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켄?”
왕성 지하에서 기사단장하고 만난다?
이건 이상하지 않았다.
문제는 누가 봐도 비밀스러운 통로인 수로의 안쪽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기사단장이 나왔다는 점이었다.
누가 봐도 수상했다.
그것도 갑자기 이렇게 그림자에서 있어 보이게 튀어나온다?
누가 봐도 흑막 플래그 아니냐?
아니, 기껏 살려 줬더니 흑막??
그럼 얘 안 살렸으면 알라반 왕성 퀘스트에 흑막이 없는 거야?
근데 진짜 여기에 네가 왜 나오냐?
“지하에 볼일이 있어서요.”
내가 답하는 사이 네드 님은 켄을 경계하고 있었다.
레벨 500의 경계……!
효과는 엄청났다!
그의 기세에 조금 멈칫한 켄이, 그의 시선을 피하며 나를 보았다.
어쭈, 난 만만하다 이거냐?
“꼭 가셔야겠습니까?”
그때 켄이 물었다. 그러면서 내 앞에 선택지가 떴다.
[① 네.
② 그건 왜 물어보세요?]
어차피 둘 다 간다는 뜻 아니냐? 난 궁금한 김에 2번을 선택했다.
“그건 왜요?”
내 말에 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잠시 침음하던 그가 말했다.
“이곳은, 오래된 왕성입니다. 알아서도 보아서도 안 될 것들이 잠들어 있곤 하더군요.”
보통 그런 걸 찾아내는 직업을 모험가라고 부른단다.
실제로 유네리아에는 ‘트레저헌터’라는 히든 타이틀을 획득하면 얻는 스킬 중에, 땅 파면 확률적으로 보물 지도가 나오는 스킬이 따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대박을 많이 터뜨리는 게 이 알라반 왕성 지하였다.
“전 모험가님께서 그런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나를 걱정하는 듯 말하는 켄의 손은 어느새 검 손잡이에 올라가 있었다.
말과 행동이 반대인 친구였다. 얼씨구?
“그래도 가야겠어요.”
켄이 앞에서 칼을 뽑든 죽음의 댄스를 추든 크리스탈이 여기 있으니 난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켄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그렇다면.”
검 손잡이에 올려진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제 선에서, 막겠습니다.”
―스릉!
그가 검을 뽑았다. 그리고 그의 머리 위에 레벨이 떠올랐다.
[켄 / Lv. 300]
네드 님이 툭 치면 죽겠네……가 아니라!
여기 30레벨대 던전 아니냐? 300이 여기서 왜 나와?
켄은 날 살피며 말했다.
“지금 상태로는 막으실 수 없을 겁니다.”
그가 자신 있게 말하든가 말든가 난 혀를 찼다.
네 눈엔 내가 30레벨 왕성 퀘스트를 막 시작한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안타깝게도 레벨이 열 배가 넘는단다…….
그리고 옆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스킬 하나로 왕성을 날려 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앞으로 가지 않겠다 하신다면 검을 내리겠습니다. 그러니―”
켄이 말할 때였다. 어느새 내 옆에 있던 네드 님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그가 무림 고수이기 때문은 아니고 내 스킬 중에 단거리 순간이동을 쓰신 듯했다.
아니, 스킬만 몇백 개일 텐데 저건 어떻게 찾으셨대?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그때 네드 님의 온화한 목소리가 울렸다.
“……!”
켄이 놀랐는지 멈칫했다. 어떻게 이런 움직임이! 하는 표정이었다.
다른 표정이지만 나도 놀라긴 했다.
켄이 살기 드러내면 보스전 시작되는 거 알고 저러시는 건가?
보스전 그냥 넘어가려고? 드디어 유네리아에 적응하셨단 말인가?
“이곳에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습니다. 지하만 살펴보고 나올 거고요.”
나와 켄이 멈칫하는 사이 네드 님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러니 보내 주시죠.”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지하수로의 공기를 가라앉히는 듯했다.
하지만 켄은 서서히 미간을 찌푸렸다.
“그럴 순 없습니다.”
그러더니 몸을 낮췄다.
“이 너머로 가려면 저를 죽이고 가셔야 할 겁니다.”
결국 보스전이군.
내 손으로 살린 초보 마을 NPC가 알고 보니 흑막?
뒤통수 전개에 골이 얼얼하다고 느낀 순간.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지간하면, 비켜 주시겠습니까?”
예?
난 손으로 인벤토리를 뒤적거리다 말고 입을 떠억 벌렸다.
방금 그 말은 네드 님 목소리로 울렸다.
아니, 저 유려한 협박은 뭐지?
“…….”
켄은 가까이에서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고 한참 침묵하다가, 결국 몸을 바로 세웠다.
아무래도 가까이에선 그의 강함……이 아니라 스탯이 느껴지는 듯했다.
“알겠습니다. 일단은 물러나죠. 하지만,”
켄은 뒷걸음질 치며 그림자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그러면서 아련한 목소리를 남기는 건 잊지 않았다.
“부디 지하에서,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거 누가 봐도 지하에 뭐 있다는 플래그 아니냐?
난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는 켄을 황당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통찰 스킬로 봐도 없습니다.”
네드 님이 그때 그림자 속을 보다가 말했다.
아니, NPC 사라진 자리에 통찰 스킬을 써 볼 생각은 어떻게 하셨어요?
하지만 뭐가 보일 리가 없었다.
자고로 NPC들이란 대륙 서쪽 끝 섬에서 ‘XXX로 같이 가자!’라고 말하며 스르르 사라지는 놈들이 아닌가?
물론 그들은 1초 만에 대륙 반대편에 가 있다.
퀘스트 마크를 띄운 채로.
아니, 1초 만에 갈 수 있으면 대륙 반대편에 나도 같이 데려가든가!
“NPC들이 뭐 그렇죠.”
그래도 켄이 흑화할 줄은 몰랐는데!
아니, 기껏 살려놨더니 사람을 협박해? 역시 유네리아에는 인성왕 NPC밖에 없단 말인가?
“아무튼 가죠. 다 왔어요!”
크리스탈 얼른 쌔비고 튄다!
이다음 퀘스트가 어디더라? 안 바뀌었으면 아마 남쪽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말고 난 문득 네드 님에게 물었다.
“근데 원래 그렇게 협박을 잘하세요?”
그런 사람으로 안 보였는데, 아까 물 흐르듯 협박하는 모습은 완전 딴사람 같았다.
내 말에 네드 님이 고개를 기울였다.
“협박이요?”
이 사람은 그게 협박이란 생각을 안 한 듯했다.
난 손을 내저었다.
“아아닙니다.”
* * *
그렇게 얼마나 더 걸었을까.
화면 너머로 많이 봐서 익숙한 길을 꽤 걸었을 즈음.
이쯤 되면 나올 때가 됐는데?
라고 생각하자마자 멀리 밝은 빛이 비치는 곳이 보였다.
“저곳입니까?”
네드 님이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자연스럽게 걸음이 빨라졌다.
그리고 빛이 비치는 곳에 도착해 옆을 돌아보니, 예상대로 익숙한 공터가 나타났다.
그 가운데에는 고고한 빛을 발하는 푸른빛 크리스탈도 있었다.
“저희가 가진 것과 색만 다르게 생겼군요.”
네드 님이 말했다.
“네. 다른 두 개도 이럴 거예요.”
그것들까지 다섯 개 전부 찾아서 중앙 호수에서 박살 내면 끝!
난 개운한 얼굴로 기지개를 켰다.
알라반 지하의 함정이라면 들어갈 때마다 바뀌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일단 함정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그렇게 내부를 보던 난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
방의 장식이 좀 바뀌었는데?
원래 꾸미기 귀찮았나 싶을 정도로 단조롭던 방 안은 보다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게다가 무슨 단상처럼 계단까지 두 단이나 만들어 놓았다.
아니, 중요한 버그는 안 고치고 이런 데에다가 쓸데없이 공을 들여?
그럼 당연히 함정도 달라졌을 것이다.
“네드 님. 방 안이 제가 기억하던 거랑 좀 다르거든요?”
“음…….”
네드 님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방 안에 무슨 함정이 있는지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크리스탈 건드리진 마시고.”
내 말에 네드 님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함정이라면 많이 치명적입니까?”
방 안을 흩어져서 찾아보려던 때에 네드 님이 불쑥 물었다.
난 내 능력치, 아니 네드 님의 능력치를 생각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지금 네드 님이면 따끔한지도 모를 수준?”
“아.”
네드 님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사라졌다.
네드 님은 보다 적극적으로 이곳저곳을 밟아 보며(?) 함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계단 쪽을 살펴보았다.
“분명히 이놈들 맵을 엉터리로 만들었을 거란 말이지.”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이 계단의 모양.
이건 맨 마지막 보스 던전으로 올라가는 길의 계단과 똑같이 생겼다.
요컨대 그냥 복사 붙여넣기 했다는 소리다. 새로운 계단 모양 디자인한 거 아니란 뜻이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과연 가까이에서 보니 계단과 계단 사이의 균열이 보였다.
유네리아에서 맵 패치를 잘못하면 으레 보이는 구멍이었다.
그리고 그건 계단 근처에서 많이 보였다.
“보통 이런 곳이면…….”
난 거기로 발을 슥 뻗어 보았다.
계단이라면 단단하게 신발을 받쳐 주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이 망겜이 또!
난 허공처럼 느껴지는 계단 위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 순간.
―후욱!
순식간에 몸이 아래로 미끄러지듯 떨어졌지만 난 놀라지도 않았다.
“아니, 이거는 현실화돼도 버그가 그대로네.”
어이가 없네?
단차가 있는 곳에서 갈라진 부분을 잘 찾아서 그곳 위로 올라서면, 맵 아래로 훅 내려앉는 버그.
이걸 유저들은 ‘천국의 계단’이라고 불렀다. 유네리아의 고질적인 버그 중 하나였다.
“유니 님?”
그때, 네드 님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갑자기 없어져서 놀라신 모양이었다.
난 다시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검은 어둠 속으로 발을 뻗는 것 같지만, 이렇게 앞으로 걸어 나오면?
―후웅!
다시 위로 솟아오른 내 앞에 당황한 네드 님의 모습이 보였다.
“!”
네드 님은 놀란 듯 반걸음 물러서기까지 했다.
“밑에 공간 있어요.”
내 말에도 네드 님은 반응이 없었다.
“네드 님?”
그리고 내가 다시 부르기 시작하자 곱게 두 손을 모으더니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소생 스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