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28/112)
  • <28화>

    난 인벤토리를 보던 시선을 들어 허망한 눈으로 네드 님을 올려다보았다.

    “매몰 비용…… 이라니까요.”

    왜 사람을 팩트로 때리세요?

    내 말에 네드 님이 멈칫했다.

    “들인 시간하고 돈이 아깝잖아요.”

    내 말에 네드 님이 일반인의 일반론을 들이밀었다.

    “그럼 더 안 들이면 되는 게 아닙니까? 어차피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면.”

    “그게 정답인데 참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거든요.”

    이런 칼 같은 사람 같으니! 연어 게임이라고 들어는 봤어!

    접었다가 슬며시 생각나서 다시 복귀하게 되는 게임.

    속히 말해서 연어 게임이라고 불리는 게 유네리아였다.

    물론 연어질 했던 사람 중 90%가 복귀 3시간 안에 원래의 지능을 되찾고 게임을 삭제한다.

    왜?

    할 게 없기 때문이지!

    그때 알림이 떴다.

    [1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오는군요.”

    네드 님이 병사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레벨 30의 올망졸망한 애기 병사들이 우리 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난 습관적으로 토르의 검을 꺼냈다.

    ―스릉!

    그러다가 아차 했다.

    “아, 이거 말고 다른 거 찾고 있었지, 참.”

    좀 더 허접한 거! 쟤들 못 때려눕힐 만한 거!

    맨손으로 공격하는 것보다 더 허접한 데미지 내주는 무기!

    실타래 뭉치 같은 거!

    “쓸 만한 칼이 그거 말곤 없으실 겁니다.”

    그때 네드 님이 옆에서 담담하게 말했다.

    쓸 만하지 않은 칼 찾는 건데요?

    난 멈칫했다.

    ……하긴, 레벨 7 뉴비가 잡템 중의 잡템인 실타래 뭉치를 들고 있을 리가 없었다.

    ―싸울 차례인가.

    그때 엘데가 내 주머니에서 튀어나와서 날개를 쫙 폈다.

    “아아아아니, 넌 들어가고.”

    난 토르의 검을 쥔 반대쪽 손으로 그를 집어넣었다.

    혹시 알아보는 사람 있을라!

    ―?

    알라반 재앙의 화신은 내 반응에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물었다.

    ―그런데 너희는 결혼한 사이인가? 서로의 가방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군. 만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아까 내 인벤토리 상황을 네드 님이 알고 있었던 걸 들은 듯했다.

    엘데의 말에 내 아이템창에서 장난감용 목도를 꺼낸 네드 님이 물었다.

    “결혼과 아이템창이 관계가 있습니까?”

    ―그야 너희 모험가들은 결혼하면 가방을 공유하잖아.

    네드 님이 그걸 알 리가 없었다.

    “그런 기능이 있군요.”

    감탄한 네드 님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결혼한 것은 아닙니다.”

    결혼은 아니죠, 예.

    어쩌다 보니 그것보다 더 긴밀한 사이가 됐죠, 예.

    어떤 유네리아 부부가 능력치까지 바꿔봤겠습니까?

    ―그럼?

    “유니 님의 인벤토리가 원래 제 것입니다.”

    내 어깨에 앉아 있던 엘데가 눈에 띄게 흠칫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네드 님이 엘데를 돌아보며 말했다.

    “문제가 생겨서 잠시 제 물건들을 유니 님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비상식량을 쓰다듬어 준 그가 작게 속삭였다.

    “소환.”

    ―우웅!

    그러자 비상식량이 전투에 맞는 크기로 커졌다. 원래 용과는 이렇게 함께 싸우는 것이다.

    그 용이 알라반에 지진을 일으킨 재앙의 푸른 날개만 아니라면 말이다.

    “잠시 고생해 줘. 이번엔 죽지 않게 지켜 줄 테니.”

    네드 님이 비상식량을 쓰다듬어 주는 게 보였다.

    ―크르르릉……!

    비상식량은 네드 님의 스윗함에 감동한 얼굴이었다.

    그러면서 날 쳐다보았다.

    화면 너머로만 볼 땐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알 것 같았다.

    대충 저건…….

    ‘이 사람은 친절한데 넌 왜 그 모양이냐’라는 뜻인 듯했다.

    왜 말이 들리는 것 같지? 너도 말할 수 있는 용이었니?

    “걔 여기서 누워서 자도 안 죽어요. 레벨 차이 나서. 오히려 꼬리나 날개로 병사들 안 죽이게 조심해야 돼요.”

    내 말에 네드 님이 비상식량을 돌아보았다.

    내가 PC버전 화면 너머에서는 물론 게임 안에 들어와서도 비상식량에게 줘본 적 없는 따스한 시선이었다.

    조심하라는 것처럼.

    ―뀨우……!

    비상식량은 감동받아 울부짖었다. 난 그 모습을 보며 떨떠름하게 말했다.

    “비상식량이 공격형으로 키워진 용이 아니라서 공격은 해도 되는데 힘 조절 해야 돼요. 안 죽이고 한 번에 체력을 많이 깎으면 상대가 기절만 하거든요.”

    그렇게 기절만 시켜서 적이 못 몰려오게 해야 한다.

    잘못하다 죽이면? 병사 죽여서 신뢰도 바닥 치는 엔딩이다.

    “아. 그럼 비상식량은…….”

    “주의 끌라고 해요.”

    어그로 끌라고 해요, 라고 하면 못 알아들으실 것 같아서 슬며시 다르게 말해 드렸다.

    “가만히 앉아서.”

    내 말에 네드 님이 멈칫했다.

    그리고 걱정을 담은 얼굴로 비상식량을 길 한쪽에 배치했다.

    “맞아도 안 죽는다니까요.”

    ―크아아암.

    그 증거로 비상식량은 하품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네드 님이 돌아보자,

    ―뀨루루…….

    불쌍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저놈 봐라?

    내가 슬며시 주먹을 쥐어 보이자 그제야 비상식량이 고개를 돌렸다.

    “그럼 엘데는 들어가고.”

    내가 어깨를 툭툭 쳤을 때였다. 엘데는 그때까지 말이 없었다.

    이놈이 답지 않게 조용하네.

    “엘데?”

    내 말에 엘데가 입을 열었다.

    ―잠시 네드의 가방을 네가 가지게 되었다면, 혹시, 그 번개가 나오는 검도 네드의 것이냐?

    내가 드디어 용이 되려나 보다.

    유네리아도 드래곤과 함께하는 환상판타지 어쩌고 하더니 유저가 용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왜 이딴 생각을 하냐면 엘데의 표정이 읽혔기 때문이었다.

    그의 얼굴은 배신감과 설마 하는 의문에 차 있었다.

    “물론입니다.”

    그때 엘데의 속도 모르고 맘도 모르는 네드 님이 가볍게 답했다.

    ―…….

    그 순간 입을 떠억 벌린 엘데의 표정은 정말 가관이었다.

    안타깝게도 네드 님도 네 편은 아니었단다!

    난 왠지 통쾌한 마음으로 그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 * *

    “저 마법사들을 막아라!”

    몬스터들은 3웨이브까지 몰려왔다.

    원래 내가 했던 시나리오에서는 크리스탈의 기운을 느낀 몬스터들이 몰려온다는 설정이었지만, 이번에 달려오는 건 황가의 병사들이었다.

    “수가 생각보다 많군요.”

    네드 님은 곤란한 얼굴이었다.

    그는 내 스탯을 가지고 있는 바람에 경비병을 건드릴 수도 없어서, 그냥 공격을 맞고 있었다.

    처음엔 칼을 보고 멈칫했던 그는 곧 솜방망이보다도 데미지가 안 들어온다는 걸 알았는지, 그냥…….

    몸으로 병사들을 막고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당연히 연구원들은 감동의 해일에 쓸려나가고 있었다.

    사정 모르고 뒤에서만 보기엔 대단한 모습이긴 했다.

    팔을 양쪽으로 벌린 채 병사를 막는 모험가의 뒷모습.

    “저놈을 먼저 죽여라!”

    “이얍!”

    병사들이 수없이 몰려와 검을 내지르고 휘둘러도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온몸으로 검을 받아내는 모습.

    얼마나 감동적인 희생(?)인가……!

    [-0]

    [-0]

    물론 네드 님의 머리 위에 뜨는 데미지는 다른 의미로 감동적이었다.

    요컨대 모습과는 달리 그는 전혀 타격이 없었다.

    그때였다.

    [병사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알림창이 떴다.

    아니, 완벽하게(?) 막기만 하면 됐지 수까지 정리해야 하는 퀘스트였냐!

    난 얼굴을 구겼다.

    이러면 병사를 안 건드릴 수가 없잖아!

    네드 님이 힘 조절을 하실 순 없을 것 같고, 결국 내가 해야 할 것 같은데.

    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마침 연구원이 들고 있는 깃펜을 발견했다.

    “잠깐 실례.”

    그리고 그 깃펜을 슥 채 왔다.

    “모험가님?”

    당황한 연구원이 외쳤지만 난 깃펜을 돌려줄 마음이 없었다.

    [깃펜은 공격용 무기가 아닙니다.]

    알림창이 떴지만 난 무시했다. 그래서 깃펜을 잡은 거니까.

    공격용 무기가 아닌 걸로 치면 데미지가 형편없이 낮아지거든!

    이러면 병사들이 한 방에 죽진 않을걸!

    난 깃펜의 깃털 부분으로 눈앞 병사의 볼을 툭 쳤다.

    ―팍!

    깃펜으로 건드린 건 절대 아닌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병사가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

    연구원들도, 병사들도, 네드 님도 나를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았다.

    물론 나도 놀랐다.

    서서설마 죽은 건 아니지? HP 30% 이상 깎인 것도 아니지?

    ―털썩!

    다행히 병사는 기절만 한 상태였다. 체력은 넉넉하게 남아 있었다.

    “음, 좋았어!”

    데미지 적당하고!

    그 사실을 알자마자 내가 할 건 하나였다.

    깃펜으로 병사들 툭툭 치기!

    ―툭, 툭, 툭!

    그리고 내가 깃털로 건드릴 때마다 병사들은 무슨 발리우드 액션처럼 멀리 나가떨어졌다.

    “오오……!”

    연구원들은 감탄하면서도 허공에 기우제…… 아니, 기구 만지는 모션을 계속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하길 수 분.

    [타임어택 퀘스트 완료!]

    알림창이 뜨면서, 연구원들이 만지던 마법 기구에서 빛이 퍼져 나왔다.

    “오오, 방향이 잡혔습니다!”

    연구원들이 흥분해서 외쳤다.

    “이 방향으로 가면 진흙의 원인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어디죠?”

    난 모른 척 물었지만 알 것 같았다.

    0