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112)
  • <29화>

    진흙 생기는 것도 그렇고 보나 마나.

    “왕성 지하입니다!”

    그래, 거기겠지.

    “지하에 가서 원인을 제거하면 되겠군요.”

    가장 많이 칼을 맞았지만 당연히 멀쩡한 모습의 네드 님이 말했다.

    그러자 연구원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저희가 지도에 위치를 표시해 드리겠습니다.”

    네드 님이 신기한 듯 물었다.

    “지도에 표시가 가능할 정도로 정밀하게 나옵니까?”

    하지만 더 신기한 건 이거였다.

    ―덥석.

    나와 네드 님 시야 한쪽에 있는 지도를 마음대로 집어가서 펜으로 동그라미를 칠 수 있는 저 능력 말이다.

    또 마음대로 선택지 누르는 건 아니겠지?

    내가 초보 마을 촌장 때 겪은 일의 PTSD에 시달리는 동안 네드 님은 지도를 돌려받으며 놀라고 있었다.

    그래, 신기하시겠지.

    NPC가 갑자기 화면의 지도를 쓱 빼서 가져가는데.

    “정말 이게 표시된 겁니까?”

    하지만 그는 다른 것에 놀란 듯했다.

    “?”

    뭐 때문에 저러지?

    무심코 지도를 본 난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크리스탈을 찾아야 하는 알라반 왕성 지하수로는 당연히 지도가 없었다.

    그러니 이렇게 표시해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네드 님은 세상 심각한 표정이었다.

    “땅을 파고 들어가는 게 빠르지 않을지…….”

    “그럼 감옥 엔딩이거든요???”

    심각한 표정으로 사고 칠 생각 하지 마!

    난 기겁해서 그를 잡아끌었다.

    “어디로든 지하로 진입해 보죠. 갑시다!”

    저들 앞에서 지하수로를 알고 있다는 소릴 할 순 없었으니 난 연구원들에게서 몸을 돌렸다.

    그때 네드 님이 말했다.

    “그런데 저희가 이곳으로 향하는 동안 연구원들은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건 맞는 말이긴 했다.

    유네리아를 상식으로 상대하는 네드 님의 말에 연구원들은 다시 한번 감동받은 얼굴이었다.

    “친절한 모험가님이시군요!”

    “하지만…… 저희는 괜찮습니다……!”

    연구원들이 별안간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네드 님의 손을 양손으로 꼬옥 잡았다.

    “비록 왕가의 병사들을 해쳤지만 알라반을 위한 행동이었다는 걸 밝힌다면 살려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행복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시나리오 라이터가 있는지 의문스러운 게임의 NPC들답게 뇌가 없었다.

    그게 되겠냐?

    “예?”

    네드 님도 상식적인 인간이었으므로 반문했다.

    “그러니 어서 흙의 비밀을 밝혀 주십시오!”

    대책 없는 행복회로를 돌린 연구원들은 다시 기우제를 지내기 시작……한 게 아니라 마법 기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얼른 가요.”

    하지만 네드 님은 그들이 좀 걱정되는 듯했다. 난 마음 따뜻한 뉴비님에게 작게 스포를 해 주었다.

    “쟤네 안 죽어요. 나 시나리오 다 깨서 알아요.”

    물론 시나리오가 좀 많이 바뀐 것 같았지만 하얀 거짓말도 때로는 필요한 법이다.

    내 말이 떨어진 후에야 네드 님의 걸음이 좀 가벼워졌다.

    “그럼 얼른 흙의 비밀을 밝히죠.”

    네드 님이 서둘러 걸음을 내디뎠다.

    반대쪽으로.

    “그쪽 아니고 이쪽이요.”

    건물만 나오면 귀신같이 길치가 되시네.

    난 지도를 보며 그를 잡아끌었다.

    * * *

    “지하수로는 미로니까 잘 따라오셔야 돼요. 이미 깨 봐서 길은 알고 있으니까.”

    내 말에 네드 님이 멈칫했다.

    “미로…….”

    미로가 건물 내부라고 해도 미로에서는 길을 잃으시는 모양이었다.

    그야 그러라고 있는 미로니까 당연했다.

    심각하지 않은 일에 심각해지는 뉴비!

    심각하게 귀엽다!

    네드 님 미아 되면 내가 지하 벽 뚫어서라도 찾아 줄게!

    물론 그랬다간 지하 감옥에서 재회하는 게 더 빠르겠지만 아무튼!

    “저 잡고 따라오세요. 안 잡으면 함정 밟고 이상한 데로 떨어질 수도 있어요.”

    난 그에게 손짓했다.

    유네리아엔 이런 사람을 위한 ‘잡기’라는 시스템이 있었다.

    남의 손을 잡고 가는 아기자기한 시스템이었는데 레벨 차이가 300 이상 나는 등 조건이 안 맞으면 불가능한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 나랑 네드 님의 레벨 차이는 186.

    휴, 레벨업 많이 해두길 잘했다!

    “그럼…….”

    잠시 고뇌하던 네드 님이 내게 손을 뻗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넵넵.”

    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네드 님은 내 손을 잡는 대신, 내 후드를 슬며시 잡아 쥐었다.

    “?”

    난 지금 후드가 달린 가벼운 겉옷을 입은 상태였다. 로브처럼 생기기도 한 옷의 후드는 나름 튼튼했다.

    500레벨이 잡아당겨도 안 뜯어질 정도로.

    “오.”

    하지만 그러라고 튼튼한 모자가 아니었을 텐데?

    난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떨떠름했지만, 그렇다고 다짜고짜 거기 말고 손잡으라고 할 순 없잖아……?

    * * *

    게임화면 너머로 봤던 곳을 눈으로 직접 보는 기분은 신기했다.

    당연히 낯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낯선 느낌도 잠깐, 내가 지하수로로 향하는 통로를 찾는 데에는 십수 분도 걸리지 않았다.

    “여기가 지하수로 입구예요.”

    내 말에 네드 님은 여전히 내 후드를 잡은 채 감탄했다.

    “어떻게 이렇게 길을 잘 기억하십니까?”

    “여길 한 20바퀴쯤 돌다 보면 알게 되더라고요.”

    “예?”

    네드 님이 당황한 듯 되물었다. 난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할 때는 공략 같은 게 없어서 직접 찾아봐야 했거든요.”

    라떼는 말이야, 클리어한 사람도 얼마 없었다고요!

    난 여튼 감탄하는 뉴비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긴장되는군요.”

    내 후드를 잡은 네드 님의 손에 좀 더 힘이 들어갔다.

    눈이 마주친 그의 얼굴엔 미안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손에는 점점 힘이 들어가, 자칫하면 모자가 찢어질 기세였다.

    “저도 원래 길치였어요.”

    그래도 모자를 쥔 손에서는 힘이 빠지지 않았다.

    난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길 모르겠으면 그냥 용가리 쿡쿡 찔러요! 길 다 찾아줘!”

    “그런…… 능력이 있었습니까?”

    네드 님은 눈을 크게 떴다.

    어깨에 얹은 비상식량을 보시는 시선이 심상치 않다.

    비상식량아, 밥값 할 때 됐다.

    “네, 비상식량 정도 되는 용이면 다 있어요.”

    ―크아아아암.

    하지만 양심은 말아먹은 비상식량놈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 * *

    “슬슬 어두워지는 거 보니까 뭐 나올 것 같은데.”

    수로를 한참 걷던 난 본능이 주는 신호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템창에서 대충 아무 검이나 꺼내 들었다.

    토르의 검보다 안 비싼 거! 아무튼 좀 막 쓸 만한 거!

    [키안의 검(극강)+19]

    그리고 눈이 튀어 나갈 뻔했다.

    “극강 19강??”

    하도 휘황찬란한 템창이라 미처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분명 이전에 템 구경 한 번 했었는데?!

    하지만 키안의 검은 겉보기에 생긴 건 평범하게 생겼기 때문에 못 봤을 법도 했다.

    하지만 그 평범한 외관과는 달리 균형 잡힌 성능으로 높이 평가받는 검이 키안의 검이었다.

    무엇보다 내구도가 반영구적이나 다름없어서 절대 깨지지 않는 검으로도 유명했다.

    거기에 극강작을 하고 강화를 할수록 더욱 단단해진다.

    물론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은 얼마 없다.

    아무리 키안의 검 성능이 좋기로서니 강화확률도 극악인 데다가 극강을 씌우는 것은 성공확률이 1%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서버에 키안 극강 19강이 있었다고??

    “아, 그 검.”

    네드 님은 보고 놀라지도 않는 듯했다.

    “판매자분께서 힘 스탯만 충분하다면 검으로 알라반 왕성의 본궁도 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검으로 무슨 건물 한 채를 들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단단한 검이었다.

    잠깐.

    “판매자가 직접 그렇게 말했어요?”

    “예. 보여 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설마 보여 달라고 한 거 아니죠?”

    난 얼굴이 새파래졌다.

    키안의 검 극강 19강을 할 만한 사람이면 이 서버에서 듣보잡일 리가 없다.

    게다가 알라반 왕궁을 들 수 있다?

    장사꾼들이 ‘~도 할 수 있어요!’ 같이 구라를 치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확신에 찬 말.

    힘 스탯만 충분하다면 들 수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면.

    “그럴 시간이 없어서 그냥 구매했습니다.”

    네드 님이 답했다. 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슬며시 물었다.

    “혹시 이거 판 놈…… 아니, 판매자 닉네임이 ‘파개한다’ 아니었나요?”

    “……!”

    네드 님이 눈을 크게 떴다.

    “아는 분이십니까?”

    “아는 사람은 아니고……. 그냥 들어봤어요.”

    유명한 멍청이죠……. 난 뒷말을 삼켰다.

    네드 님이 검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한 분이셨군요.”

    그가 가볍게 웃었다.

    “왕궁을 들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성능은 좋은 검이라고 들었습니다.”

    들 수 있을걸?

    닉값하려고 힘에 스탯포인트를 올인했다는 ‘파개한다’라면 이 정도 강도의 검을 들고 몇 가지 스킬을 쓰면 충분히 왕궁도 들어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차마 그 말을 해주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또각, 또각.

    다시 우리 둘의 걸음 소리가 수로를 울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띠링!

    알람음이 울렸다. 이건 지도에서 표시된 퀘스트 위치 근처에 도착했다는 소리였다.

    “오. 거의 다 왔네요.”

    다행히 수로 안에서의 크리스탈 위치는 변하지 않은 듯했다.

    “게임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재밌는 것 같습니다.”

    네드 님은 아직 알면 안 되는 고인물의 금단의 컨텐츠를 알아차린 듯했다.

    들켰나, 사실 유네리아는 캐릭터 채팅 게임이란 사실을……!

    ―탁.

    그때 우리 외에 다른 인기척이 수로를 울렸다.

    “!”

    놀라서 다른 길 쪽을 돌아보았을 때였다.

    “모험가님.”

    웬 목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맞은편 수로에서 점점 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리고 서서히 빛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어디 가십니까?”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질문하는 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