험이죠.”

이 게임만 10년 하면 이렇게 됩니다.

라는 뒷말은 붙이지 않았다.

뉴비가 감탄하는 눈으로 보는 게 싫지는 않았으므로.

* * *

새로운 던전이나 보스가 업데이트되면 가장 먼저 뛰어드는 건 내 일이었다.

[이번 보스 유니 클리어함?]

[이번 보스 공략 언제나오냐]

[공략 나올때까지 라면먹고옴ㅋㅋ개꿀]

게시판에선 날 기다리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귀찮게 머리 굴리기 귀찮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난 모르는 보스를 연구해서 잡는 게 유네리아의 재미라고 느끼는 사람이었기에, 기꺼이 공략을 올려서 공유했다.

그리고 그 많은 경험에 따르면.

“보스 체력이 깎이면 새로운 스킬도 쓸 수 있거든요? 근데 그럴 땐 아까 제가 사라졌던 쪽으로 오세요.”

돌발상황에 대비할 대책 하나는 있어야 했다.

천국의 계단에 대해 자세히 알려 주려면 시간이 걸리니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토르의 검을 꺼내면서 엘데가 어깨에 있는지 재차 확인했다.

―스릉.

그동안 네드 님은 내가 주로 썼던 검을 꺼냈다.

와, 저게 강화할 때마다 훅훅 깎이는 지옥의 강화확률을 뚫고 22강이나 한 무기인데 왜 이렇게 초라해 보이지?

[유니 근황....jpg]

강화 실패하면 무기가 박살 나는데 그걸 뚫고 21번이나 강화를 했다고 게시판에 내 스크린샷이 도배되기도 했다.

하지만 토르의 검 옆에서는 그런 검도 그냥 철제 작대기 하나에 불과했다.

“갑시다.”

얼른 잡고 끝내자! 보스룸에 뛰어들자 알림이 떴다.

[‘보스룸 : 네크로맨서 리리스’에 진입합니다.]

익숙한 알림과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레벨 ‘???’인 몬스터.

보통 이런 경우 어쨌든 물음표가 네 개는 아니니까 세 자릿수 숫자라고 생각해야 했다.

그럼 레벨이 최대 999일 수도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현재 유네리아의 유저 만렙은 500.

요컨대 더럽게 셀 수 있다는 의미였다.

―깡!

[-1]

그리고 우리 쪽에서 주는 데미지가 더럽게 안 박힌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인이 누구인가?

어느 게임이든 잡지 말라고 놓은 보스 몬스터를 기어코 잡아내는 사람들이 아닌가?

―지지직!

게다가 우리에겐 마비 효과를 주는 토르의 검도 있었다.

“꺄하하하!”

리리스의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난 재빨리 리리스의 어깨를 토르의 검으로 툭 쳐 주었다.

―파직!

그러자 토르의 검의 마비 효과 때문에 리리스가 기를 모으던 것이 흩어져 버렸다.

보통 이런 보스들은 마비 효과가 제대로 듣지 않지만, 아주 잠깐 멈칫하게는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토르의 검은 사기였다.

게다가 어차피 딜은 내가 하는 게 아니다.

―우우웅!

네드 님의 머리 위에 여러 가지 색의 마법의 창이 떠올랐다.

내가 자주 쓰던 스킬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네드 님은 저걸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잘 조합해서 쓰고 있었다.

―쿠콰콰쾅!

[-129]

[-98]

[-117]

[-213!]

그러자 나름(?) 무지막지한 데미지가 들어갔다. 그리고 리리스의 HP 게이지바가 아주 미세하게 깎이는 게 보였다.

잡을 만한데?

내 캐릭터…… 아니, 네드 님 장하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네드 님도 점점 더 강력한 조합으로 스킬을 쓰기 시작했다.

[-502]

[-416]

그러자 당연히 리리스의 HP가 떨어지는 속도도 빨라졌다.

어렵지 않게 잡을 듯했다.

하지만 어이가 없는 건 그대로였다.

아니, 30대 시나리오 지역인 알라반에 이런 걸 넣어 놨어야 했을까?

물론 PC버전이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린 리얼 버전(?)이었다.

하여간 게임을 제대로 만드는 역사가 없어요!

이를 갈 때였다.

[-1,023!]

네드 님은 내 캐릭터를 점점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스킬을 효율적으로 조합하는 방법을 알고 계신 것처럼.

그중에는 랭커들 사이에서만 있던 내가 듣도보도 못한 조합도 있었다.

[-4,569!]

심지어 효과도 좋았다.

저 정도면 진짜 재능이다.

“와, 잘하시는데요?”

난 진심으로 감탄했다.

최상위 레이드 뛴다고 오는 애들이 네드 님만큼 했으면 라면딜한다고 욕은 안 박았을 텐데!

점점…… 점점 탐이 난다……!

내가 눈을 반짝였을 때였다. 네드 님이 짧게 묵례해 왔다.

“감사합니다.”

“아니 근데 그런 재능으로 왜 이런 망겜을…….”

하긴, 요즘 갓겜이 어디 있어?

난 입맛을 다시며 리리스의 공격을 휙 피했다.

그때였다.

리리스는 HP가 50% 이하로 떨어지자, 갑자기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이…… 버러지 같은 것들이……!”

그러더니 극대노하기 시작했다. 저 전형적인 대사 하며 맵의 가운데로 순간이동하는 것까지.

저건 강한 공격을 쓴다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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